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소매 끝동도 달고, 곁마기와 당도 붙이고 옆선도 이었다. 고름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천 고를 때 곁마기, 당, 고름 색으로 무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했는데 겨자색으로 붙여 두니 참 잘 어울린다. 튀거나 드러나는 걸 싫어해서 모두 같은 색으로 하겠다는 걸 선생님들이 그러지 말라 하셔서 조금 용기를 내 보았더니 참 보기 좋다. 조금 밋밋하다 싶으면 장신구로도 새로운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사극에서 장신구를 잔뜩 하고 나오는 여인네들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장신구가 뭐 그리 새로운 느낌을 줄까 싶었는데, 막상 그걸 걸친 내 모습을 생각하니 참말 화려하기 그지없다. 철릭 입고 노리개 달고 비녀 꽂고 출근하는 나를 상상해보다 그만 눈을 질끈 감는다. 곁마기, 당, 고름 색깔 달리한 것만도 나로써는 참 애썼다 싶다.
저고리가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는 앞뒤 판에 요선을 붙였다. 허리선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중심 부분과 기점마다 미리 가위집을 내 두어서 큰 걱정은 없다. 몇 차례 이 수업을 여신 선생님이지만, 때마다 새로운 방법, 더 쉬운 방법, 새로운 느낌이 나게 하는 방법을 시도하신 덕분일까? 여러 번 수업을 함께 하신 선생님도 전과 다른 공정이나 방법으로 바느질을 하며 새로운 것을 익혀 가시는 듯 하다. 거기다 늘 뒷 작업을 미리 염두에 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덕분에, 독학할 때보다 시행착오가 훨씬 적다. '아, 이래서 아까 그 작업을 했구나.'를 여러번 되뇌였다.
그리고 뒷솔 이을 때 '꼬집'해 준 부분을 고려해서 앞섶? 부분에 (아, 기억력이여...) 치수를 아주 약간 늘리고 아래를 둥글였는데 예전 같으면 저렇게까지 세심하게 해야 하나 싶어 슬쩍 생략했을테지만, 이번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이런 작업들이 이 옷을 향한 애정을 배로 만들어주겠구나 싶다. 딸아이 머리 묶어줄 때랑 비슷하다. 다른 이들은 모를, 아이 뒷머리 약간 부푼 거나 삐져 나온 잔머리에 핀을 꽂아줄 때의 마음이랄까. 아이를 향한 내 사랑의 징표같은 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그리신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 매우 안타까우나, 월요일에 꼭 내 옷에 저 한 꼬집의 사랑을 뿌려두리라 마음 먹는다.
마지막으로 치마, 드디어 치마를 매만지는 날이다. 오늘은 호주머니 만들고 아랫단 접는 것까지 익혔다. 호주머니는 정말 처음 만들어 본다. 오바로크 대신 끝단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도, 하나씩 이어갈 때마다 정말 내 손이 들어갈 수 있는 호주머니가 만들어지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재봉틀이나 오버록 기계로 하면 오히려 더 번거롭고 지저분하기에, 오직 내 손만이 할 수 있는 작업들이다. 쓸모있는 내 손이 참말 자랑스러운 때다.
이제 주말동안 완전하게 요선을 저고리에 잇고, 호주머니 두 짝을 모두 달고, 치마 옆선을 다 잇고, 주름을 잡고, 밑단을 공그르기하고, 안감 당을 달고 옆선도 잇고 해야 하지만, 나는 괜찮다. 자신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밝은 미래를, 옷 짓기 여정의 행복한 결말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이 게시판을 가득 채운, 내가 지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님들 사진이 있어서 걱정 없다. 아마도 어떻게든 우리는, 다음 주 화요일에 철릭원피스를 입고 자랑스레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을 테니까. (24.1.5.)
첫댓글 저도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정신 못차리면서 겨우 따라가는데 선생님들께서 이끌어주는데로 가다보니 그제서야 와~이게 이렇게 되네, 와 이게 옷이 되네~이런 느낌이었어요. 살구님 말씀처럼 코박고 열심히 하다보면 나만의 철릭원피스가 어느새 뚝딱 완성되어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