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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Zoom meeting
일시: 2021년 5월 7일(금) 오후 7시 30분
사회: 허샘
참석: 나샘, 손샘, 천샘, 허샘 (가나다順)
허: 책이 두꺼워서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각자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말해보자. 나부터 시작하겠다. 지난번 읽었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과 이번의 <황금가지>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0년이 순식간이면 10년도, 1000년도, 예수탄생 2천년도 어마어마하지만 짧은 시간일 수 있다. 기원전 유물이 발굴되는 걸 보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순식간인 것 같고, 인간 의식의 흐름이 어땠었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겠더라. 주술, 종교, 과학으로 연결된다는 설명도 재밌었다. 흔히, 동·서양의 차이를 말한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평화로운 느낌. 제사도 추수감사절같은 평화로운 문화가 있다. (서양) 유목민은 희생제물 등 피를 흘리는 제사를 지내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되는 이야기들을 보면 동양도 못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을 강인한 대상으로 칭한다. 신 앞에 속죄양을 지정하여 내 대신 피를 흘리게 하는 인간본성의 잔인함을 느꼈다. 이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저자는 과학 또한 주술과 종교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던데, 그렇다면 과학 또한 완전히 믿을만한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토론해보면 좋겠다.
손: 저자가 이 책을 왜 썼을까 생각해봤다. 기독교를 까려고?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우리 모두는 미개인의 자손으로 피부색이 다르든, 종교가 다르든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화인류학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저자의 수많은 예시들과 글쓰는 방식을 보면서 일종의 서지연구를 통해 서로 다른 부족이나 문화들을 비교했던데 이것이 인류학 연구의 한 방법인 것 같더라. 조선의 사례도 몇몇 등장하는데 한국인으로서 바로 수긍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동양판 <황금가지>를 읽고 싶다.
허: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저자는 전반적으로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 저자가 이 책을 탈고하면서 느꼈을 감정을 같이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니 어떤 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황금가지>에서 주술에 매달리고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슬펐다. 마지막까지 머리 속에 남는 단어는 생존(survival)이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나무껍질 같은 작은것도 그렇게 섬겨야했을까? 그리고, 내 DNA도 선조들로부터 왔으니 이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너도 내가 전해준 DNA를 전해줄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이 이성을 압도할 정도로 얼마나 강한 것인가? 이렇게까지 생존하고 후손을 남기려는 본성 가운데 인간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우주가 몇 바퀴를 돌았을까? 내가 고귀한 존재구나. 사람들의 사상, 세계관, 종교관, 철학 모든 것이 맞물려서 나한테까지 왔구나.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서모임이 왜 이렇게나 책을 잘 선정했을까? <일리아스>, <오디세이>, <황금가지>까지 재밌게 읽었다. 이제 <변신 이야기>를 읽어야 할 차례. 모임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이 책을 혼자서 어떻게 읽겠나? 그래서 이 모임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를 깠을까?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이 그 시대의 문화, 관습, 전통 등 모든 것이 연계되어 실제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고 쓴 부분이 많다. 프레이저는 자신의 생각(논거)을 끄집어내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과장되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읽고 있지? 그런데 왜 재밌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4권의 설화 부분은 특히 재밌었고, 슬펐던 부분도 있었다. 읽으면서 내가 미개인이구나! 내가 행했던 것들이 미개인들의 행동을 그대로, 또는 의미를 모르면서 더 미개하게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내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주술적이고 미신적인 것 예를 들면, '고시레'하며 음식을 던지는 것. 너무나 비슷한 것들이 세상에 많구나. 사람들은 다 비슷한가? 생각했다. 내용 중에 초경에 관한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여자 아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정말 미개하다는 생각,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최근에 초경하는 아이들을 격리시켰는데 뱀한테 물려죽었다는 사건이 네팔에 있었다.
나: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기사를 봐도 그냥 그랬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저건 미개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더라.
토론주제 1.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나? 그렇다면 왜 비판적으로 썼을까? 성경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는가?
