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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강의 : 상상의 시적 변용
- 상상을 상상한다. 작가는 상상의 요리사다. -
박 헌 오 편저
1. 상상의 시세계 구축
상상은 무한한 생각의 영역이다. 사람 몸의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감각 영역과 마음으로 느끼는 지적 영역뿐만 아니라 영성(靈性)적으로 느끼는 초월적 영역까지 확장된다.
시는 상상의 공간에서 탄생한다. 상상의 공간은 시인의 텃밭이다.
즉 시인은 상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무성하게 경작하는 과정을 통하여 시를 창작하는 생산자 즉 화자(話者)가 된다. 농부가 생산한 과일은 시장에서 구매력을 일으키듯이 시인이 창작한 작품은 소비자 즉 청자(聽者)에 의해서 인정되고 평가되고 구매력을 부여받는다. 이같이 상상이 시로 생성되는 과정을 시적 변용(詩的 變容)이라 하자.
시인은 보고 듣고 느낀 실상 ․ 실용 ․ 실감 ․ 실천하는 과정에서 미적 지각으로 감지하여 일정한 상상과 표현의 거리를 두고 창작한다. 실재와 상상의 거리가 밀착하느냐 초월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시인이 실상을 효과적인 상상의 거리에서 시적 변용과정을 거쳐 객관화된다. 시인은 상상을 요리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여기에는 조화로움, 참신함, 의외의 탁월함, 감각적 표현, 적절한 연결, 지고지순한 작품성을 창출해 낸다. 고려 할 관점을 생각나는 대로 예거(例擧)해 본다.
본고에는 가능한 필자의 자작시조를 예문으로 삼았음을 밝혀둔다.
① 특별한 상상의 시적 표현에 대하여 청자가 공감 ․ 절감 ․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시인이 마련한 새로운 시적 세계로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형상화 즉 상상의 그림을 통해서 산출된다. 덜 형상화된 작품은 피상적, 추상적, 기계적, 장식적 지각에 그친 작품이고, 미적 의식이 잘 형상화된 작품은 사실적, 감각적, 풍자적, 해석적 유형 등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다.
장식적인 말놀이나 상투화된 표현은 특히 피해야 한다.
(예문 탐구)
우공(牛公)의 난
-2020. 8월 장마에-
말 없는 우공이 큰 눈으로 보는 하늘
대홍수 위급한데 문을 열란 몸부림
제 살길 찾기조차 힘든데 챙겨줄 이 뉘이랴
산월(産月)이 된 어미 소 죽음을 초월하여
황토 강 건너고, 바다 너머 무인도에서
외치다 구출된 날에 순산 소식 세상이 울다.
온 마을 물난리에 가물가물 떠있는 지붕
소들이 타고 서서 기청제(祈請祭)를 올리고
마지막 운명의 잔 들어 임 뜻대로 하옵소서
산으로 달려간 소 절 마당에 당도하여
아불싸 목탁소리 부처님은 어디 갔노
염불은 외웠다 치고 머리 먼저 깎자 한다.
② 화자가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상상 가운데 화자만의 창의성이 인정되는 절묘한 선택이 이어져야 한다. 작품 속의 사실은 배제와 선택으로 묘사와 진술이 엮어진다. 사실적 지각을 바탕으로 관념을 감각화 한다. 암흑의 시대를 앞을 못 보는 사람의 사유의 세계로 대유(代喩)시킨 다음 예문을 보자.
< 예문탐구 >
점자(點字)
-3 . 1 만세 100주년에-
먹구름 속에서도 남몰래 별이 뜬다
폭풍이 몰아쳐도 수정 같은 달이 뜨고
눈감은 손끝 꽃자리 참 빛들은 모여든다
밤낮이 바뀌어도 칠흑 같이 긴 터널
길 잃은 백성들은 그 얼마를 헤맸던가
이슬을 징검다리 삼아 아슬아슬 건너왔다
더듬더듬 손잡아 볼에 대면 눈물 비
보이잖는 물굽이에 비명소리 피비린내
두 눈을 빼앗기면서 만세 대한 절원했다
밤이면 거울 보다 울던 소녀 어디 갔나
쓰러져 이지러진 만신창이 조국강산
북만주 하늘 끝까지 북소리는 따라왔다
눈감고 보는 세상, 눈뜨기 싫은 세상
죽음 이긴 사랑의 뼈 짚어 읽는 점자책
한 맺힌 선열의 이름 손끝마다 불을 켠다
이제는 다 보인다 삼천리 피눈물 길
이제는 다 들린다 반만년의 젓대 소리
하늘로 넘어진 넋들 환생하여 새날 열다
③ 상상의 함정이 있을 수 있는데 허황함(관념어, 허구)이나 부적절한 자유 의식(불합리, 윤리적 퇴폐, 부조화, 몰가치, 무책임 등)을 거슬리게 제기하는 등의 문제이다. 시적 지각은 사실적 지각<사물과 현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 해석적 지각<사물과 현상의 의미를 파악> 또는 통합적 지각이 조화롭게 작품을 구성한다.
