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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가을문예3(2011-2020)
2020년 진주가을문예 시부문 당선작
연어답다 / 황명희
'연어답다는 연어의 거룩한 삶까지 포장해드립니다' 라고 써 놓은 가게 문을 열자 연어들이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왔다. 바다를 거슬러 오르던 한 생애를 누군가 경건하게 건져 올려 '연어답다'란 토막 난 말로 쟁여 놓은 곳, 냉장실의 붉은 몸 도막에 일렁이는 물결들이 내 눈길을 끌어당긴다. 연어답다의 젊은 주인은 유난히 붉은 살을 집어 들더니 저울에 달아 투명한 랩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치던 연어의 가파른 기억을 단단히 옭아매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투명한 랩으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있던 연어를 끄집어내어 연어답다로 토막낸다. 연어답다 속에 얼룩져있던 연어답지 않다가 보인다. 연어답지 않다를 토막낸다. 연어답지 않다에 얼룩져 있는 연어답다가 보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에 출몰하는 바닷물과 냇물들의 밑바닥을 들추어 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 미끄러지는 몸부림을 꽉 움켜쥔 어머니의 쭈글한 손의 내력을 가늠해 보려는 듯이
'연어답다'는 바닷물과 냇물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엇갈려 새겨진 탄탄하고 붉은 욕망, 혹은 몸부림의 서사가 기록된 오래된 책일까. 혀끝에 살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촉감과 가파른 침묵이 '연어답다'로 포장된 붉은 당신의 생애를 찾아 벚꽃 흐드러지게 핀 산길을 걸어간다. 수천마리 연어 떼가 등 뒤에 우르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벚꽃이 새떼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심사평)
김언희·김병호 시인 "유희를 뛰어넘는 발랄한 언어감각과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치밀한 표현들, 그 이미지를 능숙한 서사의 얼개에 배치하는 형상화 능력이 돋보였다"며 "연어가게에서 펼쳐지는 시적 사유 또한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어 시적 울림이 작지 않았다"
<2019 진주가을문예>
믿음과 기분 / 정혜정
믿음을 가지면 리듬을 가질 수 있다
조그만 세계에 후두두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 조율할 수 있다
크고 나쁜 소식이
작고 좋은 소식과
섞일 수 있도록
달린다
잽싸게 혹은 느리게
정곡을 찌르는 속력으로
바다에 가까이 산다는 것은
바다에 가까이 산다는 기분과 사는 것
이따금 바다로 향하는 버스가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일정한 속력으로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한 기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가 있다
얼굴이 필요해 애인의 얼굴을 가지는 것과
아름다움 없어서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에 대해
골몰하는 거울이 있다
거울의 파편에 비치는 것
지나가고 있다
여름 아니고
가을 아니고
계절만의 속력으로
심사평
읽고 있는 지금 이 행보다 읽어나갈 다음 행이 더 기대되는 마음으로 우리를 집중하게 했다. 사유가 뒤에서 밀어주기에 말이 되는 언어유희였다. 즐거웠다. 좋은 시는 두어 행 치닫으면 제 숨결을 가다금으며 초원을 뛰어간다. 언어의 근육이 불뚝거린다. 읽는 이의 눈과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눈빛이 있다. 시인은 문장에 눈을 심어놓는 사람이다. 눈빛이 또렷하고, 근육이 세밀한 시인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언어를 오래 다룬 사람만이 갖는 용기와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가는 명량성이 심사자의 마음까지 즐겁게 이끌었다.
<2018 진주가을문예>
문예지 신인상/진주가을문예
2018 진주가을문예 당선작
경야(經夜) / 김세희
일요일에 왔으니까요
일요일에 가는 게 어때요 아무 부담 없지 않을까요
틀니조차 걸 수 없다고요 입 벌려 억억거릴 때
차곡차곡 다져진 미련, 내가 다 봤어요
꿀꺽 삼켜요 그거
똥이 질면 질다고 때린대요 볼기를
되면 되다고 때린대요
볼기짝이 원숭이 같을 거라고요
요양보호사를 원망하나 봐요 그러지 마세요
손은 잡고 가야 하나요 놓고 가야 하나요
팔다리가 투명해지고요
껍데기를 나온 껍데기처럼 쫄깃해 보였어요
뭐라도 씹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시계를 보다가요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하루살이 한 마리 눌러 죽이고 돌아 나왔어요
일요일에 다시 올게요
침대보다 더 납작해진 사람들이
딱딱한 제 그림자에 등을 기대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나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부채질중이에요 잘 타버리라고요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일요일에 올 게요 못다 쓴
당신 얼굴 가지러
심사평(송찬호)
이런 정련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죽음으로 다가가는 엄숙한 삶의 제의를 묘사한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일요일에 올 게요 못다 쓴/당신 얼굴 가지러'와 같은 빼어난시구를 탄생케 한다. 언어와 시적 대상과의 의도적인 불일치로 사물을 새롭게 탐구하고 이 세계를 낯설게 환기하는 감각도 돋보인다. 또한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 치열한 습작의 흔적이 역력하다.
