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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회 95회 ‘설악산(공룡능선)’ 산행기 >
▣ 산행일 : 2008년 10월 18일(토)~10월 19일(일) <1박 2일>
▣ 산행코스 : 설악산국립공원안내소-신흥사-비선대-양폭대피소-무너미고개-신성봉-나한봉-공룡능선-마등령-오세암-영시암-백담계곡-백담사-용대리-인제군-뒤풀이장소-잠실역-집
▣ 참석자 : 16명 (기세환, 김용우, 김종화, 박형채, 신원우,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임용복, 전작, 조문형, 최근호, 한양기)
▣ 동반시 : ①“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②“주말 산행”/ 방우달
▣ 뒤풀이(뒷날 저녁식사) : ‘삼호숯불갈비집’(인제군)
단풍이 곱게 물이 든 가을날에 그렇게나 가보고 싶어했던 설악산 산행일이다. 오랜만에 설악산을 찾으려니 감회가 새롭다. 약 30여년 전 서울 영업부에 근무하던 시절, 서울지역 직원 40여명을 이끌고 대청봉을 넘던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한 여사원이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한 후, 얼마 못 가고 지쳐 쓰러지는 바람에 교대로 들쳐 업고 대청봉을 넘고는 일주일 넘게 입이 부르터 고생했던 기억부터, 이놈의 산은 다신 안온다고 다짐을 해 놓고도 얼마 후면 또 거기서 헤매고 있을 나를 보고 속으로 피식 웃던 기억까지...
잠실역 3번 출구에서 8시에 모이라는 김 총장의 메세지를 두 번씩이나 받았으니, 부지런을 떨어 6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마나님이 ‘정말 괜찮겠냐?’고 걱정스러웠는지 몇 번이나 물어보는 걸 웃으며 걱정말라고 큰소리는 쳤는데, 배낭이 상당히 묵직하여 걱정이 된다.
잠실역 3번출구 곰두리상 앞에 도착하니 시간이 약간 이른데도 벌써 몇몇 산우들이 보인다. 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들. 악수하고 돌아보니 다들 배낭들이 빵빵하다. 1박 2일 동안 굶지는 않겠구나 싶어 잠깐 웃음이 나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지나 8시가 되자, 지각생 하나 없이 참석키로 한 산우 전원이 도착했다. 설악산이 좋아 어제 잠들을 설쳤나 보다.
8시 10분경, 25인승 버스에 타고 힘차게 출발! 양수리 예술인 카페를 지나는데 누군가가 요즘 이곳 장사가 잘 안된다며 운을 뗀다. 경기가 나쁘니 그럴 수밖에. 양평을 벗어나니 들판이 황금물결이다.
올해는 모든 작물이 대풍년이어서 겉으로는 좋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농민들 가슴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단다. 대풍 속의 기근이라고, 모든 농자재부터 기름값까지 가격이 급등을 했는데, 쌀값은 그 자리 그대로이니, 정말 걱정이다. 산우들아 고향에서 쌀 좀 사다 먹세나!
양평을 지나 길이 막히자 운전기사는 우회로를 찾아 방향을 돌렸다. 느티나무광장 휴게소에서 잠깐 볼일을 보고서 한참을 달려 홍천, 신남을 지나 인제로 들어가는 군축령터널을 통과했다. 오랜만에 이곳에 오니, 터널도 없이 높고 험한 군축령고개를 넘나들던 군 시절이 생각났다. 휴가병이나 제대병을 태우고 가다가 차량사고가 나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악명 높은 고갯길로, 지금도 고갯마루엔 위령탑이 서있다.
11시경, 인제를 지나, 당초엔 한계령을 넘으면서 절정에 달한 단풍을 감상할까 했었는데, 아무래도 수많은 산행인파 때문에 많이 지체될 것만 같다고 다들 미시령(터널) 쪽으로 가자고 한다. 벌써 모두들 출출한 모양이다. 뭘 꺼내 먹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김 총장은 설악동입구 척산온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가잔다. 높고도 먼 산행길을 앞두고 잘 먹어야 맞지!
