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조참판 '고유'
(吏曹參判 '高裕')와
정부인 박씨(貞夫人 朴氏)🎎
( 역사 이야기 )
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아직 나이가 스물이 되지 않고 허름한 옷차림을 한 젊은 청년이 경상도 밀양 땅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高裕(고유)' 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고경명'의 현손이었지만 부모를 어린 나이에 여의고, 친족들의 도움도 받지못해 외롭게 떠도는 입장이었다.
밀양땅에 이르러서는 생계를 위해서 남의 집 머슴을 살게 되었다. 비록 머슴살이를 살고 있고,
학문이 짧아서 무식 하였지만 사람됨이 신실 하였고, 언변에 신중하였고, 인격이 고매하였으므로 대하는 사람마다 그를 존중하여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고도령" 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 마을에는 '박 좌수'라 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박 좌수'는 관청을 돕는 아전들의 우두머리 였지만 박봉이었고 중년 나이에 상처를 한 후에 가세가 매우 구차하였는데 효성스런 딸 하나가 있어 정성껏 아버님을 모셨으므로 가난한 가운데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고유'는 그 마을에서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내는 가운데 어느덧 그 처녀의 효성과 현숙한 소문을 듣게 되고 먼 빛으로 보고
그 처녀를 바라 보며 아름다운 처녀에게 연모의 정을 품게 되었다.
'내 처지가 이러하거늘 그 처녀가 나를 생각해 줄까? 그 처녀와 일생을 더불어 산다면 참 행복할 텐데! 벌써 많은 혼사가 오간다고 하는데, 한 번 뜻이나 전해보자. 그래, 부딪혀 보자고!'
그러던 노을이 곱게 밀려드는 어느 날에 '고유'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박 좌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본래 '박 좌수'는 장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장기판부터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실없는 말처럼 그러나 젊은 가슴을 긴장시키며 품었던 말을 꺼냈다.
“좌수 어른, 장기를 그냥 두는 것보다는 무슨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자네가 그 웬 말인가? 듣던 중 반갑구먼. 그래 무엇을 내기하려나?”
좌수는 이웃집에서 빚어 파는 막걸리나 파전을 내기라도 하자는 건가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이왕 할 바에는 좀 큼직한 내기를 합시다.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지거든 좌수댁의 머슴살이를 삼년 살기로 하고, 좌수님이 지거든 내가 좌수님 사위가 되기로요!”
'박 좌수'는 그제서야 '고유'의 말이 뼈가 있는 말임을 알았다.
“에끼 사람아! 금옥 같은 딸을 자네 같은 머슴꾼 에게 주겠는가? 어찌 자네 따위나 주려고 빗발치는 청혼을 물리치고 스무 해를 키웠다던가?”
'고유'는 '박 좌수' 에게 무안을 당하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되돌아 갔다.
그런데, '고유'가 돌아간 뒤에 '박 좌수'와 '고유'가 말다툼하는 것을 방에서 듣게된 딸이 물었다.
“아버님께서 뭣때문에 고도령을 그렇게 나무라 셨습니까?”
“그 군정이 글쎄 나더러 자기를 사위로 삼으라는구나. 그래서 내가 무안을 줘서 보냈다.”
'박 좌수'는 다시 생각 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 딸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그이가 어때서 그래요?지금은 비록 빈천하나, 본래는 명문 사족이었고
또 사람이 듬직하고 그렇게 성실한 걸요.”
오히려 '박 좌수'의 딸은 처녀의 수줍음 탓에 얼굴은 불그레졌지만 얼굴 두 눈에 가득히 좌수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와서 좌수에게 혼인을 지내도록 하라고 권하여 마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 집안의 일인양 우겨대자 좌수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물 한사발 떠 놓고 젊은 청년과 처녀의 혼례가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모은 돈으로 술 동이를 받아 놓고 고기와 과일을 먹고 마시며 그들 한 쌍을 축복해 주었다. 화촉동방의 밤은 깊어지고 '고유'와 신부는 촛불 아래서 부부의 연인 초야를 치루었다. '고유'는 가난하였으나 행복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뿐이었다.
그러나 색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꿈같은 말이 아니었다.
“서방님! 글을 아시나요?”
“부끄러우나 배우지 못했오.”
“글을 모르시면 어떻하시나요? 대장부가 글을 알지 못하면 삼한 갑족이라도 공명을 얻을 길이 없는 법입니다.”
