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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13일(일요일)부터 21일(월요일)
스페인, 포르투칼 8박 9일 여행-
① 여행 경비: 149만원+ 가이드비 10만원 + 옵션비 총 30유로 총 경비 200만원 정도
옵션-플라망고 70 유로,
레일마드리드 60 유로,
몬데라트수도원 기차 30 유로
리스본 툭툭이 60유로,
세비아 마차 50유로,
바르셀로나 야간투어 70유로
② 여행지: 5대 도시 중심의 여행
마드리드(좋은 물이 모이는 곳)-인구 삼백만
바르셀로나 –인구 970만
세비아 –인구 70만
그라나다- 인구 24만
리스본
③ 스페인 여행 목적- 힐링, 관광, 글감 사냥
가능한 많은 것보고 많은 것 느끼고 새로운 생각 찾아내는 것. 나는 여행지를 개척지인양 발걸음을 내디뎠다. 영감과 내 안에 덜 채워진 것을 가득 찾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④ 스페인 민족성
가이드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스페인에서 우리나라에 관광 온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그렇다. 스페인과 우리 한국인은 닮은 점이 많다는 것. 스페인 사람들은 폭력적이고 충동과 치유할 수 없는 분노를 가진 우리 민족이다. 반면에 정이 많고 혈연에 연연해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 독립한 민족이기도 하다. 스페인 사람은 내부에 여러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스페인 사람의 열정에는 쓰라린 근원지 자리잡고 있다. 그건 바로 절망. 무엇보다 아프리카 종족이다. 그들의 심장은 물탱크와 같다. 그것은 갑자기 넘쳐흐른다. 스페인 사회 부정은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수세기 동안 소작논들은 영주의 당을 갈아왔고 그들 땀과 피를 땅에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굶주렸다.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의자들이 우세했다. 파업, 살인, 방화가 일어났고 분리와 독립을 요구했다. 7월 18일 혁명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누가 정치를 하든 배고픈 사람이 없어야 하고 안정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당면한 역사적 격변에 지혜롭게 대치해야 할 힘과 판단이 딜효랄 때다. 지금 흑탕에 발 담그고 있는 가난이 엄청난 폭발력으로 전환되기 전에 돌 위에서는 핥을 것이 없다. 꽃씨라도 심어 꽃이라도 본다면 허기를 달랠까? 아시냐는 “나는 극우나 극좌에 매수되지 않는 청렴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선언했다. 지금 한국 대통령은 그런 생각을 할까? 우리의 허기로 꼬인 찿자에 그래도 사회 정의가 담길까? 정이사회 구현이 담길까? 허기로 꼬인 창자를 부여잡고 걷자. 그 앞에 우리를 배불릴 곡식이 뿌려져 있을 곳을 향하여 아직 빛이 우리 나라를 비추고 있으니 온몸으로 웃으며 나아가 맞자.
5월13일 오후 4시 30분 집에서 출발하여 5시 30분에 동대구역에서 인천공항행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19:57분에 도착하여 21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모두투어 가이드 모영주님이랑 만났다.
2018년 5월 14일 월요일
인천공항 출발 4:45~7시 10분에 도하 공항에 도착하였다. 도하 공항에 두 시간 머물면서 공항 구경을 하였다.
<도하 공항의 인상- 어린이들 세상 맞이>
공항 현관 입구에 대형 목조 곰을 세워 두었는데 관광객을 맞이하듯 인사하는 모습이 반갑다. 라운지에 금색철재로 만들어 둔 둥근 미끄럼틀 꼭대기에 둥근 사람 얼굴을 달아두어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을 타는 것같이 보인다. 큰 미끄럼틀에 아주 자그마한 인형조각 작품들을 달아둔 것과 힌형 조각의 눈 속에도 아이가 달려있는 조각을 해두었다. 어린이 세상으로 온통 마음이 밝아지는 공항이다. 공항 실내를 A-P 구간을 오가는 전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큰 공항이었다. 인천공항에는 길 안내하는 로봇이 있다고 한다. 7시 40분 스페인 수도 바로셀로나로 출발하였다. 비행기 속에서 10시간 20분을 견디며 한 개인에게 주어진 사각통 자리 한 칸 속에 감금된 느낌은 감옥의 죄수 같은 느낌이었다. 14세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깊게 내려가면 겨우 한사람이 웅크려 앉을 수 있는 원형 철창 시멘트 안에 갇혀야만 했던 사람, 사람이 사람을 가혹하게 다스리는 세상에서 죄를 덮어씌워 고통을 준다면? 그런 일들을 생각하게 되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객 신분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 시간이 끝나면 내가 보고 싶은 신세계를 볼수 있으니 이 정도 자유의 구속은 참아내어야만 한다. 10시간 20분 동안 비행기를 탄 셈이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는 이곳 시간으로 낮 4시쯤이다, 우리 한국에서 14일 새벽에 출발해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왔는데 이곳에서 또 한 번 14일의 새벽을 맞았다. 바로셀로나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린 탓에 14일 아침을 두 번 맞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안정선이라 했다.