<2017 진주가을문예>
후박 / 김려원
어둑해지는 산길에서 후박꽃들 어두워진다.
어차피 꽃잎의 질서란 밤과 낮을 보고 배운 방식이니까, 저녁은 두껍고 아침의 산길은 한없이 얇아서 모두 후박나무의 차지다.
나는 서둘러 산길을 내려오면서
저 어두운 밤이 모두 축축한 나무들 껍질로 단단해지는 것을 보았다.
흐르는 소리의 소유권을 주장하듯
물길 옆, 나무들 흔들리다가
물길을 닮아 구불구불해지는 것을 꽤 여러 해 지켜보았다.
계곡에 박힌 돌부리들, 물에 걸려 넘어진 저것들은 실상 옆새우나 가재, 도롱뇽이나 개구리와 같은 냄새를 풍기며 모래의 날들로 간다.
후박, 이라 말하고 나면 반드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 호흡 속에 있다.
두꺼워진 후박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비늘을 품은 나무껍질들이 어둠을 바짝 끌어당긴다.
심사평(맹문재)
서정성을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이, 주제와 표현이 잘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꽃잎의 질서란 밤과 낮을 보고 배운 방식'이라든가 '어두운 밤이 모두 축축한 나무들 껍질로 단단해지는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이 세계 존재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운명이라는 시인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예견된 두 짝 / 김려원
쪼개지는 전제로 붙어있는 나무젓가락은 사회학자 같아. 사회학자들의 입맛은 보편타당성이고 어떤 입속도 빨간 색깔이라고 젓가락 끝을 붉게 증명해내고야 마는 식후들이지만
나무젓가락 끝과 내 입맛은 동등하거나 까탈스러워서 검은 막장을 욱여넣거나 비닐 깔린 상가의 홍어무침 속 오징어를 골라내는 탁월성 같은 것. 예견된 집기什器 사이의 붉거나 검은 만찬과 대접들, 가령 1과 2가 붙어서 1과 2를 분별하는 숫자놀음이 불통과 소통의 단두대처럼 똑바로 자세를 가다듬고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도 아닌 것이 장례식장을 단 한 가지의 감정으로 통일시켜버리는 동일성 같은 것.
피순대를 맛소금에 찍으며 발목 없는 치킨을 뜯으며 양곱창을 지글지글 또는 애면글면 구우며 혓바닥을 핥던 기름진 숟가락이 육개장 고사리를 건져내는 동안 내 애인의 애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외길인 듯이 쪼개지 않으면 구실할 수 없다는 통설로 딱 붙은 너를 쪼개는 손끝.
짝이라는 말, 갈라져도 합쳐도 이미 예견된 두 짝.
<2016년 진주 가을문예>
위성접시 / 이규
음식하나 담기지 않은 접시다.
어젯밤에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담아먹었고
오늘은 후드득,
빗방울을 몇 개 접시에 받아마셨다.
몇 방울로 맛본 우주
잡음이 양식인 접시는 양이 늘면서 서서히
귀가 되어간다.
우주어디선가 만찬의 정담(情談)을
귀담고 있는 별들
은하계 끝,
아득한 그 끝에서 보글보글 끓거나 볶는 소리
고단하고 지친 광속(光束)이
잠깐 들렸다 가는
가물가물한 저 불빛이
마지막 요릿집일 것이다.
날개는 새들이나 곤충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무들은 그림자로 날아다니고
별들과 별들 사이 무한한 무중력들도 다 날개라는 것,
지나가는 소나기를 들들 볶아도
백 만년 동안 채널을 돌려도
멀리서 올 신종의 날개하나가 지지직거리며
착륙할 그 때를 기다리는 접시
나이프도 포크도 없는 공중식탁에
우두커니 놓여있는 저 접시
눈과 귀가 굶은 달처럼 텅 비어있다.
심사평(장석남)
문명적 사물이 우주 저편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역설이 기발했다. 위성접시를 통해 우주 저편으로 나아가는 시선의 이동도 앞으로 이분의 시가 독특한 '진경'을 이룰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믿음을 갖게 했다.
