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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파미르종주기- 파미르고원의 분수령, 총령
(1) 총령(蔥嶺)은 과연 어디인가?
이제 우리의 <파미르답사기>는 실크로드의 최대 관문인 파미르의 분수령에 해당되는 총령1)만을 앞에 남겨두고 있다. 그럼으로 도대체 '총령'이란 정확하게 어떤 산의, 어떤 고개를 가리키는 것인가? 라는 키워드로부터 먼저 정리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총령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애매모호하기 때문인데, 심지어는 '총령=파미르' 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이는 지금껏 총령이 어느 고갯길을 가리키는지 깔끔하게 답변해준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비롯된 상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총령이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물론 "눈물의 씨앗이라고 답하겠어요" 가 아니라, ㅎㅎ "총령은 한 곳이 아니고 여러 곳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말하자면 파미르고원을 어떤 루트로 넘느냐에 따라 넘는 사람마다 ‘총령의 좌표’는 달라질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먼저 인류 문화사상 처음으로 이 고개를 넘으며 기록을 남긴 5세기 초의 법현율사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법현이 넘은 총령은 과연 어디일까?
이곳에서[갈차국(竭叉國)] 서쪽으로 북천축국으로 향해 한 달을 가서 마침내 ‘총령’을 넘을 수가 있었다. ‘총령’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눈이 쌓여 있었고 또한 독룡(毒龍)2)이 있어서 만약 그것이 진노하게 되면 혹독한 바람과 눈비가 몰아쳐 모래와 자갈이 마구 날리므로 이를 만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온전할 수가 없다.
법현은 천축에서 돌아올 때는 바닷길을 택하였기에, 갈 때만 파미르를 넘었는데, 그는 전통적인 '서역남로'의 호탄을 경유하여 타쉬쿠르간에서 총령으로 올라갔다. 구체적인 그의 루트를 추적해보면 총령 다음에 타력(陀歷)3)이란 곳과 인더스 강에 대한 기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의 루트는 <#9-3 와칸남로>의 와흐지르 고갯길을 넘어 와칸주랑으로 들어간 뒤 부로길 마을 근처에서 좌회전하여 힌두쿠시 산맥을 넘는 <#9-4 다르코트 고갯길)를 택해 인더스계곡의 옛 소발율국. 즉 길깃트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 법현의 총령은 바로 ‘와흐지르(瓦赫吉爾, Wakhjir Pass, 4,923m)’ 고갯길이 확실하다. 이 고개에 대하여는 부연설명이 필요함으로, 이 글의 후반부에 자세한 것을 밝히기로 하고, 우선 다음 타자로 바통을 넘긴다.
▼ 법현의 『불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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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미르 횡단지도
노란색선이 남로이고 주황색선은 북로이다.
법현 다음으로 파미르를 넘은 6세기의 송운과 혜생의 루트는 좀 이색적이다. 송운일행의 길은 대체로 법현처럼 전통적인 대상로인 <#9-3 와칸남로>를 통해 총령을 넘어 와칸주랑으로 나아가는 루트로 나아갔지만, 돌연히 행로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무슨 일인가하면,「송운행기」의 순서상으로는 송운이 현 아프간 북쪽의 에프탈(Ephthal)4)까지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우회하여 총령을 다시 동서로 횡단했다는 식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여행기를, 지도를 앞에 두고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읽어 보면, 어쩐지 송운일행은 와칸주랑 부근에서 두 방향으로 나누어서 위(魏)나라의 사신자격인 송운은 그대로 남로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아프간 발흐로 나아갔다가 후에 다시 스와트계곡의 오장국(烏場國), 현 우디야나(Udyana)로 간 것으로 보이고, 한편 순수한 구법승 혜생은 송운과 헤어져 와칸계곡의 부로길 마을에서 좌회전하여 전통적인 천축로(天竺路)인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발화국(鉢和國)5), 길깃트를 경유하여 우디야나로 먼저 들어가 있다가 후에 송운과 다시 합류했을 것으로 보인다.6) 이에 대한 원문을 우선 읽어보자.
8월초에 한반타국 경계로 들어가 서쪽으로 간 지 엿새 되어 ‘총령산’에 올랐다. 다서 서쪽으로 사흘 가서 ‘발화국’으로 들어갔다.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험준한 길은 변함이 없었다. 국왕이 머무는 산은 그대로 성이 되었다. 이 나라의 남쪽 경계에 커다란 설산이 있는데 아침에는 녹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얼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옥봉과 같았다.
