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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라, 그러면 기회가 열릴 것이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으려면 좋은 장면을 많이 마주쳐야 한다. 좋은 장면을 많이 마주치려면 많이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면 제자리에 있을 때보다 좋은 광경, 좋은 피사체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긴다. 스마트폰은 움직이는 전화(mobile phone)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동 상황에서 사진의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크고 무거운 고급 카메라로는 촬영을 엄두도 못낼 상황에서도 작고 가볍고 얇은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한 손으로도 빠르고 간편하게 찍을 수 있다.
동영상 촬영장비 중에 스테디캠(Steadicam)이라는 것이 있다. 영화나 방송에서는 안정적인 화면을 얻기 위해 카메라를 삼각대나 거치대 위에 고정해 촬영한다. 스테디캠은 걷거나 달리는 사람의 뒤를 쫓는 장면처럼 촬영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흔들리지 않는 샷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 장비다.
그런데 스테디캠과는 반대로 고정된 피사체를 흔들리게 찍거나, 같이 움직이는 효과를 얻으려는 경우도 있다. 카메라를 받침대뿐만 아니라 스테디캠 같은 기계장치에도 의존하지 않고 손에 들고 찍는 것, 바로 핸드헬드(handheld)이다.
‘핸드헬드’ 촬영기법은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열혈남아],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 등으로 잘 알려졌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흔들리는 화면, 그에 따라 산란하는 화려한 빛들은 기존 영상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인 이미지 체험이었다.
이 기법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예전 같으면 초점을 잘 못 맞춘 사진이라고 혹평을 들었을 사진들도 “왕가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중경삼림 스타일이다”라고 오히려 칭찬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걸으면 흔들린다. 내가 흔들리면 세상도 흔들린다. 사진도 흔들린다. 흔들림을 즐기며 찍어라.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으리니.
서울의 경우 교통수송 분담률은 지하철이 36.5%로 가장 높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버스(27.6%)와 자가용(27.5%) 등이 뒤를 이었고 택시의 부담률은 8.4%로 조사됐다. 대중교통수단은 버스에서 지하철로 중심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고 내리는 객차뿐만 아니라 역 주변, 오르내리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역사 내의 광장에 딸린 각종 시설과 상점들, 승강장 등 전체 시스템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까지 고려하면 지하철은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거대 도시 속 또 하나의 세계, 소우주라 할 만하다.
이 지상과 지하로 이어진 세계에 하루 수백만 명이 오간다. 나이와 성별, 직업과 외모와 복색이 다 다르고, 외국인들도 이따금 눈에 띈다. 탈 것은 같아도 가는 곳은 다 다른 인간 군상이 모인 곳. 사진 찍는 사람에게 이만큼 많은 기회가 있는 공간도 드물지 않을까?
지하철을 이용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품은 개찰구에 찍는 교통 카드다. 필자에게는 하나가 더 필요하다. 바로 사진을 찍을 스마트폰이다.
버스를 타는 것은 대체로 즐겁다. 지하철처럼 어둠의 세계로 기어 내려가 객차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답답함이 없기 때문이다. 차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만족감은 무척 크다. 직접 운전을 해도 바깥 풍경은 볼 수 있지만, 버스는 남이 운전해주니 두 손이 자유롭다. 게다가 택시나 승용차에 비해 시야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넓다.
하지만 정작 필자는 버스를 자주 타지는 못한다. 주로 직접 운전을 하기 때문이고, 차를 놓고 다닐 때라도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동안 버스를 잠깐 이용할 뿐이다. 버스가 아주 매력적이고 이상적이라고 해도 지하철이 주는 정시성의 장점을 거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버스에서 찍은 사진은 아주 적어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운전하다 길이 막히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짜증을 참으며 라디오나 음악을 듣거나 밀린 통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쓰면서부터는, 정확히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하면서부터는 교통 체증이 견딜 만해졌다.
아니, 어떤 때는 길이 막히기를 바라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오히려 막히면 SNS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까지 여기게 되었다. 일종의 SNS 중독 현상인데, 글과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달 수 있었다. 나아가 짧은 글을 올리고 사진까지 찍어 올리게 되었다.
출퇴근길처럼 매일 다니는 정해진 길에는 언제 어디쯤에서 길이 막히는지 알게 된다. 예전 같으면 반복되는 체증에 짜증을 냈었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부터는 달라졌다. 거의 같은 시간대와 장소가 매일의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찍어 올리는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조종사나 승무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비일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주 급한 일이 있어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위해 왕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행기를 타면 대개는 일상에서 멀어진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보내게 된다.
비행기는 탈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다. 필자가 과학과 공학엔 젬병인 문과 출신이기 때문이겠지만, 그 커다란 쇳덩어리가 수백 명의 사람과 화물을 싣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이 언제나 믿기지 않는다.
비행기와 공항은 일상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피사체와 상황이 있는 독특한 공간이지만 보안이 엄격하고 출입과 접근을 통제하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쉽지 않다. 공항 청사 안팎에서 보이는 풍경이나 비행기 좌석에서 유리창 너머를 찍는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게 아쉽다.
“자전거는 타는 사람이 조종사이자 승객이며, 엔진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자전거에 대한 예찬이 넘쳐나지만, 나는 이보다 멋진 표현을 알지 못한다. 이 완벽한 정의에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자전거는 타는 사람이 ‘찍사’이기도 하다.”
자전거와 사진의 궁합은 좋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날씨와 장소는 사진 찍기에도 좋다. 필자는 몇 해 전에 산악자전거(MTB)를 좀 험하게 타다가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에는 산에는 가지 않고 주로 도로에서 탄다. 서울 한강과 경기도 성남 탄천의 자전거 전용도로가 주된 라이딩 코스다.
MTB를 배우던 시절부터 자전거를 탈 때는 반드시 헬멧과 고글, 장갑을 착용한다. 비옷과 바람막이, 펌프, 예비용 튜브에 간단한 공구까지도 챙겨야 하기에 배낭도 필수다. 배낭 어깨걸이의 왼쪽 가슴 부근에 단 작은 휴대폰 케이스에 스마트폰을 꽂아 넣고 다니다가 잽싸게 빼내어 촬영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장갑을 벗고 촬영 후 새로 끼는 게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오른손에는 일부러 장갑을 끼지 않는다. 일반 카메라는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도 셔터를 누를 수 있지만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는 맨손가락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멋진 광경을 보고 멈추거나, 잠시 쉬다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여기서는 자전거를 탄 채로 찍은 사진들을 골라보았다. 자전거 실력이 부족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점묘 셀카 길가의 가림막에 내 모습이 비쳤는데 보기 좋았다. 자전거 방향을 돌려 거꾸로 간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페달을 천천히 밟는다. 화면을 보지 않고 대충 감으로, 가능한 여러 번 셔터를 누른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반복한다. 화질은 아주 열악하다. 하지만 망한(?!) 덕분에 신인상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스마트폰 카메라로 움직이며 찍기 - 이동하라, 그러면 기회가 열릴 것이다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2014.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