예문탐구) 시 한 줄의 봄
한 이랑 내 글 밭에/ 누군가 숨겨놓고
사랑을 가꿀 자유 마음껏 누리노니
만년설(萬年雪) 덮고 꿈꾸는/ 산이래도 좋으리
언제나 문 열고/ 기다릴 나의 시편
사랑을 나눌 권리 무한정 허락하니
한 장씩 눈빛에 타는/ 소지(燒紙)래도 좋으리
내 곁에 꽃이 피면/ 그대가 온 것이요
애달픈 기다림은 헛되지 않음이니
달같이 호수에 빠져/ 밤 지새도 좋으리
④ 신선도와 매력이 떨어지는 진부하거나 지리멸렬한 상상의 세계에는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을 것이며, 머물지 않고 구매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뽑아내기 1
이마에 골진 세월 두둑 넘어 올라가면
몰라보게 늘어난 하얀 잡초 낯설다
하나씩 뽑는 걸 보고 세월이 웃고 있다.
칠월의 산밭처럼 무성하던 사랑의 숲
둥지에서 깨어난 새 뿔뿔이 날아가니
뽑을 것 그조차 없어 소갈머리 훤하다.
뽑는 것, 뽑히는 것 쳇바퀴 돌리는 것
보내놓고 기다리다 가물가물 꺼지는 정
모두 다 있으라 할 걸 홀로일 줄 몰랐네.
⑤ 아집, 독선, 과신, 만용 등 청자와의 동화가 안 되는 상상은 길을 바꿔야 한다.
옛날이 흘러온다
아내는 회룡포에 정자 하나 짓고 산다
되돌아 흐르는 강 볼 때마다 눈물짓는
말없이 가슴 내주면 설운 꽃잎 쌓는다.
애 낳고 몸 일으켜 물동이 이고 갔지
샘 길의 국화같이 똬리 틀던 산후빨래
눈썹에 서리꽃 펴서 먹먹하게 껌뻑였다.
삭 월세 단칸방에 시어머니 모신 새댁
열두 번 이삿짐을 밀고 끌던 고샅길
가슴에 십구공탄 불꽃 의지하고 살았지.
때마다 들어줘도 다 지우지 못한 회한
미안한 맘 기둥마다 주련으로 붙이고
정자에‘내가 그랬노라’현판 새겨 걸어주리.
⑥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구원과 저주, 비움과 채움, 사랑과 미움, 긍정과 부정, 의학과 살상학, 그 모든 상극적 상상은 언제라도 교차하면서 갈등을 일으킨다. 갈등을 승화시켜 희망이나 구원으로 전환시키는 노력도 바람직하다.
예문 탐구) 춘란 4
새벽별 빈 젖 빨며/ 보릿고개 넘어간다
어머니 골진 흙손에/ 꽃망울 맺힌 손톱
춘란이 피는 밤에는/ 만산 바람 성불한다
⑦ 시인은 피상적 지각<상식의 나열, 설명, 거죽 지식, 상투적 표현> 현학적 말놀이<추상어를 깊이 있는 것으로 착각, 내용 없이 아는 척하는 표현, 장식적인 말 잔치, 수식어 ․ 수식구의 상투적 나열> 등이 시인 양 하여 실패하는 작품임을 스스로 모르는 채 발표하는 것을 종종 본다. 기발하고. 적절하고, 신선하고, 매력 있고, 창의적이며, 시적 정서가 잘 가꾸어진 상상의 세계가 울창하게 발현되기를 기대하면서 시인은 고독한 걸음걸이로 예술적 표현 속에 살아있는 객관화된 사고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문 탐구 )
한강에서 2
순교의 뼈저림이 긋고 가는 통탄의 강
피가 나고 숨이 멎고 사슬들이 가라앉고
언제나 한을 다 씻어
모성(母性)으로 회귀할까
포탄보다 더 무섭게 쏟아지는 증오의 빛
한 코에 엮여가는 민중들의 정강이 뼈
강 노을 속울음 벗고
그 언제나 꽃이 될까
2. 상상의 그림
시인은 향기로운 철학자이다. 아름다움을 상상의 눈으로 보도록 문자로 그리는 화가이다. 상상의 귀로 음악을 듣고 가상의 몸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나아가 삶을 체험한다. 또 다른 하나의 자기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독자)들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여 동일체로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한 부분을 제시하고 전체를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많은 공간과 시간을 한마디로 축약된 인상으로 가두어 놓는다.
