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카사블랑카"...
지금부터 만 25년 전, 제 파리시절에 썼던 글입니다. 그 때 제 나이 마흔 다섯!... 한 숨이 절로 나옵니다. 아, 그 동안 많이도 늙었구나.
김승웅 명화 '르뽀'(Reportage) 카사블랑카(Casablanca) ‘모두 리크네 집에 모이네!’
다시 몽블랑 고개를 넘는다. 로마에서 세편의 영화 <자전거 도둑>과 <길>, <로마의 휴일> 탐험을 마친 후 임지인 파리를 향해 떠난 것이다. 파리까지는 18시간을 달려야 한다. 옆자리 조수석에 앉은 큰 놈 미뇽이가 간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다그친다.
놈이 잠든 틈을 타 호텔 밖에 나갔다가 로마 건달과 계집들한테 억지로 수박 얻어먹고 떠들다 돌아왔을 뿐인데, 말하는 걸 보니 녀석은 눈만 감고 자는 척했던 게 분명하다. 지네 엄마를 의식해선지 어디가나 나를 은근슬쩍 감시한다.
녀석을 파리 에콜 빌랑그(영어와 불어학교)에 집어넣었더니 불어와 영어가 나보다 훨씬 자유로워 취재 다닐 때 조수로 써먹기 안성맞춤이다. 이번 영화 탐험 때뿐만 아니고 툭하면 유럽 곳곳을 녀석을 데리고 다녔는데, 좀 엉큼한 구석이 있는 놈이라서 나를 감시하면서도 어떻게 하든 내 통제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는 놈이다. 허긴 나도 그 놈 나이에 아버지의 `지배`를 무척 배격했었지...
당시 파리 중학 3학년이던 놈이 지금은 아들 하나까지 달린, 올 서른다섯의 나이로 바뀌었으니, 정말 엊그제 일 같다. 젖먹이 시절 '삐둘지 삐둘지!`하며 날 울리던 놈이...산다는 게 다 이런 거 아닌가!
한 밤중 파리에 도착, 큰 놈을 제 친구 집에 떨어트리고 내가 사는 라 데팡스 아파트에 닿은 즉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지라 할 수없이 나의 거처인 18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다. 18시간을 잠 한잠 안자고 달려온지라 한 발자국 떼놓기도 어려울 만큼 지쳐있었다.
거기에 여행용 가방까지 들쳐 매고 끙끙대며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런 젠장, 누구 한 사람이 뒤따라 붙기까지 한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려니...허나 어쩐지 기분이 언짢다. 칠 흙처럼 캄캄한 비상구 안에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열 여덟층을 같이 걸어 올라가야 할 판이다.
더 기분 나쁜 건, 숨이 차 비상계단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더니 그 자도 함께 쉬는 게 아닌가. 가까스로 18층 비상구를 빠져 나온 즉 그 사나이도 뒤따라 함께 나온다. 라이터를 꺼내더니 제 얼굴을 비쳐준다. 전혀 못 본 얼굴이다. 사내는 싱긋 웃더니 그 제서야 자기 신분을 밝힌다. 경찰이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아파트 입구에서 대기하다 나와 동행해 준 것이다. 정전이 된 후, 이번이 열한 번 째 동행이라고 설명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경찰이 바로 이런 거구나! 원산지 파리에서 만나 본 경찰의 진 모습니다.
뽈리스(police)는 나폴레옹이 세계 최초로 만든 행정제도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가 경찰제도의 원조국가다. 나폴레옹이라는 한 천재가 마련해 준 혜택을 지금 전 세계가 이용료 한 푼 안 물고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어디 제대로나 활용이나 했던가? 사람 데려다 때리고 수탈하고 토색질하고 죽이고... 심지어는 툭! 했더니 억! 했다는 헛소리나 해대고...아무튼 프랑스는 그 경찰 원조 국가 노릇을 2백년이 지난 지금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열흘 남짓 비워두었지만 파리엔 아무 일 없었다. 서울 본사에서 전화 한 번 없었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허탈했다. 세상만사가 내 통제 밖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묘한 소외감이 든 것이다. 허나 기분이 좋았다. 이왕 내친김에 내일 또 영화탐험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행선지는 지중해 건너 모로코! 차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 ................ 기창(機窓)아래는 지브럴탈 해협이다. 지상 1만m 상공, 카사브랑카행(行)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대륙의 해협은 한 가닥 강줄기에 불과하다. 전란을 피해 유럽을 탈출하던 영화 <카사브랑카>의 주역들처럼 갑자기 신천지에의 꿈이 부푼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차피 한편의 영화가 아닐까. 상영시간이 60~70년 정도 걸린다는 것, 또 누군 든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다를 뿐, 인생 만사는 구질구질한 한편의 영화 스토리에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카사브랑카에 닿는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 장면은 이 북(北) 아프리카의 도시에 결코 실재하지 않는다. 1백 2분짜리 영화 전편은 모두 미 할리우드의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떻단 말인가. 영화도 인생도 허망한 가공(架空)이 아니던가.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했듯 "둥근 달을 감성적이 아닌, 기하학적 시각으로 보는 자는 바보"일 뿐이다.