한반타국은 현 중국 신강자치구 서쪽 중심지이며 현재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카람코람하이웨이[KKHy]7)의 시발점으로 유명한 타쉬쿠르간(塔什庫爾干,Tashkurghan)8)이고 발화성은 역시 카람코람하이웨이의 파키스탄 거점인 길깃트이니 그들의 총령 역시 와흐지르 고개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 구절에서 길깃트의 남쪽 설산, 아마도 카라코람 연봉을 은봉(銀峯) 옥봉(玉峯)으로 묘사한 대목은 참으로 시적이다.
▼ 송운행기
(2) 아! 와흐지르(瓦赫吉爾, Wakhjir Pass, 4,923m)여!
그럼 위에서 살펴본대로, 법현이나 송운일행처럼, 과거 천수백 년 동안 수많은 순례승들과 대상들이 모두 ‘와칸남로’ 만을 통해 천축으로, 서역으로 그리고 중원으로 넘나 다녔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많은 실크로드의 갈레길 중에서 가장 짧고 덜 험준하고 위험부담이 비교적 적은 길이 바로 <총서 부록 #9-3번인 ‘와칸남로’>라는 사실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이용빈도가 가장 많은 루트가 바로 남로라는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9-2번 ‘와칸북로’>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이름이 들먹여진 다른 루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질문을 즉석에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왜냐면 고전의 원전이나 현대의 국내, 외적인 자료들도 모두 고개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천 수백 년 동안이나 그냥 막연이 “총령을 넘어서”라는 식으로 판에 박힌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얼버무려 왔기 때문이니까…
필자도 오랫동안 실크로드를 총서를 번역하면서 수많은 지도를 참조하여 이른바 <파미르 횡단도>를 수십장이나 직접 그려보기 전까지는 이 문제는 필자도 영 자신이 없었을 정도로 어려운 난제이기는 했다.
각설하고,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이 루트에는 일찍부터 대상의 무리들이 삼삼오오 줄을 이었고 그 틈새에 섞이어 5세기 법현율사를 비롯하여 6세기 송운일행 같은 유, 무명의 ‘초기’의 입축구법승들도 넘나들게 되었다. 여기서 ‘초기’를 강조함은 ‘후기’의 총령은 다른 고갯길이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으니까...
그럼 우리 <파미르종주기>의 주행방향인,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칸남로의 루트를 따라서 우리도 여러 총령을 차례로 넘어가보자.
역시 랑가르 마을 앞에서 갈라지는 갈레길에서 동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넓은 와칸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계곡길을 따라 와칸주랑 속으로 깊숙이 올라가면 아프간령 와칸계곡의 중심 마을인 ‘부로길-이-사르하드(Broghil-e-Sarhad)’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이 마을이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고선지장군의 격전지인 그 유명한 연운보(連雲堡) 요새인데, 여기서 남쪽에 솟아 있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로 내려가는 전통적인 천축로(天竺路)9)가 갈라진다.
다시 부로길 마을에서 달리즈(Daliz Pass, 4,767m)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길을 재촉하면 부지군바드(Buzi Gunbad) 근처에서 하천은 두 갈레로 갈라지는데, 그 한 갈레는 와칸천의 발원지인 차큐마큐틴 호수(Chaqmaqtin Lake or Qarajilgha)호수로 올라가고 또 한 갈레는 와흐지르 천(川)을 따라, 이 시내의 발원지인 파미르고원의 분수령에 해당되는 와흐지르 고개의 빙하지대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마침내 숨 가쁘게 정상으로 기어오른다. 바로 사리콜 산맥(Sar-i-kol Range, 色勒库尔)10)의 또 하나의 분수령인 해발 4,923m의 와흐지르 고개이다. 어찌 보면 대표적인 ‘총령’이라 부를 수 있는 고개중의 고개이다.
과거 천수백여 년 동안, 말잔등에 비단 꿈을 가득 싣고 수많은 대상들과 구법승들이 말방울, 낙타방울을 울리며 넘나다녔을 이 고갯길에 진짜 ‘야생 파[野蔥]’가 자라는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파 마루턱’ 이라는 우리식 이름에서 '총령(蔥嶺)'이란 한문식 이름이 붙혀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마치 설화 같은 이야기는 지금도 바람결에 들려오고 있다.
