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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을 詩처럼 살다 간 하늘선녀(天仙女)
盈盈窓下蘭 枝葉何芬芳 (분분창하란 지엽하분방)
창 아래 분마다 난초 가지와 잎새 그리도 향그럽더니,
西風一被拂 零落悲秋霜 (서풍일피불 영락비추상)
가을 바람 한번 스치니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秀色縱凋悴 淸香終不死 (수색종조췌 청향종불사)
빼어난 자태는 시들어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感物傷我心 涕淚沾衣袂(감물상아심 체루첨의몌)
그 모습에 내 마음이 아려와 눈물이 옷소매를 적시네.
위의 시 제목은 우연히 감상에 젖어(感遇}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선조 대)은 자기가 지은 시처럼 한 떨기 청초한 난초(蘭)처럼 살다가 꽃다운 나이에 흰 눈(雪)처럼 스러져간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향기는 아직까지도 우리 곁에 시로 살아 남아있다.
詩人墨客과 접촉(?)이 많았던 기녀중에는 시와 그림에 능했던 여인이 적지 않았으나, 보통 여염집 여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란 그저 시집이나 잘가 아들 많이 낳아주고 남편과 시부모를 잘 모시는 게 본분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詩畵에 출중한 여인들이 있었으니,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 그리고 왕손의 서얼로 태어난 비련(悲戀)의 여인 이옥봉(李玉峰)이 그들이다. 이중 굳이 뛰어난 시인 두 사람만 뽑으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난설헌과 옥봉을 택하겠다. 여기에서는 천재시인 난설헌의 悲運의 짧은 삶과 그녀의 생명보다 소중했던 詩의 세계를 잠간 엿보기로 하자.
남다른 문장가 집안에서 태어나,
앞에서 잠간 소개한 대로 난설헌은 어렸을 적부터 천재성을 발하여 8살 때에는 상상속의 궁전인 광한전 백옥루(廣寒殿 白玉樓)의 대들보 올리는 글(上樑文)을 지어 주의를 경악케 한다. 난설헌은 남다른 문장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화담 서경덕의 문하생인 허엽이며 오빠 허봉 또한 시문에 능했으며, 동생 허균(許筠, 1569~1618 선조~광해군)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 여기서는 부언을 피한다(이복의 큰 오빠 허성까지 합하여 '허씨 5문장가'라 불렸다함).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이라 하여도 여인들에게는 대부분 이름이 없었는데,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그녀에게 초희(楚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재능을 간파한 오빠 허성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으나 서얼이란 신분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불리던 글벗 이달(李達)에게 동생 허균과 함께 시 공부를 맡긴다. 꿈많던 어린 시절에 난설헌이 지은 시 한수,
隣家女佯競鞦韆(인가여양경추천) 이웃집 여자애들과 그네뛰기 시합을 했지요
結帶蟠巾學半仙(결대반건학반선) 띄를 매고 수건 두르니 마치 신선이 된 듯 하네요
風送綵繩天上去(풍송채승천상거) 바람차며 오색 그네줄 하늘로 날아 오르자
佩聲時落綠楊煙(패성시락녹양연) 노리개 소리 울리고 녹색 버들엔 아지랭이
鞦 : 그네 추, 韆 : 그네 천, 蟠 : 서릴 반, 두르다
분위기가 광한전 백옥루 대들보 올리는 글(廣寒殿 白玉樓 上樑文-앞의 졸문 '어린 나이에도 번득인 詩才' 중 허난설헌 참조))과 함께 다소 몽환적이며 仙界에서 노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허균은 누이의 시를 보고 "참으로 하늘 선녀의 글재주를 타고 태어났다." 고 하였다. 다음은 연밥 따는 노래(采蓮曲)로 사랑을 표현함이 대담하여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시였다고 한다.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 호수 맑고 푸른 물 옥같이 흐르는데
荷花深處繁蘭舟(하화심처번란주) 연꽃 핀 깊은 곳에 목란배 매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님을 만나 물을 사이에 두고 연밥 던졌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멀리서 누가 보았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그리고 서애 유성룡이 극찬한 당시풍(唐詩風)의 아름다운 시 한수(閨怨),
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달 비친 누각에 가을은 깊고 옥병풍은 비었는데
霜打蘆洲下暮鴻(상타노주하모홍) 서리 친 갈대밭 물가에 저문 기러기 내려앉는다
瑤瑟一彈人不見(요슬일탄인불견) 비파 한 곡 다 타도록 사람 구경 못하는데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 연꽃은 들판 연못 속으로 시나브로 지누나
15세에 시집가면서 운명은 바뀌고,
난설헌의 생이 헝크러지기 시작한 것은 어린 나이에 김성립에 시집가면서 부터이다. 그는 집안 좋은 안동 김문의 자제로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냈고 아버지는 도승지였으나 정작 본인은 그에 크게 못미치는 보잘 것 없는 용렬한 사내였다. 그러나 신혼 초에는 난설헌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컸다. 그 시절의 시 한수,
精金疑寶氣(정금의보기) 곱게 다듬은 황금으로
鏤作半月光(루작반월광) 만든 반달 노리개는
嫁時携姑贈(가시휴고증) 시집 올 때 시어머니께서 주신 것이라
繫在紅羅裳(계재홍라상) 다홍치마에 달아 두었지요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오늘 길 떠나는 님에게 드리오니
願君爲雜佩(원군위잡패) 님께서 시원찮은 노리개라 여기시고
不惜棄道上(불석기도상) 길 위에 버려셔도 아깝지 않지만
莫結新人帶(막결신인대) 새 여인에게 달아 주지는 마세요.