반면에 종교인은 경이로운 철학자이다. 과학자는 절묘한 철학자이다. 미술가나 조각가는 정지된 하나의 작품 안에 감성적인 상상의 현실을 만들어 놓는다.
시인이여 상상을 돕는 언어를 찾아보자. 예를 들어 ‘오! 아름다운 허상이여’ ‘오! 행복한 포로여’‘ 오! 무죄인 바람이여’…….
플라톤의 이상주의 국가 ‘유토피아’에 얼마나 많은 상상의 세상이 창조되었는가? 상상의 세계에 생명의 불을 붙였는가?
그러나 유토피아란 그리스어로 ‘없다’‘아무 데도 없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 영원히 존재하는 불사불멸의 존재이다.
현대문명의 최고의 과제는 별나라를 찾아가 사는 것이 아니랴.
지구를 떠나 사는 이상적인 개혁을 지향하면서……
시인은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실감할 수 있도록 유토피아를 만들어 가는 것인가?
문자는 거짓말로 현실과 실체를 만들어 가는 것인가?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감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다. 세상이나 실물이나 실상이나 역사를 한 장의 백지로 흡수시키는 마술사가 되려면 풀어낼 열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실감하게 만드는 열쇠가 필요하다. 반가사유상의 열쇠는 발가락이다.
숨겨 쓰면서 독자가 마법의 열쇠를 찾을 수 없다면 죽은 글이 된다.
마법의 열쇠를 찾으러 가는 길은 매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시인은 종교인 과학자 미술가 음악가 마술사의 역할도 필요하다.
예문 탐구)
왼새끼 주술(呪術)
당산나무 아래에 할아버지 ․ 할머니 탑
대보름 탑신 제 날 왼새끼 동여매고
역귀는 거꾸로 가라 징을 치며 쫒는다.
왼새끼 따라가면 금줄에 빨간 고추
왼새끼 따라가면 어머니 장 단지
샘 머리 촛불 켜질 때 기도소리 들린다.
왼손잡이 대보름달 왼새끼 들고 와서
환난 ․ 액운 잡아가고 관재 ․ 구설 물리치니
골마다 성역(聖域)을 지켜 태평성대 열었다.
3. 체험과 상상력의 원용
시는 상상력에 의한 현실의 재창조이다. 읽는 사람은 새로운 현실을 만난다. 기억력과 상상력은 다르다. 기억은 과거 취향 적이고 회고적이어서 단순한 추억의 형식을 갖지만, 초보적 시밖에 쓸 수가 없다.
기억된 정서가 상상력을 활동케 하는 연결고리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해서 알지 못사는 세계,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무한한 확장으로 시의 공간은 더욱 넓어진다. 을 찾아서 시를 써도, 체험담이나 경험담이 아니다. 재창조된 상상의 형상이다. 사실화가 아니라 시적 묘사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가. 마이너스 상상력
기억된 상상력, 즉 경험한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 기억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해석으로 시적으로 묘사를 시인의 진술로 창작 화한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다.
광복 75주년 서울 함성
서울을 가득 메운 광복절 국민 함성
왜 경이 가로막듯, 총독부가 왜곡시키듯
쉽게도 매장한 술책 궁금하다 궁금하다
망국노 따로 있나 한규설*에 물어보자
국민 배반 과반 찬성 을사늑약 월권체결
권력의 단맛에 취해 분별 못 한 괴물론.
다수결만 정의인가 이원익*에 물어보자
이순신 사형하란 만장일치 정당했나?
한 사람 뜻에 따른 선조 나라 구한 청사(靑史)다
핑계가 중독된 아전인수 내로남불
탄압 ․ 강제 닮아가며 앞세우는 청산 타령
옳은 길 국민 함성에 눈 가리고 귀를 막나?
*을사늑약 체결을 위한 내각 대신 회의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 조약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라고 한규설 민영기 등은 반대를, 이재극은 침묵을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이근택은 찬성해서 과반수로 가결되었다고 국왕을 겁박하여 조약을 비준시켰다.
*임진왜란 때 오리 이원익은 우의정 겸 4도 체찰사로 왜군을 물리치는 선봉에 있었는데 이순신을 사형 시켜야 한다고 문무백관 200명이 찬성할 때 홀로 반대하며 선조께 ‘전하께서 전시 중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하여 이순신을 살려두어 명량해전에서 왜적을 물리치게 하였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 서정춘 ,<죽편(竹篇) 1 –여행> 전문
절제된 언어로 상상력을 숨겨둠으로써 독자를 낯설고 즐겁고 당혹하게 한다. 대의 옹이 진 마디와 마디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의 공간으로서 ‘푸른 기차의 칸칸’으로 비유되는, 백 년까지 걸리는 견인의 여행이면서 시간이다.