주인공 리크가 경영하던 카페 아메리칸은 카사블랑카 시내 한복판에 가공(架空)아닌 정말로 있다. 모하메드 5세 광장의 호텔 하이야트의 옥내(屋內) 바(Bar)로 바뀌어, 이 영화를 기억하는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다.
미국인이 경영해 온 호탤 카사브랑카를 (당시로)4년 전 사우디 거부가 인수, 이름을 하이야트로 바꾸고,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카페 아메리칸의 위치를 물어오는 관광객들의 등쌀에 견디다 못해 영화 속의 카페와 똑같은 모양으로 재생시켜 호탤 안에 묶어 둔 것이라고 한다.
카페 입구에는 영화가 처음 상영됐던 1943년의 포스터 두 장이 붙어 `정통성`을 과시한다.
철이 지난 카페는 한산하다. 영화 속의 검은 피아노도 그대로고, 피아노 뒷벽에는 리크가 공항에서 나치 장교 슈트라서 소령을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던 장면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1942년) 프랑스 영(領)이었던 모로코는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해외집결지였다. 또 나치에 쫓기는 유럽계 유대인들이 미국이나 남미 등 신천지로 도망치던 중간 거점이기도 했다.
영화의 원저 <모두 리크네 집에 모이네(Everybody comes to Rick's)>의 제목 그대로 당시 프랑스 등 유럽을 탈출한 부자나 지식층들은 이곳 카사블랑카에 모여 미국행 비자를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었다. 비자를 손에 넣으면 일단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갔다가 미국을 찾아 떠났다.
영화 <카사불랑카>가 히트한 가장 큰 요소는 전란에 휘말린 극중 배경과 당시 이 도시가 처해있던 시대적 배경이 일치한다는 리얼리티 때문이다. 감독 마이클 커티즈는 이 같은 타이밍을 극중 배역이나 드라마 전개에도 그대로 원용한다.
출연진 가운데 미국인으로는 주인공 리크(험프리 보카트)와 피아노 영탄 가수인 흑인 샘(둘리 윌슨)뿐이고 나머지는 모두가 유럽계 다국적이다. 주연 여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스웨댄 출신으로, 할리우드에 발을 붙인지 3년이 채 못 되던 무렵이다.
레지스탕스 총책 역의 폴 핸라이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겸 감독. 나치 소령역의 바이트는 베를린 근교 포츠담을 고향으로 둔 독일 산(産).
주인공 리크를 짝사랑하는 이본느(마들렌느 느보)나 리크 덕분에 노름판돈으로 미국행 노자를 마련하는 마르셀 달리오는 프랑스 배우다. 이 영화의 출연진 거개가 우리 표현대로면 `한(恨)을 지고 살던` 유럽 유랑민들이어서, 영화 <카사블랑카>는 따지고 보면 이들이 작심하고 한판 벌인 마당 굿이었다.
무엇보다도 감독 커티즈 자신이 헝가리 출신의 자유 투사라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본명이 미하리 케르테즈인 그는 1906년 부다패스트에서 연국 배우로 이름을 날리다 1차 대전이후 독일로, 그 후 다시 오스트리아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가 막판에 할리우드를 찾아와 1백여 편의 영화를 양산한 명감독이다.
세트 촬영이 특기인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따낸다. 영화의 첫 시사회는 43년 1월 뉴욕에서 열렸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북 아프리카 진주가 시작 되고나서 18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랑으로, 알지에로, 카사블랑카로 속속 진주하는 연합군의 사기와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영화 <카사블랑카>는 영화 흥행사상 전무후무의 대목을 만난다.
