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부처의 지각 경계
세상은 멈추어 고정된 실체가 없지만, 존재한다는 마음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번민을 가진다. 우리가 번민에 대해 모르는 것은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오온은 번민이 생길 수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번민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번민이 왜 개체적인 번민일까를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착과 욕망에 따라 번민의 강도가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오온의 화합은 사람의 손금처럼 같은 것이 없다. 그만큼 형성된 길이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양이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지만, 물질의 세상은 그럴 수 없다. 오온은 조건의 인연으로 모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조건만큼의 인연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므로,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하지만 마음이 위를 볼 필요도 없고, 아래를 볼 필요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면 개체의 번민은 나타날 수 없게 된다. 만약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변하는 모양의 상태에서 무엇을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를 돌이켜 볼 수만 있다면, 인연으로 모양이 생겨난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속에 나라는 실체가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인무아와 법무아를 증득하여 번뇌장과 소지장을 끊어 없애고, 분단생사와 번역생사를 멀리 벗어나야 하네. 탐진치의 근본 번뇌와 성냄, 한탄, 전도된 생각 등의 수번뇌를 끊어낸 것을 일컬어 부처의 지각 경계라 하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끼사 고따미라는 여인이 자식을 잃고 정신이 혼미하여 온 마을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아들을 구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오게 되었다. 부처님은 그녀에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그곳에서 겨자씨 한 줌을 구해오라고 하셨다. 물론 까사 고따미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집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는 부처님께서 왜 그런 일을 시켰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이렇게 법문하신다. “끼사 고따미여, 너는 너만이 아들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음이 있느니라. 그리고 죽음은 중생이 자기 욕망을 다 채우기도 전에 그를 데려가 버리느니라.” 끼사 고따미는 설법을 듣고 일체의 모든 현상은 무상하여 오래 가지 못하고, 모든 생명체는 자기 욕망을 성취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불만족 속에 죽게 되고, 일체의 사물에는 그것을 이끌어가는 나라는 주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끼사 고따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가의 길을 가게 된다. 끼사 고따미가 알아낸 것이 예전에 없었던 일이지만 지금 드러난 것은 아니다. 무상하고, 무상한 것을 소유하려 하고, 무상한 것을 소유하는 자가 없다는 것은, 물질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모습으로 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지만, 집착 때문에 무상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님의 눈과 귀가 따로 있고, 중생의 눈과 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는 것에 오고감이 없는 줄 알고, 마음 안에 다른 모양을 만들지만 않으면, 찾는 마음도 생기지 않고 버리는 마음도 생겨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모양이나 느낌에 나라는 마음을 빼앗기고 나면 과거에 지어놓은 인연의 습기가 살아나, 줄 것이 있으면 주게 되고, 받을 것이 있으면 받게 되는데, 그 일은 그가 멈추지 않으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 된다. 인연은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연이 끊어진 곳에서 마지막 남은 몸의 인연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관찰하여 주체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알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비범하여 우러를 다른 소리가 들린다면, 잠시 바쁜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곰곰이 참구하는 지혜가 잃어버린 보배를 발견하는 일이 된다. 부처님의 지각 경계는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이것에 있지,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곳에 있지 않음을 알고,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만약 여기에 가졌다는 것이 있고, 가진다는 것이 있고,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있으면 세상을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지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