색시는 고유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십년 작정을 해서 서로 이별하여 당신은 글을 배워서 과거에 오르기로 하고 첩은 길삼을 하여 세간을 모으도록 해요. 그렇게 한 뒤에도 우리들의 나이가 삼십이 되지 않으므로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닙니다. 우리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쓰라리지만 훗날을 위해 고생하기로 해요.”
색시는 '고유'의 품에 안기어 눈물을 끊임 없이 흘렸다. '고유'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는 색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긴 세월 접어두었던 학문의 길을 깨우쳐
주는 색시가 어찌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아직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녁에 '고유'는. 짧은 첫날밤이 새자 아내가 싸준 다섯 필 베를 짊어지고 입지 출관향(立志出關鄕) 했다.
그는 그렇게 떠나서 어느 시장에서 베를 팔아 돈으로 바꾸고 스승을 찾았다. 돈을 아끼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도 자고, 빈 사당 아래서도 밤을 새워가면서 스승을 찾아 발길은 합천 땅에 이르렀다.
고유는 인품과 학문이 높아 보이는 듯한 사람에게 예를 올리고 글을 가르쳐 줍시사 청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학동들과 함께 천자문을 처음 배웠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시작 했으나, 오륙 년이 지난 후에는 놀라움 속에서 '고유'의 글은 실로 대성의 경지에 도달했다.
스승도 탄복하면서 칭찬을 하였다.
“네 뜻이 강철처럼 굳더니 이제는 학문이 일취월장하였구나! 너의 글이 그만 하면 족히 과장에서 독보할만 하다. 나로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올라가서 과거나 보도록 하여라.”
'고유'는 그동안의 신세를 깊이 감사하며 그곳을 물러나서는 해인사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방 한 칸을 빌린 다음 사정을 말하여 밥을 얻어 먹으면서 상투를 매어 달고 다리를 찌르며 글을 익혔다.
어느해,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숙종대왕이 정시를 보이라는 영을 내렸다. 뜻은 헛되는 법이 없었다. '고유'는 처음 치루는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였다.
그후에 '고유'는 조정에서 왕을 모시게 되었다.
왕을 가까이 모시던 어느 날, 소나기가 쏟아져서 처마에 그 소리가 요란하였기에 왕은 대신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숙종은 혼잣말을 하였다.
“신료들 소리가 빗방울 소리에 방해되어 알아 들을 수가 없구나.”
그것을 고유는 초지에 받아 쓰기를, '처마에서 나는 빗방울의 소리가 귓가에 어지러우니 의당 상감께 아뢰는 말은 크게 높여라.'하니 주서들이 모두 글 잘 한다고 칭찬하였다.
왕은 쓴 글을 가져오라 하여 본 다음에 크게 기뻐하여 물었다.
“너는 누구의 자손이냐?”
“신은 제봉 고경명의 현손이옵니다.”
“허! 충성된 제봉이 손자도 잘두었군. 그래 고향 부모께서는 강령 하시더냐?”
“일찍 부모를 여의었 습니다.”
“그럼, 처자가 있겠구나.”
“예, 있사옵니다.”
그날 밤, 숙종대왕은 '고유'를 따로 불러서 그의 사연을 사적으로 듣고 싶어 하셨다. '고유'는 감히 기망할 수가 없어서 떠돌아 다니다 밀양 어느 마을 에서 머슴을 살게 된 이야기며, 거기서 장가를 들었고, 첫날밤에 아내와 약속을 하고 집을 떠나서 10년 동안 공부를 한 그의 이력을 모두 아룄다.
“허허! 그러면 10년 한정이 다 되었으니 너의 아내도 알겠구나.”
“모를 줄 믿사옵니다. 과거에 오른지가 며칠이 안되어 아직 통지를 못했습니다.”
“음, 그래?”
왕은 그 자리에서 이조판서를 불러들여 현 밀양부사를 다른 고을로 옮기고 '고유'로 밀양부사를 임명하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유를 바라보면서,
“이제 내가 너를 밀양 땅으로 보내니 옛날 살던 마을에 가서 아내를 만나되 과객처럼 차리고 가서 아내의 마음을 떠 봐라. 과연 수절하며 기다리고 있는지, 변심을 했는지
그 뒷 이야기가 나도 궁금하구나!”
'고유'는 부복 사은하고 물러나왔다. 그는 왕이 명한대로 하인들은 도중에 떼어놓고 홀몸으로 허술하게 차린 다음에 옛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집터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이었고 사람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