‘오리사냥’이라는 간판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모두들 오리고기를 먹자고해서 오리고기(야채주물럭과 뚝배기탕) 요리를 시키고, 내가 가져 간 복분자술을 곁들였다. 고향에 계신 형수님께서 손수 담가 보내주신 복분자주를 페트병으로 하나 가득 담아 넣고 왔는데, 참석인원이 많아 한 사람에 두 잔 밖에 돌아가질 않는다. 출정을 앞두고 체력보강을 위해 배를 채웠다.
12시 40분, 배도 채웠으니 다시 출발. 갑자기 김 총장은 산행기 이야기가 나오더니 순서에 입각해서 나에게 쓰란다. 모두들 박수로서 결정하니 지엄한 명령을 더 이상 거절할 방법이 없다. 나는 등산을 할 때는 생각을 완전히 쉬게하는 습관이 있다. 평상시 적은 용량으로 고생하는 뇌에게 산행할 때만큼은 특별 휴가를 주어 맘껏 쉬도록 해 왔었는데, 오늘은 조금 무리가 따를 것만 같아 부담이 되었다.
12시 50분, 설악산 국립공원안내소에 도착했다. 사전 정보도 얻고, 휴식도 하고,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 모형도를 보며 설명을 듣고, 우리가 갈 코스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국립공원소장이 정중하게 충고를 하고 나선다. 코스가 너무 길어 잘못하면 낙오가 생길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재고해 보란다.
천불동계곡을 지나 공룡능선을 넘은 뒤 다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이다. 나는 대청봉을 약 10여 차례 올랐지만, 공룡능선이나 마등령은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우리가 넘어야 할 산행길이 그렇게 힘든 길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 산우들, 초지일관하여 예정한 계획대로 강행하기로 하였다. 약간은 깨름칙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 양폭산장은 매우 열악하여 지리산 등반 때와는 달리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선, 저녁은 미리 예약해 준비한 도시락으로, 내일 아침과 점심은 컵라면과 햇반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계획을 바꿔, 저녁은 김 총장이 준비한 연어와 컵라면으로 하고, 도시락은 내일 아침 겸 점심식사로, 신 이사가 준비한 찰밥은 간식으로 먹으며 버티다가, 하산한 후 뒤풀이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당초 회장단의 지시로 나는 끓은 물을 가득 채운 보온통과 겨울옷을 가져갔는데, 다행히 필요가 없게 되어 차에 놔둔 채 가벼운 몸으로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매표소 앞 주차장에는 절정에 달한 설악의 단풍구경을 위하여 수많은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13시30분, 신흥사 석불 앞에서 입산증명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비선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전진했다. 시간도 넉넉하고 워밍업도 안 되어있으니 가급적 천천히 오르기로 하였다. 올해는 워낙 가물어서 단풍은 색깔이 곱지 못하고 칙칙하였다. 올 가을은 단풍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지나가게 되는구나 했었는데 설악산에서 단풍을 만끽할 수 있게 될는지, 사뭇 기대감이 앞선다. 김 총장이 준비해 온 연어박스는 신 이사가 이것저것 담아 온 보자기를 비워 그 곳에 넣어 들고 가니 한결 쉽게 가지고 갈 수 있었다.
14시 20분경, 비선대 앞에 도착했다. 휴게소를 관통하여 지나가며 들여다보니, 등산객들 모두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던 차에, 휴게소에서 컵라면과 햇반을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우선 겁이 덜컥 났다. 그럼 한 끼는 굶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배고픔의 공포 때문일까! 모두들 별 걱정 없이 태연한 것을 보면 달리 대책이 있나보다.
임 수석과 김 총장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향하고, 나머지 일행은 자리를 잡고 막걸리와 빈대떡으로 갈증을 달래기로 했다. 목이마르니 막걸리가 맛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어디서 샀는지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두 산우가 돌아왔다. 초코파이, 양갱과 과자이다. 각자 배낭에 나누어 넣고 양폭산장을 향하여 출발했다.
연어박스는 산우들이 자진해서 교대로 들고 올라갔다. 김 총장이 정성들여 싸온 연어회는 부피에 비해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으나, 먼 산행길에 수많은 등산객들과 교차하며 혼자서 들고 걷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교대로 들고 가는데 누군가가 300 m 마다 교대 하잔다. 300 m는 약 400보 정도이니 400보 씩 교대로 들고 걸으면서 주변에 펼쳐지는 문수담, 이호담, 오련폭포 등의 절경에 빠져들었다.
