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안에 머물러라 / 룻 1:1-5, 고전 15:20-28
비가 온다. 한해를 초래할 뻔 했는데 단비가 와서 해갈이 된다. 비오는 게 이렇게 기쁜 건지 알았다. 흉년이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메마르고 또 삭막한 때를 지나게 되는 시간이다.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또 다른 흉년을 경험하고 있다. 인생에도 이런 흉년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흉년은 경제적 흉년이다. 돈벌이가 없어서 살아가기가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을 때 당하는 아픔이다. 또한 인간관계의 흉년도 있다. 메마르고 삭막한 부부관계를 경험하는 분은 없나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어떤가? 친구와의 관계는 어떤가? 어니면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관계는 원만한가? 삶의 모든 고통이 아프지만 특별히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갈등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긴장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신체적 흉년은 어떤가? 최근에는 몸의 건강에 대하여 더 민감하며, 건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살만하니까 병이 엄습해 와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오늘의 불안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나? 그러나 이런 흉년보다는 더욱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영적인 흉년이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생활은 어떤가? 말씀이 모자란다고 느끼지 않나? 기도가 메마르고 마음 속에서 찬송이 메말라가는 그런 상태는 아닌가? 자연재해의 흉년, 경제적 흉년, 육체적 흉년, 인간관계의 흉년, 영적인 흉년 등 이 모든 흉년이 해결되고 풍년을 맞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은 흉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지금부터 약 3200년 전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왕이 세워지기 전이라 사사들이 통치하던 때였다. 이 시대의 특징은 이렇다.삿 21: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누가 왕인가? 하나님이 왕이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이 없다고 해서 자기 생각나는 대로 살고, 자기들 멋대로 살아간다. 인간을 착취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나 왕이 없으니,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면 하나님게서 책임져 주실텐데,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인간 왕이 없으니, 그 순간에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세월들이 많았던 시절이 바로 사사시대이다.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때 흉년이 들고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게 된다. 그래서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베들레헴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서 멀리 사해 동편 모압 땅으로 이주해 가서 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사가 아니라 도피이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이다. 아마 이지역이 양식이 풍부하고 기름진 곳이어서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붙였나 보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풍부한 곳, 영혼의 떡인 말씀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베들레헴이다. 그런데 이 곳을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원수의 땅인 모압으로 도피하는 것이 우습기만 하다.
옛날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가나안을 향해 광야를 행진해 갈 때 행진을 끈질기게 방해했던 이들이 바로 모압인들이었다. 모압 사람들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거절하고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던 우상숭배의종족이다. 그런데도 엘리멜렉의 가족들은 그곳에 가면 혹시나 양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이사를 갔다. 이사의 이유는 단 하나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적인 삶이다. 이는 솔직히 도피이다. 당장에 살아갈 길이 없으니까 이들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주를 결심했다. 이들은 그 순간 ‘만약 이 결정이 내 신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고려를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 가정에 있어서는 영적인 문제보다도 육신의 문제가 언제나 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합니까? 당장 일거리가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내 삶이 끝나는 날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하는, 이 삶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이 없었다. 순간만을 본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오늘이 주일인데 일이 있어서 교회 못나온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지 않았나? 누구 결혼식인데, 누구 환갑인데, 누구 문상가야 하는데, 손님이 왔는데 하면서 주일날 하루쯤 교회 예배 빠지는 것을 당연시 하지 않았나? 이런 신앙생활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남자들의 신앙과 무엇이 다른가?
이 가정의 식구들은 누구인가? 가장의 이름은 엘리멜렉이다. 엘리멜렉이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나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왕이 되신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이것은 아마 그들의 신앙고백이었을 것이다. 이 가정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오미이다. 나오미는 ‘기쁨, 즐거움’이란 뜻이다. ‘아름답다, 달콤하다, 흔혜스럽다’는 뜻도 있다. 이들은 그들의 삶 속에 찾아온 폭풍우로 인하여 삶의 안락과 편리를 위해서 순간적으로 이주의 길을 산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주하는 길에는 더 커다란 고통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미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이제부터 기쁨이 아닌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성경이 이들의 이름을 일부러 밝힌 데에는 어떤 뜻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신앙고백이 그들이 이름을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배신한 삶,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배신한 이 가정에 덮치는 위기를 주목해서 보기를 바란다. 이들에게는 하나님보다도 지금 당장의 세상이 더 중요햇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이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삶의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행동하실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에 대한 이들의 생각과 믿음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나요? 오늘 내가 삶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이 고통과 환난 속에서 나를 훈련시켜, 내 삶 속에 궁극적인 그분의 놀라운 뜻을 이루실 전능하신 분으로 믿나요?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이 권능의 하나님을 여러분은 참으로 믿나요?
본문에 보면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라고 했다. 거류라는 의미가 ‘잠깐 있으려는 상태’이다. 아마 이 가정은 조금만 이 고통을 모면하면, 잠시 이 어려운 때만 지나가면,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떠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모압지방에서 장장 10년의 세월을 머물게 된다. 잠깐이 10년이 되었다. 그 동안 어떤 일이 생기나? 죽음의 고통이 이 가정을 지배했다. 우선 집안의 가장인 엘리멜렉이 먼저 죽었다. 그의 아내인 나오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아들을 키워서 모압 여인과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불행은 또 겹쳐서 두 아들마저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첫 아들의 이름은 말론이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기룐이다. 말론이란 뜻은 ‘질병, 병들어 약하다’라는 뜻이다. 기룐이란 뜻은 ‘상실한다. 잃어버린다. 쇠약하다’는 뜻이다. 이 두 아들의 이름은 어쩌면 그들의 유랑생활, 하나님을 떠난 삶에 대한 상징적인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이 가정의 10년 세월은 질병과 상실의 세월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끝없이 아파해 왔던 세월이다.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찾아 그들은 도피와 이주를 결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더 큰 아픔을 경험한다. 더 커다란 손해를 경험한다. 도피는 결코 해결이 아니다. 상황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 내일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 가정이 작은 어려움은 피했으나 더 커다란 어려움이 찾아오지 않았나? 너무 쉽게 도피를 결정하지 마라. 그리고 이 여러움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주님의 지혜를 구하라. 여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주님 앞에 물으라.
