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주류 음악이였고 제도의 한 복판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영향 속에서 변화를 시도한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헤비메탈이였다.
헤비메탈의 변신
70~1980년대 초반까지의 헤비메탈의 인식은 악마적이고 반항적인 무거운 분위기였다면
마이클 잭슨처럼 주류로 가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LA에서 첫 시도해서 이것을 <LA 메탈>이라고 부른다.
LA 메탈의 시도
마이클 잭슨이 주류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을 때, 헤비메탈 음악이 팝의 스타일과 상업적인 경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 LA건스, 모트리클루, 포이즌 등
- 헤비메탈은 왜 불량한 20대 남자들만 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헤비메탈의 개념의 붕괴를 시도했다. 여자와 10대 계층도 헤비메탈을 들을 수 있는 상업적인 스타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변신의 슬로건이었다
벤 헤일런(Van Halen)
- 1984년 <JUMP> 발표하며 이 그룹을 이끈 에드워드 벤 헤일런(Van Hale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차지하게 된다. 이 곡은 정통락이 아니라 신시사이저로 누구나 듣기 편안한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을 가리켜 에드워드 벤 헤일런은 <팝 메탈>이라고 칭했다.
마이클 잭슨의 <Beat it>(1982)의 전주부분에 흐르는 멋진 기타 연주는 바로 에드워드 벤 헤일런이였다.
이 기타 연주로 인해 락적인 요소 가미하였다.
이 음악을 통해 마이클 잭슨은 <락+흑인 음악+백인 음악>을 완벽하게 크로스 오버를 수행하였다.
팝 메탈
- 무거운 중금속의 사운드가 아니라 팝 금속의 음악
- 누구나 듣기 무난한, 그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음악으로 변화
- 1980년대 헤비메탈이 상당히 상업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함
- 헤비메탈 하드코어들의 비판을 받음
- LA메탈, 팝 메탈의 팬들이 굉장히 많다
- 벤 헤일런, 데프 레파트(Deaf Leopard), 머트리 크루 등 다수의 그룹
본 조비의 등장
본 조비의 등장으로 팝메탈의 기운이 절정에 다다르며, 헤비메탈도 1980년대의 분위기 속에서 결국 상당히 팝적으로 변화하였다.
1980년대 음악의 상업화
- 주류 음악의 팝(Pop)화 현상: 심지어 헤비메탈마저도 팝 메탈로 만들어 버리는 상업성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
→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1970년대 등장한 펑크 음악과는 너무나 다른 음악이었다
마이클 잭슨 음악에 대한 평가
- 호주의 유명한 잡지 『맥클리』지의 평가
“19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의 시대였다. 1960년대의 비틀스,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 등은 시대를 가른 팝 스타였으나 그들은 정치적으로 자본의 흐름에 도전한 세대였다.
반면 마이클 잭슨은 1980년대 레이건 시대 미국의 모습과 너무도 잘 맞았다.“
미국의 <레이건 시대>는 보수 통치의 시대였고, 영국의 대처 역시 보수적 통치의 이데올로기였다. 마이클 잭슨은 흑인이면서도 조금도 흑인의 반항적 모습은 없었다.
마이클 잭슨은<Beat It>으로 술과 마약 퇴치 노래 통해 공공선 기여했다하여 레이건으로부터 인본주의상 받았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아주 정돈된 이미지 보수적 통치의 레이건 시대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잭슨은 흑인임에도 ‘펑키’라는 단어보다 ‘젤리’라고 말했으며 여호와의 증인으로 기도했으며 담배와 술 마약은 입에 대지 않았다.
주류 음악의 변화
- 1980년대 주류 음악: 팝화 현상과 상업적 흐름
- 이런 흐름의 축약판: 필 콜린스(phil collins) <천국에서의 하루 Another day in paradise>
임진모의 '서양음악-락'에서 발췌
첫댓글 한시대를 풍미한 팝의 영웅 아니 황제였던 그도 어쩔수 없는 인간이였기에 나름 많은 고통과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가 버렸네요..허무하게~~ 사람의 인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게요~~ 그래도 음악은 남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