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짐승'과 '즈믄[천(千)]'의 어원
제사상에 올리는 포(脯)는 반찬이 아니라 술안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성묘(省墓)하며 명태포와 술만으로 인사드리는 의식이 제사의 가장 간단한 요식행위(要式行爲)이다. 그렇다면 술과 포(脯)의 상징 속에 제사의 근본 목적이 담겨 있음을 시사(示唆)한다. 더불어 제사상에 술과 명태포만 올리고 제사 드려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상징의 의미를 얼마나 깊이 되새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수 준비하며 갈등을 초래하여 집안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차라리 제사 드리지 않는 것만도 못한 일이다.
포(脯)는 보(甫) 글말의 형성자이다. 보(甫)의 갑골문은 밭[전(田)] 위에 풀[초(屮)]이 돋아난 형상처럼 나타낸 회의자이다. 그래서 ‘밭에[전(田)] 싹이[초(屮)] 보풀어(부풀어) 오르다[보]’는 얼개로 ‘크다’는 뜻이 나타나고, ‘밭에 싹(얼)을 ᄇᆞ리다(뿌리다)[보]’는 얼개로 ‘남자의 미칭, 사나이’의 뜻이 그리고 ‘밭에 ᄇᆞ리어(벌이어)[보] 돋아난 싹’의 얼개로 ‘아무개’의 뜻이 나타난다. 그러면 포(脯)는 ‘아무개의[보(甫)] 살을[육(肉)] ᄇᆞ리다(바르다/겉을 싸고 있는 것을 벗기거나 헤치거나 하여 속에 든 알맹이를 집어내다, 한데 어울려 있는 것 속에서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만 골라내다) 또는 보독하다(물기가 거의 말라 보송보송하다)[보]’는 얼개이다. 즉, 살을 발라 보독해진 것으로, ‘포, 포를 뜨다, 저미어 말린 고기, 말린 과실’ 등의 뜻이다. 더불어 포(脯)의 우리말이 본래 ‘포’로서, ‘보’글말이 ‘포’에 의미 전성되어 ‘포’음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한말 ‘포’는 무슨 얼개인가? 포는 뜨는 것이다. 즉, 포를 뜬 것이 ‘포’이다. 그리고 포는 ‘포개다’또는‘포배기(자꾸 거듭함)’·‘포집다(거듭 집다)’의 준말이다. 다시 말해 포개어진 살을 포집어 떠서 포삭하게 말린 것의 의미이다.
포를 뜨는 것은 허물 벗음의 상징이다. 성경을 사탄의 역설로 읽으면 우리 인간의 원죄는 허물에 씌워진 존재로 태어난 뜻이다. 천사가 되지 못해 타락한 존재가 사탄이듯, 천사가 되기 위해 사탄으로 태어난 것이 우리의 원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의 허물을 벗고 천사가 되기 위해 사는 존재이다. 불안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사탄이 뱀인 이유는 뱀의 허물 벗음을 상징한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의 허물을 벗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상징이다. 그래서 예수의 대속은 우리 인간의 원죄 그 허물을 벗는 길을 본보기로 제시해 준 의미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독생자(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듯, 만물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깃들어 있다. 그 성령이 개개의 소명이고 천명이다. 나의 소명 그 천명은 나만의 유일한 나의 마음이다. 이 세상에 나는 나 하나밖에 없다. 내 마음에 깃든 나만의 소명 그 성령을 받고 태어나는 존재가 독생자의 실체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 그 소명을 완수하고 인간의 허물을 벗으며 부활한 본보기의 실체이다. 우리들 또한 누구나 예수처럼 석가처럼 하나님의 자식으로 하나님의 뜻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사는 존재이다.
짐승의 먼젓말은 ‘즘생’이다. ‘즘’은 ‘즈믄[천(千)]’의 준말로, ‘천 번은[즘] 다시 생겨야(태어나야)[생]’ 인간으로 태어나는 동물의 뜻이다. 우리말 숫자 즈믄[천(千)]의 어원은 인간의 얼이 나오는 뜻 그 인간의 상징 숫자이다. 그래서 인간의 값어치가 천금(千金)임을 나타낸다. 동물의 허물을 천 번은 벗고 거듭나야 인간이 될 수 있듯, 인간의 허물을 올[조(兆)] 번은 거듭나야 신(神)으로 오ᄋᆞᆯ하게(온전하게)[올]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 우리말 올(울)[조(兆)] 그 숫자말의 의미이다.
우리말 하나는 전부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전부이다. 하나님은 만물 모두에 하나하나의 성령이 깃들며 전부를 나타내듯, 또한 전부이면서 유일한 하나로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이다. 내 마음이 하나님 소명의 성령이고 뜻이다. 내 마음속 하나님을 드러내 세우는 것이 하나님 믿음의 실체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일반화시키면서 내 마음의 하나님을 없애버린 것이 기독교의 왜곡이다. 예수만을 하나님의 독생자로 일반화 시키면서 우리는 독생자가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기독교 왜곡의 본질이다. 신성모독의 본질이다. 내 마음속의 하나님이 아닌 일반화된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라 부르면서도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 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 그 독생자들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물론 기독교의 종은 무조건 믿고 따르는 자의 뜻이다. 부모의 뜻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은 어린이 때의 섬김이다. 최고의 효(孝)는 청출어람이듯, 하나님의 뜻을 뛰어넘어 그 소명을 이루는 것이다. 기독교와 유교가 결코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제사는 성령의 제사가 우대되면서 물질적 제사는 사라졌을 뿐이고, 유교의 제사는 음식의 상징 속에 그대로 성령의 제사를 실현하는 의식으로 정형화시킨 차이뿐이다.
성묘하며 포(脯)와 술만으로 드리는 제사가 성령 제사의 상징이다. 술이나 차[다(茶)]는 각자의 얼을 괴어 우려낸 것이듯, 그 상징의 뜻이다. 인간의 허물을 벗어 거듭나며 청출어람으로 나의 소명을 괴어(익혀) 우려내겠다는 다짐의 의식이다. 제사의 근본 뜻이다.
혜(醯)와 해(醢)는 술독에[유(酉)] 혀이는(켜이는)[혜] 것이거나 해묵혀[해] 우려낸 음식으로, ‘초, 식초/혜(醯)’와 ‘젓갈/해(醢)’의 뜻이다. 즉, 혜(醯)와 해(醢)는 술의 상징과 같은 의미로 제사상에 올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좌포우혜(左脯右醯)는 허물을 벗고 거듭나며[좌포(左脯)] 천명을 익혀 우려내어[우혜(右醯)] 청출어람(靑出於藍) 하겠다는 다짐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