<가우디의 건출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인 구엘 공원으로 갔다. 구엘 공원에 남긴 가우디 작품은
첫쩨, 페 타일로 만든 벤치다. 170cm 이다. 작품명은 <트랜카디스>다 건축기법이름으로 ‘깨다. 부수다’ 기법이란다. 가우디가 최초로 사용한 기술이다. 당시 피카소는 가우디를 부자의 스폰서를 등에 없고 활동함에 대해 부자만 위한다고 타락했다고 질투했다가 페 타일로 만든 벤치를 보고 가우디를 인정했다고 한다.
둘째, 과자모양 동화속 같은 집 세동이다. 헌재는 경비원과 기념품 가게로 쓰고 있다.
셋째, 시장으로 쓰려고 만든 86개 기둥이 있다. 비올 때 비 염려 없는 시장을 만들려는 생각에서 였단다. 가우디의 전폭적 지지자 스폰서 구엘을 가우디가 만난 곳은 파리 박람회장에서였다.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 가우디의 창조적 천재성을 인정해서 전폭적으로 투자해준 탓이다.
가우디의 졸업식 날 수여식에서 총장은 “가우디가 천재인가 괴짜인가 후일 알리라.”는 말을 남겼지만 후일 그는 천재였다. 가우디는 그의 건축물 7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단다. ①성가족대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②까사바뜨요(뼈다귀집이라는 뜻)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물리치고 완녀을 구해낸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뼈다귀집인데 발코니와 기둥은 용이 먹다 남긴 뼈다귀를 걸쳐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인체의 집- 생명이 숨 쉬는 아침 해가 빛나면 지중해 파도 속에 떠다니는 해초와 작은 동물처럼 보인다) ③까사밀라 주택(베란다 창에 미역 걸어놓은 철구조. 가우디가 성가족성당 작업 전 최초로 지은 주택- 돌로 만들어서 채석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둥근 석회암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사이를 용이 승천하며 뚫고 지나간듯한) 건물. 까사밀라 옥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옥상으로 독특한 굴뚝과 환기구들이 조각처럼 서있다. 거대 석상처럼 보이고 마귀들이 모여서 노려보고 있느 것 같기도 하다. 코모양, 눈모양, 입모양도 제각각인 환기구다. 가우디의 이 굴뚝을 보고 조지 루이스가 영감을 얻어<다스 베이더>를 탄생시켰다. ④구엘 공원 ⑤폴리니아 지하 성당 ⑥구엘 저택 ⑦까사비센트(비센트의 집) 이다. 가우디의 작품-건축물의 특징은 곡선과 자연(나무)과 신앙심이라 한다. 내 작품을 알려면 나무를 봐라.“ 했다. 가우디는 자신의 생각과 창조를 건물에 입힌 사람이다. 건축물의 균형 등이 다르다. 처음에 비야라가 성당을 지으려 했으나 교구의 간섭을 받다 손을 떼고 31살 의 젊은 가우디가 1833년에 이어받아 신앙심으로 44년 동안 성가족 성당을 지었지만 미완성으로 남겼다, 완성하여 실적을 과시하기보다 후배에게 남겨줌으로써 “파밀리에성당의 완성은 신만이 아신다.”며 성당 짓는 동안 권력의 중심에 선 성당이 아닌 모든 사람이 친근하게 다가갈 성당을 준비해왔다. 가우디 박물관은 1926년에 완공했고 성가족 성당 지하에 가우디가 안장되어 있다. 가우디의 태생은 부모가 대장장이였다 한다. 몸이 약해 학교에 못가고 집에서 자연속에서 공부하며 자연을 좋아한 것이다. “너는 세상에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부모의 격려가 있었다. 가우디가 죽을 때 저녁 산책을 나갔는데 노숙자 차림이라 전차에 치였지만 빨리 옮겨 치료해주지 않았단다. 교황이 알고 달려와 큰 병원으로 옮기려했으나 빈민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자기를 그대로 그 병원에 두기를 원해 결국 74세로 생을 마감했다. 사이프라스 나무는 천국에 심겨져 있는 나무를 상징하는데 벽에 3번 산투스라고 새겨져 있다. 성스럽다는 뜻이다.
