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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욥15장17~35절
제목 : 악인의 운명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을 지혜자라 자처하며 친구들의 훈계를 수용하지 않자, 그를 비판하며 정죄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지혜자들의 가르침을 들으라고 촉구하면서,
악인들의 운명에 관한 전통적인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1. 내게 들으라(17~19절)
악인은 고통과 환난을 당한다
1) 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17절)
“[17]내가 네게 보이리니 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본장의 앞절들에서 자신의 의를 고집하여 친구들의 말을 반박했던 욥을 비판했던 엘리바스는, 본절에서부터는 이전에 주장했던 그의 논리처럼(4: 7-11) 또다시 악인은 고통과 환난을 당한다는 원칙론적 교훈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17-19절은 그의 본 논지를 교훈하기에 앞서 이끄는 서언(序言)이라 할 수 있겠다.
2) 지혜로운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이다(18절)
“[18]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이니 그들의 조상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본절은 엘리바스의 교훈이 그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17절)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적 지혜에 입각해서 말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주의에 입각한 교훈은 자칫 현실의 상황이나 보다 개력된 또는 진보된 진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폐쇄성에 빠질 우려와 단순히 그 전통적 교리를 고수하고 전하려는 무사고(無事故)주의 형식성에 치우칠 우려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그 조상들에게서 교훈을 어떤 형식으로 받았는지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아마도 구전(口傳)에 의해 전승되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렘 49:7에도 데만 사람의 지혜에 대한 언급이 나타납니다(19절 주석 참조).
3)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다(19절)
“[19]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서 '땅'은 엘리바스 자신이 사는 데만 사람의 땅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데만 사람의 땅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므로 다른 외인들은 그곳에 무력으로 침입하거나 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는 데만 땅의 지혜로운 자들에게 전승되어진 교훈 역시 다른 외부인의 영향에 의해 오염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되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J.E. Hartley).
2. 고통스러운 악인의 삶(20~25절)
1) 악인은 그의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포악자의 햇수는 정해졌다(20절)
“[20]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의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포악자의 햇수는 정해졌으므로”
원문에는 '그 말에 이르기를'이란 문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은 17-19절의 도입부 서언에 이어 본절에서부터 엘리바스
의 주 논지가 언급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 문구를 첨가하였습니다.
한편 '고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힐'은 해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악인은 필경 극렬한 고통을 당하리라는 뜻입니다.
엘리바스의 이 말은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12:6)라는 욥의 말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본문의 '강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리츠'는 '압제자', '독재자'를 의미합니다(Lange, J.E. Hartley).
2) 그가 평안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이이릅니다(21절)
“[21]그의 귀에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고 그가 평안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이르리니”
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 여기에서 '놀라운 소리'란 1:13-19에서 들렸던 것과 같은 '공포 또는 재난의 소식'을 의미합니다(Anderson).
즉, 악한 자에게는 항상 악재(惡材)의 소식이 뒤따라와 그를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 악인의 형통은 잠깐이고 뜻하지 않는 재난이 갑자기 들이닥침으로써 결국 파멸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멸망시키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다드'는 본문 그대로 '멸망시키는 자'(KJV, the destroyer), 또는 '약탈자'를 의미합니다.
결국 본절 전반절과 함께 본문 또한 욥의 현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습니다(1:13-19).
3) 칼날이 숨어서 기다립니다(22절)
“[22]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이 숨어서 기다리느니라”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 '어두운 데'에 관해서 혹자는 '불행'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고 하며(23, 30절 ; 19:8, Lange, M.H. Pope), '음부'(10:21, 22) 또는 '죽음의 징조'등을 암시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J.E. Hartley).
본문에서는 전자가 더 타당한 듯합니다.
즉, 악인들은 한번 재앙이 임하여 불행한 비극 가운데 빠지면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리는 바람에 그 속에서 다시 빠져 나오기를 바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4) 흑암의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23절)
“[23]그는 헤매며 음식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의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하여 - 문자적으로는 '그는 식물을 위하여 유리한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악인이 먹을 식물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헤메이는 것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악인은 앞절에서 처럼 갑작스런 재앙을 만나 먹을 것이 없어서 헤매는 비참한 처지에 빠짐을 암시합니다.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 극도로 심각한 재난을 만나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고 오직 파멸의 시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망적 처지에 몰리게 됨을 시사합니다.