미전역에서의 개봉은 그해 1월 23일. 또 한 차례의 블랙잭이 터진다.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처칠 영국 수상간의 `카사블랑카 비밀회담`이 바로 그때 이뤄진 것이다. 양 거두가 회동한 안파(Anfa)호텔은 본래 카사블랑카 시 남쪽 별장지대에 있었으나 호텔은 이미 헐린 지 오래 이고 야자수와 열대수목들이 즐비한 공터로 남아 꼬마들의 동네 축구장으로 바뀌어 있다.
루즈벨트와 처칠은 회담을 끝낸 후 미 본토에서 공수해 온 이 영화를 숙소에서 함께 관람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타이밍에서 거둔 일련의 명성이 영화자체의 값어치를 앞지른 것은 아니다.
특히 험프리 보카트의 출중한 연기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영화로도 필적할 만한 연기를 찾기 힘들 정도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그의 나이 43세 되던 해, 그의 전성시대가 극점을 이루던 시절의 작품이다.
이 영화 이전까지 그에게 맡겨진 배역은 갱이나 악역이 주종을 이뤘다. 길 다란 인중(人中)과 잘 발달된 하관, 싸늘한 눈매와 거친 어조는 악역에 관한한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천부적인 마스크로 인정받았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그의 짧고 투박한 어투가 관객들, 특히 여성관객들을 사로잡았는데, 이는 감독이 시켜서가 아니라 보카트 자신의 과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 입대한 그는 배속된 레바이아탄 호(號)가 독일 공군기의 기습공격을 받아 이때 윗입술에 파편 조각이 박힌다. 파편은 수술로 제거됐으나 이로 말미암아 한때 윗입술이 마비된 적이 있고 그때부터 투박하고 혀 짧은 발음으로 바뀐 것이다.
함께 공연한 잉그리드 버그만 은 당시 29세로, 그녀 역시 이 영화를 기점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연기 면에서는 보카트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영화 다음해 만들어진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와 그 이듬해의 <가스 등(燈)>(아카데미 주연 여우상 수상)에 와서야 진가를 발휘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미제(美製) 영화라면 비평의 대상에도 넣지 않아온 프랑스 영화비평가들도 이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해서만은 그런대로 관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점이다.
관대해 봤자 `저질 영화가운데 수작(秀作) 급`(옵서바퇴르 지/87년 9월)이 고작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울려 퍼지는 <라 마르셰예즈(프랑스 국가)>를 듣고 또 한 차례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영화"라고 그 감명을 실토하고 있다.
밤이 깊어 다시 호텔의 카페 아메리칸에 들러 본다. 영화에서 흑인 가수 둘리 윌슨이 앉아있던 검은 피아노 앞엔 스페인 출신의 한 무명가수가 앉아있다. 영화에서 듣던 노래 <세월이 흐르면(As times go by)>를 부탁하자 기다렸다는 듯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You must remember this. A kiss is still a kiss..."
빠트릴 뻔한 가십이 있다. 이 영화의 기획단계에서 최초로 결정됐던 배역은 리크 역이 로널드 레이건, 일자 역이 앤 셰리던, 라슬로 역이 데니스 모건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배우는 몰라도 로널드 레이건이 만약 리크 역을 맡았던들, 영화 <카사블랑카>가 과연 나에게 영화탐험 대상이 되었을지, 또 레이건이 당시의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로 남았을지....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줄거리> 2차 대전 중의 유럽. 많은 유럽 사람들이 대륙을 탈출해서 아프리카 서북단의 프랑스령 도시 카사블랑카를 찾아 잠입한다. 거기서 미국행 비자를 수단껏 입수해서 신천지 미국으로 빠지는 주요 탈출 코스이기 때문이다.
카사블랑카 시. 이 도시에 닿는 열차 내에서 2명의 독일 외교관이 살해된다. 도시 전역이 벌컥 뒤집히고 범인 체포를 위해 나치 게슈타포 장교 슈트라서 소령 일행이 비래(飛來), 프랑스인 경찰서장 르노의 영접을 받는다.
미국인 리크(험프리 보카트)가 경영하는 일류 술집 `카페 아메리칸`. 낯선 프랑스 사람 우가르테가 리크를 찾아와 여행증명서 2통을 맡기고 사라진다. 리크는 현금과 다름없는 이 여행증명서를 피아노 속에 숨긴다.
