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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기전 준비하느라 힘든 선수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다함께 참여를 부탁드리며......................
어느 얼간이의 41년 연세사랑
(송도 독수리)
40년전 스포츠라면 사족을 못쓰는 11살의 어떤 얼간이가 있었습니다.
얼간이는 집근처에서 런닝하는 연세대야구부와 최동원에 반해서 연세를 사랑하게 됩니다.
얼간이는 연세야구뿐 아니라 농구,축구도 사랑했고 점점 그 짝사랑은 깊어만 갔습니다.
얼간이는 특히 연세야구와 농구라면 줄줄이 꿰고다니면서 남들에겐 놀림을 받았습니다.
얼간이는 선린중에 진학하면서 선린야구의 응원단장을 맡았으며 나중에 꼭 아카라카의 응원단장이 되겠노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지만 공부엔 지지부지한 얼간이를 다른 애들은 비웃었으며 고교에 진학하자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고 얼간이는 결국 시골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얼간이의 연세사랑은 식을줄 몰랐고 틈만나면 장충체육관을 찾아 열심히 연세농구를 응원했습니다.
얼간이는 군에 가서도 졸업후 직장에 취직해서도 열일 제쳐두고 연세농구와 정기전이 있으면 연고대출신보다 더 열렬히 응원하고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런 칠칠맞은 얼간이가 IMF한파로 직장에서 정리해고당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얼간이는 몇몇 직장을 전전하다가 사업에 손을댔고 결국은 쫄딱 망하고 빚을 지게됩니다.
얼간이는 심기일전 열심히 운전을하여 송도와 인천공항에선 알아주는 기사가 되었습니다.
희로애락을 골고루 맛본 얼간이도 어느덧 50하고도 한살을 더먹은 중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정기전이 있으면 그의 마누라는 당연히 쉬는줄 알고있고 동료들도 머리를 갸우뚱하면서도 웃으며 이해해줍니다.
늦장가를 간 얼간이의 어린아들이 얼간이에게 느닷없이 질문합니다.
"아빠는 왜 연세대도 아니면서 좋아해?"
얼간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으응 아빠는 어려서부터 연세가 좋았단다"
어린아들이 웃으며 말합니다.
"아빠가 연세를 좋아하니깐 연세우유먹고 이담에 연세대 들어가줄께"
얼간이는 그말을 듣고 너무 행복하고 감격에 겨워서 아들을 꼭 안아줍니다.
경기장엔 못가지만 후원금도 못내지만 챔프전에서 연세농구의 승리를 두손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chestick 의 글
저는 70년대 중반신선우,박수교,장봉학,박인규 등이 대농을 주름잡던 시기에 입학해 누구보다 열렬히
연대농구를 응원했던 노장 농구팬입니다. 물론 필력이 모자라고 사이트 문화에 익숙치 않은지라 망설여지지만
이 사이트 운영자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또 최근의 연대농구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적고 싶어 뒤늦게 가입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기에는 휴교령에 의해 집에서 쉬는날이 많고 또 놀이 문화도 거의 없는 시기여서
연고전과 같은 스포츠 응원문화에 빠진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중 한명이였습니다.그 때는
정기전이 뿐만 아니라 비정기전에서도 표를 구하기가 어렵고 ( 이는 농구는 물론 야구, 축구, 아이스하키도
해당),때문에 경기장에는 어떠케든 입장해보려고 경기장 창문을 넘는 등의 작은 소동이 자주 벌어지던 시절이
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절을 뒤로 하고, 다행히(?) 고대농구의 전성기 동안은 전방에서 현역군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여전히 열혈팬으로 경기장을 찾았으나 점점 경기장을 찾는 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보여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비단 이러한기류는 6,70년대 최고의 인기스포츠이던 고교야구가 프로야구의 탄생과 함께
급격히 쇠락해갔듯이 프로야구, 프로축구의 등장, 중대농구의 전성시대 도래와 연고대농구의 위축,그리고 오락문화의
대중화 등에 그 원인이 있지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미 연대농구의 광팬이 되어버린 저는 지방에서 10년, 서울근교에서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관이 가능하면 연고전이 아니더라도 시간을 만들어서 경기장을 찾고, 어려우면 tv로 녹화해 보는 열성속에
90년대 황금시절을 보며 행복했고, 프농의탄생과 대농의 인기하락을 안타깝께 지켜보며, 연대농구의 부활을 염원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 문화에 약한 편이라 겨우 4년전쯤에 우연히 점프볼 사이트의 존재를 알게되어 아마농구의 정보에 목마른
저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고 매일 사이트에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전 김만진 감독이
경희대의 아성을 허물지 못하고 또 정기전에서 대 역전패를 당하며 쓸쓸히 퇴진할때, 개인적으론 호감이 가는 감독이고
또 이종현과 같은 대어들의 진로가 결정되는 시기어서 무척이나 우려되는 심정이었네요. 그러나, 게시판등에서는 새로운
감독 후보에 대한 찬반토론이 역대 어느때보다 뜨겁게 진행되어 왔는바, 개인적으로는 비록 경력이 일천하더라도( 최희암
감독의 경우에도 지도자 경력이 거의없던걸로 알고 있슴) 머리도 좋은것 같고 연대농구의 인기회복에도 도움이 될것 같아
우지원에 호감이 있었으나, 정감독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열혈 광팬들의 지지에 힘입어(?) 정감독으로 결정되었고
저로서는 정감독이 잘해주길 바라며 지금까지도 응원하고 있슴니다.
