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근간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다.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한 것은 어느 한 권력기관도 국가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헌법은 권력자의 편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고 규범이다.
이번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는 바로 이 원칙에서 바라봐야 한다. 각자의 주장에 유리한 헌법 조항만 끌어와 자기 논리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맞춰 헌법을 달리 해석하거나, 필요에 따라 헌법기관의 권한을 축소·확대해서도 안 된다.
헌법 해석은 문언뿐 아니라 헌법이 지향하는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그리고 각 헌법기관의 독립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장은 제청권을, 국회는 동의권을, 대통령은 임명권을 갖는다. 이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다. 사법부와 입법부, 대통령에게 각각 다른 권한을 부여해 어느 한 기관이 대법관 인사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든 헌법적 견제장치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의 제청권까지 사실상 통제할 수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특히 대법관 임명권을 행정부 수반의 일반적인 인사권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인 동시에 국가원수다.
대법관 임명은 행정부 내부 공직자를 임명하는 것과 성격이 다르다.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의 최고 법관을 임명하는 헌법상 권한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은 오히려 다른 헌법기관의 독립성과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을 추천했지만, 최종 제청까지 약 7개월이 걸렸다.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의 최종 후보 조율이 장기간 이어졌고,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서면 제청에 이어 대통령실은 열흘 만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제청해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했다고 설명한다. 반면 헌법상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에게 있고,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현행법에는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할 경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명시적인 규정도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헌법적 논쟁이 시작된다. 대통령에게 최종 임명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임명권과 제청권은 다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지 여부와,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특정 방향으로 재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근거로 대법원장의 제청권까지 사실상 지휘할 수 있다고 한다면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별도의 제청권을 부여한 의미가 퇴색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번 재제청 요구가 선례로 굳어지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반려하고, 다시 제청하면 또 반려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제청될 때까지 대법원장이 움직이는 구조가 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대법원장이 제청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결과가 된다. 이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사법부 독립을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더구나 대법관 증원법에 따라 대법관 정원은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중 전체 26명의 대법관 가운데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대통령의 임기 동안 대법원 구성의 상당 부분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대법관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앞으로 수십 년간 사법부의 독립과 직결될 수 있다. 지금의 정권에 유리한가 불리한가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인가를 따져야 한다.
법치주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법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해서도 안 된다. 위헌 여부 역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재제청 요구에는 바로 그런 사법권 침해의 우려가 적지 않다.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가 대법원장의 독립적인 제청권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와 압박으로 이어진다면 단순한 인사 갈등을 넘어 권력분립을 훼손하는 헌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국회의 동의권도 중요한 시험대다. 헌법은 대법관을 대통령 혼자 임명하도록 하지 않았다.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국회는 정파적 유불리를 떠나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사법부 독립에 미칠 영향을 엄정하게 심사해야 한다. 국회의 동의권이 대통령의 뜻을 추인하는 절차로 전락해서도, 반대로 정치적 거부권으로 변질돼서도 안 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헌법기관 사이의 권한과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대표로서 헌법상 제청권을 책임 있게 행사해야 한다. 국회는 입법부이자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동의권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삼권분립의 본뜻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선의를 믿는 제도가 아니다. 선의가 아니라 권한의 한계를 정해 놓고 서로 견제하도록 만든 제도다. 대통령에게 오늘 허용한 권한은 훗날 다른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오늘 위축시키는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내일 어느 정권이든 이를 사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헌법은 정권의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것도, 대법원장의 것도, 국회의 것도 아니다. 국민 모두의 것이다.
이번 대법관 재제청 논란을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제청권·동의권·임명권이라는 헌법상 권한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어느 권력기관도 다른 기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삼권분립이 무너지면 법치주의가 흔들리고,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이름만 남는다. 지금 모든 헌법기관이 새겨야 할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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