천: 속죄양 부분에 대해 논해보자. 양을 죽이면서 그것이 왕이 부활을 의미하는 부분이 있다. 사제를 죽이면 죽인 사람이 사제직을 이어받는다는 식으로 비슷한 패턴의 사례가 계속 나왔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속죄양이 아니라 어린양이라 말하는데, 본인이 이 땅의 왕으로 오는 것은 절대 거부했다. 자신은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서의 속죄양은 영혼의 구세주이지 자신의 명성이나 생명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주술이 기독교 탄생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나 천주교도 주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술을 행하는 것 특히,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가련히 여겼다. 그런 백성들은 씨를 말리고 벌을 내리겠다면서 싫어했다. 성경의 내용에 분명히 속죄양이 있고 어린양을 제물로 제사지내는 장면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맥락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허: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보이더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건데, 이들 셋을 한묶음으로해서 일종의 유일신사상을 비판한다는 느낌이었다.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구약성경부터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이라는 것이 그 많고 잡다한 고전설화들의 집합체라는 생각이 들어 기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아브라함 같은 경우도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에 든 것이긴 한데, 아브라함이 바치는 순간 (상황이) 해소되지만 바치지 않았나? 희생제물에 대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꼭 피를 봐야만 했나? <일리아스>에서도 그렇지 않나? 피를 흘려야 신이 흡족히 받아들인다고.
천: 더 깊이 가면 선악과까지 내려가는데,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 중에서 하나로 시험을 한 것이다. 먹으면 죽으리라는 하나남의 말씀을 듣고도 아담과 이브가 어겼으니 그 고통을 맛보게 해야 했던 것이다. 카인과 아벨의 경우도 농작물과 양의 피를 각기 제물로 바친 사례이다. (하나님이)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피라는 약속을 했는데 인간이 그것을 어겼다는 부분이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문제는 항상 논쟁거리가 된다. 특히, 성경이나 기독교를 깊이 연구하지 않은 경우라면 이해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허: 신이 왜 피의 제물을 바라느냐는 궁금함이 계속 든다.
천: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가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대속(속죄)하러 왔다고 한다. 그러려면 죽음을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것이다.
허: 천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있다(존재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니까 그런 것이다'라는 것이고 무신론자나 기독교에 반감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다고 전제하지 않으므로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사람이 들리는대로 쓴 것이고 신약성경은 각자 쓴 사람에 따라 같은 사건도 약간씩 다르게 서술된다. 구약은 읽어보면 마치 황금가지 복사판같다.
나: 성경이 궁금해진다.
허: <황금가지>의 내용을 다른 사회학자나 인류학자가 많이 가져다 쓴 것 같다. <축의 시대>의 한 챕터가 여기의 어떤 부분을 벌려놓은 형국이었다. 왕이 죽으면 그 나라 귀족들의 잘생긴 아들들을 수십명 선발해 죽여서 목마를 만들어 말위에 세운 뒤 왕의 무덤 주위에 두었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그대로 나오더라. 이 책이 무수한 책들의 원형이고, 그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간이 무서운 것 같다.
토론주제 2. 내 안의 미개인, 내 속의 주술에 대해 얘기해보자.
허: 나는 뭔가를 정해놓고 틀에 따라 그대로 해야하는 성향이 있다. 내가 나약하니까 이 선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나쁜 일을 막아줄거란 예감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나: 나는 신비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미개하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어떤 행위를 신비로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미개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산신각에 가는 것도 그렇다. 가면 마음이 편하다. 산신각이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게 안될 것 같다.
허: 산에 가다가 돌무더기 있으면 속으로 뭘 빌고 작은 돌을 꼭대기에 얹는다. 왜 그럴까? 교회다닐 때도 그랬다. 비는 대상만 있으면 습관적으로 빌게 되더라. 왜 그럴까?
나: 거기에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의미부여를 자체적으로 했다.