▼ 와흐지르 계곡
▼ 파미르 유목민들의 유르트
▼ 광활한 파미르 고원
▼ 와흐지르의 고갯길을 지켰던 옛 망루
이 고갯길을 남나든 사람이 어찌 한 두 명이겠느냐마는, 그래도 이름 몇 자 기억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기존의 구분으로는 중세 베네치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파미르를 넘은 루트가 이 남로로 알려졌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그의 루트는 북로에 해당된다고 생각되기에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 타자에게 바통을 넘긴다.
근대에 들어와서 첫 발길을 남긴 이는 뜻밖에도 예수회 선교사였다. 베네딕트 고즈(Benedict Goëz)는 1602~1606사이에 선교의 목적으로 와칸주랑을 가로질러 중국으로 들어갔고, 다음으로 19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파워게임 시절인 1868년 인도의 측량기사들이, 1874년에는 영국의 대위 고든경(T.E. Gordon)이 아무다리아의 발원지를 찾아서 조르쿨호수를 탐험하고 수채화 한 장을 그린 다음 이 고갯길을 넘나들었다.
1891년에는 탐험가 영허스밴드(Francis Younghusband)가, 그리고 1906년 5월에는 둔황학의 비조인 아우렐 스타인(Aurel Stein)이 중앙아시아 탐험을 위하여 백 마리의 노새f를 데리고 이 고개를 넘어갔고, 1947년에는 틸만(H.W.Tilman)이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고개를 넘었다.11)
▼ 둔황학의 개척자 아우렐 스타인의 탐험대
그 뒤 1895년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승인에 의해 아프간과 중국 간의 국경선이 정해졌지만 두 나라는 1963년까지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인적이 완전히 끊긴지 1백 년 동안 와흐지르 고개는 잊혀 갔고 현재는 옛 도로의 흔적마저 사라진 상태라고 하는데, 이는 국경을 마주 대하고 있는 중국과 아프간의 관계악화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현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시절인연만을 기다릴 뿐…
▼ 아프간 와칸계곡 지도
(3) <#9-2, 와칸북로>의 사리코람(Sarikoram, 5,558m) 고갯길
‘와칸북로’는 우리 <파미르종주기>를 따라 가는 진행방향인, 파미르의 서쪽을 기점으로 보면, 와칸주랑의 분기점인 랑가르(Lyangar) 마을 인근에서 와칸천을 따라가는 남로와 갈라진다. 그 다음 파미르천의 동북쪽 계곡길을 따라 아프간과 경계를 이루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대용지인 조르쿨 호수를 돌아 ‘대 파미르고원’을 횡단하여 사리콜(Sar-i-kol)산맥의 분수령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나아가는 루트를 가리킨다.
이 북로는 이미 먼저 번 <고선지루트 1만리>편에서 살펴본바 있듯이, 7-8세기 당시 실크로드의 주요 통로였던 와칸남로 대신에 일종의 우회도로로 개발된 성격이 있는 루트이다. 말하자면 남로 상의 요새들의 상황에 따라서, 비록 민간인 신분의 대상들이나 입축구법승이라 하더라도 좀 더 안전한 루트가 필요했기에 개척된 루트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당시의 순례승인 현장법사와 혜초사문 등은 남로 대신 북로를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타 갈레길인 <9-1, 4, 5, 6번> 도 아마도 이런 유사한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루트가 개발되었을 것으로 비정되지만….
남로와 쌍벽을 이루었던 북로를 이용하여 총령을 넘은 구법승이 어찌 한 두 명이겠냐 마는, 현재 확인된 기록상으로 현장과 혜초뿐이다. 그런데 그들 역시 총령의 정확한 좌표와 이름을 찍어주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들이 파미르천, 즉 조르쿨 호수에서 출발하여 바로 총령을 넘어 석두성이 있는 타쉬쿠르간으로 갔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 옛 총령진 타쉬쿠르간 입구의 표지판
▼ 타쉬쿠르간으로 가는 도로에서 바라본 사리콜산맥의 설봉
현장법사가 총령을 넘은 구절은 그렇게 간단하다. 하기야 현장의 구절대로 오직 얼음과 눈뿐인 해발 5천m의 고산지대에서 아마도 산소결핍으로, 영양실조로 고산병에 걸린 채, 다만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5백리 길을 걸어갔을 것이니 제 아무리 천하의 기록광(記錄狂)이라는 현장법사라도 무엇을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이 파미라천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산을 올라 험한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없고 오직 얼음과 눈뿐인데 이곳으로 5백여 리를 가다 보면 걸반타국에 도착한다. 12)
혜초의 기록은 현장보다 더 간단해서 싱거울 정도이다. 당연히 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또 호밀국에서 동쪽으로 15일을 가서 파밀천(播蜜川)을 넘으면 바로 총령진에 도착한다.