< 2015년 <진주가을문예> 당선작>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 김미나
달 거미 한 마리 지붕을 밟고 목련나무로 걸어와요
거미의 집을 허무는 게 아니에요,
물웅덩이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솜 트는 기계 멈춰있는 집 앞의 목련나무
꽃송이 안으로부터 달이 솜털을 짜기 시작했나봐요
자동차 바퀴에 찍힌 고양이 울음소리도 되살아나요
솜이불을 짜는 소리 할머니의 귓바퀴에 감겨요
나는 벼락처럼 자라난 목련나무의 꽃과
달의 이빨들이 하나의 틀을 이루는 소리를 생각했어요
먹구름을 집어 삼킨 듯 검게 물드는 것들은
솜틀집 앞 배수구에 걸려있나봐요
그늘 쪽에 얼어있는 지난 봄눈 덩어리들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려요 아직 꽃샘추위는 발끝을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었죠
그러니까 목련들도 밤의 이불을 덮고 싶어
나뭇가지 침대에 꼭 맞는 그믐이 올 때까지
할머니의 꽃상여를 짜듯
깊은 어둠을 지우려고 달의 이불을 짜고 있나봐요
봄눈 녹자 귀신도 볼 수 있다는 물웅덩이엔
달과 목련과 거미가 한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이 고여 있었어요 이불 한 채에 그려진 목련나무,
노란 나비들이 먼저 날아와서 날개를 풀고 있었어요
《 심사평 》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외 9편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개성이 묻어난다. 그 자체가 가볍게 자연과 하나의 지경을 이룬다. 발상이 참신하고 삶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섬세한 언어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면서 섬세하고 연연하다. 말에 정감이 있고 상상력의 발랄명랑함이 있다. 그럼에도 은은한 슬픔을 건네준다. 작위적이지 않고 상투적인 말도 없다. 그래선지 그의 시에는 현실 너머를 생각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독자를 느껴져서 알게할 뿐 따라서 납득시키려 하지않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앞으로 생의 성찰과 내공이 쌓인다면 매우 넓은 시의 지평을 가질 것이다. 야생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기 바란다.
- 심사위원: 천양희
<2012 진주가을문예>
고양이 눈 성운 /나온동희
우주의 등고점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 퐁퐁다알리아 만발한
손바닥을 본다
손바닥을 바라보는 일은
단 하나의 슬픔을 응시 하는 것
TV속의 한 아이가 오디션의 심사평에
갓 구운 빵처럼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왼손은 시리얼을 들추어 보다가
허풍스러운 그 중 하나를 놓치는 순간이다
어제 사랑스러운 루루가 죽었다
한 장의 종이에도 기록되지 않을 무성한 슬픔이 허공에 빛나고
오늘 아침엔 가판대에서
일회용 잡지를 집듯 간단히
그것을 잘라버렸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부턴 슬픔이 없을 것이다
이것들의 근성은 처음부터 슬픔이 아니었을 것
문은 닫아야만 나타나는 낡은 방 내부의
야광들은 한때 나의 위로였으나
손가락 사이로 흘러
지금은 창문들이 별 몇 송이를 내어놓고 저녁이 되는 시간
내 손바닥 중심에는
다알리아 붉은 색을 밀어내면서
날 응시하는 루루가 살고 있다
* 고양이눈 성운 : 용자리에 있는 행성상 성운
심사평
고양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체험이 고양이눈 성운-3천광년 너머에서 사라지면서 마지막 짧은 광채를 내뿜고 있는 천체-이라는 우주적 존재/사건으로 연결된 작품이다. 응모작들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시들이 미세한 감각이나 관념, 익숙한 서정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있는 현상을 상기할 때, 이처럼 스케일이 큰 상상력은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또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일상성의 중첩은 미묘한 정서의 울림 속에 시적 입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당선자는 동봉한 작품' 소리굽쇠'에서 말했듯 '하늘의 별들을 향하여/드럼치기를 '계속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곧 보다 넓은 세계와 언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다른 작품에서 엿보이는 시적 긴장감의 결여가 어디서 발생하는가 되짚어 보기 바란다.