나. 플러스 상상력
벌목장의 새
박 헌 오
거목이 또 한그루 한밤 내내 흔들린다
태생 모를 해충들이 떼를 이뤄 휩쓰는가
멀쩡한 산 한 자락이 무너질라 새가 운다.
자유가 악(惡)이 되고, 종교가 흉(凶)이 되듯
큰 나무 우거지면 작은 나무 못산다는 말
원시림 찍어대는 도끼 무섭다고 새가 운다.
나무는 최후까지 둥지를 안고 쓰러진다
서투른 날갯짓으로 피 울음 쏟는 새끼들
벌목이 끝나는 날은 울다 울다 죽을 새여.
< >
그대의 허리에서 그대의 발을 향해
나는 기나긴 여행을 하고 싶다.
나는 벌레보다 더 작은 존재
나는 이 언덕들을 지나간다.
이것들은 귀리 빛깔을 띠고 있는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는
가느다란 자국들을 갖고 있다.
~ 중략~
그대의 발을 향하여 나는 미끄러진다.
날카롭고, 느릿하고,
반도(半島) 같은 그대 발가락들의
여덟 개 갈라진 틈새로
그리고 그 발가락들에서
하얀 시트의 허공으로
나는 떨어진다. 눈멀고
굶주린 채 그대의 타오르는 작은 그릇 모양의
윤곽을 찾아 헤매면서!
- 네루다, <벌레>
이 시는 ‘여자의 육체는 신이 만든 최고의 그릇’이라는 에로스의 상상력 즉 리비도의 코드가 꽂힌 시다. 에로스적인 탐미 욕구는 저 끝없는 우주에까지 닿아 있다. 여기서 여인의 육체야말로 신이 만든 최고의 그릇이며, 기쁨이며,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화자는 자신을 작은 벌레로 비유하면서 굶주린 채 전신으로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벌레보다 더 작은 존재’라고 말한다. 물의 상상력은 대지로 통하고 생명의 탄생을 알려준다. 누군가는 모래알 속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 한 송이에 천극이 있다고 말한다. 네루다는 기발한 착상이면서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 자아를 벌레로 치환시키면서 에로스의 무서운 충격과 웃음을 만들어 냈다.
4. 상상력의 유형
○ 기독교적 상상력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永遠)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八福)>
십자가 묵상
박 헌 오
영원한 삶 속으로 태어나는 죽음이여
한 몸의 갇힘에서 우주로 불어감이여
하루가 떠오르고 지듯
일생 벗고 영생한다.
빗줄기는 서서 오고 바다는 누워 산다
잠깐 서서 선악(善惡) 짓고 오래 누워 심판(審判)받느니
추함을 남기지 않고
증발하는 안개가 되자.
온전히 타올라서 태양은 빛 덩이다
별이 되는 넋들은 헌신(獻身)의 화신이다
아느냐 수많은 별이
빛도 없이 떠돈단다.
십자 긋는 빛과 물결 알파요 오메가다
보이잖는 신비가 생명의 본체인데
버려질 옷만 보는 자여
빛도 물도 알몸뿐이다.
○ 불교적 상상력
싱싱한 달빛을 /석등에 퍼붓는데 / 덧없는 외로움 하나 / 슬며시 걸어놓고/ 한 번쯤 넘보는 피안(彼岸) / 전생(前生) 또한 돌아보리.
-박헌오, <석등에 걸어둔 그리움의 염주 하나> 5수 중 제5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박 헌 오
휘감긴 천의무봉(天衣無縫) 흘림 치마 벗어질듯
호리한 허리선에 내밀한 정 흘리며
살짝 쥔 손가락 끝에 우담바라(憂曇婆羅) 꽃피운다.
연꽃 위 엄지발로 들어 올린 사바세계
턱을 괸 얇은 팔뚝 무량 사유(思惟) 떠받치고
지긋이 바라보는 눈매 대자대비 넘쳐난다.
중생구제 진언(眞言)들을 묵음(默音)으로 이르시며
옷깃도 젖지 않고 바다를 걸어와서
속진(俗塵)을 비우고 비워 가람(伽藍) 한 채 짓는다.
시조사랑 21집 2021. 여름호 46쪽 2021. 6. 1 (사)한국시조협회 발행
점 등(點燈)
- 부처님 오신 날에 -
박 헌 오
쨀그렁 깨어지는
돌 속의 어둠 한 촉
꽃불 한 잎 붙이자
첩첩 산이 감싸 돈다
토끼 길
하늘 닿도록
구름 계단 쌓는다.
좁고도 누추한 길로
연화 타고 오시는 이
허공은 가득하고
자비(慈悲)의 손 눈부시다
만상(萬狀)아
불심(佛心)을 붙여
오늘 다시 태어나라.