허: 그저께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도 속으로 얘기하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것이 낮은 자세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인간의 나약함, 생명의 연장을 위한 방편이다.
천: 주술이나 미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본다. 시대가 바뀌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점점 밝혀지는 사실들이 많으므로 과거의 행위들이 미개하다고 여기게 된다. 엄마는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덕분에 불교와 기독교, 두 종교를 같이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최소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준은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교회 잘 다니다가 다운되면 교회 안가고 싶을 때, 핑계대고 싶을 때 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교회 다니는 중에도 드는걸 보면 내 종교도 다른 종교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주술적인 하나님을 원했던 것이었다. 나를, 내 자손을 잘되게 해주십사는 그 욕망이 의존심으로 노출되더라. 그래서 좀 실망스러웠고 지금도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신을 다독여서, 빌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자는 생각은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토론주제 3. 주술→종교→과학의 순으로 인간사유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얘기해보자.
허: 주술에서 종교로 넘어가는 과정은 이해가 된다. 경전도 만들어지고 시스템도 굳혀지고, 유일신 사상도 생기고. 그런데 종교에서 과학으로 넘어간다는 부분은 어떤가? 인간 이성이 발달하고 뇌과학, 우주과학 등 과학이 발전하여 이성이 미신을 뛰어넘는 시기라면 종교는 그냥 하나의 문화로 남을 것인가? 저자의 관점이 신기했다. 첫째, 과학은 종교의 연장선이라는 (저자의) 생각. 둘째, 과학이 세월이 지나서 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만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삼신당에 가서 비는 주술처럼 과학을 바라보게 될 것인가? 캐치프레이즈처럼 주술→종교→과학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천: 종교가 주술을 근절할 수 없다고 했다.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종교를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 근절이 아니라 2000년 더 살았어도 그 전의 미개한 부분이 있는것처럼, 내 속에 미개한 것이 있는 것은 근절이 안된다. 무지몽매한 세계에서 여자들을 마녀사냥으로 죽였던 것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인거라면 지금은 자연으로부터의 위험이 없는데도 그런 행위가 계속된다는 것이 말이 안되지 않나? 근절은 불가능하다. 인간 이성의 발달이 미신과 주술의 세계를 몰아내고 종교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처럼 과학 또한 그렇게 종교의 자리를 몰아내는게 아닌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학 또한 또다른 미신적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양자역학을 보라. 과학적 사유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방사능에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이라면 반박불가라고 생각한다. 화장품 가게에 가면 판매자가 의사가운을 입고 있는데 그건 과학의 힘으로 물건을 파는 것일 뿐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하나의 종교처럼 되어있는 것 같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하면 사실이라는 기반을 깔고 말하는 것이다. 종교의 연장선이 과학이라면 과학 또한 종교처럼 될 것이다. 우리에게 과학은 신성불가침. 우리는 왜 정치공학이란 말을 쓰는가?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정치에 공학이란 말을 붙이는가? 정치는 예측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싶다는 인간 욕망의 결과물이다. 과학을 너무 신뢰하는게 아닌지? 과학도 가설을 먼저 세우고 무수한 실험에 따른 결과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과연 과학이란 믿을만한 것인가?
나: 주술→종교→과학으로 가는 것은 사고가 깨어나고 확장되면서 뭔가 발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술로 행했던 것 중에서도 나중에 과학으로 밝혀진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100프로 허무맹랑한 주술이 아니고 어떤 부분에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천: 이 책에서 겨우살이가 중요한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찾아보니 겨우살이에 항암효과가 있단다. 겨우살이는 진짜 높은 곳에 있는데 꽃이 너무 예쁘다. 참나무에 있는 겨우살이가 최상(의 효과가 있는데) 그걸 그 시대에 어떻게 알았을까? 너무 신기했다.
허: 겨우살이가 식물이지만 뿌리가 없다. 땅과 천상의 중간에 있다는 이유로 신비롭게 봤다고 한다.