5) 환난과 역경이 그를 두렵게 하며 그를 쳐서 이기리라(24절)
“[24]환난과 역경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라”
악인에게 임할 비극적 결말을 의인법을 사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한 문구입니다.
여기서도 엘리바스는 21절의 내용처럼 욥이 처한 불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본문의 '환난'(차르)이란 문자적으로 '좁음', '협소함' 등을 뜻합니다.
이는 재난을 당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갑갑한 마음 상태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6)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였음이니라(25절)
“[25]이는 그의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였음이니라”
원문에 의하면 본문의 서두에는 '키'(왜냐하면)가 있습니다.
이는 본문이 앞절들의 이유, 즉 악인들이 비참한 불행에 처하고 멸망당하는 이유를 나타내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욥은 극도의 재난 속에서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원망 섞인 탄식을 늘어놓은 적도 있지만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거나 모독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편견을 엿보게 합니다.
한편 '그 손을 들어'란 일반적으로 하나님 또는 어떤 사람을 대적하는 것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삼상 26:9, 23; 왕상 11:26, 27; 사 5:25).
3. 악인의 최후(24~35절)
1) 그는 목을 세우고 방패를 들고 하나님께 달려듭니다(26절)
“[26]그는 목을 세우고 방패를 들고 하나님께 달려드니”
'목을 굳게 하고'란 일반적으로 '교만함', '완고함', '강퍅함'등을 뜻합니다(신 31:27; 대하 36:13; 느 9:16, 17; 렘 17:23; 행 7:51).
따라서 본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심지어 하나님마저 대적하려 드는 악인의 참람한 행태를 가리킵니다.
이것 또한 엘리바스가 욥의 자기 무죄성에 대한 변론을 염두에 두고(10:2-22; 12:4; 13:13, 20-14:22) 말한 것 같습니다.
2) 그의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습니다(27절)
“[27]그의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고”
죄악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또 온갖 탐욕과 쾌락을 충족시키는 악인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신 32:15; 시 73:7; 119:70;렘 5:28).
3) 그는 황폐한 성읍 집에 거주하였습니다(28절)
“[28]그는 황폐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라 될 곳에 거주하였음이니라”
본문의 해석은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1) 악인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황폐한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J.E. Hartley).
(2) 악인은 폐허가 된 성읍을 재건축하여 그곳에 살기 위해 황폐한 곳으로 간다(Rashi).
(3) 악인들의 화려하고 좋은 성읍과 집들은 이내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해 버린다(Anderson).
그리고 영역본도 '거하였음이니라'를 서로 약간 다르게 번역하였는데, NIV는 '거할 것이다'(will inhabit)는 미래형으로, KJV는 '거한다'(dwelleth)는 현재형으로, RSV는 현재 완료형 곧 '산다'(has lived)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전반적인 문맥의 흐름상 악인이 하나님의 저주와 징계를 받아 황폐한 성읍, 사람이 살지 못할 집에 거할 것이라는 의미가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
본문에서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 무더기가 될 곳' 등은 하나님의 저주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신 13:13-17; 왕상 9:8; 렘 19가8).
4) 그의 소유가 땅에서 증식되지 못할 것입니다(29절)
“[29]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보존되지 못하고 그의 소유가 땅에서 증식되지 못할 것이라”
악인은 경제적으로도 그 부(富)와 재산을 계속 보존하지 못하고 이내 상실하게 될 것이며 다시 번창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또한 21, 24절에서처럼 욥이 당한 재산상의 피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1:13-19).
5) 하나님의 입김으로 그가 불려가리라(30절)
“[30]어두운 곳을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의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으로 그가 불려가리라”
'어두운'이란 악인이 당하는 '재앙' 또는 '불행'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22절 주석 참조).
그리고 '불꽃'은 하나님의 진노 또는 하나님의 심판의 불꽃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사 30:33; 히 12:29).
또한 일반적으로 번성한 나뭇 가지가 형통함, 번성함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바(시 1:3; 80:11; 92:12) 본절의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도 악인의 번성, 번영 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악인은 한번 재앙에 빠질 경우 그 불행한 처지에서 다시는 빠져 나오지를 못하며 그의 번성하는 사업도, 재산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온전히 사그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6) 허무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31절)
“[31]그가 스스로 속아 허무한 것을 믿지 아니할 것은 허무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
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아니할 것은 - 문자적으로 '그로 하여금 헛된 것을 신뢰함으로 스스로 속임받지 않도록 하라'라는 의미입니다.
