완주 대둔산
명물 구름다리 아래 오색 단풍 즐비, 고소공포증에 비명 소리도
▲ '그래, 이 단풍이야!' 가을 하면 단풍, 단풍 하면 대둔산이다. 산허리는 벌써 단풍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오색 재킷 차림의 '인간 단풍(?)' 유산객들이 삼선계단에 매달린 듯
서 있다. 보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들이나 아찔하긴 마찬가지다.
단풍 전선이 남하합니다. 하루하루 산색이 달라집니다. 설악을 물들이고 백두대간을 따라 조만간 지리로 치달을 기세입니다. 대개 단풍은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해지면 시작됩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엽록소를 분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로 보냅니다. 이때 햇볕이 나무를 상하게 하는데, 다행히 항산화 역할을 하는 붉고 노란의 색소들이 햇볕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울긋불긋한 이파리는 일종의 '선블록'을 한 셈입니다.
어떤 과학자는 나무가 겨울을 나려고 잎 온도를 높여 색이 바뀐다고도 풀이합니다. 일종의 월동대책이라네요. 산으로 올라갈수록 단풍 농도가 짙은 건 낮은 데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 영양을 더 섭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단풍 색이 화려할수록 환경은 더 모질다는 얘기이지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래 가사를 단풍은 몸으로 보여줍니다.
산꾼들은 만산이 홍엽으로 바뀔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단풍의 추파에 못 이겨 산으로 오릅니다. 산행을 안 좋아해도 이럴 때는 산만 보면 '와' 하고 입을 벌리기 일쑤지요. '산&산'도 전북 완주 대둔산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입적한 법정 스님은 평소 '시절인연(만남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을 강조하셨는데요. 올 가을엔 대둔산과 시절인연을 맺어 보시면 어떨는지요? 내려오는 길에 고운 단풍잎 하나 바랑에 꽂고서 말이죠.
'한 폭의 풍경화' 지천에 펼쳐져
정상 마천대서 덕유산 줄기 조망
낙조산장 뒤 마애불, 등산객 반겨
대둔산(878.9m)은 금강 남쪽의 정맥인 금남정맥의 허리에 있다. 진안고원 마이산의 기세를 받아 계룡산으로 잇는다. 주변에 이만한 높이의 산이 없다 보니 금방 눈에 띈다. 장쾌한 암봉 덕에 '호남의 금강', '작은 설악'으로 대접받는다. '대둔(大屯)'은 큰 언덕이란 뜻인데, 이 지역에선 한듬산이라고 한다. 어떤 설은 산세는 계룡산보다 뛰어나나 명당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 '한이 들었다'고 한듬으로 푼다. 산이 하늘로 치솟았다고 '도솔산'으로도 부른다.
봄 철쭉, 여름 계곡, 겨울 눈꽃 등 사계절 내내 쉬지 않고 매력을 뽐내는 산이다. 그 중에서도 가을 단풍이 일품이다. 산꾼들은 이 계절의 대둔을 '캘린더 산'으로 칭한다. 산에 오르면 어딜 봐도 달력에 나올 법한 장관이 지천이라는 의미에서다.
전북과 충남이 동시에 이 산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하여 등산로는 전북 완주, 충남 논산, 금산 세 갈래에서 산정으로 모인다. 논산 쪽은 계곡이 좋고, 금산에서 오르면 능선 타는 맛이 괜찮다. 단풍을 제대로 즐기려면 단연코 완주 쪽이다.
산행은 버스터미널에서 올라 매표소를 통과해 동심정 휴게소~구름다리~약수정으로 연결된다. 한숨 돌렸다가 바라만 봐도 후들거리는 삼선계단을 밟고 정상인 마천대에 닿는다. 마천대에서 돌아 나와 단풍 숲길을 걷고 서해가 보인다는 낙조대에 선다. 낙조대에서 내려와 용문굴과 칠성봉 전망대에서 내려간다.
이 구간은 너덜길인데, 경사가 가팔라 신경이 쓰인다. 용문골을 통과하면 종점인 용문골 입구가 나온다. 기점과 종점이 도보로 10분 남짓해 사실상 원점회귀 산행이다. 산행 거리는 약 6.9㎞로 전체 산행 소요시간은 넉넉잡아 4시간 정도. 가족산행을 하려면 케이블카로 산 중턱에 올라 구름다리~삼선계단으로 마천대에 다녀오면 된다. 소요시간은 2시간쯤 된다.
공용버스터미널 앞에 대둔산도립공원 주차매표소가 있다. 승용차는 2천 원을 내야 한다. 길옆에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제철 맞은 단풍 덕에 요즘 이 동네는 대목을 맞았다.