대학생일 때는 독일작가가 쓴 <베로니카의 땀수건>이라는 책 번역을 하던 채석희 선생님을 돕다가 베로니카의 슬픔이 내게로 와서 책 속에 있는 스페인 성당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육십에 접어 들어서야 비로소 짝사랑을 찾아 스페인 기행에 올랐고 내가 만나고 싶은 조각상, 성(聖)가족 성당 정면에 있는 베로니카의 땀수건 조각을 만났다. 하지만 안토니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을 비롯한 건축물 일곱 개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시킨 천재적 건축가였다. 장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가 성당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익명의 부인이 14,000두로를 기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장엄하게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겠다. 그렇다하더라도 곡선으로 장엄함을 표현한 그의 창조적 천재성은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일요일마다 방파제에 나가 빛과 색이 서로 다른 색조를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단다. 그런 영감이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땀수건에 까지 생명의 감각을 불어넣어 펄럭이고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쓰러질 때 그 뒤를 따르던 베로니카가 황급히 머릿수건을 풀어 예수에게 내밀었다. 예수는 겨우 수건을 집어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았다. 그 수건에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림(아케이로 포이 에토스-acheiropoietos), 예수님 얼굴이 새겨졌다. 가우디도 예수의 고통을 함께 하며 베로니카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보통 건축가들은 성당 안에 조각물들을 새기는데, 가우디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성당 바깥쪽, 그것도 정면에 베로니카의 땀수건을 새겨 놓았다. ‘누구라도 세상에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들의 마지막 가는 저 길의 수난을 어떻게 담담히 볼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볼세라 성당으로 들어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성모님의 슬픔 속에 내 영혼을 담아 묵상하며 울었다. 성당을 물러나올 때는 성모님의 온화해진 눈빛을 느꼈다. 44년간 성가족 성당을 지은 뒤 개인의 공적을 높이려는 욕심을 버리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넘겨준 가우디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이었다. 요즈음 부실 공사와 날림 건축물이 판을 치는 건축 현장과 공덕 내세우기에 급급하는 우리들 사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전차에 치였을 때도 노숙자 차림새 때문에 세인들이 냉대하며 구조가 늦추어졌고 뒤늦게 교황이 알고 달려와 큰 병원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나를 여기 그냥 두시오.” 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 돌리기를 바라 죽음도 개의치 않았던 그! 가우디를 성인으로 추대했다니 성모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오롯한 삶이었으리라. 내 영혼에 떨림을 얻어 보고 싶었던 감동은 <돈키호테>와 ‘베로니카’였지만 작가 세르반테스와 건축가 가우디의 영혼에 더 깊숙한 감동을 얻었다. 그래서 이렇게 발로 찾아와 보고 싶었나보다. ‘내게 남은 시간들도 가우디처럼 오롯하게, 세르반테스처럼 고통 속에서도 작품에 몰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밖으로 나와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땀수건에 입을 맞추듯 고개를 숙였다. 예수님 음성이 들려왔다. ‘모든 걱정은 내려놓아라. 그리고 오롯한 삶을 살아라!’ (20180530-13매)
성가족 성당 한쪽에는 가우디의 제자 수비리치의 작품으로 메워져있다. 수비리치는 곡선이 아닌 직선들만 이용했다. 돌로 만든 여자들을 보면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 마방진 숫자 모두 합하면 예수 사망 나이 33이 되는 마방진으로 되어 있다.
저녁 식사로 빠이야(후라이팬이라는 뜻 )를 먹었다. 한국 볶음밥과 비유해서 약간 덜 익힌 쌀과 채소 사라다 정도의 음식인데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이 식당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노년층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보기 좋았다. 마치 노년층 남성들이 그룹취미활동을 하는 듯 보였다.