사진작가 두 이(원무, 경식) 산우와 김 총장은 비경을 두고 가기가 아쉬워 열심히 촬영을 하며 뒤 따른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연못은 옥색과 비취빛으로 이가 시리도록 시원해보였지만, 등과 이마에는 땀이 쏟아지고 숨이 턱에까지 차오른다. 물소리가 상쾌한 길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족탕을 했다. 역시 물이 좋다. 오늘은 시간이 넉넉하니 우선은 좋았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희운각까지는 올라야 내일이 한결 수월할 텐데, 희운각대피소는 공사 중이라니 어쩔수 없지 않는가.
17시 40분경, 드디어 양폭대피소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깊은 산중에는 벌써 어둑어둑해 진다. 먼 산봉우리는 햇빛을 받아 환한 반면, 대피소 부근은 어둠의 그림자가 펼쳐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군대막사 같은 침상을 한 칸씩 배정받아 배낭을 풀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깨끗하기는 했지만 별로 친숙하지 않은 침상이다.
18시가 넘자 어두워진다. 김 총장은 준비해 온 연어회를 내놓고 술을 한 잔씩 하잔다. 산중에서 먹는 술안주로는 먹어보기 힘든 성찬이었다. 높고 깊은 산속, 산장에서 싱싱한 연어회에 양주라! 기 회장님이 준비한 ‘발렌타인’ 17년산 한 병을 내어 놓자마자 금방 바닥이 났고, 이원무 산우는 아들로부터 친구들과 설악산 간다고 하여 선물 받았다는 ‘발렌타인’ 21년산을 또 내놓았다. 17년이 무엇인지 21년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단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옆에 앉은 아짐씨가 예쁘게 보이는 거 밖에...
그것마져 동이 나자 또 염재홍 산우가 ‘이과두주’를 내어 놓는다. 중국술 중에 가장 좋은 술이 ‘이과두주’인 것 같다. 예전에 모시던 상사 한분이 즐기던 술이라, 나도 그 맛에 길들여 졌다. 전복 한 접시와 ‘이과두주’ 한 병이면 그 밤이 즐겁다.
마지막으로 신 이사가 최근 스페인 출장길에 사온 정체불명의 술을 내어 놓는다. 안주가 좋아서인지 아님 좋은 산우들과 함께한 깊은 산속에서의 마시는 술맛이 좋아서인지 쉬이 취하지가 않았다.
마침 옆좌석에 젊은 등산객 부부가 있었는데, 우리만 먹기가 미안해서 연어회를 권했다. 앞에 앉은 젊은 부인은 예쁘장한 얼굴에 성격도 화통하여 호감이 갔다. 남자 마음은 다 그러한가 보다. 옆에 신랑인지 아님, 애인인지는 몰라도 임자가 따로 있는데데. 우리가 내일 가야할 길로 넘어왔는데, 우리가 길을 잘못 잡았다고 한다.
옛날에 비교하면 아스팔트길처럼 좋아졌지만, 그래도 힘들 거라고 걱정해 준다. 옆에서 끓여먹는 라면이 너무 맛있어 보여 대피소 직원에게 부탁하여 라면 8봉지를 끓여왔다. 집에서는 별로 먹지도 않는 라면이 이곳에선 왜 이렇게 맛이 있는지 모두들 정신없이 국물까지 비워버린다.
이곳 대피소는 저녁 9시면 발전기를 끈다고 한다. 따라서 내일아침 6시에 기상하기로 하고 모두들 7시반경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상시는 아직 직장에서 퇴근도 하기 전의 이른 시간이다. 남자들끼리 누어있어서 인지 야릇한 여담이 오가다가, 2층 산객 중 아줌마에게 핀잔을 듣고서야 잠잠해 졌다.
한참 단꿈을 꾸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잠자리에 든지 꼭 7시간이 지났다. 버릇은 이렇게 무섭다. 위윤환 대장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그만 자고 산행을 하잔다. 초저녁에 잠시 잠을 자고 난 김 총장, 기 회장 등과 협의가 있었나 보다.
주섬주섬 일어나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의외로 날씨가 포근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산우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어제 밤 모두들 잠을 설친 모양이다. 코고는 소리 때문이었인지 나는 감정이 무뎌 잘 잤었는데,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건지 모두들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다고 한마디씩 한다.