墨筆로 꽃 그리듯
- 一葉一世界 一華一佛心 -
박 헌 오
하늘 걷는 그림자 쌓여서 밤이 되고
길 다 끊긴 어둠속에 별은 더 반짝이듯
임이여 어디 숨어도 그리움은 찾아가오.
꽃피어 지고나면 굵어가는 과일 뵈고
낙엽이 지고나면 새 꽃눈 맺혀오듯
지는 것 의당 순리임을 다 울고서 알았소.
물소리 바람소리 어디로 가는 걸까
가다보면 길 열리고 넓은 세상 보이리니
눈감고 떠나가신 임 길을 잃어 오지 않소.
영혼의 손에 맺힌 영묘한 이슬방울
이승에서 저승까지 아침마다 구슬 되고
재 한 줌 고요하여도 사랑 얼굴 출렁이오.
滿空의 佛心으로 쉼 없이 바람 일고
墨筆로 꽃 그리듯 임의 계절 피어나니
불 한 잎 물 한 사발에 無量世界 담깁니다.
빛은 날로 밝음 닦아 光明天地 열어주고
물은 날로 맑음 닦아 萬物生氣 일으키니
뭇 중생 영롱한 생명 제 몸 닦고 환생하오.
○ 리비도(성 본능)적 상상력
짓
박 헌 오
꽃을 품은 산이 와서
팔베개 베자 한다
파도 품은 바다 와서
함께 누워 자자한다
아니야
그냥 꽉 깨물고
연리지가 되고 싶다.
어디 보쌈이라도 당하고 싶네/ 하늘아/ 분홍 꽃잎아/ 무지개야// 어쩔 수 없는 내 맘/ 몽땅 싸가지고 어디론가 데려가 주렴/ 그곳이 눈뜨면/ 연밥 속일지라도 좋아
-이인원 <연(蓮)>
○ 선(仙)적 상상력
박 헌 오
찻잔에 붓는 얘기 / 찻물에 물든 얼굴
시 한수 덖는 정이 / 혀끝을 적셔 돌고
신묘한 향기에 취해 / 구름 겹겹 덮고 눕다
○ 동심적(판타지) 상상력
동 정(童貞)
박 헌 오
속이 노란 배추포기
겨우내 안고 싶은-
눈이 와도 싱싱한
소꿉놀이 각시 같은-
너에게 꼭 주고픈 것
나는
그만
상실했다
해바라기 씨를심자./ 담 모퉁이 참새 눈 순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 정지용, <해바라기 씨>
○ 교도적 상상력
이름 이야기
박 헌 오
흑갈색 게를 보고
꽃게라고?
거짓말
다듬어 김을 올려
찜통을 열었는데
아 정말
빨갛게 변했네
죽어 얻는 이름인가?
사람도 진짜 이름은
죽고 나서 얻는단다.
부귀공명 누리고도
망국노 딱지 붙듯
영원히 남는 이름을
대대손손 부른단다.
○ 원형적(신화적) 상상력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튀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
찬란한 개화
박 헌 오
낙엽 진 알몸위에/ 밤사이 설화 폈다
된바람 심술 피해/ 향기를 다 감추고
민초는 파발을 돌려 / 온 천지를 뒤덮었다.
순결은 순결대로 / 주검은 주검대로
빙점(氷點)의 꽃이 되는 / 이 찬란한 혁명이여
무서리 밟고 오신 아버지 / 머리칼에 꽃이 폈다
○ 우주적 상상력
천 오백년 내지 천 년 전에는 / 금강산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 별은, 그 발밑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라나 송학(宋學) 이후,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치켜든 손보다 더 높은 데 자리하더니/ 개화일본인(開化日本人)들이 와서 이 손과 별 사이를 허무로 도벽해놓았다/ 그것을 나는 단신(單身)으로 측근하여/ 내 육체의 광맥을 통해, 십이지장까지 끌어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또 거기서 일탈했다. / 일탈했다가는 또 내려와/ 관류하고 관류하다간 또 거기 가서 일탈한다./ 장(腸)을 꿰매야겠다. - 서정주, <한국성사략(韓國聖史略)
※ 윤동주의 <서시> 참고
고도(孤島)의 노래
박 헌 오
땀방울 튀기면서 달려오는 파도와
파도에 실려 오는 윤선도와 유치환과 ……
귀밑에 부려주는 시(詩)로 외딴 섬은 행복하다
외로움은 외로움끼리 짝이 되는 삶의 난간
착한 바람 만나거든 손 꼭 잡고 노래하라
자연이 시(詩)가 되어주니 홀로임은 축복이다
무너지는 격물치지
박 헌 오
전설의 빙산에서 멈춰 섰던 시간들이
비밀의 쇄기 풀고 서서히 돌아간다
거대한 심판의 재앙 시나브로 시작된다
오만한 강둑들이 제자리로 무너지고
파헤치고 헐어낸 산 주룩주룩 밀려온다
절대로 나는 안했다고 줄행랑 치는놈들
임기만- 생시만- 말뚝 박고 버티다가
지나가면 그만이지 부관참시가 어딨냐고?
