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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13장1~14절
제목 : 다말을 범한 암논
이 사건은 다윗가의 가장 큰 비극인 ‘압살롬 이야기’의 서론입니다.
다윗의 장자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이자 이복동생 다말을 연모하다가 끔찍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합니다.
1. 암논과 요나답(1~6절)
1) 암논이 다말을 사랑합니다(1절)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 '그 후에'란 용어는 구약에서 대개 다음 두 가지 용례(用例)로 사용되었습니다.
(1)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접속사(삼상 24:8 ;에 2:1).
(2) 시간적인 전후 관계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상이한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접속사(2:1 ; 8:1 ; 10:1). 8:1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이 용어는 첫 번째 경우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이는 본장에 기록된 다윗가의 재난이 나단 선지자의 예언(12:10-12)대로 하나님의 보응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임을 보여 주기위한 연대기적 접속사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 이들은 다윗이 그술(Geshur) 왕 달매의 딸 마아가(Maacah)에게서 얻은 자녀들입니다(3:3). *다윗은 헤브론에서 아들 여섯을 낳습니다.
당시 그술은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는데,
다윗은 이 이방 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였었습니다(3:3)
*3: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암논 - 다윗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Ahinoam)에게서 얻은 장자입니다(3:2).
따라서 다말은 그의 이복(異腹) 누이동생이 됩니다. 5:13-16 주석 참조.
2)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상사병이 걸렸습니다(2절)
“[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저는 처녀이므로 - 여기서 '처녀'에 해당되는 '베투라'는 '동정녀'(virgin)란 뜻으로 단순히 시집가지 아니한 여자가 아닌 지금껏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정숙한 여인을 의미합니다(Lange, Keil).
즉, 다말은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품위 있는 여인이었으므로 암논이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한편 본절에서 보듯 다말이 암논에게 연정(戀情)을 품게 할 정도로 성숙한 것을 보아 적어도 이때 다말은 15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말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딸이니(대상 3:5-9) 본장의 시대적 배경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한 지 최소한 15년은 경과한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5:1-5).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 여기서 울화(='심화'心火)'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차르'는 '괴로워 하다', '고민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암논이 다말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상사병(相思病)이 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3절)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다윗의 형 시므아. - 그는 이새의 셋째 아들이며(대상 2:13) 삼마(Shammah)라고도 불리웁니다(삼상 16:9 ; 17:13).
여기서 '간교한 자'(이쉬 하캄)은
좋은 의미에서 '지혜로운 자', '능숙한 자'를, 그리고
나쁜 의미에서 '교활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요나답은 자기의 지혜로 암논의 부도덕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으므로 악한 지혜의 소유자, 곧 교활한 자였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본장에서 그는 사람의 마음과 사건의 정황(情況)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매우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으니(5, 32절) 그 지혜가 아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요나답이 암논에게 병든 원인을 묻습니다(4절)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병든 원인이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사랑(=연애)하다'에 해당하는 '아하브'는 '성적(性的)으로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사랑을 느끼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암논은 다말의 전인격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육체만을 사랑했었음을 알 수 있습다.
암논의 이러한 충동적이고 쾌락 일변도적인 성적 욕망은 그가 다말을 범한 후 오히려 그녀를 싫어한 사실(14, 15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5) 요나답의 처방입니다(5절)
“[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 '보러 오거든'('라아')는 여기서 단순히
'우연히 보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여 보다', 또는 '병의 진행 정도를 진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출 1:16 ; 레 13:3, 6, 8, 56 ; 민 13:18 ; 왕하 8:29 ; 시 41:7).
따라서 요나답의 아와 같은 말은 다윗 왕이 암논의 병을 염려하여 병문안 올 것을 예상하고서 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Lange).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 이는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남다른 애정을 이용하여 암논의 욕망을 이루게 하려는 요나답의 간교한 계략입니다.
한편 이와 같이 요나답이 암논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도와 준 까닭은 아마 암논이 다윗 왕의 장자로서(3:2) 왕위 계승의 서열 제1위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Smith, Leon Wood).
즉, 요나답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차기 왕의 지목에 있어서 가장 유리했던 암논을 가까이 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추론(推論)은 왕위 계승의 서열상 장자가 우선이라는 당시 고대 사회의 통념으로 볼 때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앞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의 계승자로 이미 솔로몬을 넌지시 지목하셨습니다. 12:25 주석 참조.
*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당시 이러한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마 왕자들 간의 실권(實權) 다툼(왕상 1:13)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6) 암논은 요나답이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6절)
“[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과자 두어 개. - 여기서 '과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비보트'는 심장(heart)을 의미하는 '레바브'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과자가 심장을 강하게 해주는 일종의 건강식이거나 아니면 심장 모양의 둥근 케익 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Keil, Lange).
2. 다말의 방문과 암논의 악행(7~14절)
1) 다윗이 사람을 다말에게 보내어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해 음식을 차리라 합니다(7절).
“[7]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 암논의 범죄에 다윗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다윗은 후에 발생되는 압살롬의 범죄 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되었습니다(23-28절).
이러한 사실은 다윗 가문의 모든 재난이 다윗 자신의 범죄(11장)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음을 다윗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 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다윗으로 하여금 이전과 같은 죄악을 범치 않도록 채찍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 히브리 관습에 따르면 여인들은 음식만드는 일에 초청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합니다(Jamison).
