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상리면 저수령에서 여주시 풍기읍 죽령까지 걸었다
제 21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7.4.29일(토) 맑음
2) 어디를 : 저수령~촛대봉~시루봉~싸리재~솔봉~묘적봉~도솔봉~삼형제봉~죽령
20km...(백두대간 누계 402..74km)
3) 누구와 : 나와 강쌤
4) 산행 이야기 : 금년부터는 백두산행을 매월 마지막주에 이틀간 걷기로 했다.오늘은 금년 들어 두번째 산행인데 가는 방법은 또 다시 아내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지난달은 하늘재에서 저수령까지 걸었고 오늘은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20km을 가려고 한다.저수령부터는 월악산 줄기를 내려 놓고 소백산(小白山1,439)국립공원지역의 시작이다.소백산! 평소 마음에 품고 있었던 소백산 자락에 드디어 들어 간다.지난달 걸었던 대미산과 차갓재구간이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이기도 하는데 길을 잃어 호되게 고생을 했었다.인간사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것 처럼 산행도 이런 무리수들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대간 마룻길을 이어서 걷고 있었다. 내가 백두대간을 하겠다는 것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해보겠다는 어설픈 호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더 많은 생각을 했다.우리도 살다 보면 늘 양탄자 같은 길만 있으랴? 인생도 가시밭 길이 있고 편한 길도 있는거다.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그러나 백두대간 구간은 멀리 갈수록 그곳에 접근하는 문제와 산행 후 피곤한 몸으로 운전하고 되돌아 가는 문제,그리고 수험생 담임을 맡은 강선생의 시간적인 문제, 또한 긴 구간의 체력적인 문제 등등은 애초부터 힘든 일들이였다.암튼 나이 55세에 호기로 시작했고 막연한 짝사랑으로 시작했던 그 백두대간 산행길이 어느덧 중반을 찍고 이제는 점점 짧아져 가는 길이 되었다. 현재의 속도로 간다면 2018년 10월쯤에 끌낼 계획이다.백두대간 남한구간이 지도상 거리 684km이고 접근거리를 포함하면 대략 800km쯤 되는 거리를 걷는 길은 지루하기도 했고 억소리나게 힘들기도 했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했다. 나는 대간종주를 혼자서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곤 했다. 그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나도 혼자서 해 보려고도 했었지만 외로웠다. 그러나 혼자서 했더라면 아마도 이미 포기했을지 모른다.지금은 동행하는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안전하며 여러가지로 다행스럽고 친구가 고맙다.사실 적막한 밤이나 깜깜한 이른 새벽에 높고 깊은 숲에 들어 간다거나 가파른 절벽를 오를 때면 오금이 저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기에 왠만한 담력이 아니면 도전하기 힘든 일이였다.이번의 산행도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으나 도솔봉을 지나 급락한 체력 때문에 힘들었었고 동행하는 친구가 있어 참아 내고 무사하게 완주했던 구간이였다.그래서 동반한 강쌤이 고맙고 주말이면 남편을 산에게 빼았겼다는 아내에게 미안하면서 자주 운전 봉사를 해 주는 아내가 매우 고맙다.산행후에는 불행중 다행으로 4대강 사업에서 살아 남았던 내성천을 보러 갔다.또한 예천군 삼강주막과 회룡포 마을 전망대를 들러보았다.내성천은 맑은 강물이 그 땅의 들녁을 적시며 마을를 휘감아 돌다가 낙동강까지 흐르는 아름다운 모래의 강 내성천이다.내성천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절경이였고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그리고 문경온천지역의 숙소로 가서 다시 내일을 위해 쉬었다.
산행기를 쓴다.
(예천군 속소를 나서며)
어제밤 11시쯤 도착하여 예천군 읍내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산행을 위하여 새벽 3시30분 호텔을 나선다.
예천읍내 어느 사거리 김밥천국에서 한줄의 김밥을 나누어 먹었고 각자 한롤씩
김밥을 사서 베낭에 넣고 예약한 택시를 타고 오늘의 들머리인 저수령으로 향한다.
새벽 4시30분 저수령에 도착했다.
저수령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인 도계(道界)고개인데 해발850m로 고도가 높은 고개이다.
이른 새벽 저수령은 어둠속 조용한 고개길이였으며
촉촉한 이슬을 머금은 깊은 숲속의 고갯길이였다.
높고 깊은 산중에 인간의 길을 내어준 저수령은 길이 나기전에 숲이 우거져 고개을
숙이고 넘어야 했기에 붙여진 이름 저수령이라는 것과
임진왜란때 이 고개을 넘어 온 왜적의 목이 잘려다는 썸찍한 의미의 이름이 이기도 하다.
이곳에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차량 통행이 적어 휴업한 상태이며
인적이 아주 드문 고개이고 오늘 아침 타고 온 예천군 택시기사님도 처음 올라 온 고개라고 하신다.