그러나, 요즈음 정감독의 사정은 3년전 김감독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것 같아 개이적으로 안타깝고 우려됩니다.
실상 저는 최근 정감독의 처지가 이해되는 일인입니다.이도 순전히 개인적 소견이지만, 현재 고대의 전력은 고대
역사상 최강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슴니다. 특히 그중에서 이승현과 이종현의 트윈타워 조합은, 과거 언터쳐블 대학팀들이
대부분 막강 트윈타워를 보유했듯이( 구체적으로 80년대 김유택-한기범 조합으로 허재가 입학하기전에도 대학최강으로
군림했고, 정재근-김재훈, 김재훈-서장훈으로 이어진 연대 최강시절, 송영진-김주성, 윤호영-오세근 으로 이어진 중대
최강시절) ,역대급으로서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고대를 넘어선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예로, 경희대 역사상
최강멤버로 구성된 작년의 경우 대학 최고 명장이라는 최부영 감독도 엠비씨배,대학리그 챔프전, 프로 아마최강전 등에서
고대의 벽을 넘지 못했슴니다. 그런데 그와중에서도 비록 비정기전이지만 정감독은 몇번의 승리를 가져온 것 만으로도
저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슴니다.
올해 경기에서도 비록 3패를 당했지만 나름 선전한 게임들이고, 또한 감독의 역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스카웃 (특히
16학번) 의 중요성을 감안할때 개인적으로는 정감독이 올 정기전 결과에 관계없이 내년정기전까지 두고 봤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승현이 빠진 농대부터는 전세가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너무 장황하게 인사드리고 말았네요. 아뭏튼 연대농구를 아끼는 모든 팬들의 염원에 부응하여 다시 비상하는 독수리들을
보게되기를 기대하며, 다시한번 이 카페 운영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이스하카 선수 아빠이신 쫑하키대디님의 글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9월22일을 위해서 준비 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 전력이 조금 더 좋고 우리가 잘 한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 선수들은 잘 압니다
우리는 그 날 최선을 다해 우리의 모든것을 펼칠 뿐 입니다
우리 의 상대는 고대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 뿐 이라는 것 을 잘 압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고 이기도록 최선을 다할 것 입니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멋진 시합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과 격려를 부탁 드리면서~~연세 아이스하키를 위하여 ~~
첫사랑의 설레임처럼|독수리 농구 이야기
언제나 가슴 떨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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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바쁜 일이 있어 눈팅도 제대로 못하다가 이제서야 여유 좀 찾았습니다. 저 아래에 보니 노란하늘님도 예전 사진을 올리셨던데, 저도 간만에 3장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제가 연대 농구를 가장 편하면서도 즐겁게 봤던 때가 93~94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간 정재근, 오성식,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등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서장훈이 가세한 덕분이죠. 잘 아시다시피 연세대생으로서의 첫번째 대회였던 MBC 배 대회부터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고 (그 유명한 인터뷰,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뭐, 미국에서 왔다던데 상대 해보니 별 거 아니고..."), 그해 정기전에서 71:60으로 완파한 후 응원석에 올라가 서태지의 '하여가' 선율에 맞춰 간드러지게 춤을 췄었죠. 몸 놀림이 참으로 유연했습니다. 바로 그 해의 정기전 안내 책자입니다. 1993년에는 9.24, 25 양일간 열렸었군요. 역시나 농구부 사진입니다. 그간 본가에 가지 못해서 한신님이 요청하신 다른 운동부 사진은 못찍어 왔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상민 부상 시 잘 메꿔주었던 양 김(김도완, 김성헌)씨가 보이네요. 어느 농구대잔치 경기였던 것 같은데, 연이은 부상으로 엔트리를 채울 수 없어 깁스(?)한 김도완 선수가 마네킹처럼 코트 위에 서 있었던 안타까운 모습도 기억납니다. 김재훈 코치는 그때부터 코치스런 성숙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군요. 막내긴 해도 서장훈 포함, 선수들 모두 상당히 앳되 보이는데 말이죠. 박승일 선수도 보이고, 노란 머리의 터프 가이 이민우 선수도 보입니다. 아프리카의 석주일도 있고요. 공식 경기에선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전, 이종호 선수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습니다. 