새벽 3시10분, 양폭대피소를 출발했다. 먼동이 틀려면 몇 시간이 더 지나야만 한다. 하지만, 달빛과 별빛이 있어서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내 손전등은 화장실 갈 때까지 멀쩡했는데, 막상 출발할 때는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전작 산우가 새 배터리를 주어 바꾸었는데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 촉이 나갔나 보다. 불 없이 산우들 중간에 위치하여 앞, 뒤 산우들의 헤드랜턴 불빛을 빌려 산을 오르기로 했다.
무너미고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힘들었다. 꼭두새벽에 급경사 길을 가려니 죽을 맛이다. 한참을 오르는데 한 젊은 산객이 한짐의 배낭을 메고 우리를 앞지른다. 나도 한참 때는 저렇게 짱짱했는대, 그 시절은 이제 지나고 젊은시절이 그립다. 무너미고개를 올라서니 멀리 대청봉이 시커먼 모습으로 보이고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왔다.
우리는 대청봉은 오르지 않고, 공룡능선을 타기로 했으니 우측의 신성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청봉 쪽의 능선에 반딧불 같은 불빛이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아마도 오색 약수터 쪽에서 무박으로 밤새워 넘어 온 등산객들일 것이다. 저 사람들도 우리의 불빛을 보고 있겠지!
새벽 4시 30분경, 신선봉을 올랐다. 해가 뜨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달빛에 어슴프레하게 쭈삣쭈삣한 능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누군가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좋은 절경을 컴컴한 밤중에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따라 그냥 지나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좀 쉬었다 구경도 함시롱 천천히 가자”고 한다. 또 배도 고프니 밥도 먹자고 하여 등산로 길가에 좋은 자리를 잡았다.
앞도 안 보이는데 도시락을 펴자니 고역이 따로 없지만,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오늘 가야만 할 먼 길을 생각해 모두들 열심히 먹는다. 어제 저녁에 먹으려던 도시락을 아꼈다가 지금 먹는 것이다. 어제 밤 연어회와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으나 몇몇 산우들은 도시락을 이미 먹었기에 도시락이 없는 산우들을 위해 나누어 먹는 인정은 우리 시산회 산우들이 함께 가야만 하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도시락을 뱃속에 채우고 나니 한결 배낭의 무게는 가벼워 졌지만, 이제 점심은 뭘로 때우나 걱정이 앞섰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서 마음으로나마 위안을 삼았다. 아침에는 사과를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누군가의 배낭에서 어린이 머리통만 한 사과가 나왔다. 4등분하여 한 조각씩 나누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출발한지 얼마 안 가서 또 쉬어 가잔다. 해가 뜨질 않아 좋은 경치를 볼 수 없으니 차라리 해 뜰 때까지 이곳에서 잠간 쉬자고 했다. 모두들 배낭에 기대어 누었다. 지나온 길에 비박금지란 팻말이 있었는데, 우리는 규정을 어기고 비박 중이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북두칠성도 찾아보고 카시오페아 자리도 찾아본다. 해발 천미터가 넘은 높은 산에 올라오니 더욱 더 뚜렷하게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등산객들이 우리 일행을 쳐다보며 웃으면서 지나간다. 우리는 매복 작전 중이라고 농담을 했다. 먼 산이 어렴풋이 밝아오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행여 볼일이 있어 남기고 온 산우가 있을까 싶어 뒤로 번호를 외치자 열다섯까지는 뒤에서 들렸는데, 마지막 열여섯은 앞쪽 산 등성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김 총장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에 사진을 찍으려고 한 건지, 아님 급한 볼일이 있어서인지, 앞서서 가 있다가 마지막 번호를 외쳤다. 갈수록 길은 험해지고 숨은 목에 까지 차 올라왔다. 이래서 모두들 공룡능선을 가자고 하면 슬며시 꽁무니를 뺐나 보다.
