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으로 / 양선례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늘이를 불렀다. 안방 바닥에 힘없이 엎드려 있는 녀석이 보인다. 조심스레 안았더니 끈적이는 노란 액체가 손에 묻는다. 이상하다. 내가 모르는 약을 발랐나? 그저께 병원에서 감아 준 노란 붕대에 물이 닿아서 번진 건가? 발을 들어 이리저리 살피니 두 발의 크기가 확연히 다른 게 눈에 들어온다. 안경을 벗고 보니 더 선명하다. 왼발이 오른발의 거의 두 배쯤이다. 발톱 주변이 온통 벌겋게 발가락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다.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노란 진물이 흐른다. 며칠 전 병원에서 수액 맞으면서 감아 둔 붕대가 너무 조여서 생긴 일이었다. 풀어달라는 말도 못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주인이라는 사람이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다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녀석이 아픈 지 스무 날이 지났다. 여름방학을 맞아 결혼한 아들네가 사는 제주도에서 손자랑 놀다가 왔다. 입덧이 심한 며느리에게 맛난 집밥도 만들어 먹이고 싶었다. 1주일을 머물다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딸에게 전화하니 “엄마, 그동안 걱정할까 봐 말씀 안 드렸는데 하늘이가 많이 아파요. 바로 병원 데려가야 해요.”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만 다녀오면 금세 좋아질 줄 알았다. 걸핏하면 감기가 들어 눈 주위가 붉게 충혈되고 퉁퉁 부어 있는 큰딸의 고양이에 비해 하늘이는 씩씩했다. 몸무게 두 배나 되는 미떼가 하늘이만 보면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슬슬 보는 것도 여전했다. 건식 사료만 먹고 습식은 먹지 않아서 보통의 고양이에 비해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게 말랐지만 움직이는 건 날랬고, 까칠한 성깔도 여전했기에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검은 털에 눈동자만 노란색이라 이름 붙여진 우리 집 고양이 ‘밤하늘’이는 아무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다. 명절마다 집에 오는 제부가 머리 한 번 쓰다듬으려고 아무리 불러도 아는 체조차 하지 않는다. 강제로 머리에 손을 댔다가는 여지없이 손톱을 세우고 하악질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다정하게 인사하는 미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도 우리 고양이니까, 한 번 우리와 연을 맺었으니까 사랑스러웠다. 하늘이는 그렇게 우리 집에 뿌리를 내렸고 급기야 작년에는 두 마리 고양이 이야기가 담긴 두 번째 수필집 <<밤하늘의 천국>>도 펴냈다.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익숙하지 않은 병원 냄새가 두려웠는지 의사 앞에서 오줌을 쌌다. 재작년에는 치료를 끝내고 의사와 상담 중인 내 손을 할퀴었다. 엉덩이에 주사 한 방 맞은 게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은 소리로 싫다는 의사 표현은 했지만 뛰어오르지도, 사납게 할퀴지도 못했다. 피검사 결과는 ‘황달’이란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노화라고 의사는 말했다. 상심하는 우리 부부에게 자신의 고양이도 10년 만에 보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지역에는 24시간 돌봐 주는 데는 없다. 광주의 큰 병원에 가서 2주쯤 입원할 수는 있으나 완전히 낫는다는 보장은 없다며 선택은 보호자의 몫이라고 했다. 눈은 물론, 이마, 피부까지 노랗게 물들었는데 보호자가 몰랐다며 은근히 질책하는 눈초리였다. 첫날은 약만 지어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입원하여 수액을 맞히고, 퇴근 무렵에 집으로 데려오는 걸 1주일에 한 번씩 이어 왔다. 병원에 다녀온 날은 조금 생기가 도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사료에는 입을 대지 않았다. 그 사이 몸무게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반으로 줄었다. 등을 쓰다듬으면 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살이 빠졌다. 억지로 입을 벌려 약을 먹일 때면 입안까지 노랗게 변한 게 보였다. 녀석은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구석에서, 웅크리고 잤다. 아침에 눈을 떠서 행여 죽어 있는 녀석을 발견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지 축 늘어져 있는 녀석을 보는 게 힘들었다.
하늘이는 우리와 10년을 살았다. 아들이 장기 해외여행을 가면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우리 집에 맡기고 간 것이 시작이었다. 이리 쉽게, 불과 며칠 사이에 생사를 오르내리는 걸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고양이와 인간의 수명이 다르기에 우리보다 먼저 갈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는 아니었다.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병원을 바꾸었다. 젊은 의사는 냉정하게 말했다. 수액도 큰 도움은 안 된다. 병원에서는 해줄 게 없다. 이대로 사료를 먹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돌아가겠냐며 수액이라도 맞혀 달라고 사정하여 반나절 입원했다 데려온 길이었다. 발에 감긴 노란 붕대는 이전 병원에서처럼 다음 번 수액을 쉽게 맞히려고 감아 둔 것인 줄로 알았던 게 잘못이었다. 안 그래도 기운 없는 녀석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긴 게 너무 미안했다.
지난 주말에는 아들이 다녀갔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아들의 정성이 고마우면서도 서글펐다. 이별은 우리 코앞까지 왔다. 고양이는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하다. 에이아이엠(AIM)이라는 ‘청소부 단백질’이 고양이 몸속에도 있는데 인간과 달리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 노폐물이 지속적으로 쌓여 대부분의 고양이는 ‘만성 신장 질환’으로 죽는다. 그러니 사람이 먹고 남긴 짜고 맵고 비위생적인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길고양이는 수명이 2~3년에 불과하다.
최근에 일본인 과학자가 그 수명을 30년으로 연장할 수 있는 주사를 개발했다. 도쿄대학교 미야자키 도루(Toru Miyazaki) 교수팀은 코로나 당시 지원금이 끊기면서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전 세계 반려묘 집사들이 기부금을 후원하여 연구가 이어졌고 마침내 올해 봄에 신장이 망가진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임상 실험에도 성공했다. 내년 봄에 상용화를 목표로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게 며칠 전이었다.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집사는커녕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내가 10년간이나 고양이와 가족으로 살았다. 그토록 습식 사료 먹는 걸 싫어했는데, 이제 하늘이는 강제 급식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낙엽처럼 말라가는 하늘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택한 방법이다. 내가 하늘이를 담요에 싸서 안으면, 큰딸이 입을 벌려 약과 주사기에 담긴 습식 사료를 먹인다. 먹지 않으려고 도리도리하는 바람에 비린내나는 사료가 녀석의 얼굴은 물론 내 옷과 녀석을 싸고 있는 담요에도 사정없이 튄다. “먹어야 해, 그래야 살아. 조금만 더 힘을 내.” 아이처럼 어르고 달랜다. 아마도 미야자키 팀의 수혜를 하늘이는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하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첫댓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요.
반려견을 키우면서 문득 문득 이녀석이 나보다 먼저 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너무 정이 주지 말아야지라며 마음의 끈을 조여 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은 반려인이며 누구나 알 것입니다
하늘이가 빨리 회복되어 주인이 잘 돌보지 못해 보냈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해주길 빌어봅니다.
그리고 두번째 수필집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구매할 수 있을까요?
하하. 수필집이 궁금하군요.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면 된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빠르고 늦고의 차이가 있을 뿐, 끝이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 걱정하여 오늘을 사는 일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요.
조금전 남편이 하늘이가 추르를 자력으로 90% 먹었다는 소식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네요. 하늘이를 편하게 보내 주는 게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걸까 고민은 되지만, 그래도 저는 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