제가 서베이 연구회라는, 지금은 폐쇄된 동아리에서 활동했었는데, 동아리 선배 중에 공오친(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군요) 활동을 병행한 체교과 선배가 계셨어요. 일반 학생이지만 농구 특기로 입학한 분이죠. 그 형이 저만 보면 했던 레퍼토리가 "내가 지금도 체육관에 같이 있다 왔는데, 서장훈도 그렇지만 이종호도 장난이 아니거든? 그 친구를 주목하도록 해."였어요. 하지만, 주목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혹시 이종호 선수가 연대에서 뛴 공식 경기를 보신 적 있는 분은 말씀 좀 해주세요. 대경상고 시절 모습도 좋고요. 과연 어떠한 역량을 보였는지... 사진을 보니 다시금 궁금증이 증폭되는군요. 최희암-유재학 vs. 박한-임정명 박준영이 잘 안풀려서 그렇지 고대 멤버도 저 정도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고대 선수단 단체 사진, 칙칙한 게 고대 특유의 분위기와 참으로 잘 어울리네요. |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청송에서 불어오는 그 시원함에 정신을 차려봅니다. 정기 연고전이 얼마 안남았네요 학창시절 연고제라 칭하고 언론은 연고전이라는 단어를 썼던 기억이 나네요 요새는 모드 연고전이라는 단어를 쓰는것으로 보아 운동부의 대결로 시선이 모여지고 저 역시 그런시각이 더 강합니다. 이번 연고전 기대됩니다.정성호 박인태 최준용 천기범 허훈 안영준 김진용 김훈등 모두가 비상하는 기운기 가득하길 .. |
NC 다이노스 나성범 선수 우리대학교 야구선수를 떠올린다면 바로 ‘나성범 선수’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지난 2011년 정기연고전(아래 정기전) 야구경기를 승리로 이끈 주역! 1학년 때부터 고려대(아래 고대)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고 4학년 때는 2회부터 등판해 경기를 마치고 승리투수가 된 정기전의 역사적 인물. 지금은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에서 뛰고 있는 우리대학교 동문 나성범 선수(체교·08)를 만났다. Q. 정기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Q. 정기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임하는 각오는 어땠는지? Q. 많은 고교선수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보다 바로 프로에 지명되는 걸 선호하고 있는데, 대학생활이 나성범 선수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안양한라 김기성 선수 대학 빙구의 최정상답게 우리대학교 빙구부는 매년 실력 있는 선수를 배출하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현재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생활 10년차로, 다가올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활약을 기대 받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우리대학교 빙구부 출신 안양한라 김기성 선수(체교․ 04)다. 정기연고전(아래 정기전)은 물론 각종 대학리그에서 활약하며, 졸업 후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김기성 선수를 만났다. Q. 첫 정기전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Q. 정기전 외에도 고려대와의 짜릿했던 승부가 있었나? Q. 우리대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가장 즐거웠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Q. 당시 우리대학교 빙구부의 훈련은 어떻게 진행됐나? Q. 지난 8월, 소속팀이 우리대학교와 고려대와 각각 연습경기를 치렀다. 전력총평을 내린다면? SK Knights 문경은 감독 1990년대는 말 그대로 농구의 시대였다. 농구가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그 시절,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건 다름 아닌 우리대학교 농구부다. 당시 이상민(경영·91), 우지원(법학·92), 문경은(체교·90)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면서 농구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우리대학교 농구부. 영광의 시대를 보내고 현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SK Knights 문경은 감독을 만나봤다. Q.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는데, 기억에 남는 정기전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Q. 당시 정기전에서 농구 종목의 위상과 농구부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는가? Q. 현재의 정기전을 지켜보고 있는가? Q. 문경은에게 정기전, 그리고 연세대란? Q.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연세 춘추에서 복사해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