6시 45분경, 우측 산 넘어에서 붉게 여명이 밝아오더니 해가 솟아오른다. 새벽안개 속이어서 완전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일출 광경이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큰 공덕을 쌓은 덕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재웅 산우는 일출광경을 동영상으로 담느라고 한참을 지체하였고, 이경식 산우는 산우들 증명사진을 찍어 주느라 여념이 없다. 김 총장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에 두 팔을 벌리고 온 기를 다 받을량 한 동안을 서서 있다가 온다. 아마도 산우들의 안전산행을 기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침 7시가 지나자 이제는 사방이 밝아졌다.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몇 번째인가. 공릉능선 중간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멀리 마등령과 오른편에 비선대가 보인다. 산우들의 배낭에서 아직까지 아껴 둔 간식들이 나온다. 나는 찐 고구마를 내놓았고 박형채 산우는 특별히 전라도 어디선가 주문해서 가지고 왔다는 보라색 생고구마를 내어 놓는다. 요즘 웰빙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가지고 왔는데, 역시 반응들이 좋았다.
나한봉(1,276 m)을 오를 땐 모두가 힘겨워 한다. 반대편 방향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좁은 비탈길에서는 한 참을 기다려야만 갈 수가 있었고, 좋은 설악의 풍광을 사진에 담으려고 뒤에 처진 이재웅 산우가 자꾸만 힘들어 한다. 갈 길은 아직도 먼데 벌써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걱정이 앞선다.
위윤환 산우는 김 전회장께서 특별히 주문하였다고 하면서 김 총장, 이경식 산우와 함께 뒤처져서 함께 오르고 있다. 능선 고개를 넘어 앞서간 몇몇 산우들이 쉼터를 확보하고 있다가 여기에서 남겨둔 안주에다 “막걸리를 한 잔씩 하자”고 하나 모두가 지쳐서인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가져 온 물도 거의 모두다 바닥이 났다.
남겨둔 안주에다 김용우 산우가 가져온 구수한 누룽지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김 총장은 마지막에 내놓으려고 했다고 하면서 체력 보강에 좋다고 하며 자그마한 페트병에 담아온 가시오가피술을 내어 놓는다.
양이 적어 조금씩 한 모금씩 하고서 어제밤 양폭산장에서 읊지 못한 동반시 낭송을 하였다. 김 총장은 그동안 산행기 필자가 시 낭송을 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기회를 주신다. 목청을 한껏 가다듬고 멀리 마등령과 세존봉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시를 읽고 나니 그 옛날 어둠의 유신시절, 당국의 눈을 피해 산중에서 울분을 토하곤 했던 반체제 인사라도 된 기분이다. 그 시절 같으면 감히 누가 이런 시를 읽겠는가! 시대가 변하여 좋은 산우들과 함께 멋있는 산행을 즐기면서 오기 힘든 설악의 공룡능선을 넘어 읊으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공룡능선이라고 누가 명명했는지, 정말 이름 하나 잘 붙였다고 할 만큼 산봉우리가 공룡의 등처럼 울퉁불퉁했다. 9시 30분쯤 나한봉을 내려서니 비선대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인지 백담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인지 줄지어 무리를 이루며 지나간다.
가까이에 마등령이 보인다. 정말로 말 등에 안장을 올려놓은 것처럼 아늑하게 보였다. 저 높은 봉우리를 어떻게 넘나 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그쪽으로는 가질 않고 오세암 쪽으로 내려 간단다. 작년 5월 20일, 60회 산행 때에 나는 참석을 하지 못 했었지만, 백담사에서 오세암, 마등령을 올라 비선대쪽으로 하산 하였다고 하면서 그 코스도 참으로 좋았다고 김 총장은 말한다.
10시경, 마등령 아래의, 작년에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능선 위에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초코파이, 양갱, 초코렛 등을 모두 꺼내어 체력 보강을 하였다. 내가 가져온 말린 자두와 망고를 나누어 먹었다. 시큼 달큼한 것이 피로회복에 좋을 것 같아 가지고 온 것들이다.
