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윤음
척사윤음(斥邪綸音)
조선 후기 조정에서 국왕의 이름으로 반포한 천주교 배척의 공식 문서이자 효유령(曉諭令), ‘척사’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준말로 ‘척사귀정’(斥邪歸正)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학 즉 천주교를 배척하고 모든 백성을 정도(正道) 즉 유학의 가르침과 전통 사회 질서 안으로 돌아오게 하라는 뜻이다.
19세기 초 이래 천주교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공식적인 척사윤음 즉 박해령을 내렸는데 이 중에서 ‘척사윤음’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은 1839년 10월 18일(양력 11월 23일) 기해박해(己亥迫害)의 와중에서 반포된 <기해척사윤음>과 1866년 8월 3일(양력 9월 11일) 병인박해(丙寅迫害)의 와중에서 반포된 <병인척사윤음>이 있으며, 이들과 달리 1881년 7월 10일(양력 7월 5일)의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와 각처 유생들의 척사 상소 결과로 반포된 <신사척사윤음>(辛巳斥邪綸音)이 있다. 한편 신유박해(辛酉迫害) 말기인 1801년 12월 22일(양력 1802년 1월 25일)에 반포된 <(신유)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도 척사윤음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며, 넓게는 박해 때마다 내려진 갖가지 천주교 배척의 유시(諭示)들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신유·기해·병인·신사 윤음 등 네 가지만을 척사윤음으로 꼽는다.
우선 <토역반교문>은 대제학 이만수(李晩秀)가 제진(製進)한 것으로, 유교의 근본 이념을 밝히고 신유박해의 상황과 결과 및 당위성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로 <기해척사윤음>은 김교제학 조인영(曺寅永)이 제진한 것으로, 태조 이래의 유학 숭상과 교서·격언 등을 바탕으로 위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천주교 배척을 강조한 것이다. 세 번째로 <병인척사윤음>은 병인박해는 물론 그 와중에서 발생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사건 때문에 반포된 것으로, 예문제학 신석희(申錫禧)가 제진한 위정척사의 윤음이다. 그리고 네 번째의 <신사척사윤음>은 천주교 박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 아니라 각지에서 올라오는 유생들의 척사 상소를 일시적으로 무마하기 위해 고종의 명으로 반포된 것이지만, 서양 세력과 천주교를 배척하는 내용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중에서 <기해척사윤음>과 <신사척사윤음>에는 한문으로 된 한문 뒤에 한글 역본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는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척사귀정의 원칙과 의미를 알려 주려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척사윤음들은 신사년의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천주교 박해의 법령 구실을 하였다.
출처: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