저수령부터는 소백산 줄기가 시작하는 구간이다.
나는 지리산 국립공원지역을 지나 덕유산 향적봉을 넘어
속리산 문장대를 지나 드디어 소백산 자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저수령 서쪽으로 문복대(1,077m)가 있고 동쪽으로 뻗은 산마루는
촛대봉(1,080m)과 시루봉(1,116m)을 넘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유장하게 북쪽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친구야! 오늘도 재미나게 걸어 보세나~
저수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들머리 초입의 나무가지에
" 내 생애 하고 싶은 일 한가지"
" 백두대간 그 길을 걷다" 나의 리본을 메어 달았다.
새벽 이슬 내리고 청순하게 핀 진달래가 산이 좋아 여기까지 올라 온 우리를 반긴다.
새벽 숲은 바람 한점 없고 고요하며 하늘거리는 진달래는
청순한 여인의 향기같고 수줍은 미소 같다.
오늘 저 보랏빛 진달래는 한 없이 아름답다.
청순한 진달래가 반기는 이런 새벽산행은 얼마나 멋진모습인가?
촛대봉(1,030m)에 오른다. 산행 초반이라 무릎과 다리는 아직 뻑뻑하다.
고르지 못한 심장의 펌프 소리는 불규칙 했고 거친 심장의 고통을 감내하고
한참을 오르니 촛대봉에 이르며 어느새 숨소리도 점차 고르고 익숙하게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친구의 새벽미소를 카메라에 담아 본다.
강쌤의 환한 얼굴, 행복한 미소이다.이 친구는 나보다 훨씬 산을 좋아 하는 친구이다.
그는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교직원 산악회을 조직하여 수년간 전국의 유명산을 올랐다
그러다가 선생님들의 세대가 젊어지고 산악회원이 줄어
산악회가 해체되어서도 혼자서 산행을 하던 친구이다.
그리고 부인과 다정하게 가까운 산과 섬 트랙킹를
즐길 줄 아는 멋진 트랙커이고 유능한 교사이기도 하다.
그런 친구를 가진 나는 행복한 놈이다.
(진달래가 핀 마룻길에서 아침 일출을 맞이하다)
촛대봉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길에 동해에 뜨는 새벽 일출을 본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새벽 일출을 여러번 보았다.
혹자는 날마다 뜨는 일출 그리 대단하다 하겠지만
나는 자주 보는 저 광경이 늘 생경하고 엄숙하며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꼭 소원하곤 한다. 오늘도 한참을 서서 뜨는 해를 바라 보았다.
일출을 배경으로 친구 모습도 담았다. 자칭 인상파 친구도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오늘도 정직한 하루는 시작되고 세상은 다시 과거로 흐른다.
이 산 아래 인간 세계는 다시 어제처럼 경쟁하며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
냉험한 세계가 열리기도 하고 때론 이해와 양보가 일어나기도 하여 삶의 미담이
알려지기도 할 것이다.어떻든 인생은 치열한 삶이다.우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들처럼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잠시 내려 놓고
우리는 이 산 마루를 걸으며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한 세상 열나게 살아가듯 오늘도 땀나게 걸어보자!
오늘도 이 산마루에 살아 가는 숲이 건강하고 깊어서 다행스럽다.
소나무 군락이 넓게 형성되어 있고 나무는 키가 크며 잎이 큰 활엽수는 파란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어느덧 날은 밝아 오고 두 시간쯤 걸었나 보다 배재에 이른다.
강쌤! 잠시 쉬어 가세나~
(진달래가 만개하여 보랏빛길이다)
도솔봉(1,315m)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은 구간이다.
낮으막한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진달래가 만개한 마루길을 걷는 기분은
마치 군대에서 사열이라도 받는것 같은 모습이며 꽃길을 걷는 기분은 날아 갈 것같은 기분이다.
묘적봉 아래 묘적령에 이른다. 오늘구간의 중간지점이다.
여기서 죽령까지는 아직도 9,6km를 가야 한다.
누군가 바위에 붉은색 락카 페인트로 묘적봉이라 표시를 했으나
잘못 된 표시였고 한참을 더 지나서야 묘적봉에 도착했다.
저 멀리 죽령 아래 중앙 고속도로가 희미하게 보이고 경북 영주시와 풍기읍이 보인다.
(강쌤과 나는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걸어 왔던 솔봉과 싸리재로 흐르는 마루길이 유장하게 뻗어 있다.
왜 이리 경치가 좋은가? 오늘도 경치를 즐기느라 가는 길이 더디다.
조금 늦은들 어떠하리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안개도 없으며 조망이 기막히게 좋아서
걷다가,보다가,사진도 남기고, 이야기도 나누며 걸었다.
(묘적봉(1,148m))
묘적령에서 1km쯤 더 오니 묘적봉(1,148m)이다.
