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과 효심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운 김대성
신라 중기의 재상 김대성은 김문량의 아들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불국사는 경주 토함산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다.
석굴암은 토함산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불국사에 딸린 암자이다.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게 된 배경은 「삼국유사」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신라 시대 경주 모량리에 경조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경조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큰 머리에 평평한 이마를 가지고 있어 큰 성(城)처럼 생겨 대성(大城)이라고 이름 지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경조와 대성은 부잣집 복안의 집에서 일을 하며 살았다.
복안은 이들 모자에게 밭을 약간 떼어 주고 농사 지어 먹고 살게끔 해주었다.
이때 경주성 안에 있는 흥륜사(興輪寺)에서 육륜회(六輪會)란 모임을 하기 위해 점개라는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다녔다.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하자 점개스님은 “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로 돌아오니 부처님의 보호를 받아 장수하실 것입니다.”라며 덕담하였다.
마침 대성이 점개스님의 덕담을 듣고 어머니 경조에게 가서 “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지난 생에 닦은 덕이 없기에 이번 생에 가난한가 봅니다. 다음 생을 위해서라도 주인에게 받은 밭이라도 시주하면 어떨까요?”라고 하였다.
경조가 흔쾌히 허락하였다.
대성이 점개스님에게 밭을 시주하겠다고 하자 점개스님이 대성에게도 덕담을 해주었다.
얼마 후 대성이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조정의 대신 김문량의 집에 ‘모량리의 대성이가 이 집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김문량의 집에서는 소리를 듣고 놀라 모량리에 가서 수소문해보니 정말로 대성이란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김문량의 부인이 임신하여 열 달 뒤에 아들을 낳았다.
아기가 왼손을 꼭 쥐고 7일 만에 폈는데 손바닥을 살펴보니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가 써있었다.
그래서 이 아이를 김대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문량은 원래 대성의 어머니인 경조를 데려다가 두 부인에게 새로 태어난 대성을 키우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하루는 대성이 토함산에서 곰 한 마리를 사냥하였다.
그날 밤 꿈에 곰의 귀신이 나타나 “네가 날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대성은 “잘못하였으니 제발 살려주시오. 나는 지난 생의 부모와 이번 생의 부모를 함께 모시고 있으니 내가 죽으면 절대 안 되오."라며 애걸하였다.
그러자 곰의 귀신이 “너를 꼭 죽이려 하였는데 사정이 딱하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절을 지어 내 혼을 위로해 주겠느냐?”라고 하였다.
대성은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 뒤로 대성은 사냥을 그만두고 곰을 잡았던 곳에 장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어 곰의 명복을 빌었다.
그 후 대성은 깨달은 바가 있어 불도를 닦으며 공덕을 쌓기에 몰두하였다.
전생과 이생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니 ‘절을 지어서 명복을 빌어드리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겠지.’ 라고 생각하여 이번 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불국사를, 지난 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