비록 암논의 요구(6절)가 좀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다윗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도 그 같은 관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 암논은 누워 있었고 다말은 과자를 열심히 만듭니다(8절)
“[8]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 본절은 당시 왕의 자녀들이 그들의 어머니(3:2-5 ; 5:13-16 ; 대상 3:1-9)와 함께 각기 다른 거처에서 생활하였으므로 또한 장성한 아들들은 각기 독립된 주택에서 생활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 히브리인들은 실내에 있는 화로(火爐)나 벽난로에서 요리를 하였습니다.
즉, 저들의 가옥 구조는 부엌과 거실이 거의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다말은 암논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합니다(9절)
“[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나가게 하라 하니. - 이처럼 암논이 다말의 요리를 거절한 것은 병이 악화되기나 한 듯이 방문객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이렇게 하여 그는 다말 이외에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한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꾸몄던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암논의 꾸밈은 모략가인 요나답의 지시 (5절)를 받아 이루어진 것임에 분명합니다(Lange).
4) 암논이 다말에게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고 합니다(10절)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다말이...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 다말이 미처 오라비 암논의 흑심(黑心)을 눈치채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즉 그녀는 암논이 자신을 강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떻게든 병든 암논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구운 과자를 들고서야 기꺼이 암논의 침실에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5)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동침하자고 합니다(11절)
“[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 암논이 하나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간음(레 18:9)을 요구하고있는 장면입니다.
암논은 인간의 눈을 피하기만 한다면(9절) 자신의 죄악이 숨겨질 것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합니다(욥 24:15).
그러나 다윗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암논의 극악한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끝내 그를 징계하셨습니다(29절).
*29절 “[28]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29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이처럼 인간의 범죄는 반드시 자신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갈 5:19-21).
*갈5:19~21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따라서 우리가 각종 탐심과 욕정을 억제함으로 범죄치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시 119:9 ; 벧 4:2).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벧전4:2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6) 다말은 암논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침착하게 대응합니다(12~13절)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해 건설된 신정 국가 였습니다(출 19:5, 6).
따라서 율법에 의거, 근친상간 자는 수간(獸姦)하는 자와 남색(男色)하는 자와 더불어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반드시 제거 되어야만 했습니다(레 18:9 ; 20:17 ; 신 27:22).
어리석은 일(괴악한 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발라'는 히위 족속인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한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말입니다(창 34:7).
*창34: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이 말은 구약에서 대개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하였습니다.
(1)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짐승같은 행위를 뜻한다.
(2) 주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악독한 일, 그중에서도 특히 음행과 관련된 악한 일을 의미합니다(수 7:15 ; 삿 19:23, 24 ; 20:6, 10 ; 삼상 25:25 ; 사 9:17 ; 32:6 ; 렘 29:23).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지만 이미 암논은 음욕에 눈이 어두어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7) 암논은 힘으로 그와 동침합니다(14절)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다말의 온갖 설득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논은 기어코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말았습니다.
이는 곧 그 아비 다윗이 이성(理性)을 잃어버린 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11:2-4).
하지만 이는 곧 하루살이가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선 불속으로 뛰어듦과 같습니다.
즉 하루살이는 불빛에 미혹되어 그 속으로 뛰어들지만 맹렬하게 타오른 모닥불은 하루살이를 도리어 태워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다른 죄악보다 온갖 정욕의 죄를 보다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고전 6:18).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같은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불속에 뛰어드는 하루살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다윗이 ‘아름다움’(11:2)에 빠져 넘봐서는 안 될 여인을 범한 것처럼, 다윗의 장자 암논도 ‘아름다운’이복누이 다말에게 연정을 품습니다(1,2절).
‘어찌할 수 없는’관계인 줄 알면서도 금지된 대상(신27:22)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합니다.
자기 욕망의 눈에 좋은 것을 탐하다가 지켜야 할 관계도, 본분도, 계명도 다 외면한 것입니다.
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 대처합시다.
부패한 충동을 늘 경계하고, 욕망이 죄로 자라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2) 암논의 위험한 욕망에 불을 지핀 자는 요난답입니다(3~5절).
그는 다말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고 다윗 왕을 끌어들이는 치밀함까지 보입니다.
선을 악으로 이용하는 야비한 방법입니다.
성경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지만,
사탄은 악을 위해 선을 이용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내 마음의 생각이나 계획 가운데 다른 사람의 선의를 이용해 악을 이루려는 것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3) 암논은 자기 욕망을 합리화해준 친구의 계략대로 아버지를 속이고 다말을 유인하여 결국 해서는 안 될 죄를 범합니다(6~11,14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암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욕구가 욕심으로 자라고 욕심이 죄로 실행 되도록 부추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의한 일이라면 무슨 이유로 회유한다고 해도 넘어가서는 안 되고, 특히 성적인 부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그 어떤 말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4) 다말은 암논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침착하게 대응합니다(12~14절).
이 일이 하나님께나 이스라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두 사람이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아의 충정(11:11)을 듣고도 악을 멈추지 않던 다윗처럼,
암논도 다말의 호소를 무시하고 힘으로 원하는 것을 빼앗습니다.
상대방에게 수치와 고통을 안겨주면서까지 얻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비뚤어진 욕망이 아닐까요?
요즘 힘을 휘둘러서 내가 하고픈 대로 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진 않습니까?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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