현장과 혜초의 기록이 다하였으니, ‘동남쪽’ 그리고 ‘동쪽’이란 한 마디를 길라잡이 삼아 온갖 지도를 뒤지는 수밖에… 조르쿨호수에서 그쪽 방향으로 난 고갯길은 대체 어디일까?
대, 소 파미르와 중국 령 타클라마칸 사막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맥은 사리쿨(Sar-i-kol Range)이다. 그럼으로 북로의 분수령에 해당되는 총령은 이 산맥의 여러 고갯길 중의 하나일 것이고 ‘동남쪽’ 또는 ‘동쪽’이란 힌트로 보면 지도상의 사리코람(Sar-i-koram, 5,558m)고개가 가장 유력한 후보에 속한다.
그 외에도 제2, 제3의 후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사리콜산맥의 제일 북쪽에 있는 쿨마(Kulma Pass, 闊勒買山口,4,363m)는 이미 <부록 #9-1 쿨마패스길>로 꼽은 바 있으니 당연이 북로길의 분수령은 사리코람 고개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말이 나온 김에 필자도 통과해보지 못한 이 쿨마고개에 대해 알아보자. 이 고개 역시 인접한 두 나라국민-중국인과 타지크인 만에게만 열려있고 외국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고개인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마도 곧 외국인에게도 개방될 것이라고 하니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쪽 입구는 타쉬쿠르간에서 13km 떨어진 카라수[Karasu, 卡拉苏口岸]체크포인트이고 타지크쪽은 파미르고원의 거점지이며 파미르하이웨이의 경유지인 무르갑(Murghab)에서 80km 떨어져 있다.
▼ 쿨마고개의 중국측 검문소, 언제 쯤이나 저 철통같은 관문을 통과하여 파미르고원으로 직접 올라갈까나?
참, 마지막으로 현시점에서 남, 북로의 차이점을 하나 더 꼽자면 남로가 현재 아프간과 중국 간에 연결된 소통로라면, 북로는 타지기즈스탄과 중국 간에 연결된 고갯길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7, 8세기 당시의 입축구법승들의 시대가 가고 중세 시대가 되었을 때 베네치아의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와칸주랑과 북로길을 경유하여 파미르를 통과하여 사리콜산맥의 쿨마고개를 넘어 타클라마칸 서쪽 끝의 거점도시인 카슈가르(Kashgar/喀什)14)를 거처 쿠빌라이 칸이 있는 중원 땅으로 들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닥흐샨[이스카심]을 뒤로 하고 동북쪽으로 12일을 동안 [판지]강을 따라 올라 갔다. 이 강이 꿰뚫어 흐르는 지방은 바닥흐샨 왕의 형제의 나라로 인가가 많은데, 주민들은 모두 이슬람교도로 용감하다. (중략) 이 작은 나라를 뒤로 하고 동북쪽으로 3일 동안 산을 올라가면 세상에서 제일 높다는 고원에 이른다. 거기에는 두 산 사이에 호수가 있으며 그곳에서 흘러나온 강은 아름다운 목초지가 있는 속으로 흘러간다.
사나운 짐승도 아주 많은데, 그중 아주 큰 양15)의 뿔은 1미터 이상이 될 정도로 크다. 늑대가 많아 야생면양을 잡아먹으므로 그 뿔이나 뼈가 많이 보이며 눈이 내렸을 때의 이정표로서 길가에 이것들로 큰 무덤을 만들어두었다.
이 고원은 ‘파미르’라고 하며 넘는 데에 12일이 걸린다. 인가도 없고 푸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막이 펼쳐지며 여행자는 필수품을 전부 지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고장은 매우 높고 추우므로 하늘을 나는 새의 그림자조차 없다. 추위가 심해지면 불도 훨훨 타지 못하며 열도 내지 못하여 요리도 잘 되지 않는다. 이로부터 길은 동북쪽으로 향하는데, 40일간이나 언덕과 계곡을 건너고 강이나 황야를 지나는 여행이 계속된다. (중략) 카슈가르는 엣날에는 독립된 왕국이었으나 지금은 대칸국에 속해있다.