가이드의 감동적 이야기를 들었다. 한 식당에 들렀는데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 모두가 음식을 넘기자 그 중 나이 많은 한 할머니가 나서서 식당 주방장한테 대신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하더란다. 가이드가 긴장해서 들어보니 “우리가 음식을 남긴 것은 점심을 먹은 지가 얼마 안 되어서 그렇다고.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해달라고 하더란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마음부터 챙길 줄 아는 할머니의 살아온 나이가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 모른다.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와 발렌시아
<몬세라트수도원-검은 성모상을 만나고>
몬세라트 수도원은 에스골라니아 소년 합창단이 와서 합창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절벽에 톱니모양산으로 우뚝 솟아있는 중간에 지어져 있었다. 높이 120m. 등산 및 성당 순례지인데 12세기에 검은 목조성모상이 발견된 곳이요. 성보 발현지라 했다. 우리는 도착해서 몬세라뜨 성당 앞 중앙 둥근 성수 모자이크에 발을 딛고 사진을 찍었다.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는 곳이라 해서. 특이하게도 검은 피부의 성모상을 만났다. 마침 단체 수학여행 온 중학생들이 성모상 앞에 줄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에 성모상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둥근 공을 한 번씩 만져보며 소원을 빌고 내려왔다. 이 성모상은 치유의 상징이라고 한다. 9세기에 어린 목동 앞에 성모님이 발현하셨고 그 동굴에서 검은 성모상이 발견되어 도시로 옮기려했으나 꼼작하지 않아 발견된 몬세라트에 그대로 모시고 몬세라트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왜, 누가 성모님의 피부를 검게 조각했다는 전설은 없단다. 문득, 스위스에 있는 검은 성모상이 생각났다. 스위스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은 에첼산 기슭에서 은거하던 마인라트가 힐데가르트 수녀의 청으로 만들었고 수세기에 걸쳐 양초에 그을려 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에 비추어 몬세라트 성당의 성모상을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동굴에서 발견된 만큼 동굴에서 지내던 목동의 양초나 밥 짓는 그을음 때문에 검게 변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검은 성모상 앞에 섰을 때 피부가 검다고 핍박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고 그들에게 이르는 성모님의 말씀이 또렷하게 들렸다. ‘무릇 피부가 검다고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어린 양들아. 차별과 핍박에 마음 두지 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아마도, 검은 피부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성모님 스스로 검은 피부로 변하셨으리라. 사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피부가 검다는 놀림과 무시로 마음에 상처가 너무 깊다. 어떤 꼬마는 자기 피부의 검은 살갗을 희게 해보려고 몇 시간씩 때솔로 피부의 껍질을 벗겨 피가 나게도 하고, 어떤 꼬마는 흰 피부를 갖고 싶어 흰 우유를 많이 먹다 배탈이 나기도 했단다. 흰 피부, 흰색이 왜 그리 부러울까? 백인종은 그들의 피부색인 흰색이 이상적인 종족상을 나타낸다고 믿고 있다. 서구의 동화책들을 봐도 백인 우월주의 내용이 많아 불편하다. 하지만 세계인을 상대로 색깔 선호도를 조사했을 때 흰색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여성 2%에 머물렀다. 반면에 아프리카인들은 검정색을 가장 좋아했다. 우간다의 국기에서 검정색은 자랑스러운 민족을 상징한다. 황인종 중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인은 황색을 좋아하는데 중국의 3황 중의 하나인 태호복희의 여동생인 '여와(이름이 여호와랑 비슷하고 연대도 비슷하다)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 구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너무 덜 익은 흰색은 서쪽으로 보내고, 너무 탄 검정색은 남쪽으로 보내고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색인 잘 익은 노랑색은 중앙에 남게 하였다는 이야기다. 황인종은 노랑에서 생명을 선사하는 자연의 힘을 체험한다고 한다. 모두 자기 민족 중심의 이야기다. 그러니 자기와 피부색이 다르다고 함부로 놀리는 이들은 말이 칼이 됨을 알아야 한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볼 일이다.
