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智)+비(悲), 통찰과 사랑
24. 붓다 수행법의 요체
‘자애’는 나와 남을 보호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강소연
사마타 수행[정定]의 요지는 ‘집중의 유지’이고, 위빠사나 수행[혜慧]의 요지는 ‘알아차림의 유지’이다. ‘정’을 통해 고요함을 획득하고, ‘혜’를 통해 대상을 꿰뚫는다. 계속 움직이는 총부리를 고정시키고[정] 총알을 발사해[혜], 과녁(대상)을 정확히 박살 낸다.
‘하나하나 나누어’ 통찰하기
사마타 수행을 통해 ‘나’로부터의 ‘덩어리’째 분리를 체험할 수 있다면, 위빠사나 수행은 일상생활 중에 ‘나’라는 착각을 상속시키는 ‘요소요소들’로부터의 분리다. 매 순간 ‘나’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요소들의 작용’으로부터 그것을 하나하나 떼어 내는 작업이다. 그 방법에 대해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불타오름경〉, 〈짓눌림경〉, 〈아나타삔디까경〉 등에서 같은 말씀을 누차 반복하신다.
“비구들이여, 눈[안眼]이 불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빛깔과 형상[색色]이 불타고 있다. 눈의 알음알이[안식眼識]가 불타고 있다. 눈과 대상의 접촉[촉觸]이 불타고 있다. 눈과 대상의 접촉에서 생기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들[수受]이 불타고 있다.(〈불타오름경〉 중에서)” 귀, 코, 혀, 몸, 마노[의意]에 대해서도 각기 같은 문맥의 내용이 적용된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 불타오르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며 탐·진·치의 갈애와 집착을 장작 삼아, 이러한 상속이 이어짐을 말하고 있다. 즉,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라고 착각한 ‘나’의 실체와 작용을 ‘하나하나 나누어서 제대로 보라’고 안내하신다.
〈짓눌림경〉에도 눈·귀·코·혀·몸·마노와 그것이 만드는 조건에 중생은 항상 짓눌려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마노[의]는 짓눌려 있다. (마노의 대상인) 법은 짓눌려 있다. 마노의 알음알이[의식]는 짓눌려 있다. 마노의 감각 접촉[촉]은 짓눌려 있다. 마노의 감각 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수]은 짓눌려 있다.” 현상이 조건 지어져서 타오를 때마다 알아차림을 통해 그것으로부터 분리돼 해탈을 맛보라는 말씀이시다. 〈아나타삔디까경〉에는 사대(四大)가 흩어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임종 직전의 아나타삔디까(급고독) 장자에게 “6근·6경·6촉·6식·6느낌·6계·6처 등에 취착하지 않으리라”라는 가르침으로 그를 평온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말씀이 적혀 있다. 날카로운 반야[혜]의 힘을 일으켜 반응하는 대상을 하나하나 분해해 통찰한다. 그러면 매 단계마다 들러붙는 취착이 소멸돼 더 이상 업력이 진행되지 않고 멈추게 된다. 이렇게 보지 않는 한 부지불식간에 전개돼 버리는 무명과 고통의 업력을 이길 수는 없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자애의 힘
“우리는 항상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와 같다”라고 틱낫한 스님은 말씀하신 바 있다. 우리는 평생을 (외부로부터의) 사랑과 관심과 인정에 허덕인다. 하지만 수행 중에 만나는 빛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을 말해 준다. 어떤 판단과 분별도 없이 그저 비추기만 하는 지고지순한 빛!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저열한 사랑과 관심에의 허덕임에서 놓여난다. 수행을 하든 하지 않든, 깨어 있든 잠자고 있든, 몸이 있든 없든 간에, 그 빛은 항상 그렇게 세상 만물을 (일체의 반응 없이) 여여(如如)하게 비추고 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세상(나와 남)에 대한 혐오와 악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애’를 강조하셨다. 〈자애경〉의 핵심은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이다. 이에 “자비의 염을 놓치지 않도록 전심전력하라”라고 한다. 물론 ‘모든 중생’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이 포함된다.
“그대들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중략〉 네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물러라.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물러라”라고 설하시고, 이것이 “깨달음의 요소”가 된다고 하셨다. 즉,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자비희사慈悲喜捨]’과 함께하는 ‘알아차림’으로 정진하라고 하신다. 2026년 새해에는 자비희사와 더불어 쇠심줄 같은 알아차림의 확립으로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본 연재를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