천: 나중에 크면 힘이 좋아서 참나무를 꺾기도 한다. 신기했다.
나: 주술→종교→과학으로 아무리 발전해도 종교에 대한 부분은 생로병사를 가진 인간인 이상 끈임없이 돌아가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허: 최근에 태국의 스님이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친 이야기가 있었다. 필리핀에서도 종교행사에서 채찍으로 자기 몸을 때리고 피흘리는 사례가 있다는데, 인간이 나약하다는 생각이다. 초경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아내가 생리를 할때는 불결하다고 배를 못 타게 하는데 이런 사례는 많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못하다고 생각하니까 여자 몸에서 나오는 것을 불결하다고 하는 것 같다.
나: 기분 나쁘다. 하지날, 할로윈데이 하는 일들은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 하지가 지나면 해가 짧아지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대해 인간들이 뭔가 인지한게 아니었나싶다.
허: 우리나라 농경에서 따르는 24절기를 보면 분명하다. 절기의 흐름이 양력보다 더 정확하다.
허: 메인 주제에 대한 토론은 끝났다. 지엽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왕이 자신의 생명연장을 위해 아들을 죽이기도 하는 등 신이 잔인하다기 보다 (신의 마음도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인간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마야문명 등 부족신앙을 보면 인간제물을 바치는데 수십 명씩 바친다.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를 보면 그런 모습들이 그대로 나온다. 인간이 왜 이렇게 잔인한지?
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앞 부분을 읽고 있다. 그 책에서는 이타적이란 말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내 집단인지, 인류인지, 생물인지, 전 우주인지에 대한 고민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기적인 단위는 유전자라고 말하더라. 아마도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인간이 타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닐까?
나: 왕이면 권력을 막 휘두를 것 같은데. 비가 안내리면 아랫사람이 왕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가두는 것도 많다. 너무 잔인하게 오래 가둬둔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지금도 아프리카에 보면 여자 아이들 할례한다든지 해서 가두는 일들이 나온다.
나: 설화부분은 읽으면서 소설의 소재로 쓰면 좋을 것 같은 것들이 많더라.
허: 이 책이 방대하다. 많은 영화들이 여기서 이야기를 빌려갔구나 싶었다.
나: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모습들이 인간이 가진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큰 오래된 나무가 있다. 지나갈 때마다 절하고 지나간다.
허: 안동에 가면 큰 나무가 있는데, 소원을 써서 붙일 수 있다. 가족건강, 대학합격 같은 소원이 주로 많더라. 인간이 약하구나. 예전에 교회 목사님이 얘기했다. 굳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와 앉아계시는 분들 약하고, 아프로, 힘든 분들일거라고.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요일 날씨 좋은데 이렇게 나오지 않을거라했다. 내가 종교 안에서 위로받는데, 그것인 미약함의 발현인데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기복적인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뭔가 소망한다는 것이 나쁘지 않지 않나? 종교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과학도 로켓 하나 만드는 몇 조원의 돈을 차라리 지구에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쓰지 하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미지에 대한 관심이 이런 공포에서 발현한 것 같다.
나: 큰 나무에 인사하고 산신각에 절하는 것 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있을까? 비는 마음이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허: 빌어서 내 맘이 편하면 된 것 아닌가?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을 것 같다.
나: 나무, 정령, 불, 흙 이 책을 덮으면 이런 것들이 생각날 것 같다.
허: 상징체계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인간의 상상이란 한계가 있다. 보고, 들은 것에서 상상이 나오니까. 동종주술 같은 경우에도 송이버섯 먹으면 정력에 좋아 이런 것. 여전히 그렇다. 신의 형상이 뭐냐?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씀은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 "교회 종소리가 들려온다. ~ 아베 마리아"
허: 897페이지의 "모든 곳 모든 시기에 존재하는 인간욕망의 본질적 유사성과, 서로 다른 시대에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채택하는 수단의 폭넓은 차이성을 고려하더라도 ~ 사유의 운동경로는 대체로 주술에서 종교를 거쳐 과학에 이르는 과정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정리하는 구절이었다.