남편 김성립은 신부의 뛰어난 재능에 기가 죽었는지 아니면 그냥 방탕해서인지, 기방이나 출입하며 밖으로만 내돌아 난설헌을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다. 그 시절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봄비(春雨)를 보자,
春雨暗西池(춘우암서지) 봄비가 서쪽 연못에 자욱하니
輕寒襲羅幕(경한습라막) 가벼운 한기 비단 휘장 안으로 스민다
愁倚小屛風(수의소병풍) 시름겨워 작은 병풍에 몸 기대어 서니
墻頭杏花落(장두행화락) 담장 머리에서는 살구꽃이 지누나
그녀의 다른 시 한 수(秋恨),
絳紗遙隔夜燈紅(강사요격야등홍) : 붉은 깁창 저 넘어 밤 등불 붉은데
夢覺羅衾一半空(몽각나금일반공) : 비단 이부자리에서 잠 깨니 옅 자리가 비었구나
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롱앵무어) : 서리 기운 차가웁고 새장에는 앵무새 울고
滿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락서풍) : 뜰에 가득한 오동나무 서풍에 잎이 지는구나.
그리고 스스로의 신세타령 겸 남편을 본격적으로 성토하는 한글로 된 규원가도 있다.
(가능한 한 원문에 가깝게 소개하나 아래 아(.)와 복자음은 현대어법 대로 표기한다.)
엇그제 저멋더니 하마 어이 다 늘거니 / 엊그제까지 젊었더니 어찌 이리 다 늙었는지
少年行樂 생각하니 일러도 속절업다 / 어릴적 즐거웠던 일 생각하나 말해봐도 소용없다
늘거야 서른 말삼 하자니 목이 멘다 / 이리 늙어서 서러운 사연 말하자니 목이 멘다
父生母育 辛苦하야 이 내 몸 길러 낼제 / 부모님이 낳아 고생하여 이 내 몸 길러낼 때
公侯配匹은 못 바라도 君子好逑(구) 원하더니 / 높은 벼슬 배필은 못 바라도 군자의 좋은 짝
원했는데
三生의 怨業이오 月下의 緣分으로 / 전생의 원망스런 업보요 어쩔수 없는 부부될 인연으로
長安遊俠 경박자를 꿈갇치 만나잇서 / 장안의 건달같은 경박한 사람을 꿈같이 만나
當時의 用心하기 살어름 디듸는듯 / 시집간 뒤 조심하기가 살어름을 디디는 듯
三五二八 겨오 지나 天然麗質 절로이니 / 열다섯 열여섯 겨우 지나 타고난 자태 저절로 나타나니
이 얼골 이 태도로 百年期約 하얏더니 / 이 얼굴 이 태도로 백년가약 하였더니
年光이 홀홀하고 造物이 多猜하야 / 세월이 빨리 지나가고 조물주 마저 시기가 많아
봄마람 가을 믈이 뵈오리 북 지나듯 / 봄바람 가을물(세월)이 베틀 베오리 북 지나가듯
雪嬪花顔 어대두고 面目可憎 되것고나 / 눈같이 희고 꽃같은 얼굴 어디 두고 미운 모습 되었구나
내 얼골 내 보거니 어느 님이 날 괼소냐 / 내 얼굴 내 보아도 어느 님이 날 사랑할소냐
스스로 慙愧(참괴)하니 누구를 원망하리 /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누구를 원망하리
삼삼오오 冶游園의 새사람이 나단말가 / 삼삼오오 떼지어 다니는 색주가에 새 기생이
나타났단 말인가
곳피고 날저물 제 정처업시 나가잇어 / 꽃피고 날저물 때 정처없이 나가서
白馬金鞭으로 어대어대 머무는고 / 호사스런 행장으로 어디어디 머믈러 노는고
遠近을 모르거니 소식이야 더욱 알랴 /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소식이야
어찌 알랴
인연을 긋쳐신들 생각이래 업슬소냐 / 인연을 끊었다 한들 님생각이야 없을소냐
얼골을 못보거든 그립기나 마르려믄 / 얼굴을 못 보거든 그립기나 말았으면
열두 때 길도 길샤 설흔 날 지리하다 / 하루가 길기도 길고 한달 서른 날이 지루하여라
玉窓에 심근 매화 몃번이나 픠여진고 / 규방 앞에 심은 매화 몇번이나 피고 지었는고
겨울밤 차고 찬 제 자최눈 섯거치고 / 겨울밤 차고 찰 때 자국 눈 섞어 내리고
녀름날 길고 길제 구즌비는 므스 일고 / 여름날 길고 길 때 궂은비는 무슨 일인고
