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에게 학문의 바탕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이가 하곡 정제두(霞谷 鄭齊斗)였다면, 서예
를 지도하였고
서예가로서 그 재능을 대단히 칭찬함으로써 앞길을 밝혀준 이는 백하 윤
순(白下 尹淳)이다.
윤순은 자(字)가 중화(仲和)이며 벼슬은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냈다.호는 백하이다.
이
규상은 「병세재언록」 <서가록>의 첫 번째 인물로 윤순을 내세울 만큼 그의 글씨가
우리나라 백여 년간의 최고의 글씨라 칭송하고 있다.백하 윤순(白下 尹淳)역시 하곡(霞
谷)의 문인이며
하곡의 아우 정제태의 사위였으므로, 원교의 종형 광명과는 사촌동서 간
이었으니,원교는 백하를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인척이기도 하였다.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자주 뵙고 서예를 익혀나가는 데 큰 영향을 받은
분이었으니 그를 세상에 이름나게 하는
데 백하의 상찬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내 나이 스물에 성교서를 임서한 것을 보시더니 만약에 이것을 새길 것 같으면
앞으로
구별치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늙마에 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개의 글씨는
우리나라 수천년이래로 없던 바일뿐만 아니라,중국에 있어서도
마땅히 위진(魏晉)에 비
길까 당이하(唐以下)로는 겨룰 게 아니다"
이 내용은 이광사 <서결>에 있는 내용으로 백하 스승이 칭찬하신 내용을
적은 내용이다.
강화도에는 고려궁지 안의 동헌에 써있는 현판 '명위헌'이라 써 있는 글씨가
바로 백하 윤순이 쓴 명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