<2011 진주가을문예>
흑잔등거미 / 오유균
달덩이가 창에 붙어 누런 진액을 흘렸다 어머니는 마른 풀잎 같은 기침을 자주 뱉었다 그때마다 등잔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밤이면 대숲이 빈 몸으로 울었다 돌아누운 어머니 등은 무덤처럼 둥글고 검었다
해질 무렵, 어머니는 마을로 내려가 기울어진 달을 이고 올라왔다 휘어진 산길을 돌아서면 바람이 나무숲에서 스스슥 소리를 내었다 산새는 검고 깊게 울었다 부른 노래를 또 부르며 어머니 옷자락을 잡고 걸었다 가끔씩 바구니에 담긴 달이 흘러 어머니 얼굴에 줄을 쳤다 내가 아는 노래는 너무 짧았다
낯선 도시 떠다니는 동안 닿지 않는 나를 향해 줄을 내리고 기어 다니며 기다림을 익혔다 허공에서 길을 놓친 그날,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한 방에 담겨 둥글고 검은 울음을 울었다
골목 돌아서서 벽을 후려칠 때
낮게 걸려있는 집 한 채
턱을 박고 체액을 빨고 있는 내가 보인다
어머니가 몸을 푼 집
오그라드는 몸에서 내린 저, 질긴
줄
<심사평>-장석주
흠잡을 데 없는 언어의 조탁과 유려한 리듬
본심에 올라온 것은 열 분의 작품들이다. 열 분의 응모작들을 여러 번에 걸쳐 숙독을 했는데, 더러는 응모자들의 상상력이 현실세계에 작동하는 중력과의 싸움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시적 상상력이 현실의 중력을 뚫지 못할 때 통념적 사유에 갇히고 만다. 좋은 시인은 제 상상력을 독창적이고 비범한 현실 통찰의 힘으로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의 실패는 현실 이해의 피상성, 깊이를 머금지 못한 독창성, 언어의 공허함, 야무지지 못한 은유의 남발에서 여지없이 전시된다.
먼저 [염소와 제천역]외, ['고독' 한 접시 안 사실래요]외, [발들의 내력을 쓰는 피노키오의 편지]외, [수족관 사용 설명서]외, [저녁 초대]외, [강은 과녁을 품고 있다]외 등의 작품들을 내려놓았다. 이들 작품들에 개성의 촉들이 있고, 살 만한 장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언어와 체험의 접점이 기대치에 못 미치고, 가치 감각의 영역을 꿰뚫어보는 안목이 미미했다. 시적 내공이 모자라다는 증거다.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서쪽 문이 열리고], [미확인물체], [꽃밭], [흑잔등거미] 등을 투고한 네 분의 작품들이다. [서쪽 문이 열리고]는 안정감 있는 호흡과 언어의 운용이 돋보이고, "서쪽으로 가을이 들어오고/내 어깨 너머로 강물 하나가 휘어진다"와 같은 도입부도 마음을 끈다. 허나 뒤로 갈수록 시적 긴장이 이완되는 점이 아쉬웠다. 이는 의식의 치열함을 끝까지 밀고나갈 사유의 동력이 미약한 탓이다. [미확인물체]는 시적으로 가용하는 언어 영역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중력과 척력, 블랙홀, 중력 이불 등과 같은 새로운 어휘들은 인지의 지평선을 넓게 그리려는 투고자의 의욕을 보여준다. 하지만 "불면의 밤마다 마신 커피나 내일의 블랙커피처럼 과거와 미래의 블랙홀은 더 많아요"와 같은 구절들은 쉽게 진부한 산문에 갇혀버린다. 그런 구절들이 나온다는 것은 사유의 정밀함과 시적 조형력에서 미흡하다는 혐의를 걸기에 충분하다. 한 투고자의 [꽃밭],[빈집],[구름의 확장]등은 소품이지만, 시적 재능을 느끼게 한다. "꽃밭은 그늘을 잡아당긴다./한 그늘이 끌려가고 있다"와 같은 구절도 날카로운 관찰의 산물이다. 사유의 명랑성, 시적 어조의 활달함이 인상적이고, 단문의 힘을 밀고 나간 것도 좋아보였다. [흑잔등거미]라는 매혹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시와 당선을 겨룬다는 게 유일한 불운이었다.
[흑잔등거미]를 흔쾌하게 당선작으로 뽑는다. [흑잔등거미]는 한 편의 작품으로 거의 흠잡을 데가 없이 언어의 조탁과 유려한 리듬을 보여준다. 달-어머니-흑잔등거미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연쇄가 자연스럽고, 은유와 상징의 효과는 끝까지 집약적이다. 삶과 현실에 대한 통찰을 이만한 의미있는 구조 속에 녹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극의 전조를 잡아채는 직관을 갖고 있는 시인으로 짐작된다.
큰 시인으로 성장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