三春花柳 호시절의 景物이 시름업다 / 봄날 꽃피고 버들 돋아나는 호시절 경치에도 관심없다
가을달 방에 들고 悉率(실솔)이 상에 울제 / 가을 달 방에 들이비추고 귀뚜라미 침상에서 울 때
긴 한숨 디는 눈물 속절업시 헴만 만타 / 긴 한숨 흘리는 눈물 속절없이 생각만 많다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려울사 /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렵구나
도로혀 풀처혜니 이리하여 어리하리 / 돌이켜 곰곰히 생각하니 이리하여 어찌하리
靑燈을 돌라 노코 綠綺琴 빗기안아 / 청사초롱 돌려놓고 푸른 거문고를 빗겨안아
碧蓮花 한 곡조를 시름조차 섯거 타니 / 벽련화 한 곡조를 시름까지 섞어 타니
蕭湘夜雨의 댓소리 섯도는 듯 / 소상강 밤비에 댓닢 소리 섞여 들리는 듯
華表千年의 別鶴이 우니는 듯 / 망주석에 천년만에 찾아온 학이 울며가는 듯
玉手의 타는 手段 넷소래 잇다마는 / 옥수로 타는 솜씨 옛 가락이 남아있다만
芙蓉帳 적막하니 뉘 귀에 들리소냐 / 연꽃 휘장 친 침실 비어있으니 누구 귀에 들릴소냐
肝腸이 九曲되야 구븨구븨 끈처서라 / 구곡간장이 구비구비 끊어지는구나
찰하리 잠을 들어 꿈의나 보려하니 / 차라리 잠이들어 꿈에나 님을 보려하니
바람의 디는 닢과 풀속에 우는 즘생 / 바람에 지는 잎과 풀속에 우는 벌레
스므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오난다 / 무슨 일로 원수되어 잠조차 깨우는고
천상의 견우직녀 은하수 막혀셔도 / 하늘의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가 막혔어도
칠월칠석 일년일도 실기치 아니거든 / 칠월칠석 일년에 한번은 실기치 않는데
우리님 가신 후는 弱水 가렷관듸 / 우리님 가신 후에는 무슨 건너지 못할 강이 가렸기에
오거니 가거니 소식조차 끄쳣는고 / 오거니 가거니 소식조차 그쳤는고
난간에 비켜셔서 님가신 대 바라보니 /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님 가신데를 바라보니
草露는 맷쳐잇고 暮雲이 디나갈 재 / 풀 이슬 맺혀있고 저녁 구름 지나갈 때
竹林 푸른 고대 새소리 더욱 설다 / 대숲 푸른 곳에 새소리 더욱 서럽다
세상의 서룬 사람 수업다 하려니와 / 세상에 서러운 사람 수없이 많다 하겠지만
薄命한 홍안이야 날 가프니 또 이실가 /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자 나같은 이 또 있을까
아마도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 아마도 님의 탓으로 살동말동 하여라
정말로 이런 똑똑한 부인 앞에서 주눅들지 않을 남편이 있을까도 싶다. 하여간 시집온 후 난설헌의 맘고생을 이 규원가 하나로도 충분히 알 것 같다. 오죽했으면 난설헌이 "내게 3가지 한이 있는데 첫째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오,그리고 셋째는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다." 했을까.
아버지와 오빠를 비명에 보내고 자식들 마저 잃어,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그녀 나이 18세 때 경상도 상주에서 객사하고, 19세에 딸을 잃고 20세 때에는 아들마저 잃는다. 21세 때에는 자신의 학문적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인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게 되고, 그 후 거듭된 정치적인 실패로 술로 세월을 보내다 난설헌이 26세 되던 해에 허봉은 강원도 김화 부근에서 객사하게 되는데, 이는 난설헌이 죽기 1년전의 일이다.
