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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문복산 산행은?~
때 : 2026년 7월 1일 수 정다운
곳 : 청도 문복산(1014,7m)
날씨 : 비내림
산행길 : 삼계리~계살피계곡~비가 많이 내려서 원점회귀
산행거리 : 약 5km
산행시간 : 3시간 40분
am 10:33
마산역 8시 출발 밀양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A팀을 내려놓고 B, C팀은 이곳 계살피계곡 입구 삼계리에 10시 33분에 도착을 한다. 오늘은 올 들어 늦은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고 비가 많이 쏟아진다. 산행을 하다가 비가 내리면 어쩔 수 없이 산행을 할 수밖에 없는데 집에서부터 비가 주력주럭 내리는데 이런 날은 사진 찍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산행을 취소를 한다. 슬쩍 회장님한테 오늘 산행을 하겠나 하고 물어보자마자 형님아 나온나 그 가서 함께 놀자 한다. 혼자서 투들 거리면서 나왔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은 산행을 처음 겪는 날이라서 난감하네 정말 난감해 비가 그치기를 일말의 희망을 가지면서 차창밖을 내다보지만 무심한 비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다.
영상은 1080으로 감상요망
음악은 아릴랜드출신 Enya(엔야)가 부른 평화, 치유, 그리고 고요한 희망의 세계로 가자는
Healing Comes Like Rain
문복산 정상으로 가는 산행지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가오는 속에서 제일 일찍 내 눈으로 들어온 붉은 원추리꽃 이맘때 만나는 꽃이다.
마을 입구가 너무나 지저분 하다 이 동네에는 사람이 살지 않나 생각할 정도다.
1) 연원
‘화랑오계(花郎五戒)’라고도 한다.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사량부(沙梁部)에 사는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에게 가르친 것에서 비롯되었다. 600년(진평왕 22) 원광이 중국 수나라에서 돌아와 운문산(雲門山) 가실사(嘉瑟寺)에 있을 때 두 사람이 평생의 경구로 삼을 가르침을 청하자,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교우이신(交友以信)·임전무퇴(臨戰無退)·살생유택(殺生有擇) 등 다섯 가지 계율을 가르쳤다. 그 뒤 두 사람은 이를 잘 지켜서 602년 백제와의 아막성(阿莫城: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 전투에서 화랑의 일원으로 싸우다 순국하였다.
2) 사상적 배경
이 계율은 특히 화랑들에 의하여 잘 지켜졌고 화랑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오계가 화랑들만의 것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원광이 가르쳤다고 해서 그의 독창적인 견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는 그 당시 신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시대정신이 당대의 석학인 원광의 탁월한 식견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정리·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신라인들의 이러한 이념의 연원을 밝혀주는 것으로는 『삼국사기』 권4 진흥왕조에 실린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郎碑序)가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었으니 풍류(風流)라 이른다. 그 교(敎)의 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화랑도는 원광이 세속오계를 가르치기 24년 전인 576년(진지왕 1)에 마련되었는데 이에 앞서 이미 ‘풍류’라는 도가 있었고, 당시까지 비록 유교·불교·도교 등 세 가지 사상이 전래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신라사회에는 이들 사상을 포함하였다고 할 만한 고유사상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기록상으로도 유교의 경우는 682년(신문왕 2)에야 국학(國學)이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불교는 527년(법흥왕 14)에 공인되어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며, 도교 또한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세속오계의 사상적 연원이 된 신라의 고유사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그 당시까지 신라사회를 지배하며 발전해 온 사상적 특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라는 지증왕대에 이르러 비로소 정식으로 국호를 제정하고 왕권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때까지 신라는 신의 뜻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체제의 철저한 신권국가였다. 개국설화에서 나타나듯 신라는 시조왕 박혁거세 탄생의 신이성(神異性)을 믿고 그를 임금으로 봉대(奉戴)함으로써 신의를 따르려 하였으며, 이러한 사상은 그 뒤 왕위승계에 있어 세습제를 따르지 않고 박·석·김 3성 중에서 인물 본위로 왕위를 승계하도록 한 사실에서도 분명히 이어진다. 당시 신라인들이 뚜렷하게 간직하였던 이러한 사상을 후세에서는 ‘고신도사상(古神道思想)’이라고 부르거니와, 이 사상은 멀리 고조선 초기의 단군신화에서 비롯되었으며 당시 동북아시아 일대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던 무속신앙의 형태를 갖추면서 이어져 왔다.
신라의 경우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차차웅조(南解次次雄條)에 임금 자신이 무속신앙의 중심인물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더욱 분명하다. 이렇듯 무속신앙의 형태를 갖추며 이어진 고신도사상의 특징과 사회적 기능은 어떠한 것인가? 이러한 사상적 바탕과 신앙적 형태는 상보작용(相補作用)을 하면서 그 특징과 사회적 기능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낸다. 그 특징으로는 하늘의 뜻[神意]을 받드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개개인의 무구청순(無垢淸純)한 신앙적 심성과, 어떠한 일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간주되던 하늘과 조령(祖靈)을 모시는 제의(祭儀)에 대한 지극한 정성(精誠), 그리고 이러한 청순한 심성과 지극한 정성을 통해 이룩된 천신(天神)과 무(巫)와 사람[人]의 종적 관계가 동족공동체라는 횡적 관계로 파급되어 조성된 공고한 공동체 의식 등을 들 수 있다.