마르코폴로는 그냥 ‘파미르’라고만 하고 구채적인 고개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위의 문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두 산 사이에 있는 호수, 즉 조르쿨을 거처 동북쪽으로 40일 동안 계곡과 황야를 건너 총령진 타쉬크르간이 아닌 카슈가르로 입성한 것이라면 그들이 넘은 고개는 남쪽의 사리코람이 아니라 북쪽의 쿨마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 「동방견문록」 표지
▼ ‘마르코 폴로 면양’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파미르의 대형 양의 사냥광경
1) 한편 범어에서의 파미르(pamir)는 '황야'를 뜻하고, 페르시아어인 바미둔야(Bam-i-dunya)는 '평평한 지붕'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세계의 지붕’ 뜻과 어원은, 범어의 ‘음’에 페르시아어의 ‘뜻’이 혼용되어 고착화 된 것으로 보인다.
파미르는 글자 그대로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며 힌두쿠시, 카라코람, 히말라야, 쿤륜, 티엔샨 산맥 등 아시아의 거대 산맥들을 거느리고 있는 고원이다. 지리학적으로 파미르고원은 ‘8대평원’으로 나누어진다. 예부터 파미르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여러 가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부록을 참고 바란다.
2) 진짜 생물학적인 실제 용이라기보다는 고산의 예측 불가한 일기변화를 법현은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아작도 용이 존재하고 있는데, 천 수백 년 전에 어찌 존재하지 않았으리..
3) 인더스의 본류가 아닌 지류의 하나인 키샨강가(Kishan-Ganga) 기슭에 작은 마을로 현 두란(Duran으로 비정되고 있다.
4) 고대 월지족의 후에로 백흉노(白匈奴) 또는 엡탈리트, 갈달, 읍달, 하이탈, 타프탈레 등으로 기록된 유목민족으로 5세기 경부터 유라시아에서 큰 세력을 이루어 6세기 초에는 헬레니즘을 계승한 마지막 국가인 토카라국[吐火羅國]을 멸망시키면서 중앙아시아에 정착하여 동쪽으로는 호탄, 서쪽으로는 사산조페르시아 까지 미치는 판도를 형성하여 인도, 중국, 페르시아 그리고 남러시아를 잇는 교역루트의 차지함으로써 당시 실크로드의 실권을 장악하다가 560년경 페르시아와 연합한 돌궐에게 멸망되었다. 송운의 에프탈에 대한 기록은 사서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5) 발화국은 분명 현 파키스탄 북부의 소발율, 길깃트이다. 그러나 기존 일부 역주본에서는 “발화국을 『대당서역기』12권의 달마실철제국 ” 으로 비정하고 있으나 이 구절은 수정해야할 부분이다. 이는 송운일행이 파미르에서 바로 「송운행기」의 기록 그대로 와칸남로를 따라 에프탈, 즉 현 아프간의 발흐로 갔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비롯된 오류이다. 그래서 송운과 혜생이 행로를 둘로 나누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가진다.
6) 필자의 개인적인 가설로, 구체적인 내용은 졸저<실크로드 고전여행기 총서 5권 「송운행기」2장> 에 자세하다.
7) 파키스탄의 길깃트에서 쿤제랍(Khunjerab, 4,730m)고개를 넘어 중국령 타쉬크르간과 카슈가르에 이르는 총 700㎞의 도로를 말하는데, 이 도로는 1986년부터 외국인에게도 열렸다. 이 ‘국제버스’를 타면 타쉬쿠르간[竭盤陀; 石城; 蔥嶺鎭]에서-(카슈가르는 290㎞; 쏘스트 215㎞; 길깃트 410㎞)- 입,출국 수속을 하고 다음 날, 상대국 쪽 버스를 바꿔 타면 된다.
8) 대개의 여행기에서 나타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총령진으로, 현장은 갈반타(羯盤陀)로, 법현은 갈차국(竭叉國])으로 부르면서 “갈차국에 이르러 혜경 등과 다시 만났다. (중략) 이 나라는 산속이고 추운 나라여서 다른 곡식은 나지 않고 오직 보리만이 생산된다. ”라고 기록하였다.
9) 넓게 보면 실크로드이지만, 서쪽의 서역으로 향하는 루트가 주로 대상로였다면, 인도쪽으로 향하는 길은 구법로로 주로 사용되었기에 구분된 명칭이다.