이 가정이 어떻게 되었나? 결국 한 집안에 세 과부만 남았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오르바와 룻, 세 식구만 남았다. 얼마나 처량하겠나? 그 시절에 여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에 며느리인 이방 여인 오르바는 모압에 남고 룻만 따라온다. 룻이 왜 따라왔겠나? 나오미의 삶을 보니 남편 잃고 자식들을 잃었어도 뭔가 다른 것이 눈에 띄니까 따라나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의 삶의 발견이다. 지금까지 이들의 삶은 그리스도 밖에서의 삶이다.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삶에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다. 베들레헴 곧 떡집에서 그들은 양육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다.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하나님 안에 머물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복음 전하기가 얼마나 어렵나? 그러나 나오미는 시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믿음 없는 사람이 신앙인이 되었다.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었다. 그래서 축복을 받아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되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런 축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전도해야 한다. 전도는 하늘나라에서 상이 가장 크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단 12장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다. 전도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믿지 않는 심령에 그리스도의 영을 심어주는 것이다. 하나님 밖에서 살던 삶이 하나님 안에 머무는 삶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교회가 전도를 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전주 땅에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나? 전주를 복음화하라는 것이 아닌가?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실 때 이렇게 말슴하셨다. 마 4:19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듣고 두 형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여러분들도 사람을 낚는 어부이다. 한사람 한사람 주님 앞으로 이끌고 오는 어부이다. 복음을 전하면 여러분의 신앙은 몰라보게 성숙해 질 것이다. 룻이 하나님을 만나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축복을 나누어주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요즘에 낚시하는 것도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낚시한 후 아무렇게나 주변 환경을 더럽히고도 나몰라라 하고 떠나가기에 환경보호차원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선택한 어부들이다. 예수님의 어부들은 당연히 어부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어부면허증을 오늘 나누어 드리겠다. 원래 면허증이라면 시험을 보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제가 인심을 써서 그냥 드리겠다. 이 면허증에 쓰여 있는 말씀대로 실행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몰라보게 성장할 줄로 믿는다.
어부면허증의 면허조건은 이렇다.
① 난 전도 대상자를 위해 하루에 한번씩 기도한다.
② 난 전도 대상자에게 먼저 따뜻하게 인사한다.
③ 난 전도 대상자에게 선행을 베풀고 있다.
④ 난 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꺼이 손해볼 수 있다.
⑤ 난 전도 대상자의 영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전도대상자를 찾는 10가지 방법은 이렇다.
① 가족 중에 안 믿는 사람
② 친척 중에 안 믿는 사람
③ 믿다가 낙심한 친척이나 이웃
④ 새로 이사온 사람
⑤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
⑥ 자주 이용하는 가게 주인
⑦ 자주 만나는 이웃
⑧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
⑨ 취미그룹(계)에서 만난 사람
⑩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전도대상자에게 접근하는 5단계는 이렇다.
① 먼저 기도하고 만난다.
②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③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을 강구한다.
④ 전도를 하겠다는 티를 내지 않는다.
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어부면허증에 자기가 전도할 사람의 이름을 쓰고 이를 위해 꼭 기도하며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기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부르실 것이다. 포기하지 말기 바란다. 달력에 표시하면서 내가 전도할 이 사람에게 얼마나 관심을 쏟았는가를 보기 바란다. 4개월이 지나면 다시 어부면허증을 교환해 주겠다. 끈기있는 자가 승리하는 자이다. 이 면허증을 꼭 가지고 다니기 바란다.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듯이 가끔가다 면허증을 소지하고 다니는지를 확인하겠다. 만일 가지고 다니지 않았을 때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벌금은 선교에 사용될 것이다. 벌금은 처음엔 경고, 두번째엔 천원, 세번째는 5천원, 네번째는 만원이다. 명심하고 꼭 가지고 다니기 바란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생명을 얻는다. 성도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면 의미없는 고난만이 임할 것이다. 우리는 이들이 삶을 통하여 철저하게 신앙 안에 머무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하는 일이 잘 안되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상황이 나빠서도 그렇고, 가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주일에도 일해야 한다. 또는 실망하거나 창피해서 교회 출석을 중단한다. 그리고 세상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렇게 되어서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나? 힘들수록 더 교회에 머물고 하나님 품에 있어야 한다. 절망스러워도 그 안에 있어야 한다. 북한에 기근이 한창 심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탈출했다. 그런 비참한 상황 가운데서도 진실로 믿던 성도들은 북한을 탈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비참한 상황 가운데서도 성도는 하나님께서 돌보셔서 굶어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나?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그를 제일로 삼고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안에 머무는 삶을 살아야 한다. 힘들어 보여도 머물러야 한다. 좋은 상황일때도 머물러야 한다. 나갔다면 빨리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언제나 주님의 품 안에 머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