3) 사회적 기능
그리고 이러한 특징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사회적 기능으로는 ① 고결한 정의감과 신앙적이기까지 한 철저한 의리사상, ② 천민(天民) 또는 천손(天孫)이라는 긍지 아래 경천보본(敬天報本)하고 숭조여천(崇祖如天)하였던 투철한 경천숭조사상, ③ 멸사봉공의 희생정신이 크게 진작된 가운데 군신(君臣)이 더불어 보국안민하고자 하는 동족공동체 의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사실들은 구체적으로 정치제도 면에까지 작용하여 협동에서의 조화와 개인 심성에서의 순백(純白)을 바탕으로 이룩된 화백제도(和白制度)를 창출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신라인들의 사상적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세속오계의 바탕이 되었다 하겠다.
4) 세부 내용
세속오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군이충’과 ‘사친이효’는 유교적인 충·효를 각각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든가 ‘충신출어효자지문(忠臣出於孝子之門)’이라고 한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경우 충·효는 그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여기서 유교의 일반적인 사상과 달리 효보다 충을 앞세웠던 당시 신라인들의 강렬한 공동체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김유신(金庾信)과 그의 아들 원술(元述)과의 사이에 얽힌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교우이신’ 역시 평범한 차원에서 유교적인 신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나타난 내용이나 사다함(斯多含)의 예에서 보듯이, 약사우(約死友)하고 이것을 충실히 지켜낼 수 있는, 유교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종의 신앙적인 차원의 것이었다. ‘임전무퇴’는 강렬한 공동체 의식과 멸사봉공하자는 숭고한 희생 정신의 표현인데, 관창(官昌)이나 김흠운(金欽運)의 경우가 이에 대한 좋은 예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살생유택’은 불교적이라고 하겠으나, 불교에서의 ‘불살생(不殺生)’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실제적인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세속오계는 고신도사상적 무속신앙을 통하여 신과 인간이 합일할 수 있는 차원에서 이룩된 순수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공동체의식과 철저한 의리정신, 숭고한 희생정신, 그리고 선량한 인간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신라인들의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랑도사상의 구체적 실천 덕목을 약여(躍如)하게 부각시키고 이념적 체계를 가다듬게 함으로써 화랑도 발전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이리하여 직접적으로는 신라로 하여금 삼국통일의 위업을 성취하고 세계사상 유례가 드문 천년왕조의 영광을 누리게 하였고, 간접적으로는 후대에 와서 민족사의 흐름 속에서 거세게 밀어닥친 외래문화의 물결 속에서도 우리 민족 특유의 순수선량하고도 의연한 민족성을 이어오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리고 민족적 전통사상의 도도한 흐름을 타고 고려왕조의 처절한 항몽정신(抗蒙精神)과 조선왕조의 의리사상, 한말의 의병정신, 그리고 일제하에서의 독립정신 등으로 이어지는 불굴의 민족정기의 맥락은 모두 이 세속오계의 정신을 통해 튼튼하게 다져진 것이라 하겠다.
쑥갓꽃이 이렇게 예쁜모습은 처음으로 본다. 비에 젖어서 영양을 충분이 공급받아서 샛노랗게 피어있다.
가는 길에 피여있는 꽃들을 보노라니 힘이난다.
능소화 꽃 장원급제를 하여 귀향을 할때 머리에 장식으로 사용한 꽃이다. 이 꽃은 고택의 담장에 걸쳐 저서 핀 모습은 매우 아름답다.
지금이 코스모스가 피는 시기인가~?
빛바랜 장미가 비까지 맞고 있으니 아름다운 장미의 이름이 무색하다. 우리도 늙어가면 저런 모습으로 되겠지~ㅎ
자주루드베키아 꽃 이름이 좀 길다 외국에서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보기가 드문 노랑 장미꽃 모두들 비를 흠뻑 맞았지만 식물은 물을 많이 먹어야 싱싱하다.
집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은 예쁜 굴뚝이다. 이 정도면 덕수궁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굴뚝이다.
이제 인가를 지나 게살피계곡으로 집 입을 하였다.
비옷도, 우산도 없이 게살피계곡의 비를 다 맞아가면서 문복산 정상을 향해 오르시는 우리의 캪틴 솔뫼 회장님 그 노무 감투가 회장님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어릴 때 비 맞고 다니면 울 엄마가 청승맞게 비를 맞고 다니니 하셨는데 오늘 그 생각이 떠 오른다. 산이 무엇인지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올라가다가 만난 쌍폭포 삼각대를 설치하고 보니 위에서 팔을 벌리며 한 장을 부탁한다. 나는 비 때문에 인증 사진도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어젯밤에 남쪽에는 비가 많이 왔는데 이곳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지 폭포라도 찍어볼까 하면서 왔는데 수량이 적어서 좀 그렇다.