10) The Sarikol Range (Chinese: 色勒库尔山脉; pinyin: Sèlēikù'ěr Shānmài; Tajik: Рашти Куҳи Сарикол; Persian: رشته کوه سريكال or رشته کوه سرقول, Rashte Kūh-e Sarīkāl) is a mountain range in the Pamirs on the border of Tajikistan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range divides Tajikistan's Gorno-Badakhshan Autonomous Province and China's Xinjiang Uyghur Autonomous Region and it runs parallel with the Muztagh Range to the east. The range extends 215 miles (346 km) from the Markansu River in the north to the Beyik Pass in the south. Its average elevation is roughly 16,500 feet (5,000 m) and the highest point in the range is Mount Lyavirdyr at 20,837 feet (6,351 m). The range’s drainage basin feeds both the Amu Darya and Tarim River. The range is composed of schist, granite, and gneiss.[1]
The name Sarikol has also been used to describe the local people who are historically known as Sarikolis; the local Sarikoli language; and Tashkurgan Town, which was historically known as Sarikol.
11) http://en.wikipedia.org/wiki/Wakhjir_Pass/ There is no road across the pass. On the Afghan side the nearest road is a rough road to Sarhad-e Broghil, about 100km from the pass by paths. On the Chinese side there is a jeep track about 15 km from the pass, which leads through the Taghdumbash Pamir to the Karakoram Highway 80 kilometres away. In the summer of 2009 the Chinese Ministry of Defence began construction of a new road to within 10 kilometres of the border, for use by border guards.
12) 예부터 파미르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여러 가지 있다. 우선 와칸계곡에서 총령진에 이르는 길은 아비판자(Ab-i Panja) 강 남안을 따라 동행하는 길인데, 칼라판자(Kala Panja) 부근에 이르면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파미르 강과 마주친다. 여기서 길이 물길을 따라 두 갈래로 나뉘는데, 남도는 아비판자 강을 따라 동행하여 와크지르(Wakhjir) 골짜기와 소파미르를 지난 후 계속 와크지르 강 남안을 따라 전진하면 패이극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타쉬쿠르간 강을 따라 동행하면 드디어 총영에 도착한다. 이 남로는 일반 대상들이 주로 다니는 길로서, 송운(宋雲) 일행이 다닌 길이다. 이에 비해 북로는 파미르 강을 따라 북동쪽으로 가서 대용지(大龍池/鵝湖) 즉 빅토리아 호수와 대파미르를 지난 후 의사적극하를 따라 직진하면 타크테미스벡(Takhtemisbeg)에 도착하여 여기서 다시 동남쪽으로 신디(Sindy)에 이른 후 동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면 총령진에 도착한다. 바로 현장과 혜초가 이 북로를 택하였다. 역으로 총령진에서 파미르를 넘자면 와칸(Wakhkhān)계곡으로 연결되는 사리콜(Sar-i Kol)계곡으로 가서 위의 두 가지 루트 중의 하나를 고르면 된다.
14) 현 신장위구르의 동뷱쪽 끝자락의 국경도시로, 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과 천축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타크라마칸 사막을 지나 옥문관과 양관을 거쳐 장안에 이른다. 한 무제 때 서역통로가 열린 이래 급속히 발전하여 서역 36국 중의 일국으로서 중요시되어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면서 파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크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엣 자료에는 소륵(疏勒,), 객십갈이(喀什噶爾), 가사라서(迦舍邏逝), 구사(佉沙)로 표기되어 왔다. 현재의 이름은 중국인들은 커스로 현지민들은 카슈가르로 부른다
15) 이른바 마르코 폴로의 이름을 따서 “마르코 폴로 양”이라고도, 영어명으로는 ''Bule Sheep' 이라고 부른다. 그 동안의 남획으로 멸종위기를 맞았으나 자연보호구를 설치하여 보호한 결과 요즘은 개체수가 늘어나는 추세리고 한다.
첫댓글 오자가 몇개 보여 다시 수정했습니다.
혹 회원님들이 보시디가 오자나 잘못된 정보가 눈에 띠면 주저말고 댓글 달아주시기 바람니다. 그대로 단행본으로 인쇄가 되면 그 때는 교정도 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 발견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제일 많이 지적해주신분께 이 글이 단행본으로 나오면 제일먼저 증정본으로 드릴테니....
귀중한 정보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뒷부분 마르코폴로 운운 하는 부분에.....'구채적'이 아니라 '구체적' 으로 수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남초 하 하 고처야지요. 탱큐 ~~
아 총령... 와크지르와 사리코람
참, 어짜피 언잰가는 '와칸'도 '와한'이라고 고처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고처야할 텐데.... 늦어도 단행본 원고 까지는 고처야지요.
내공 있는 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