요즈음 세계 화장품 회사도 흑인을 위한 메이크업 제품을 만들고 패션쇼 모델로 흑인여성들이 많다. 젊은이들 사이에 검은 여자를 뜻하는 이름도 인기가 높다. '라일라(페르시아 이름)'
'멜라니(그리스 이름) '파멜라(영어 이름) '모레나(이탈리아 이름)'들이다. 검은색의 매력에 끌리는 심리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들며 자기 과시 효과를 기대한다. ‘검은 옷은 언제나 어울리고 인품을 강조한다. 그래서 나는 검은 색을 즐겨 입는다’고 1985년에 뉴욕에서 개인 회사 DKNY를 설립하여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자기 이름을 브렌드화한 백인 도나카란도 검은색의 매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색깔에 대한 자신만의 기호요. 편견일 뿐이다.
사람이 진정 품위 있게 살려면 색깔에 대한 편견은 놓아버리고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서로 존중하며 자긍심으로 살 일이다. 제주도 소년 오연준이 부른 <바람의 빛깔-Schwartz Steve, Menken Alan Irwin의 작사, 작곡> 노래말이 이 모든 편견을 씻어주고 있다. ‘사람들만이 생각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 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 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발렌시아 과학박물관도 잠시 들렀는데 건물이 규격화되어 있지 않고 동물의 모습을 본떤 건물이 많아 이색적이었다.
2018년 5월 16일 그라나다. 맑은 날
차속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속 깊은 우정- 도밍고와 호세아노 이야기>
세계 3대 테너 가수는 슬라시 도밍고와 파파로티, 호세아노이다. 호세아노는 스페인 음악가인데 음악활동 중 도밍고와 마음 상해 서로 헤어진다. 그후 호세아노가 희귀병에 걸리자 희귀병 완치를 돕는 재단에서 도움을 받게 되는데 희귀병이 환치된다. 그래서 다시 가수활동을 하는 무대에 도밍고가 나타난다. 바로 전에 도밍고가 희귀명 재단에 돈을 기탁해 호세아노를 완치시켰음을 안 호세아노는 공연장에서 무릎을 꿇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플로렌스 도밍고는 멋진 중년시사로 한국에 와서 음악대회 우승자 김성우와 그리운 금상산을 불러 우리 민족의 한을 이해한 가수이디고 하다.
아, 나도 그렇게 속 깊은 우정을 가꾸어나갔으면 좋겠다.
<파리 넬리너> 차속에서 오페라 관련 파리 낼리너 영화 중 마드리드 왕국의 이야기를 들었다.어린 아이가 오페라가수가 되면 집안을 먹여 살린다. 넬리너가 사춘기 변화가 오는 것을 막으려고 동생을 돌보던 형이 파니렐 리가 감기 걸렸을 거세시킨 뒤 형의 노래만 불러라 하자 동생 넬리네가 반항하며 형을 더나 헨델 노래를 불러 왕의 궁중 오페라곡을 불러 출세한다. 형은 멋진곡을 작곡해 동생을 찾았으나 동생이 출세한 것을 알고 곡만 남기고 떠난다.
파리 넬리아 그 영화 <울게 하소서>에 나왔던 그라나다. 까르멘은 담배공장에 나가는 여자가 군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욕하는 동료여자와 싸우다 감옥에 갇힌 까르멘이 군인 호세(까르멘을 짝사랑하는 군인)을 밀치고 달아나서 호세와 만나게 되난 까르메는 보혜미안 기질로 투우사도 만나고 다른 사람도 만난다. 그래서 서로 사랑을 포기하는 영화다.
그라나다 시내를 15분 걸어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구경하고 야시장에서 30분간 머물며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마차를 타고 세비아로 가서 포르투칼 수도 리스본의 일곱 개 언덕으로 지은 집까지 뚝뚝이를 타고 한 시간 20분 동안 관광 하였다..
