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부터 1914년까지의 서구 사회를 흔히 벨 에포크(belle époque), 즉 좋았던 시절이라 부른다. 사회·문화·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화려했던 때라는 의미이다. 자본주의는 발전할 대로 발전하여 제국주의를 거쳐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치달았고, 다양한 문화와 과학기술이 일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좋았던 시절’이란 당대인들보다는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미증유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말일 것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그 좋았던 시절에는……했었는데”라며 회고했고, 그러다 보니 ‘원래부터 좋은 시절’이 따로 있었던 것처럼 되어버렸다.
어쨌든 1880~1918년까지는 서구의 유명 인물들이나 사건들과 작품들이 봄날 벚꽃처럼 다투어 피어났다. 그 시기에 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또 이성의 정점에 와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서구사회는 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빠져들었는가? 이런 질문을 품은 채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의 저자 스티븐 컨(Stephen Kern)은 벨 에포크와 제1차 세계 대전 앞에 마주서서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해석하고 정리했다.
컨은 1880년부터 1918년 1차 세계 대전까지 서양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 창출되었음을 파악하고, 이 시기 과학 기술과 문화에 발생한 압도적인 변화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에는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웰스, 거트루드 스타인, 프로이트, 조셉 콘래드, 아인슈타인, 피카소 등을 비롯하여 대중문화의 다양한 원천과 전통적 가치의 혁명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책의 특징
-문화사와 사회사를 쓰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다
지금까지의 문화사나 사회사의 서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 방법과 학문 분야나 예술 장르에 의거해 서술하는 방법을 따랐다. 스티븐 컨은 이 책의 집필 초기에 기존의 방식을 따라 서술해갔으나 오래지 않아 구성 방식과 관련하여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는 기존 방식의 포기를 의미했다.
학문분과나 장르를 포기했을 때, 컨은 교육받아온 과정에서 읽었던, 그리고 이후 연구를 할 때나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줄 때 계속 사용했던 수많은 인상적인 문화사들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점, 정기간행물, 대학 학과, 학위 과정, 전공분야 등 학문 세계 전체의 삶과 사유를 질서지어온 조직화 원리들로부터 이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집필 과정에서 그는 문화사를 서술하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철학적 범주를 도입하고, 그것의 기본적인 소주제들에 따라 책 전체를 구성하는 것!
-화려하고 눈부신 책! 상상력·설득력·박학다식한 내용
1880년부터 1918년까지! 이 결정적인 38년은 현대 세계를 ‘결정적’으로 규정하였다. 이 책은 아이디어와 통찰, 증거와 사례들을 동원하여 그 시기의 생활과 정신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이토록 풍부하고 광범위한 책을 요약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문학예술, 회화와 건축, 철학과 심리학, 물리학과 과학기술 등 지은이의 대상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그는 프루스트에서 피카소까지, 아인슈타인에서 스트라빈스키까지 대단히 자연스럽게 이동해간다.
-자료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다
마침내 컨은 38년 간의 거의 모든 것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그 세세한 내용을 정리하기는 불가능헤 가깝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두 가지 만큼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연구과정을 통해 그때까지의 저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자 스티븐 컨의 모습이다.
또 하나는 자료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저자의 방법에 대해서다. 그것은 엄밀한 이론 하에 다양한 자료들을 복속시키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자료들을 들이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 가장 본질적이라 믿는 큰 개념들 아래 다양한 자료들을 몰아넣음으로써 그 자료들이 이리저리 부딪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료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면서 기왕의 범주와 개념들을 자꾸만 벗어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