자식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哭子),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고 애달픈 광릉 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 일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도깨비불 숲속에서 번쩍인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저승길 노자돈으로 너희 혼을 부르고,
玄酒存汝丘(현주존여구)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縱有服中孩(종유복중해)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安可糞長成(안가분장성)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浪吟黃坮詞(낭음황대사)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구나.
위의 시에서 걱정한 대로 뱃속의 아이마저 잃게 되니 그녀의 마음이 오죽하였겠는가.
다음은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죽기 1년전(26세 때) 자신의 죽을을 예견하고 지은 듯한 시,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푸른 바닷물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청난기채난) 파란 *난새는 오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二九朶(부용이구타)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차갑기만 해라.
(난새(鸞)는 푸른 봉황의 다른 말로 남조 송나라 범태의 '난조시서' 란 책에 나온다. 계빈왕에게 잡혀 새장에 갇혀서 울기를 기다렸으나 3년동안 울지 않았다 한다. 계빈왕이 거울을 가져다 주자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피 울다 거울에 부딪혀 죽었다고 한다. 난설헌은 자신을 새장에 갇혀 날지 못하는 난세에 비유하고 있네요.)
난설헌이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친 다음해 동생 허균은 친정집에 남아있는 그녀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 초고를 만든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수 오명제에게 난설헌의 시를 소개하여 중국에 알려지고 ,그 뒤 명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난설헌의 200 여수를 주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된다.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지 20 여년이 지난후 장사차 부산에 온 일본인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일본에서도 애송된다.
*蛇足 : 최초의 韓流는 드라마 '겨울연가'보다 400년이나 앞선다. 1606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자 이에 열광하는 많은 明나라 팬들이 있었는데, 그녀의 시를 연모한 한 여류 시인은 스스로 小雪軒이라 이름을 짓고 난설헌의 시에 일일이 화답하는 시문 123수를 엮어 '海東蘭'을 출간하였다나....
<세인들의 평>
심수경(沈守慶 1516~1599 중종~선조) -문신이자 청백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름
그의 문집 ‘견한잡록’에서 “부인(婦人)처럼 문장에 능한 자를 말하자면 옛날 중국의 조대가(曹大家)와 반희(班姬), 그리고 설도(薛濤) 등이 있겠다. 중국에서는 기이한 일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는 기이한 일이라 하겠다. … 허봉과 허균도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났지만 그 여동생인 난설헌은 더욱 뛰어났다. … 혹자는, ‘여인이 술빚고 밥짓기만 일삼아야지 양잠하고 길쌈하는 것을 집어치우고, 오직 시를 읊는 것을 일삼는 것은 미행(美行)이 아니다’하나, 나의 생각에는 그 탁월함에 감복할 뿐이다”라고 했다.
서애 심유성룡(柳成龍 1542~1607 선조 대)
허균이 ‘난설헌고(蘭雪軒稿)’를 가지고 와서 보여 주니, 서애는 놀라서 “훌륭하도다. 여인의 말이 아니다. 나는 시학(詩學)에 관하여는 잘 모른다만 보는 바에 따라 평한다면 그 표현함이 허공의 꽃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 같아서 맑고 영롱하여 눈부시며, 울리는 소리는 형옥(珩玉)과 황옥(璜玉)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으며, 남달리 뛰어나기는 숭산(嵩山)과 화산(華山)이 빼어나기를 다투는 듯하다. 가을 부용은 물 위에 넘실대고 봄 구름이 허공에 아롱진다. 높은 것으로는 한(漢)나라·위(魏)나라의 제가(諸家)보다도 뛰어나고 그 나머지는 성당(盛唐)의 것만 하다. 그 사물을 보고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시절을 염려하고 풍속을 근심함에는 종종 열사의 기풍이 있다. 조금도 세상에 물든 자국이 없다.”고 했다.
허봉((許篈:1551∼1588 선조 대) - 오빠
난설헌의 재주는 배워서 그렇게 될 수 없다. 이태백과 이장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허균(許筠, 1569~1618 선조~광해군) - 남동생
누님의 시문은 모두 천부적인 것. 맑고 깨끗한 詩語는 음식을 익혀먹는 속인으로서는 미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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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이 아프다.세가지 한에 덧 붙이면 지금 태어나지 못하고 미리 태어난 것
워낙 연로하여 새벽에 잠이 깨어.....
찬찬히 읽어보니 괜시리 눈가에 이슬이.......
" 허 난설헌 " 과연 명불허전.....
그대와 동시대에 살지 못함을 그를 슬허하노라~~~
너무 똑똑해도 탈입니다.두고두고 향기가 날 것 같네요.어디서 고런 아름다운 꽃을 가져왓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