알함브라 궁전 멀리서 보면 거대한 요새같다. 알함브라는 워싱턴 어빙의 붉은 성을 뜻한다. 12마리 사자조각, 사자의 정원, 콘크레스로 텔 그라나다 연장 투어. 이슬람교들은 다섯 손가락을 펴 걸어 놓았다. 신에게 이른 5길-믿음, 자비, 기도, 금식, 순례를 상기. 당신이 찾는 메카(분명의 발생지)는 당신 마음 속에 놓여 있다. -한 아랍 시인의 말이다. 함브라에 들어가 세에라자드가 천일야화르 들려주는 것만 같이 느꼈다. 동양의 동화속인양- 천일야화속으로 들어가 죽음도 뒤로 물러나게 한다. 장군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성을 내어놓아라고 해도 장군은 끝내 응하지 않고 아들이 인질로 죽자 아들을 죽이는 총소리를 듣는다. 끝내 성을 지켜낸뒤 승리하자 바셀라 장군 에게 경례하며 “장군님, 이상 없습니다.” 한다. 마법에 걸린 듯 전설의 성을 다니며 건축물과 음악의 일체감 속에 황홀했다. 아랍 건축물은 물질적 형채를 초월아혀 벽돌을 카펫처럼 디장니해두었다. 아랍 음악가지아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워 물질을 초월하려했다. 알함브라는 노래중의 노래라는 성가의 아가를 돌로 구체화 시킨 것이다.
2018년 5월 17일 목
<론다 거리의 헤밍웨이>
스페인 론다 계곡의 하얀 집. 절벽위에 지어져 있다. 터기,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론다 구시가지는 헤밍웨이가 소설을 구상하며 걸었던 거리라 헤밍웨이 두상이 걸린 시가지다. 누에보 다리도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소설의 배경이 된 다리로 험상궂고 거대하여 다리 같지 않고 성같은 느낌을 받았다. 1937년, 스페인 내란에 철교 폭파 임무를 맡은 미국 교수 조던이 마리아를 만나 3일간 목숨 걸고 사랑한 이야기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두 사람 몫만큼 사랑하겠어요.”하는 마리아에게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뒤따라가겠어. 이젠 당신이 나의 인생을 사는 거야.”하며 마리아를 살리기 위해 가물거리는 의식을 잡고 기관총을 당기는 조던을 그려본다. “운명이 갈라놓아도 언제나 함께하는 사랑을 위해 종소리는 울린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칼과 종을 생각하게 된다. 칼을 만든 쇠는 모두 피 흘림을 전제로 한다. 피흘림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길은 없을까? 같은 쇠를 가지고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일본도를 만들 때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잘 울리는 에밀레종을 만들었다. 칼로 쌓아올린 역사의 그늘에는 칼에 찔려 피 흘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밀레종은 소리로 사람들 마음속에 담겼다. 애절한 사랑과 애절한 연민의 정으로. 대포 속에 꽃씨를 넣어 쏘아보내고 종 속에 마음을 담아 평화를 기릴 수 있는 그런 발명가에게 세상 평화상이 주어지면 좋겠다.
<론다 투우장>
투우장은 가지 않고 투우사가 주인인 식당에서 투우 영상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쓰러진 소를 말이 끌고 갈 때 말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흥분한 군중이 소를 죽인 투우사를 영웅인양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 심리가 섬짓했다.동물이 인간의 동굴 앞에 나타나 바라볼 때 배고픈 인간을 위해 신이 보내신 선물이라 여겼을까? 지금은 물질이 남아도는 세대라 배고픔은 떠났으나 영혼의 배고픔이 간절하여 마음의 갈등이 너무 많이 쌓여 이렇게 순한 소를 죽여가면서 까지 내 마음의 갈등을 소화시켜 가는 것일까? 인간들은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따르자면서 다른 생각, 다른 마음으로 구제받기 힘든 불쌍한 인간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카잔차키스는 신과 인간의 화합이라 했지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역사속 사람들의 빛나거나 애환에 저려졌던 삶들을 들여다보고 그 당시를 마음에 담아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좋긴 하지만 투우사 일만은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도저히. 내가 죽어도...
“역사는 진리의 어머니다. 모든 행동의 보관자이며 과거의 증인이며 현재의 모범이며 교훈이며 미래의 제고자다.” 돈키호테가 그랬던가. 소를 죽이는 이런 놀이는 절대 현재이 모범이 될 수 없다.