나: 이 책은 옥스포드판 번역이다. 다른 번역본이 또 있는걸까?
허: 잘 모르겠다.
천: 전문가들은 여러 판본 중에 두 개의 판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더라.
허: 마지막 표지에 적힌 소개문구가 인상깊었다. '근대적 감성의 초석을 마련한 신화학의 고전' 모든 신화들이 망라되어 있어서 드라마나 판타지 소설의 재료가 될 수 있겠다. '터부의 근원을 파헤치며 신앙의 원형을 밝혀낸 세기의 역작' 신앙의 원형을 밝히고 있어 정말 공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존재하는 주술을 갈망하는 미개함, 연약함은 어쩔 수 없어서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게 된다.
손: 여러 선생님들의 토론 내용을 듣다보니 중간에 종교가 불쑥 끼어든 느낌이 들었다.
나: 그러고보니 사유의 과정에 철학도 있었을텐데 왜 철학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을까?
허: 사실, 중세철학은 종교와 연결된다. 철학적 사유가 생기면서 그 갈래가 종교로 발전한 부분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책도 보면 그렇고,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등을 보면 모든 철학적 고민이 신에게로 귀의하는 인간사유의 발달과정이 있다.
천: 저자는 자연에 대한 이해를 종교와 과학으로 확대했다. 인간의 관점에서 탄생, 죽음 등이 다 망라되어 있다. 인간의 일생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보았고 그것에 대한 고민이 종교로 옮겨갔을 것이다.
허: 주술에서 종교로 가는 과정에서 인간사유의 발달과정에 철학이 있었던 것 같다.
나: 탈레스와 같은 초기의 철학자들이 자연철학자 아니었던가? 이후 아낙사고라스와 같은 철학자로 넘어가는 과정이 분명히 있었다.
나: 최근에 본 좋은 영화가 있는가?
허: <맨 프롬 어스> 추천한다. 어릴때부터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종교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포심, 경외감이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예수를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는, 철학적 고민이 많아서 좋았다. 다음에 읽을 <만들어진 신>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니까 한 번 보면 좋겠다.
나: <노매드랜드> 추천한다. 피아노 음악이 엄청 좋았다. 여운이 쩌는 영화. 그 여자의 삶의 모습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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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토론기록을 이제야 올리네요.ㅜㅜ
특히, 천선생님과 허선생님의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배경지식이 없어서 제대로 받아쓰질 못했습니다. 미흡한 부분이 많을거예요. 그러므로 한 번 읽어보시고 잘못된 부분이나 추가할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구구절절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토론할 때 기록하는것 못봤는데, 거의 토시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정리되어 있어서 깜놀..ㅎ
수고하셨습니다~
@카이저 소제 타이핑소리 못 들으셨나요? 다다다다닥!!!
@다니엘 줌토론에서 아이컨택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저 방대한 양을 다다다다닥 하고 있었다니 놀라움~
난 타이핑하면 자판 봐야되어 ㅋ
@카이저 소제 자 오늘부터 한메타자연습 시~작! ㅎㅎㅎ 요즘은 이 프로그램 안쓰겠죠? 대학시절 과방에 가면 애들이 전부 이거 연습하곤 했었는데요. 근데 이기적 유전자 정말 재밌네요. 토요일에 동대구역 알라딘중고서점 갔었는데 이 책은 없더라고요.
@다니엘 이기적유전자..오래전에 읽어서 밈 밖에 생각이 안나네.
어린나이에ㅋ 고민없이 읽어서 그런가 어렵고 이해가 잘 안됐던 기억도 나고..
다시 읽어보고 싶네.
아베체 도서로 추천하는 것도 고민^^
나의 대학시절에는 과방에서 말그대로 타닥타닥 <타자기>썼는데 ㅎㅎ
먹지 끼워서 경쾌하게 타닥타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