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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문헌
경은실기(耕隱實記(전조생))
고려 후기의 학자 전조생의 실기
고려 후기의 학자 전조생(田祖生)의 실기. 3권 1책. 목판본. 1821년(순조 21) 지은이의 후손 양(漾)이 편집하고, 1900년 후손 상무(相武)가 증산(增刪)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치규(宋穉圭)·최익현(崔益鉉)과 방손 우(愚)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상무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3수, 문 1편, 부록으로 진찬(眞贊) 2편, 기몽기(記夢記) 1편, 여사절략(麗史節略) 1편, 척록(摭錄) 1편, 권2에 행장 1편, 유적(遺蹟) 1편, 가장 1편, 봉안문 2편, 상향축문 2편, 청액통문(請額通文) 1편, 청액소 2편, 상량문 2편이 실려 있고, 권3은 연보·세적원류(世蹟源流)·세계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중 〈계자시 誡子詩〉는 자손을 훈계한 것으로, 대대로 전하는 효·인·충·의를 힘써야 하고, 경을 마음 속에 간직하여 평생토록 잊지 말아야 하며, 공부란 평범한 데에서 시작하여 최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니, 한 번의 생각이라도 실수가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경학문 警學文〉에서는 학문하는 요점은 존심(存心)에 있고 존심의 요점은 주경(主敬)에 있으니, 경을 위주로 하여 마음속에 간직하면 이치를 깨달아 학문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이를 행하기 위하여서는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에게 부탁한 극기복례를 수행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장서각과 고려대학교·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경은실기(耕隱實記(이맹전))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의 실기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李孟專)의 실기. 3권 1책. 목판본. 1816년(순조 16) 후손 인백(仁伯)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헌경(李獻慶)의 서문과 권말에 유심춘(柳尋春)·신면주(申冕周)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일고(逸稿)로 시 7수, 권2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명·청증시상언(請贈諡上言)·이조회계(吏曹回啓)·대신연주(大臣筵奏)·증직교지(贈職敎旨)·선산월암서원봉안문(善山月巖書院奉安文)·상향축문(常享祝文)·사제문(賜祭文)·함안사림청건원소(咸安士林請建院疏)·예조회계(禮曹回啓)·서산서원봉안문(西山書院奉安文)·청액소(請額疏)·예조회계·용계사봉안문(龍溪祠奉安文), 권3은 척유록(摭遺錄)으로 ≪장릉지 莊陵誌≫·≪해동명신전≫ 등의 여러 문헌에서 발췌한 14종의 참고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몇 편 안되는 시이지만 〈독서 讀書〉와 〈독한사 讀漢史〉에서는 저자의 철학과 학문세계를 엿볼 수 있고, 특히 〈술회 述懷〉는 세상을 등지고 전원에 묻혀 귀머거리와 장님처럼 살겠다는 서정시로 그의 절의를 엿볼 수 있다.
〈잠부시 蠶婦詩〉에서는 “땀흘리며 조석으로 분주하지만 제 몸의 옷 때문은 아니라(流汗朝夕走 非緣身上衣)”하여 촌부(村婦)의 생활상을 여실히 표현하였다. 연세대학교 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正祖實錄
<<참고문헌>>海東名臣傳
경인갱운첩(庚寅賡韻帖)
조선 영조가 대신과 공신의 후예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창화한 시집
조선 영조가 대신과 공신의 후예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창화(唱和)한 시집. 1첩. 필사본. 1590년(선조 23) 명나라 역사책에 조선왕조인 이씨세계(李氏世系)를 잘못 기록한 점을 고치게 된 뒤 그 공으로 윤근수(尹根壽) 등 19인에게 광국공신(光國功臣)의 훈명(勳名)을 내린 일이 있었다.
1770년(영조 46)은 그로부터 180년(三甲子)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영조는 몇몇 신하와 광국공신의 후예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시를 지었다. 시의 내용은 대체로 공신들의 충성된 마음을 기렸으며, 특히 공신 후예들은 선대의 공으로 인하여 왕을 친히 볼 수 있게 됨을 다행으로 여기며 충성을 표현하였다.