혹자는 본문이 앞절들(29, 30절) 또는 뒷절들(32, 33절)의 나무 비유들과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M.H. Pope), 오히려 서로 연관된다고 봄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즉, 찍힌 나무가 다시 때가 되면 소생하고 열매를 맺는 것(14:7-9)과는
달리 악인은 다시 새롭게 될 소망을 가져봐야 헛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이 자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공허하며 쓸모없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일 뿐입니다(Rawlinson).
7) 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할 것이다(32절)
“[32]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즉 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앞절 후반부의 '그의 보응'을 '그의 종려나무'로 보는 자들은 본문의 '이룰 것인즉'을 '시들다'(wither)로 번역합니다.
이 경우에 본문은 그의 날, 즉 종려나무의 추수 때가 이르기 전 그 나무가 시들고 가지가 죽는다는 뜻으로 풀이 됩니다(J.E. Hartley).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본문은 악인이 허망한 것을 믿어 기대하다가 도리어 때가 되기도 전에 실망케 되고 멸망케 된다는 뜻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8)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33절)
“[33]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 때 아닌 한파로 말미암아 포도 열매가 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리움을 당하듯이, 악인에게도 창졸간의 재난이 들이닥쳐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떨어짐'의 히브리어 '하마스'는 '해치다', '난폭하게 빼앗다'는 뜻을 지니는 바, 악인의 파멸이 거역할 수 없는 강압적 힘에 의해 초래됨을 시사합니다(J.E. Hartley).
9)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34절)
“[34]경건하지 못한 무리는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며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
이는 곧 엘리바스가 욥을 빗대어 한 말 같습니다(21, 24, 29절).
그리고 본절 후반절은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12:6)라고 한 욥의 말을 정면으로 논박함과 아울러, 욥에게 임했던 불 재앙을 (1:16) 곧바로 연상시키는 말입니다.
결국 본절은 엘리바스가 욥의 위선과 부패상을 간접적 어투로 꾸짖는 내용
이라 하겠습니다.
10) 그들의 뱃속에 속임을 준비합니다(35절)
“[35]그들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으며 그들의 뱃속에 속임을 준비하느니라”
여기서 엘리바스는 출산과 관련된 잠언투의 경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최종 정리하고 있는데, 본절의 '마음'과 엘리바스의 변론 서두의 '품'(2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공히 '자궁'으로도 번역되는 '베텐'인 점에서 수미 쌍관적(首尾雙關的) 기교를 엿보게 합니다.
여기에서 '악한 생각'(아말)이란 문자적으로 '수고', '노고'를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해악'(KJV, RSV, mischief), '폐'(NIV, trouble)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궤휼'의 히브리어 '마르마'는 '속임', '사기' 등을 의미합니다.
한편 혹자는 본문에서 '불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웬'을 '자기 기만' 또는 '헛됨'(KJV, vanity)의 의미로 보기도 합니다(Bernhart).
아무튼 본문은 '사곡한(불경건한) 무리'는 해악을 품고서 남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기만하여 멸망에 빠지게 되는 자들임을 예시한다 하겠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많은 지식과 지혜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17~19절).
엘리바스는 욥이 지혜자들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아 교만하다고 했지만, 정작 교만한 사람은 엘리바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를 전통 가운데 확립된 권위 있는 지혜로 확신하며 욥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나 설령 내가 가진 지식이 옳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가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자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다는 걸 기억하십시오(마태복음 11장 25절).
2) 인격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인과법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합니다(20~26절).
엘리바스는 전통적인 인과법칙을 따라 악인들이 형벌을 받고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원리를 따라 욥이 당하는 고통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악을 행한 결과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더욱 절망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를 돌이키시는 인격적인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의 고난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엘리바스는 지금 당장 악인들이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27~35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현재 잘살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다 벌을 받고 있는 악인은 아닙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있을 영광을 위한(로마서 8장 18절) 예비 단계일 수도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권리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을 위로하고 섬겨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이웃의 고난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에게 참된 위로자가 되게 하소서.
열방-아프리카의 14세 이하 어린이들은 2010년 4억 명에서 2050년에는 8억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을 향한 선교 전략이 마련되어 영적 추수가 일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