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정상에서 본 원포 굴개 목섬>
<원포 봉화산 자락에 핀 새우란>
<할미꽃>
<원포 봉화산 자락에 핀 닭의 난초>
할미꽃과 새우란
시내에서 백야도행 28번 시내버스를 타고 원포에서 내린다. 화양면소재지인 나진으로부터 남으로 약 6km지점에 있는 해안마을 원포리는 우리말 땅이름 <멀개>로 불렸다. 마을에서 해변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개가 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멀개’는 한자로 기록을 하면서 멀원(遠)과 개포(浦)로 표기하여 마을 이름 원포가 되었다.
원포마을에서 산전까지 임도가 만들어져 있다. 임도를 조금 적게 걷기 위해서 저수지쪽으로 걸어서 가면 임도 가까이에 묘가 있는 곳에 할미꽃이 많이 피어있다. 요즈음 할미꽃을 찾아보기가 힘든데 이곳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캐가지 않은 것 같다. 근처에 귀한 새우란과 닭의 난초 등이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워낙 꼭꼭 숨어있어서 쉽게 찾지를 못한다.
산전마을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봉화산으로 오른다. 조금만 오르면 널찍한 풀밭이 나온다. 이곳에서 장수만과 여자만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섬과 해안이 잘 어울린다. 멀리 고흥 나로도까지 훤히 보이는 이곳까지 자동차로도 올라올 수 있다. 임도를 따라 세포쪽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면 바로 백야곶 봉수대이다.
<백야곶 봉수대>
직봉 백야곶 봉수대
백야도 백호산과 마주하는 화양면 봉화산에 봉수대가 있다. 위치상으로 볼 때 동쪽 돌산 방답진 봉수대와 연결되었을 것으로 본다. 돌산 방답진 봉수대는 서울 남산을 종점으로 하는 우리나라 봉수 제5거에 해당하는 봉수대로 백야곶봉수대를 거쳐 남해안을 따라 서해로 이어져 서울 목멱산, 지금의 남산으로 이어지는 직봉 코스이다. 봉수대는 군사상 목적으로 설치된 통신 수단으로 적이 침입했을 때 현지에서 직접 전투를 담당하는 군사적 고지이다.
백야곶 봉수대는 화양면 장수리와 안포리 사이에 있는 해발 371m의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다. 백야곶 봉수대에는 '승평지'와 ;동국여지승람' 등에 봉군 6명, 오장 2명이 배치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지금처럼 복원되어서 학생들의 봉수 체험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왜 이곳에 봉수대를 만들었는지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저 멀리 소호동과 신월동, 가막만, 돌산도, 금오열도가 다 보인다. 백야대교 가까이에 삼섬과 목섬이 보이고, 장수만쪽으로는 하화도와 상화도, 사도, 낭도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어떤 틈에서 왜적이 쳐들어오는지가 다 보이는 이곳은 봉수대로 적합한 곳인 것 같다.
봉화산과 요양병원
백야곶 봉수대에서 다시 원포와 세포쪽으로 임도를 타고 내려오면 일상에서 골프장을 만들면서 길이 사라져버렸다. 장등마을쪽 고개를 넘어 임도가 새로 만들어져 있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남쪽을 보고서 여수요양병원이 세워져 있다. 여수요양병원은 질병의 고통으로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연치료를 통하여 참된 치료를 제공하고,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천연과의 일치된 생애를 교육하고 훈련시켜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 안녕의 상태에서 최선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여수요양병원은 병원 앞마당에서 바로 발 아래 펼쳐진 장등해수욕장과 장수만 바다만 쳐다보아도 저절로 병이 나을 것 같은 경치이다. 봉화산 중턱에 세워져 있어서 봉수대에서 느꼈던 것처럼 사방을 볼 수는 없어도 햇살이 비추는 순간 반짝거리는 물결이 은물결과 금물결이 된다. 봉화산의 숲과 봉화산 지하에서 뿜어나오는 물과 아름다운 바다 경치가 잘 어울리는 곳에 병원이 있다.
여수가 노인들이 살기 좋은 곳이고, 휴양지로서 알맞은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여수요양병원이지 않을까 한다. 1995년 준공되어서 59개의 병실을 갖추고 있다.
장등마을과 해수욕장
장수리 이름만 갖고도 요양병원이 들어설만한 곳이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뜻의 장수는 아니고, ‘장척’과 ‘수문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장수리’라 하였다. 장수리는 공정(公亭)·자매(自梅)·수문(水門)·장척(長尺)·장등(長燈)마을이 통합된 법정리이다.
요양병원에서 내려오면 장등마을이다. 옛 이름은 마을이 봉화산 자락과 함께 긴 산등성이를 이루고 있어 ‘진등’이라고 하였다. ‘진등’은 한자로 쓰면서 길 '장' 자의 ‘장등(長嶝)’으로 바뀌었다. 불빛이 멀리 비추라는 뜻의 ‘등(燈)’ 자로 바뀌었다. 마을 뒷산에 백야곶 봉수대가 있어서 '등'을 켜는 곳이라는 뜻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마을에서 검찰총장을 지내신 분이 계셔서 마을의 풍수가 좋아 인물이 난다는 믿음과 멀리 떠날수록 마을 이름의 뜻 때문에 큰 인물이 된다고 전해온다.