대둔산관광호텔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대둔산의 헌걸찬 멧부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5분 정도 가면 케이블카 매표소(승강장)이다. 요금은 대인 왕복 8천 원(편도 5천 원). 오전 11시(상행)부터 오후 6시(하행)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운행 거리는 927m, 구름다리 아래 승강장까지 5분가량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 휴게소를 통과하면 기다란 화강암 비석이 보인다. 동학농민혁명 대둔산항쟁전적비다. 안내문을 보자. 1894년 12월 공주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 1천여 명이 이 산에 숨어 3개월간 싸웠다. 이들은 이듬해 2월까지 정부군과 싸우다가 대부분 전사했고, 살아남은 몇몇은 칠성봉과 장군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이들의 혁명정신을 기려 비를 세웠다.
이제부터 본격 산행이다. 돌계단과 잘 맞춰진 너덜 오름길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낙석 위험' 간판이 있다. 10분쯤 지나면 동심정 휴게소에 다다른다. 물과 칡즙,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휴게소에 5분가량 오르면 동심바위가 보이는 너른 터가 있다. 포수 마스크를 쓴 것 같은 바위가 절벽 위에 앉아 있는 모양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동심바위를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머물렀다고 한다.
여기서 10여 분 더 오르면 쉼터가 나온다. 쉼터에서 직진하면 약수정, 구름다리는 오른쪽이다. 대둔산의 명물 구름다리(본명 금강현수교)는 금강문이라는 협곡 사이에 걸쳐 있다. 길이 50m, 폭 1m로 1985년 9월 27일 개통됐다. 한 번에 200명까지 통과할 수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이전 쉼터에서 직진하는 게 낫겠다.
다리는 양쪽으로 약간씩 흔들린다. 한 아낙네가 "꺅!" 하고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덩달아 놀란다. 아래를 보니 천야만야다. 오른쪽을 보면 대둔산의 암봉들이 덮칠 듯한 기세로 내려다본다. 골산의 산줄기 사이로 조물주가 온갖 색으로 칠한 듯 오색 단풍들이 융단처럼 깔렸다. 사진 찍는 사람과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탄성을 하며 교행한다. 다리 양쪽 끝에 전망대가 있어 조망처로 삼을 만하다.
다리를 건너 다시 7분 정도 오르면 약수정이다. 약수정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삼선계단이다. '삼선'은 세 신선이다. 고려가 망하자 한 재상이 세 딸을 데리고 이 산으로 들어왔다. 딸들은 세월이 흘러 산 아래를 보는 바위 신선이 됐다고 한다. 삼선계단은 삼선바위 오른쪽에 나 있다. 계단 수 127개, 길이 36m, 경사 51도로 보기에도 아찔하다. 바람이 부니 다리가 아니라 심장이 흔들리는 것 같다. 높은 곳에 무섬증이 있다면 아예 아래 우회로로 오르기를 권한다. 대신 계단에 서 뒤를 돌아보면 세상 단풍과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내 품에 안긴 것 마냥 뿌듯하다.
계단이 끝나면 10분 정도 완경사를 밟고 능선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여기서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까지는 왼쪽으로 2분가량. 마천대는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다'는 말이다. 삼각점과 개척탑이 있다. 산 정수리가 넓어 여기저기 밥을 먹는 유산객이 많다.
마천대에서 동남 방향을 대하면 백두대간의 덕유산 줄기가 어엿하다. 산줄기들은 밀물처럼 계면조의 톤으로 다가온다. 그 푸른 물살을 불타는 대둔의 단풍들이 잠재워버린다. 그 풍광에 억색한 애가 단번에 끊긴다.
다시 삼거리 갈림길로 나와 대둔산 동북 능선으로 방향을 수정한다. 등산로는 능선 윗길과 아랫길로 나뉜다. 윗길을 따라 단풍 숲을 오르내리기를 30분 정도 하면 낙조산장이다. 산장 뒤 암벽에 고려 말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숨은 듯 있다.
이정표를 따라 5분 남짓 가면 낙조대(859m)에 이른다. 서해가 보인다는 곳이다. 북으로부터 계룡산, 속리산, 황악산의 산줄기가 아련하게 조망된다. 낙조대에서 다시 나와 능선 윗길을 따라 30분쯤 순한 오솔길을 걸으면 용문골과 만나는 갈림길이다. 이 길부터 편마암 너덜길이라 주의해야 한다. 15분 정도 조심조심 내려오면 용문굴이 나온다. 용이 이 돌문을 지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승천할 때 별 일곱 개가 떨어져 칠성봉 바위가 됐다. 이 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굴 위쪽에 있다.
용문굴에서 나와 10분쯤 지나 왼쪽 능선 사면으로 붙는다. 여기서부터 종점까지는 둘레길처럼 푹신푹신한 길이 이어진다. 신선암부터는 이정표를 참고해 20분가량 걸으면 용문골 입구가 나온다.
*출처: 부산일보(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