북극이 무너져 내리면 같이 죽고 말란단다.
○ 식물적 상상력
……// 두런두런거리며 밭을 매는 두 아낙/ 늙은 아낙은 시어머니, 시집온 아낙은 새댁,/ 그 새를 못참아 엉금엉금 기어나가는 것은 /‘ 샛푸른 샛푸른 새댁./ 내친김에 밭둑 너머 그 짓도 한번// ‘어무니, 나 거기 콩잎 멷장만 따줄라요?’// (오실할 년 콩꽃은 안 일어 죽겠는디 콩잎은 무슨 콩잎?)//
옛다, 받아라 밑씻개 콩잎/ 멋모르고 닦다 보니 항문에서 불가시가 이는데/ 호박잎 같이 까끌까끌한 게 영 아니라/ ‘이거이 무슨 밑씻개?’/ 맞받아치는 앙칼진 목소리,/ ‘며느리밑씻개’/어찌나 우습던지요// ~하략~
-송수권, <땡볕> 일부
금강송
박 헌 오
백두대간 쩡쩡한 솔
하얀 피가 흐르는 몸
두루마기 얹어놓고
시조 한 수 읊조리면
푸드득 합죽선 펴들고
태극으로 휘돈다.
옹이진 가슴으로
마파람 몰아불고
겨울 산 낙목소리
줄이 끊긴 소망의 연(鳶)
금이 간 금수강산 넘어
백두천지(白頭天池) 찾아간다.
○ 동물적 상상력
다 벗고 산다 해도 갈 길이사 가야 하리 /울 밑을 빠져나와 결식한 그날부터/ 남도 땅 노숙의 별이 수국 꽃잎에 뜨더란다. // 돌이 우는 밤이면 가슴에 지는 빗소리/ 떨어진 발가락 하나 풀꽃 아래 묻어두고/ 문둥이 눈먼 문둥이 그 천형을 끌고 간다.// 빈자(貧者)의 야행 길은 혼자일 때 더디는가 / 한치 앞의 예감으로도 저승꽃 같은 유배의 땅/ 오늘은 뉘 빗돌에 숨어 육필 한 휙 긋고 가리 -고정국, <민달팽이의 시> *시조
개미군단
개미들 줄을 지어
비우(雨)자를 쌓고 있다
여리나 강한 허리
휴식 없는 노동현장
폭풍이 휘몰아쳐도
비껴간다 만리장성
벙어리 매미
박 헌 오
왕매미 울음 따라 참나무 춤을 춘다
곁에 앉은 벙어리매미 수즙어서 안 우는가
코 박고 사랑에 빠져 몸 쓰는 줄 누가 알까
그는 분명 문학소녀 나무속에 글을 쓰지
늙은 나무 이명(耳鳴)을 헤집어서 고백하지
여름내 하안거에 들어 속울음을 쌓는 거지
참새들의 합창
박 헌 오
뒤뜰로 나오라고 참새들은 농성한다
비명도 안 지르고 꽃이 진다 꽃이 진다고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꽃은 다시 핀다니까
웃다 빠진 배꼽처럼 통꽃이 빠진단다
낙화를 배웅하는 천만의 찬양소리
눈꽃을 고이 받으려 비워두는 정(靜)한 손
작은 새 고운 발가락 혀끝의 하얀 입김
미명을 쪼아내며 부신 나래 펄럭일 때
나목은 설화(雪花)를 쓰고 십자성호 긋는다.
동물제국 선거판도(選擧版圖)
박 헌 오
도깨비 구미호가 선량으로 변신하기
들 고양이 능구렁이 숨죽이고 잠복하기
교활한 음모와 함정 주인 쥐는 밥이냐
세상은 무주공산 도둑맞고 빼앗기기
최악보다 덜하고 극단에는 안 갔으니
눈감고 참아야 산다 어르다가 뺨 맞는다.
토끼는 간을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거북이는 깃발 들고 설악에서 춤춘다
마약은 언제 먹였나 내로남불 잘도 왼다.
어제는 다 잊었다 내일은 생각 않는다
그러니 개판이지? 그러니 짐승이지?
천만에 윤리와 질서 다 깨놓는 저것들 봐!