<세비아 대성당-콜럼브스 관>
세비아 대성당으로 이동하였다. 세계 3대 성당이라면 바디칸 산비에타성당, 런던 세인트폴 성당,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이라 한다. 세비아 대성당은 가로 126m, 세로 82m, 높이 30m fh 로 웅장했다. 세비아의 건물은 환희와 정교함의 혼합으로 이루어졌다. 명상에 잠긴 프란체스코 성인은 어린 하느님의 빈민으로 살고 싶어했는데 이렇게 웅장한 성당을 보면 마굿간에서 태어나 평생 고기 잡는 어부들과 살아온 예수는 뭐라 하실까? 세비아 성당에는 콜럼버스의 관을 든 무덤이 있었다. 콜럼버스는 명주가 많아지면 자기 몸에서 실을 자아 고치를 자는 누에처럼 고집스럽게 자기 몸에서 신대륙을 만들어갔다. 콜럼버스는 이태리인으로서 네 번째 항해에서 인도를 발견하여 이사벨 여왕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총독으로 임명해줄 것. 귀족으로 인정해줄 것, 재산을 인정해줄 것. 이것이 이사벨라 여왕과 한 산타페 협정이었다. 이사벨라 여왕이 산타페 협정으로 콜럼버스를 총독과 귀족으로 임명해 주었으나 용병으로 쓸 이태리인을 총독으로 임명했다고 시기하는 부하들 때문에 콜럼브스가 감옥에 갇히면서도 두 아들은 귀족으로 인정해주고 재산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콜럼브스를 감옥에 가두는 등 콜럼브스를 인정해주지 않자 콜럼버스는 생전에 죽어도 “나는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겠다.”고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은 스페인에 대해 섭섭해했다. 그래서 지금 세비아 성당에는 네 왕이 콜럼브스의 관을 네 귀퉁이에서 떠메고 있는데 땅이 아닌 관으로 들고 있다. 앞에서 들고 있는 왕들은 그나마 콜럼브스를 인정해준 왕들이라 얼굴을 들고 있고 뒤에 있는 왕은 콜럼브스를 인정해주지 않아 떳떳하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한다. 사후 두 아들 중 둘째 아들이 콜럼브스 자서전을 써서 콜럼브스가 인도 신대륙을 발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전에는 두 번째 발견한 아메리카인을 첫 번째 발견한 것처럼 꾸며간 진실이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역사도 조작하는 인간의 심리가 불결하게 느껴진다. 세비아 성당에서 나와 히랄다 탑과 황금탑.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 광장에서의 여유는 탱고를 추는 짚시춤 구경으로 보냈다.
2018년 5월 18일 금
포르투칼 리스본으로 이동. 리스본시 서쪽 끝에 있는 유럽의 서극점 땅끝마을. 까보다로카로 이동해 육지의 끝을 보았다. 육지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이었다. 그 다음 파티마로 이동하여 한 기념품 마켓에 들어갔다. 거기는 온통 닭그림 앞치마. 닭그림 냄비 받침 등 닭 그림 일색이었다. 닭이 행운을 가져온다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다. 한 나그네가 잠을 청하러 잔치집에 들러 잤는데 다음날 은쟁방이 없어져서 혼자 의심을 받게 되고 재판장 앞에서 결백을 증명해 보이라 하자 응겹결에 나그네가 ‘저 부인이 들고 있는 닭바구니를 치면 닭이 꼬끼요 울면 제가 결백하다는 뜻입니다.“ 해서 위기를 벗어났단다. 그후 닭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전해진단다. 전설이 너무 싱겁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정겹다.
포르투칼 요리-바깔로 점심-생선에 매운 것 뿌려 먹는 요리 이름
<성모 발현지 파티마 대성당>
파티마 성당은 성모 발현지이다. 1917년 5월 13딜 세명의 양치기 소년 (11살, 9살, 7살) 앞에 성모가 나타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라했다. 사람들은 아이들 말을 듣지 않고h 감옥에 가두었으나 감옥에 갇힌 아이들은 성모님께 사람들이 믿도록 나타나달라 부탁했다. 아무리 겁주어도 아이들은 감옥에서 죄수들과 기도를 하는 중에 10월 13일에 비오는 날 작은 마을 파티마로 몰려온 비가 그치고 오렌지 색깔로 태양이 비치고 그때 성모가 나타난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된다. 장님도 눈을 뜨는 기적.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남을 위해 기도 많이 하여라는 성모의 메시지를 받는다.