시의 체재는 칠언절구로서 운은 중(中)자였다. 맨 앞에 영조의 어제시가 실리고 이어 갱진(賡進 : 계속해서 이어나감.)에 참가한 좌의정 한익기(韓翼基) 등 19인의 시가 실렸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경재문집(敬齋文集)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하연의 시문집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하연(河演)의 시문집. 5권 3책. 목판본. 1826년(순조 26) 초간되었고, 1856년(철종 7)에 중간되었으며, 현전본은 1919년 후손 술효(述孝)·순효(純孝)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심춘(柳尋春)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인 인혁(寅爀)·대성(大成)·상우(尙禹)·술효와 노상직(盧相稷) 등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35수, 권2에 소·서(序) 각 1편, 기 4편, 잠·도(圖)·묘지명 각 1편, 권3∼5는 부록으로서 세계·연보·사제문(賜祭文)·행장·신도비문 각 1편, 화상찬(畫像贊) 2편, 봉안상향문(奉安常享文) 10편, 청액소(請額疏) 3편, 상량문 2편, 비명(碑銘) 1편, 서(序) 3편, 시첩(詩帖) 4편, 시 58수, 유묵(遺墨) 4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가운데 〈시연연구 侍宴聯句〉는 1418년(세종 즉위년) 세종이 태종을 상왕으로 모시고 베푼 연회에서 영돈녕(領敦寧) 유정현(柳廷顯), 영의정 한상경(韓尙敬) 등과 군신간에 화답한 시로서 지위를 떠나 시상(詩想)을 나타내었다.
이 밖에 〈강릉제영 江陵題詠〉·〈진주제영 晉州題詠〉·〈기성삼십운 箕城三十韻〉 등 명승고적을 묘사한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다. 소의 〈척불소 斥佛疏〉는 1423년 대사헌으로서 사사(寺社) 및 사전(寺田)을 줄일 것과 승직(僧職)의 폐지를 건의한 내용이다.
서의 〈경상도지리지서 慶尙道地理志序〉는 1425년 경상감사로 있을 때 경주에 보존되어 있던 지리지를 간행하며 쓴 것이다.
잠의 〈자경잠 自警箴〉은 사람의 성품이 부귀하게 되면 교만해지기 쉬워 화를 초래하게 됨을 경계한 내용으로 그의 청백함을 엿볼 수 있다. 계명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실기(敬齋實紀)
고려 말의 충신·학자 홍로의 실기
고려 말의 충신·학자 홍로(洪魯)의 실기. 4권 1책. 목활자본. 1790년(정조 14) 그의 후손 희우(羲佑)·철우(哲佑)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헌경(李獻慶)·허조(許稠)·정원교(鄭元敎)·홍병훈(洪炳勳)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정범조(丁範祖)·홍종섭(洪宗涉)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세계도와 시 8수, 권2는 부록으로 행장·유사·묘갈명·구갈유자(舊碣遺字)·유자(遺字)의 발문 각 1편, 율리사의 문(文) 2편, 세덕사문(世德祠文) 3편, 권3에 양산서원문 2편, 수갈시(豎碣詩) 58수, 정례조문(呈禮曹文)·청시문(請諡文)·상언(上言)·문·기·문과방목(文科榜目) 각 1편, 권4에 문 3편, 기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홍로의 글은 시 8수뿐인데, 비록 분량은 적으나 그의 학문과 사상의 일단을 접할 수가 있다. 〈가훈 家訓〉은 오언체의 고시(古詩)로 효·충·예·오륜·도학(道學)·면려(勉勵) 등 유교적인 가치관에 기초를 둔 교훈시이다.
〈논학 論學〉 2수는 음양오행의 상반(相反)·융합의 원리와 ≪태극도설 太極圖說≫의 철학적 사변을 설파한 이학시(理學詩)이다. 한편, 〈회상 懷想〉 외 3수는 모두 나랏일이 뜻대로 되지 못하여 전원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 도잠(陶潛)의 의경을 연상시킨다.