신 이사 사모님이 시골에서 보내온 찹쌀로 어제아침 일찍 밥을 지어 비닐봉지에 넣어 온 찰밥이 허기진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어 진가를 발휘하였다. 임 수석과 김 총장은 번갈아 가며 교대로 비닐장갑을 끼고 먹기 좋게 주먹밥을 만들어 김에다가 싸서 나누워 먹었다. 6.25전쟁 중에 우리 선배인 군인들도 이렇게 밥을 먹고 조국을 지켰으리라. 지쳐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다리는 뻐근하였지만, 찰밥을 먹고 나니 한결 힘이 생겼다. 마등령 능선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세암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이젠 내리막길이다. 가파른 길이지만 한결 걷기가 편하다. 그래도 역시 경사도가 높아 험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모두가 안전 산행을 당부한다. 이 속도로 가면 백담사에 오후 3시까지는 충분히 도착될 것만 같아 김 총장은 우리의 애마 기사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하였지만, 통화권 이탈지역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단다.
12시가 다 되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오세암은 동자승에 얽힌 전설이 있고,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자리잡은 유명한 암자로 평소에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섭취하지 못한 물을 충분이 마시고 암자에 들려 부처님께 삼배하고 소원도 빌었다. 소원컨대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길, 그리고 끝까지 우리 시산회 산우들의 안전 산행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나무관세움보살’...
오세암을 뒤로하고 영시암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그런대로 평탄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협의한 끝에 당초 백담사 입구 주차장에서 6시에 만나기로 되어있는 우리의 애마를 전화로 연락이 되질 않으니 김 총장은 먼저 하산하여 차를 수배키로 하였다.
김 총장이 내려간 뒤 잠간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전진이다. 그런데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의 리더 기 회장이 내리막길에서 돌을 잘 못 밟아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처음엔 상태가 심각해 매우 걱정이 되었으나, 임 수석의 기민한 대처로 상태가 완화되어 어렵게나마 산행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이런 먼 산행엔 임 수석같이 비상대처 능력이 있는 산우들이 절대 필요하다.
한참을 내려오니 백담계곡천이 보인다. 모두들 발이 아픈 모양이다.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지 조그만 개울가에 모두 주저앉는다. 모두들 같은 심정이다. 새벽 3시경에 출발한 산행이 현재 (오후 2시)까지 이어졌으니, 총 11시간을 걸어온 셈이다. 50대 후반인 우리 모두가 대단한 체력이다.
나는 별도로 영시암에 들려 참배하고 허기진 마음에 절에서 보시하는 국수를 얻어먹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 우리 일행과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부지런히 뒤따라가니 내가 행방불명됐다고 야단이 났단다. 산행에서는 협동과 질서, 안전과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동행한 모든 산우들에게 죄송함을 표한다. 그 때 대단히 미안하고 정말 죄송하였네.
내려오는 길에 홍천군 소방서에서 운영하는 앰뷸런스를 만나 기 회장에게 승차를 권했으나 괜찮다며 끝까지 걸어서 백담사입구가 얼마 남지 않은 국립공원관리소에 도착했다(오후 4시경). 먼저 내려간 김 총장이 오후 2시 반경에 도착하여 1시간 반 동안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김 총장은 백담사 입구에 도착하여 겨우 운전기사와 통화가 되어 3시 반까지 용대리 백담사입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단다.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장에게 차를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부탁하였으나 민원발생의 소지가 있다고 하여 기 회장을 비롯한 지쳐있는 5명의 산우만 관리소 차로 주차장까지 이동하고 나머진 백담사에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만 하였다.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우리만의 생각이고, 그때부터 약 2시간동안 기나긴 기다림의 고행이 계속되었다. 백담사에서 용대리간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으나 등산객들이 하산 후 귀경을 위해 한꺼번에 몰려 너무나 많다보니 몇 대 되지 않은 버스를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13시간을 산행하고 또 2시간을 그것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속이 터지는 일이다.
게다가 용대리의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등산객을 위해 이렇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하니 더욱 기가 찰 일이다.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순번이 되어 셔틀버스를 타고 용대리 주차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들 지친 몸을 우리의 애마에 싣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는 할 만한 데도 없었지만 하고 싶지 않아 가는 도중에 인제에서 삽겹살로 하기로 하였다.
자그마한 군사도시인 인제에는 육고기를 운영하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다 찾아 들어선 식당이 아주머니 혼자서 장사하는 백반전문의 협소한 식당이었고, 생삼겹이 아니라 냉동된 삽겹살도 한참을 기다려야만 한단다. 하는 수 없이 미안함을 표하고 물만 마시고 나와 다른 곳으로 가야했다. 오늘은 참 힘든 날인가 보다.
