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
사도행전 4장 1-4절『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네크론)의 부활(텐 아나스타신)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디다스케인) 전함(카탕겔레인)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톤 아쿠산톤 톤 로곤)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네크론(νεκρῶν)은 영적으로 죽은 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를 의미한다. 텐 아나스타신(τὴν ἀνάστασιν)은 위로 세우심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위로 세우심을 받는 목적은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함이다. 위로 세워져 영적으로 살아난 자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디다스케인(διδάσκειν)은 가르치고, 카탕겔레인(καταγγέλλειν)은 선포하다 라는 의미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이스라엘의 형사취사제를 들어서 형이 죽고 그의 아내가 다른 여섯의 형제와 결혼하여 살다가 다 죽었는데,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라고 예수께 질문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지만, 육체적 부활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누가복음 20장 34-3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예수님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 세상의 사람들과 저 세상 사람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는 자로 구분된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남녀의 육체가 있으므로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 세상 사람들은 육체가 없으므로, 당연히 영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으며,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없으므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게 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는 육으로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영으로는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자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5절『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인 부활임을 말씀해주고 있으며, 성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런데, 성도가 현재 눈에 보이는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살아가고 있으므로 시집가지 않고 장가가지 않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은 영적인 이야기로서, 성도의 육체 속에 갇혀있는 영이 부활생명을 얻어서 영의 몸을 입고 살아났을 때, 영의 몸의 주체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의 몸을 입은 자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고 말을 한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육적 몸과 육적 자아가 있으며, 그리고 영적 몸과 영적 자아가 있다. 성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영적인 것에 두어야 함을 말해준다. 눈에 보이는 육은 이미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혀 장사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로마서 6장 3절『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영적 전쟁은 바로 육적 자아와 영적 자아와의 싸움인 것이다.
세례는 물에 잠기고, 물로부터 나오는 의식이다. 물에 잠기는 세례(물세례)는 육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물로부터 나오는 세례는 성령 세례인 것이다. 성도가 성령 세례를 받으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이 새 생명이 바로 부활생명이다.
육의 몸은 땅으로부터 나왔으나, 부활생명은 하늘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부활생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요한복음 5장 26-28절『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심지어 육의 몸은 이 땅에서 살아가나, 영의 몸은 하늘에 앉히신바 되었다고 한다. 에베소서 2장 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 성장을 통해서 육의 몸을 통제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거듭난 성도라고 할지라도 육체는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한 진과 같은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을 한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톤 아쿠산톤 톤 로곤(τῶν ἀκουσάντων τὸν λόγον)은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들은 사람들이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호 로고스를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오천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믿은 사람이 아니라 호 로고스의 말씀을 순간적으로 듣고 믿은 사람들이다. 호 로고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셔서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신다. 따라서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부활생명을 전할 때는 성도의입을 통해서 호 로고스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호 로고스로 말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믿음이 되지 않는다. 전하는 자의 지식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해져서 복음을 전할 때, 성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안드론)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에게네데)』안드로는 남자라기 보다 사람을 의미한다. 에게네데(기본형:기노마이)에서, 기노마이는 ~되다, 태어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διότι γέγραπται · ἅγιοι ἔσεσθε, ὅτι ἐγὼ ἅγιος. 헬라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거룩이신데, 거룩하다 라는 표현을 한다. 이는 하나님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 자체가 거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두 거룩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룩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나님은 거룩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번역도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이니 너희들은 거룩으로 태어날지니라』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다시 번역하면『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으며, 태어난 자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