슈트라서 소령이 들이 닥치고, 때를 같이해서 레지스탕스 투사 라슬로(폴 헨라이트)가 미모의 일자(잉그리드 버그만)를 대동, 카페에 모습을 나타낸다. 일자가 피아노 가수 흑인 샘에게 접근, 재회를 반기는 그에게 옛 노래 <세월이 흐르면(As times goes by)>을 부탁한다.
이 노래를 듣고 주인 리크가 발끈, 누구 소행이냐고 추궁한다. 샘의 턱이 가리키는 곳에 일자가 앉아있다. 리크와 일자의 재회(再會). 일그러지는 리크의 표정.
화면은 전란중의 파리로 역진(逆進). 사랑에 취해있는 리크와 일자의 일상(日常)으로 바뀐다.
파리 함락 전날 리크가 그녀에게 구혼, 둘은 다음 날 피난처인 마르세이유 행(行)기차에 타기로 약속한다. 다음 날 파리 오르세이 역(驛). 그러나 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초조해진 리크. 일자가 샘 편에 보낸 쪽지에는 "당신을 계속 사랑 한다"는 것, 그리고 못 오는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다.
화면은 다시 리크네 술집. 일단의 독일 장교들이 <라인의 보호>를 합창한다. 듣고 있던 라슬로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셰예즈>를 선창하면서 실내는 두 노래의 경창(競唱)으로 수라장이 된다. 슈트라서 소령의 뒤틀리는 표정. 라슬로를 체포키로 작심한 후 리크에게 무기한 휴업을 명한다.
라슬로의 위기를 감지한 일자가 리크를 찾아와 우가르테가 맡기고 간 여행증명서를 넘길 것을 간청하나 리크가 거절한다. 권총을 뽑아드는 일자. 미동도 하지 않는 리크. 거기서 새로운 진상이 밝혀진다.
파리서 둘이 사랑에 빠져있을 무렵, 일자는 이미 라슬로의 아내였다. 일자는 남편이 체포돼 강제 수용소에서 처형됐다는 비보 속에, 그 절망의 늪 속에서 리크를 만나 소생했던 것이다. 남편의 생존을 확인한 것은 리크와 마르세이유 행 기차를 약속한 그날 밤이었다.
통한과 연민으로 일그러지는 리크의 얼굴. 둘은 뜨겁게 포옹한다.
안개 자욱한 카사블랑카 공항. 아내의 장담만을 믿고 탈출하러 나온 라슬로에게 르노 서장(署長)이 체포 명령을 내린다. 이때 리크가 권총을 뺀다. 총구는 친구 르노 서장을 향했다. "놀랄 것 없어! 아무도 체포할 수 없다. 비행기를 빨리 활주로에 대!" 리크의 본심은 일자 부부의 무사탈출이었다.
라슬로 부부의 탈출 소식을 뒤늦게 알고 공항에 달려온 슈트라서 소령이 관제탑을 불러 이륙정지를 명하려는 순간 리크의 권총이 불을 뿜는다. 소령의 시체를 떠나며 리크가 르노 서장에게 속삭인다. "지금부터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된 거야"
졸저(拙著): "파리의 새벽, 그 화려한 떨림"에서 전재(轉載)/방장 <김승웅>
카사블랑카 (Casablanca, 1942) As Time Goes By ,,
|
|
첫댓글 로마에서 본 영화 세편은 이태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죠.
험프리 보카드하면 할리우드의 또 한사람 헨리 폰다 가 떠 오른다.
지금도 아프리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의 카페에는 그때 연주하던 피아노가 지금도
관광개을 기다린다고 한다. 헝거리의 짚시가 있듯이 영화 길 은 이태리의 짚시 이야기라고 할까?
안쏘니 퀸과 젤쏘미나의 애쟎한 사랑. 이야기......
자전거도둑, 꽤 오래된 영화지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아버지와 자식의 이야기....
아무튼 그영화에 나오는 어린 소년이 생각 납니다. 로마의 휴일 까지 영화 모두가
흑백 영화라는게 공통점 이내요. 명화중에 명화?
잠시 옛날을 회상 해 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젊은 날 나의 연인 이었지요.
험프리 보카드의 남자다운 매력이 압권이었죠. 음성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