장등마을은 바로 아래에 장등해수욕장이 있다. 장등해수욕장의 면적은 3,300㎡로 적은 규모이지만, 모래가 곱고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며, 간만의 차가 적어 어린이들에게도 안전한 곳으로 개발 가능성이 높은 비지정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바로 곁에 일상 콘도가 있어서 마치 기업 소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장등마을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장척마을이 있다. 장척마을의 옛 이름은 ‘장자골’로 장자골에서 장자는 부자를 뜻하는 말이므로 부자 마을인셈이다. 그런데 ‘장척(長尺)’이라고 한 것은 ‘장자골’ 중에서 ‘장’은 음을 빌어 ‘장(長)’으로 표기하고, ‘자’는 길이를 재는 자 '척(尺)’의 의미로 훈을 빌려와 ‘장척’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소라면 사곡리의 장척마을도 장자터마을이 변한 이름으로, 부자 마을이란 뜻이 엉뚱하게 ‘길이를 재는 긴 자’라는 뜻으로 알려졌다.
수문동과 참샘
수문마을은 원래 ‘수문동’이었다. 지금은 ‘물 수(水)’ 자와 ‘문 문(門)’ 자의 한자를 풀이하여, 장수만 바다의 문이 이 마을에 있어 바닷물의 근원지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러나, 수문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 이름은 대부분 숨어 있다는 뜻의 우리말인 ‘숨은’에서 어원을 찾는다.
맨드래미 재 문치마을 근처 계곡을 수문골이라고 하고, 뒷산을 수문산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율촌면 조화리의 수문포와 소라면 가사리의 수문개도 모두 바다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고 숨어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수문동마을도 바다에서 보면 마을 앞의 산등에 가려 마을이 보이지 않고 숨어 있다. 이에 따라 ‘등 속에 숨어 있는 마을’이란 뜻의 ‘숨은등’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수문마을 앞 어귀의 ‘날개’라는 모퉁이에는 동학농민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돌무덤이 남아서 여수 지역 동학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다. 1894년 관리들의 탐학이 갈수록 심화되고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영호도회소와 여수 지역 동학농민군이 봉기를 하였다. 수문동에는 당시 동학군을 숨겼던 최부자집 기와집이 있다. 동학농민군은 척왜와 제폭구민(除暴救民), 그리고 보국안민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비록 동학농민군의 전라좌수영 공격과 그들이 추구했던 목적은 좌절되었지만, 그들이 지향한 민족의식과 평등사상, 부정과 불의에 맞선 저항정신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만 한 것이다.
장수리 해안 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수문동의 콸콸 쏟아지는 물을 보고 손을 대거나 마시고 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바로 '참샘'이라는 샘이다. 봉화산과 고봉산 지하를 관통하는 수맥이 항상 일정하게 물을 흘러내리고 있는 샘이다. 그래서 예부터 아주 좋은 샘이라 하여 참샘이라고 부른다.
자매마을과 쌈지공원
장수리의 자매마을은 마을 뒷산에 자생하는 매화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지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자매’라는 한자를 풀이하여 나온 이름일 뿐이다. 자매마을의 우리말 땅이름은 ‘잘미’라고 한다. ‘잘미’란 뜻을 풀어보면, 산이란 뜻의 옛말인 ‘자’에서 연유된 말로 ‘자+뫼〉자뫼〉자메〉잣메 〉잘메〉잘미’로 변화되어, 산 아랫마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호명 자내리 마을도 비슷하다. ‘자매’는 ‘잘미’에서 빌려와 적은 한자로, 한자의 뜻과는 관계가 없는 이두식 표현이다.
자매마을 쌈지공원에는 200년 이상 된 방풍림으로 조성되어 있다. 쌈지공원에는 느티나무가 90여 그루, 굴참나무가 400여 그루 자라고 있다. 방풍림 앞으로 펼쳐진 장수만 갯벌은 연안생물의 보금자리로 유명한 오염되지 않은 너른 갯벌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반지락 생산지이다.
장수리는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화양지구관광개발구역의 중심지이다. 해안지역에 종합관광벨트가 조성될 계획이어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장수만쉼터에서 내다본 장수만과 다도해>
<면발이 안 보일 정도 높게 쌓은 반지락>
바지락 칼국수로 봉화산길 마감
수문동과 자매마을 사이에 옛 화남초등학교 자리에 여수교육지원청에서 만든 '학생의집'이 있다. 여수지역 초, 중학생들이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있다. 바로 교문통에 '장수만 쉼터'라는 찻집 겸 바지락 칼국수 집이 있다. 바로 장수만 너른 갯벌에서 막 캐온 바지락을 삶아서 내놓으면 입술로 살을 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들은 그 비싼 바지락을 구봉산 높이 만큼 높이 쌓아서 내놓은 것에 먼저 놀란다. 다음은 칼국수 면발이 바지락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서 놀란다. 한참을 입술로 "쪽쪽' 바지락 속살을 빼먹으면 그 아래에 면발이 숨어있다. 바지락 다 먹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먹기 좋게 면이 쫄깃쫄깃하다. 뜨거운 바지락 국물에 익혀서 국물이 배어들어 해물 칼국수가 된다. 더욱 놀란 것은 그 면발의 색깔이다.
겨우내 해풍을 견뎌낸 화양면 바닷가 시금치를 갈아서 즙을 밀가루와 섞어서 개어 푸른색이 되었다. 채식을 하는 것처럼 선명한 푸른색에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4월에는 근처 봉화산에서 딴 소나무 솔잎으로 만든 즙과 솔잎주를 맛볼 수 있어서 많은 장수만 드라이브족들이 찾는다.
'화양봉화산길'
이동 : 28번 백야도행 시내버스를 타고 원포에서 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