〈교우 交友〉는 친구인 허조·이경(李輕) 등에게 주는 시로서 우정과 자기의 심회를 표현한 내용이다. 시어(詩語)가 담박하고 우아하며 고상한 느낌을 준다. 부록에는 그의 인품과 행적을 찬양하거나 추모하는 내용이 많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실기(敬齋實記)
조선 중기의 학자 이세주의 실기
조선 중기의 학자 이세주(李世柱)의 실기. 2권 1책. 목활자본. 1928년 후손 규정(圭貞)·규량(圭亮)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하겸진(河謙鎭)의 서문과 김영극(金永克)·이준섭(李埈燮), 후손 득소(得韶)·규정 등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3수, 잡저 1편, 잠 3편, 권2는 부록으로 만사 1수, 언행록 10조, 가장(家狀) 1편, 행장 1편, 묘지명 1편, 묘갈명 1편, 묘표 1편, 유허비명(遺墟碑銘) 1편, 제사(題辭) 1편, 관문(關文) 1편, 상량문 1편, 봉안문 1편, 상향축문(常享祝文) 1편, 우계서당기(遇溪書堂記) 1편, 우계서원 유허비명 1편, 추모재기(追慕齋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중 〈제경자벽간유음 題敬字壁間有吟〉은 벽에 쓰여 있는 ‘경(敬)’자의 뜻을 말하고, 이에 전념하면 학문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또, 〈화사제석초경주제벽효렴시 和舍弟石楚擎柱題壁孝廉詩〉는 동생인 경주(擎柱)가 벽에 써붙인 효렴시에 화답한 것으로, 그는 오직 경(敬)에 전념하여 효도하고 청렴하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잡저 중 〈계욕 戒欲〉·〈계언 戒言〉·〈계주 戒酒〉에서는 세가지 모두 극치의 공부가 아니면 제어하기 어려우니 항상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유고(敬齋遺稿(김시정))
조선 중기의 학자 김시정의 시집
조선 중기의 학자 김시정(金是楨)의 시집. 1권 1책. 목활자본. 1868년(고종 5) 그의 후손 진호(鎭澔)·희락(羲洛)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김대진(金岱鎭)의 서문이 있다.
내용은 부 2편, 시 263수(고시 10, 오언절구 41, 칠언절구 81, 오언사운 72, 칠언사운 59), 부록에 행장·행략(行略) 각 1편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유회부 幽懷賦〉·〈술회부 述懷賦〉 등 부 2편은 모두 병중의 번민을 잊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슬픔과 근심을 말하기보다 본심을 잃지 않고 착한 성품을 길러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노력한 뜻이 엿보이는 글이다.
시에도 〈병중술회 病中述懷〉·〈병중서회 病中書懷〉·〈모춘병회 暮春病懷〉 등 병 중에 지은 것이 많은데 대개 심성함양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영분지어 詠盆池魚〉는 그가 8세 때 조그만 연못의 창포(菖蒲) 사이에 놀고 있는 고기를 보고 즉흥적으로 지은 것으로,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도산회고 陶山懷古〉와 〈퇴계회외선조문순공 退溪懷外先祖文純公〉은 모두 이황이 도덕과 국가에 행한 풍교(風敎)를 사모하는 시이다.
이 밖에 〈동포십육경 東浦十六景〉·〈유청량산 遊淸凉山〉·〈영신록 詠新綠〉등에서 산수·자연에 대한 심미적 감각을 잘 발휘하고 있다. 부록의 행장은 1691년 (숙종 17) 이현일(李玄逸)이 찬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유고(警齋遺稿)
조선 후기의 학자 김정수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김정수(金正洙)의 시문집. 2권 1책. 석인본. 그의 증손인 재석(載石)에 의하여 편집되었고, 1976년 간행되었다. 권두에 권용현(權龍鉉)의 서문과 권말에 현손 종섭(鍾燮)의 후지가 있다.
권1에 시 159수, 권2에 서(書) 5편, 잡저 10편, 서(序) 2편, 기 4편, 상량문 1편, 제문 1편, 비표 1편, 묘표 1편, 부록으로 가장·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자연시와 서사시, 거경(居敬)·궁리 및 함양·성찰에 관한 시와 산사에서의 선수행(禪修行)에 관한 시 등이 있다.
서(書)는 예설과 시사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잡저 가운데 〈인물성동이설 人物性同異說〉은 인과 물의 본연의 성은 모두 같은 원류에서 발생되었으므로 인과 물의 성이 같다고 논설하였다.
한편, 불타(佛陀)의 설에 개도 불성이 있다고 한 것에 대하여 우활(迂闊)하다고 비판하였다. 〈문대학소위명덕유분수여무분수여 問大學所謂明德有分數歟無分數歟〉는 명덕과 심(心)의 상관관계와 명덕함이 사물에 미치는 영향을 논술한 내용이다.