이전 지점 바위에 락카로 쓴 묘적봉 글씨는 잘못된 표시였다.
저 뒤로 보이는 곳이 도솔봉(1,315m)이다.
12시 무렵 묘적봉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예천읍내 사거리 김밥천국에서 사 온 김밥한줄로 해결하고.
도솔봉(1,314m)에 오르는 길은 잘 만들어진 데크 계단이 있어 쉬웠으며
오르다가 계단과 도솔봉을 올려다 보았다.
이곳에서도 지리산 반야봉에 오를 때의 느낌이 든다.
오래전에 처음으로 지리산 반야봉에 오를 때
철쭉이 피고 날씨가 화창했으며오늘처럼 비슷한 날씨였다.
마치 하늘나라 천상공원에 오르는 듯한 느낌이였다.
도솔천은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기전에 머물던 곳이며
미륵보살이 설법하러 지상에 내려 가기전에 머물던 곳이다.
이곳 도솔봉이 도솔천일까? 그 어떤 기운을 느끼는데 잠시나마 순간 소름이 돋는다.
도솔봉을 지나 죽령으로 가는길은 쉽지 않았다.
작지만 급경사 암릉을 여러번 반복하였고 삼형제봉을 차례로 나누어 넘었으며
죽령으로 가는길은 더 급한 경사를 내려 가야 했다.
(도솔봉 아래에서 휴식중에 사과를 깨물고)
도솔봉을 지나면 편하고 가까운 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삼형제봉과 그주변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데 제법 힘들었다.
새벽부터 도솔봉을 지날때까지 8시간쯤 걸어 우리는체력이 떨어졌다.
산행 후반부에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들을 감안해야 할 일이다.
쉬면서 사과 한개을 강쌤과 나누어 먹고 마지막 힘을 낸다.
어느덧 산행의 끝이 보이고 이제 한시간여 내려가면 죽령이다.
문경시에 있을 아내에게 죽령으로 오라는 전화를 하니 이미 죽령에 도착 해 있다고 한다.
오후 2시30분 죽령에 도착한다.도상거리 19,71km를 10시간쯤 걸었다.
조망하며 기억에 담느라 시간을 보냈고 도솔봉과 삼형제봉을 지나며
체력적으로 다소 힘들어 했으며 예상보다 1시간정도 늦게 도착하여
백두대간 21차 구간 저수령에서 죽령구간 산행을 마쳤다.
(죽령에 내려서며 나와 아내 그리고 친구인 강쌤)
아내가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좀 잘 찍으시소!"
"사진에 사람이 비틀어 졌잖혀!" 타박일까? 사랑일까?
그런데 사진을 찍기위해 반듯이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죽령주막에서 탁주 한사발로 건배!)
죽령 옛길주막에서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니 그 맛이 일품이고 세상이 내것 이로세 ~
그간의 피곤이 한방에 사라진다.
반대편 단양쪽 죽령은 넓은 주차장과 휴게소가 있고 이곳 풍기쪽 죽령 옛길주막은
느티나무 아래 소박한 초가지붕과 장독대을 가진 멋스런주막이다.
(예천 회룡포 전망대에서)
다시 내일의 산행을 위해 문경온천으로 가는 길에 예천 회룡포(回龍浦) 전망대에 들렀다.
낙동강 지류인 이곳은 4대강 사업을 할 때 삽질을 안해서 물줄기가 이쁘게 살아있는 강이다.
강물과 모래가 같이 흐르는 모래의 강이였으며 회룡포 마을을 350도 휘감아 돌다가 흐르는데
좌에서 우로 흐르는지, 우에서 좌로 흐르는지 도저히 분간이 안간다.
나중에 주민에게 물으니 강은 우에서 좌로 흐른단다.
장안사(長安寺) 위 회룡포 전망대에서 아내와 사진을 찍고
바람을 쇠였으며 담소 나누었다.
(예천군 내성천 삼강주막)
내성천 강가의 삼강나루에는 삼강주막이 있었다.
삼강주막은 삼강나루를 건너던 나들이 객들에게 국밥으로 허기를 체워주었고
옛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또는 시인묵객들이 머물었던 주막이다.
1,900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라 하니 참으로 오래된 주막이다.
회룡포를 보고 나서, 삼강주막도 들러 보고 문경으로 향한다.
곧 바로 산행기를 쓰지 못하고 일주일쯤 지나 느낌은 다소 사라졌지만
사진만으로도 기억이 새록하여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썼다.
나의 산행기는 가벼운 여행기 일수도 있고 나의 잔소리가 나열한
재미없는 이야기 일수도 있으나 나는 나의 경험을 기억 해두기 위하여 쓴 글이다.
이제 우리는 삼강주막을 둘러 보고 나서 문경온천으로 향했다.
삼강주막과 회룡포는 나중에라도 놀러 오고픈 곳이였다.
2017년 4월 29일(토)맑음 걷고 6월 4일 (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