○ 무생물적 상상
바 위 박 헌 오
어느 날 여기 앉아 그리 오래 몸 닦느냐
암탉처럼 품은 고독 깨어날 줄 모르는데
목젖을 흔들던 꽃은 시들어서 또 진다.
침묵(沈黙)을 즐겨 사니 댓구 없이 바라볼 뿐
새 한 마리 앉았다가 똥 만 싸고 삐져 간다
세월은 홀로 바쁘다고 앉지 않고 그도 간다
무한이 어디인지 풀지 않는 묵정(黙靜)의 길
별들은 떼를 지어 하늘 깊이 자맥질하는데
안으로 자라가는 삶 멈춤 없는 부동(不動)이다.
○ 테크노피아(기계․도구) 상상력
과학의 인문학화, 물체의 감각화, 자연의 인간화, 무형의 형상화를 자아내는 존재의 변화, 격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격이다. 마치 금속성 로버트가 지능화하고 인간화하는 과정같이 말이다.
궁합이 잘 맞는 우리 / 힘껏 끌어안을 때마다//
벌어진 사이 / 단단히, 흔들림 없이 //
다하는 날까지 / 우리 사이/ 풀리는 날이 없기를
-옥빈, <수나사 암나사>
○ 역사적 상상력
여든까지 살다 죽은 팔자 좋은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ㅇ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 있다
등 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 더듬던 처를 꼬여 새별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단장이 누워 있고 그 손에 죽은 말강구가 묻혀 있다
~ 2연 생략~
세상을 만들면서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신경림, <묵뫼>중 .
그리움을 헹궈 널다
박 헌 오
흰 저고리 깜장치마/ 사진 속의 엄마, 누나
손 시린 날 냇물에 /하얀 빨래 헹군다
앉아서 뭉그적거리는 /잔설까지 헹궈 널다
목련화 툭 떨어지는 /궁금증도 주워 씻고
활짝 핀 여심(女心)은/빨랫줄에 울긋불긋-
떠받던 바지랑대 이제/ 빈 줄 끝에 서있다
달동네 고별 제
박 헌 오
정겹던 골목길에 악다구니로 버티는 벽
많은 비밀 알면서도 입 꼭 다문 방 한 칸
여기서 애 낳고 살며
울고 간 놈 얼마더냐
밀린 방세 탕감 받고, 설운 기억 다 허물고
달빛 한 상 차려서 빈 잔으로 올리는 절
집주인 딱지만 팔아먹고
앙상하게 떠났구나
허물어진 방에 앉아 사진 한 방 박는다
넋이야 있건 없건 산 번지라도 데려가자
달동네 유년의 몽환
높이 멀리 날아가라.
○ 에코토피아(친자연적) 상상력
신화는 매 순간마다 일어나고 있다. 구름이 변화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꽃이 피어서 사랑을 고백하고, 매미가 노래하며 많은 가사들을 전달해주고, 개구리가 밤새도록 울면서 불효자의 가슴을 때려주는 것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류이면서 그들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물도 그 나름대로 표현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다르기 때문에 인간적 언어로 실감하도록 해석하는 방법이 시일 수 있다.
‘다 지으시고 마지막 날에 제6일에/ 사람을 지으시다’// 그러므로 말째야/ 대 자연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으며/ 맨 끄트머리 말석이 네 차례야//
물과 흙과 돌맹이… 하루살이까지도 / 앞서 태어나신 형님들이시고/ 가장 마지막 끝날 끝 순간에/ 말째로 지으신 바 사람아/ 가장 잔인하고 흉물스런 짐승아 -유안진, <사람>
징소리 2
박 헌 오
산으로 도망친 달 누가 좀 잡아주오
먹구름 밀려오더니 길이 막혀 못 온다
지붕에 박도 떨어지고
소가 올라가 징을 친다
보름날 횃불 들고 삼거리로 모여들 때
교장인 양 세워놓고 묵언(黙言)하던 목장승,
산신각 종적이 없다
황토사태 다 삼켰다
역병 ․ 액살 씻어 달라 물의 신(神) 청했더니
한꺼번에 쏟아져 물난리가 더 커졌다
소들이 절로 올라가
부처님 귀에 징을 친다
한강에서 2
박 헌 오
순교의 뼈저림이 긋고 가는 통탄의 강
피가 나고 숨이 멎고 사슬들이 가라앉고
언제나 한을 다 씻어
모성(母性)으로 회귀할까
포탄보다 더 무섭게 쏟아지는 증오의 빛
한 코에 엮여가는 민중들의 정강이 뼈
강 노을 속울음 벗고
그 언제나 꽃이 될까
○ 민간화법을 소재로 한 상상력
민속과 풍속은 반복적인 생활양식 속에서 자리 잡는다. 생활감정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정감의 물결이 출렁이기도 한다. 지방마다 또는 시대마다 특색 있는 환경과 관습이 예술적 소재가 된다. 원초적인 삶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 민간생활이다. 이야기와 시와 탈춤과 민화와 민간신앙이 일어나고 재생산된다.