서(序) 가운데 〈군수김후구폐휼민선정서 郡守金侯捄弊恤民善政序〉에서는 선정을 하기 위한 책략으로서 청렴으로 봉사할 것, 인의(仁義)와 검소로써 행정의 기본방침을 세울 것, 어려운 사정이 있는 백성을 잘 보살피고 안전하게 치적할 것 등을 강조하였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일고(警齋逸稿)
조선 중기의 학자 김령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김령(金靈)의 시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후손 현정(顯廷)·석희(奭禧) 등이 세대를 바꾸어가며 편집, 수초(收抄)하였고, 9세손 두현(斗鉉)이 1919년에 간행하였다. 이 문집 권1 제1책은 없어져 현재 살펴볼 길이 없고, 권2∼4가 수록된 제2책만이 남아 있다.
권2에 제문 4편, 선사언행초(先師言行抄) 1편, 선세행록(先世行錄) 1편, 선고사적(先考事蹟) 1편만이 저자의 집필이고, 권3·4는 부록으로 만사 5수, 제문 1편, 언행약록(言行略錄) 1편, 유사(遺事)·유장(遺狀) 각 1편, 묘갈명·묘지명 각 1편, 그리고 동천사입향의(東川社立享議)·남계서원통문(南溪書院通文)·송호서당답통(松湖書堂答通)·군위향교(軍威鄕校)에서 각 군의 향교에 보냈던 통문, 동천정사(東川精舍) 중건 때의 축문·상량문·중건기(重建記)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끝으로, 김도화(金道和)·홍재겸(洪在謙)과 간행자 두현의 발문이 각각 들어 있다.
권1에는 시(詩)·서(書)·기(記) 등이 수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2책의 내용 중에서 〈선사언행초〉는 아버지의 스승이자 어릴 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진(李軫)·이보(李輔) 두 사람에 대한 소개를 하고, 그들이 평소에 한 말들, 예를 들어 닭이 처음 울 때 일어나 책을 읽고, 말을 할 때는 급히 서두르지 말고 세 번 생각한 뒤에 하라는 것 등의 말들을 모은 것으로 학문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선세행록〉은 그의 가문에 대한 기록으로, 중시조(中始祖)인 훤술(萱述)이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하는 데 공을 세운 사실과 해평군(海平君)의 작위를 받아 본관을 해평(海平)으로 했는데, 뒤에 왕명에 의해 선산으로 고쳐진 사실을 기재한 것이며, 〈선고사적〉은 아버지 난경(蘭卿)과 할아버지 정보(廷寶)가 모두 효자로 자기가 사는 마을이 그 영향을 받아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적은 것이다.
경재집(敬齋集(남수문))
전기의 문신·학자 남수문의 시문집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남수문(南秀文)의 시문집. 2권 1책. 활자본. 1804년 (순조 4) 그의 후손 국환(國煥)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환기(宋煥箕)의 서가 있고 권말에 김인순(金麟淳)의 발이 있다.
권1에 시 17수, 서(序) 1편, 기 6편, 발 2편, 묘지명 2편, 묘표 1편, 권2에 책(策) 1편, 교서 1편, 전(箋) 1편, 서계(書契) 2편, 제문 13편, 축문 6편, 고문(告文) 9편, 부록으로 사제문 1편, 가장 1편, 묘갈명 1편, 봉안문 1편, 사실(事實)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策)에서는 나라를 굳건히 하는 두가지 방책을 논하였다. 문을 숭상하여 덕을 쌓는 것이 장책(長策)으로 원방의 백성이 복응하게 하는 것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무를 장려하여 외모(外侮)를 막는 것, 즉 권의(權宜)이니 두가지를 갖추면 나라가 편안히 다스려진다고 건의하였다.
또한, 제왕의 지치(至治)에는 반드시 급한 일을 먼저 할 것과, 경원(慶源)의 수진(守鎭)을 경성(鏡城)으로 옮기고자 하는 국론에 대하여, 경원에 뛰어난 장수를 파견,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량을 충분히 하고 척후를 삼가며 봉화를 경계하면 충분히 경원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일본과는 교린함이 국가에 유리하다고 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집(敬齋集(김중남))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김중남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김중남(金重南)의 시문집. 2권 1책. 필사본. 1968년 그의 주손(胄孫) 병길(秉吉)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수근(宋壽根)의 서문과 권말에 병길의 발문이 있다.
첫머리에 유묵 6장이 있고, 권1에 시 6편, 책문(策問) 2편, 서(書) 14편, 잡저 2편, 권2는 부록으로 만 1편, 제문 1편, 묘지비명 1편, 유사 1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는 몇 편 되지 않지만, 봉사(奉使)로 중국의 연경(燕京)에 갔을 때 본 외국의 풍물과 중임을 맡은 자신의 애국충정이 잘 그려져 있다.