겨우 겨우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간 곳이 ‘삼호숯불갈비집’ 이었다. 20년 전통이란다. 이름에 걸맞게 손님 접대도 잘하는 곳이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몇 잔 연거푸 들이키니 정신이 알딸딸해 온다. 피곤함이 겹쳐서 그러겠지.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말자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누가 장담할 수가 있겠는가. 내 경험에 의하면 큰소리 칠 일이 아니다.
된장국물에 식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두 번째의 동반시 낭송이 있었다. 이번 산행에 참석이 어렵다고 했었는데,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참석을 하여 마지막 하산길에 발목을 삐어 제일 고생을 한 기 회장님이 낭송을 하였다.
“주말 산행”/ 방우달
오늘 하루는 제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제 생각대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저 산에 들고 나오면
오늘 하루는 제 생각대로 살다가 왔습니다.
하늘도 홀로였고
태양도 홀로였습니다.
숲속의 나무도 안아보기 홀로였습니다.
홀로 사는 것만이 제 생각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대로 사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면 저는 족합니다.
해질녘이면 내려가고 싶은
제 생각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루만 제 생각대로 살면
일주일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이들을
따뜻한 웃음으로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아 공감이 가는 시이다. 저녁을 잘 먹고 나서는데 그 식당주인 아줌마가 이 고장의 시인이란다. 우리가 시를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는 “시산회”라고 하니 연락처를 묻고 다음 자기들 행사 때 꼭 초청을 하겠단다. 어쩐지 옷 차림새도 그렇고 뭔가가 좀 다르더라. 김 총장은 명함을 남기고서 8시 30분경, 버스에 오르니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이젠 푹 자면 된다. 한참을 졸다 깨어보니 11시가 다 되었고, 기 회장과 김 총장님이 하차를 하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1박 2일의 '설악산(공룡능선)' 산행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설악산 공룡능선의 산행, 우린 평생에 남을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고 왔다. 흔히 등산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등산하는 것이 고생’임에는 틀림이 없는 생각일 것이다.
10월 18일(토), 저녁 양폭대피소에서, 초저녁에 잠깐 잠을 청한 나를 비롯해 윤환이 등 몇몇 산우들은 잠자리가 바뀌어 11시경에 잠에서 깨어 잠을 이루지 못 했었다(나도 코를 골지만, 산우들의 코고는 소리 때문이었지).
다음 날 가야만 할 길고도 먼 산행길(공룡능선-나한봉-마등령-오세암-백담사)이 걱정스러워 당초 6시경에 출발하기로 한 계획을 변경하여 2시 반경에 잠시 밖에 나와 윤환이와 상의하여 새벽 3시경에 앞당겨서 산행을 강행하기로 하였었다.
고요한 숲속의 산행 길, 바람 한 점 없는 설악의 깊은 산속에는 그래도 달빛과 별빛이 있어서 좋았고,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생동감이 있어서 마음을 맑게 해 주어 좋았다. 잘 닦여진 등산로, 군 시절 완전군장을 하듯 잔뜩 한 짐의 배낭을 메고 야간산행을 하는 ‘산꾼’이 있어서 외롭지가 않았었지.
아직 동 트기 전에 체력 충전을 위하여 무너미고개를 넘어 신선봉 줄기에서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지해 도시락을 먹었던 일, 공룡능선의 웅대한 전경과 멀리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의지를 다짐했었고, 공룡능선을 넘어 나한봉 줄기에서 마지막 막걸리를 비우며 동반시를 읊었던 일과 작년에 올랐었던 마등령 쉼터 앞에서 주먹찰밥을 김으로 싸서 허기를 달랬던 일 등등. 우리 시산회의 4번째의 ‘설악산’ 산행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산행에서는 안전과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존경하는 기 회장님께서 영시암에서 백담사로 오는 마지막 하산 길에서 돌을 잘 못 밟아 발목을 삐었었던 일과 귀경을 위하여 수 많은 등산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셔틀버스의 부족으로 2시간 이상을 지체되었던 일 등은 집행부에서 당초 충분히 검토 했어야 했었는데. 부족한 점은 앞으로 점차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사오니 넓으신 아량으로 양해를 구하나이다(김종화 총장님 덧붙임).
2007년 10월 20일 임삼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