저녁 9시에 미사 참례를 했다. 각국 말로 미사를 드려주었다. 얼굴과 국적은 달라도 종교 안의 하느님과 하나되는 저녁시간이었다. 외국인이 밝혀둔 촛불에 불켜지지 않은 내 초를 갖다 대어 불을 밝혔고 이내 한 외국인이 내 촛불에 자기 초를 갖다 대어 불을 밝혔다. 미사 끝나고 성모상을 네 곳에서 들고 밤 운동장을 길게 걸어가는 신부들 뒤를 따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신자들이 촛불을 들고 따랐다. 아베마리아를 웅얼거리며 성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두고온 우리집 맏아들 우림이. 토마스아퀴나스를 위해 기도 드렸다. “믿는 집 규수를 만나 성가정을 이루게 해주소서.”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포르투칼
마드리드로 가서 스페인의 옛 수도이자 유네스코 지정 문화 유산 도시인 톨레도로 이동하였다. 똘레도 대성당에는 이슬람 전추 승리 기념을 위해 웃는 성모상을 조각해두었다. 일르 갔다가 엘리코의 작품을 만났다. 엘리코는 1560년대 필립핀 그리이스에서 넘어와 똘레도 성당에서 성화만 그렸다. 산토 토메교회에 엘리코가 그린 <오르가즈 백작의 장례식> 명화가 있었다. 명화속 주인공 백작은 자선사업을 많이 한 백작이라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장례식은 2차 세계 밑에 놓인 관을 내려다보면 3차세계가 된다. 그림 바로 밑에 관이 놓여 있는 것이 3차 세계다. 엘리코의 초상화는 연금술사 마술사, 요술쟁이 엑소시스트를 떠올리며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고대 마법의 힘을 가졌다. 지옥, 연옥, 천국을 지나 내세의 불꽃 형태로 지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예술은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영혼의 눈으로 가시적인 이 세상 안에서 짐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창작은 신비적 도취상태의 게임이다. 엘리코 그림의 특징은 세 가지라 한다.
첫째, 손가락으로 사인을 했고 둘째, 사람을 핏기없이 누렇고 길게 그렸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나간다고
셋째, 색깔이 강하다. 예수의 옷도 빨간색(심장. 피를 상징)으로 그렸는데 교황이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세계 3대 성화는 천지 창조. 최후의 만찬, 오르가즈 백작의 장례식이라 한다.
점심은 바깔로(은대구 요리)를 먹고 뚝뚝이를 타고 시내를 구경했다. 포르투칼에는 코르코나무. 포도주 나무 와인 닭그림 전설 세 가지가 유명하다.
2018년 5월 20일 일
< 프라도(초원이라는 뜻) 미술관>
마드리드로 출발 프라도 미술관으로 갔다. 1819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왕족이 직접 수집한 그림, 작품들을 백성과 같이 풀밭에서 식사를 즐기며 작품을 감상하던 곳이라 한다. 바깥에 세워둔 고야 동상을 만났다. 고야 동상은 자기 생전의 작품 <옷 벗은 마야> 그림이 조각된 동상을 거느리고 서있었다. 세반테스가 자기 작품 속 돈키호테와 산초를 거느리고 동상으로 서 있는 형상과 같다. 유명 예술가는 모두 자기 작품 속 인물과 함께 조각되는 특징이 있구나 싶다. 프라도 미술관 그림을 보며 사진술이 발달되기 전 귀족이나 왕족이 화가에게 자기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여 자기 모습을 남기고 싶어한 흔적이 오늘날 초상화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자기애가 후대까지 이르기를 바랐으니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한국에 돌아오며 산타에고의 순례길을 생각해봤다.
<산타에고의 순례길 유래>
산타에고는 814년에 한 수도사한데 주의 게시가 내려 북쪽마을에 가보라는 말을 따라 북쪽 마을로 가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후 야고보의 무덤은 신이 함께 한다는 뜻이 되었다. 무기징역, 사형수들이 그 길을 걸어 다시 살아남기 위해 옷 한벌에 맨발로 굶어죽을 수도 있지만 800km-1000km를 걸어 새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걷는 게 그 당시 죄 사함의 방법이고 나와의 재활을 할 수 있는 길이었다고 한다. 불탄 숲이 저절로 스스로를 키우듯, 키큰 나무가 죽으면 햇볕이 땅바닥까지 잘 들어 새 생명들을 키우듯, 죄사함으로 죽어 다시 소생해야 한다. 포르투칼어로 감사하다는- 오리브라도 안녕은 -봉디야. 매운 맛은- 삐리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