용감한 미호언니 미끄러운 바위 조심조심 이렇게 염려를 하면서 갈 데까지 가 보기로 한다.
밤새 비버가 쌓아 놓은 둑이다.
가슬갑사가 있는 자리라는 표지석~
am 11:57
다른 데는 다 게살피계곡이라고 나오는데 이곳 이정표에는 개살피계곡 삼거리로 나온다. 어느 것이 맞은 걸까! 오른쪽으로 오르면 게살피계곡으로 문복산으로 오르고 좌측으로는 마당바위 삼거리를 지나가면서 문복산으로 오르는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지 동전을 던저서 정하였다. 하늘금님이 당첨되어서 왼쪽으로 오르기로 한다.
삼계리 입구에서 2,1km 지점을 1시간 23분 걸려서 우리는 올라오게 되었다. 문복산 정상까지는 이제 남은 거리는 2km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우산을 들고 가는 나도 산행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한다.
산행길이 분명치 않은 곳도 있고 매끄러운 바위돌이 걷기에도 매우 위험하다.
이어지는 산행길 더 많이 비가 내린다. 여성 언니들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계곡 건너기가 힘들어진다고 원점회귀를 원한다. 나는 얼씨구나 하고 문복산 정상의 꿈을 버리고 미련 없이 하산을 하기로 한다.
pm 12:35
비에 흠뻑 젖은 회장님이 앞장을 서고 하산 명령이 떨어진다. 얼씨구나 하고 나도 따라 동참을 한다. 하늘금님과 여성 한분은 문복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고 회장님과 나 미호언니 그리고 또 언니 이렇게 4명은 룰루라라를 부르면서 그동안 힘들게 올라왔는데 가는 길은 내리막 길이라서 얼마나 좋겠는가~ㅎㅎㅎ
돌사이에서 피는 돈나물꽃 반짝 빛나는 별 같다.
pm 12:52
아까 올라갈 때 잠시 머물고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던 삼거리에 도착을 하여 가방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기에는 비 때문에 그렇고
가지고 온 광일로 목을 축이다.
그리고 다시 삼계리로 하산을 한다.
모두 보내고 나 홀로 폭포를 찍어 내려가기로 한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우산으로 보호하고 쌍폭포를 찍는다.
또 한개의 쌍폭을 만난다.
그리고 올라갈 때 사진을 찍고 올라간 쌍폭을 찍으러 계곡 밑으로 내려간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본 쌍폭포가 3군데를 만난다.
이 것도 행운이다.
이것으로 사진을 더 남기지 않고 내려간다.
pm 14:34
오늘 산행 마감 시간은 오후 4시 30분까지 인데 2어시간 여유가 남았다.
삼계리 동네를 한바뀌 돌아본다. 어느 집 화단에 참나리가 활짤 피어 있다. 방축도에 가면 나리가 많이 피는데 우리가 가는 날에도 나리가 있으면 좋으련만 기대되네 기대되어~!
pm 14:52
a코스를 타신 분들도 일찍 내려와서 합세를 하여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가을의 수확을 기다리며 석류가 커가면서 읶어 가는 모습이다.
버스뒤편을 방패 삼아서 커~어 소주 한 잔 잘 넘어간다. 이렇게 산행을 마무리하고 뒤처진 분들을 기다려서 다음 목적지 김해 쪽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김해 쪽으로 오니 큰비는 그치고 가랑비만 약간 내릴 뿐이다. 비에 젖은 도라지꽃의 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오늘의 포인트~
꽃누리장꽃~!
pm 17:26
청도군 운문면 삼계리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 못 걸려서 김해 묵방대나무집에 도착을 하여 저녁상을 받는다. 이번이 두 번째 부산 백양산 4월 22일 애진봉 산행을 하고 이곳에 온 것 같다.
우중 산행은 누구나 싫은 산행일 것이다. 오후 들어 큰비는 그치고 가랑비가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축축한 기분을 이어왔다. 비가 내리는 날 집에서 있을 때는 보일러실 있는 옆방에 컴퓨터를 켜고 사진 작업을 할 때 보일러 연통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강, 약을 조절하면서 떨어지니 참 듣기가 좋다. 그리고 추억을 불러 세운다. 비 오는날에는 먼저 생각나는 적을 붇여서 조용한 음악을 켜놓고 먹는 기분은 참 좋다. 나는 비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럴때 낮잠도 참 꿀맛 같이 엄마의 품안에 있는 것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산행길에서 만난 비는 마음과 몸이 움추려들고 카메라 물들어갈까 가방에 물들어 갈까 옷젖을까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늘도 그렇게 마음과 몸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아 장마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 삼주째 흐리고 비오는 수요일이었다. 다음 주 수요일에도 비가 온다고 하니 많이 많이 부담스럽다. 오늘은 사진도 몇 장 되지 않은데 횡설수설 사진 이야기가 길어졌다. 다음 주는 화창한 날을 고대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평안을 부탁드리면서 "Every Body Se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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