책문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모든 이익을 백성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정신으로 정치를 해야 하며, 그래야만 국태민안이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잡저는 봉사로 갔을 때의 200여일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과 자신이 느꼈던 바를 일기형식으로 간략히 기록한 것으로서, 한양에서 연경까지의 행로, 도중에 지나친 고을 관원들의 접대, 각 지역의 특이한 풍속과 경관들이 두루 묘사되어 있다.
〈병오식년시사마시방목 丙午式年試司馬試榜目〉은 당시 과거합격자에 대한 방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선재(先齋)인 원모재(遠慕齋)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집(敬齋集(이해))
조선 중기의 학자 이해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이해(李瀣)의 시문집. 3권 1책. 금속활자본. 1916년 후학 권보상(權輔相)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서는 없고 권말에 권보상의 발이 있다.
권1에 시 31수, 부(賦) 1편, 찬(贊) 4편, 명 5편, 전(傳) 1편, 상량문 1편, 서(序) 1편, 기 4편, 묘지명 3편, 제문 5편, 송(頌) 1편, 발 1편, 서(書) 11편, 권2에 어록 1편, 소학강의 1편, 강의추록 1편, 수의잡차(隨意雜箚) 1편, 삭과시말(削科始末) 1편, 권3은 부록으로 만장(輓章) 22수, 애사 2편, 제문 3편, 상언초(上言草) 1편, 가장(家狀)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서(書)에는 경전 훈고(訓詁)에 대한 내용이 많으며, 잡저의 〈강문소학강의 江門小學講義〉에서는, 특히 오륜에 대하여 조목조목 풀이하였다.
〈수의잡차〉는 어려서부터 십수년간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견문록으로 자신의 공부하던 과정에 대한 기록, 평안도·전라도의 유람기가 수록되었다.
또한, 〈본조인물기 本朝人物記〉에서는 조선시대의 인물을 논하여 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김상헌(金尙憲)·이항복(李恒福)·이순신(李舜臣)·김덕령(金德齡)·정충신(鄭忠臣) 등을 제1류로 구분하였다.
유현으로는 조광조·이황·이이·김장생을, 문장으로는 이색(李穡)·김종직(金宗直)·최립(崔岦)·장유(張維)·이식(李植)·송시열·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 등을 수록하였다.
또한, 당쟁의 유해함, 군역의 폐단, 과거제도의 모순성 등을 통박하였으며, 그 밖에도 당시의 사회적 정황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재집(絅齋集)
조선 후기의 학자 최상순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최상순(崔祥純)의 시문집, 6권 3책. 목활자본. 1901년 일가인 정기(正基)와 종손 동익(東翊)·규태(圭泰)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유지호(柳止鎬)의 발문, 그리고 편집과 간행을 맡았던 동익의 후지(後識)가 있다.
권1에 시 52수, 서(書) 33편, 권2에 서(書) 41편, 책(策) 1편, 권3∼5에 잡저 21편, 서(序) 2편, 권6에 제문과 뇌문(誄文) 13편, 상량문 1편, 행장 1편, 끝에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명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서(書)는 그의 스승인 유치명(柳致明)을 비롯하여 여러 지우들과 이기(理氣)·심성(心性)·예문(禮文) 등에 관하여 문답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잡저 중 〈사칠이기변 四七理氣辨〉·〈태극문변 太極問辨〉등은 태극·음양과 사단·칠정 등에 관한 변론인데, 주로 정주(程朱)의 학설을 절충하여 문답식으로 반복, 논변하였다.
또 〈소목설 昭穆說〉·〈예의 禮疑〉등은 일반적으로 의심가기 쉬운 예의부문 가운데에서도, 특히 상례(喪禮)의 적용에 편리하도록 원고작금(援古酌今)의 변론과 주석을 가하였다.
그리고 권4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서록 讀書錄〉은 주로 ≪중용≫에 대하여 다루었는데, 먼저 장구서(章句序)에서 시작하여 성(性)·도(道)·교(敎)·근독(謹獨)·은현(隱顯)·희(喜)·노(怒)·애(哀)·낙(樂)·중화(中和)·계신공구(戒愼恐懼)·지(智)·인(仁)·용(勇)·연비어약(鳶飛魚躍)·구경(九經)·충서(忠恕)·비은(費隱) 등 ≪중용≫ 가운데 포괄되어 있는 문제들을 각 조항별로 나열하여 설명하고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