동네 울타리를 맴돌던 달빛은 괜시리 처녀 총각을 불러내어선 이리저리 들판을 헤매었다. 들판이며 산이며 강물조차 온통 눈부시게 깔깔댈 때, 여기저기서 익을 대로 익은 밀밭이 움풍움푹 쓰러졌다. 다음날 밭주인의 입가에도 보름달이 걸리었다.
-김선태, <보름달이 뜨면 밀밭이 쓰러진다> 3수중 제2수.
○ 사회적 ․ 윤리적 상상력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질서와 가치관, 역사관과 미래관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것은 지속성을 유지해가는 지혜이다. 문화적 존재가 되어가는 양식이기도 하다, 합리적이고 아름다우며 품격을 지닌 윤리와 사회성을 학습하고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세계의 실상과 의미를 상상하고 실감화하며 문학작품으로 창작하는 것이 문인의 사회적 소명이기도 하다.
윤리는 인간과 인간관계 뿐 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계, 무상 ․ 무궁한 세계까지도 질서화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허물어진 집에서 쫓겨난 노숙고양이
할미가 몰래주는 정을 먹고 사는데
어째서 도둑고양이요 / 끼니 한 번 줘보셨소?
눈길이 곱지 않아 숨어 숨어 사는데
어떤 놈은 반려라고 고대광실에 사는데
두레박 팔자라지만 / 설워설워 몰래 운다
법복 같은 까만 털 윤기도 흘렀건만
목사리가 싫어서 굶어가며 노숙해요
괜 시리 곱지 않은 눈길 / 숨죽이고 살아요.
-박헌오, <도둑고양이>
철
이 몸은
임종 무렵
부모마음 알게 될까
허튼 글
만 편인데
진언(眞言) 한 줄 건질까
내 일생
욕망의 함정에서
짐이 넘쳐
못 나간다
○ 영적 상상력
어느 영혼과의 손사래
박 헌 오
삶의 끝이 죽음이지 무슨 이유, 무슨 미련
잊으면 되는 거지 무슨 슬픔, 무슨 유감
삶만큼 새로운 죽음 그 또한 탄생이지요.
끝 날까지 아름답게 지켜온 길이거늘
아픔에 순응하고, 슬픔은 챙겨 묻고
죽음도 새 운명이니 축복으로 삼으소서.
한평생 혼을 씻어 비상(飛翔)을 준비하여
마침내 갇힘을 벗고 자유를 찾았느니
진정한 무상(無相)은 꽃을 신비롭게 피우소서.
바람이 날개 있나 강물이 지느러미 있나
갈 길을 걱정 마오 헤어짐을 두려워 마소
깡똥한 영혼의 짐만 챙겨 메고 떠나소서.
< 디카 >
시조일기 2. 10
-아카데미상과 시조
박 헌 오
한국영화 기생충이 한글장벽 뛰어넘어
인류함성 다 삼키며 4관 왕 휘날린 날
딱 맞는 시조 한 수 없이 털썩 앉아 아쉬웠네.
엄격한 형식에서 무한한 자유 얻고
유구한 전통에서 요원한 길을 여는
한민족 시조의 샘물 그 문화의 후예란다.
백년의 담금질로 성취한 영광일래
진실로 전장(戰場)에서 평화를 쟁취하듯
온전히 한국적인 영감 신의 한 수 뽑았다.
오늘 뒤돌아보면 이세춘의 풍류 있고
먼 미래에 뒤돌아보면 봉준호의 명화 있으리
그날은 겨레시조 한 수 잔칫상에 올리리라.
5. 상상법 실습
① 회상법 실상법 꿈꾸기법
온고지신 법고창신
실정실감 시적 묘사
신념과 의지와 신앙 시적진술
② 햇빛법 바람법 물결법
밝음 진리 수직 생명
투명 변화 곡선 신비 역사
수평 평화 느낌 적셔줌 노래 이어줌
강물 한강에서
③ 충격 암시 중의
감동 직언 제시 흔듦
돌려쓰기 비유법 기교 숨은그림
외면적 효과와 내면적 해석이 알송달송 다양성 다의성 의도성
④ 단면 상상 줄거리 상상 함축적 상상
카툰법 감정과 상상을 일으키는 현상적 시상
설명 해석 소설적 신화적 역사적 상상
많은 이야기 현상들을 시적 아이콘으로 기호화
⑤ 내면적 상상 <깨달음> 과 외면적 상상<깨우침>
깨달음의 진술 자극 권유
깨우침의 증명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