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더린 쿨만(1907-1976)

1.출생: 1907년 5월 9일 미국 미조리주 콘코디아 인근 시골마을에서 태어남.
-캐더린은 키가 크고 빨간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였으며 장난을 좋아하고 의지가 강하며 아주 똑똑한 아이로 성장하였음
2.첫번재 은혜
①그녀가 14세때 어느 작은 감리교회의 부흥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음.
-당시 그 부흥집회에 침례교 전도자가 와서 말씀을 전할 때 캐더린 쿨만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는 체험을 함.
②그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때 온 세상이 변하였다고 고백하였음.
-캐더린 쿨만은 예배당 앞자리에 앉아서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며 동요하고 몸을 비틀거리며 진정으로 회개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음.
3.캐더린 쿨만의 초기사역
①그녀가 변화된지 몇 년후 1924년 사역자인 언니와 형부인 페롯 부부를 도와 함께 거리에서 전도 활동하는 천막복음 전도사역을 시작하게 됨.
②1928년 무렵 언니 부부로부터 독립하여 아이다호주 보이스에서 개인사역을 시작
-그녀는 허름한 수영장에서 모이는 작은 모임에서 설교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매우 가난하고 집조차도 없이 칠면조 우리에서 자며 사역을 계속함.
③그녀는 수년간 복음 전도자로 미국 중서부와 서부지역을 돌면서 전도하다 결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정착하여 창고 건물을 얻어 집회하자 많은 군중들이 모임.
-덴버의 자재 창고에서의 집회를 5개월간 인도하는데 창고는 수많은 사람들로 매일 만원을 이뤘고 말씀에 굶주린 사람들이 놀라운 은혜를 받음.
④1933년 이후부터 그녀는 수백명을 예수님께 인도한 유력한 복음전도자로써 놀라운 명성을 떨치게 되었지만 성령의 강력한 체험과는 거리가 멀었음.
-1935년 덴버에서 2천명 수용할 수 있는 ‘덴버 부흥 타버나클’을 구입하여 4년동안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집회를 열었고 후에 교회로 발전되었음.
4.시험과 유혹 그리고 타락: 복음전도자 윌트립과의 만남
①1937년 30세때 그녀는 큰 키에 멋진 전도자 ‘버로우즈 윌트립’을 천막집회 초청함.
-캐더린과 그는 2개월간 머물면서 사역하던 중 그만 그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윌트립은 당시 유부남으로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도 있었음.
②마침내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캐더린과 윌트립(그의 부인과 이혼한 후)은 1938년 비밀리에 결혼하였고 이때부터 캐더린의 사역이 무너져 내림.
-덴버 타버나클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그녀는 그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 타버나클 교회는 무너지고 건물 역시 매각됨.
③그들은 아이오와 서부지역에서 사역은 계속했지만 공허한 영적생활이 지속됨. 그녀는 1944년 6년동안의 눈물의 세우러을 거친후 그와 관계 정리하고 LA로 감.
(*1947년 윌트립과 정식이혼: 그는 어떤 여자의 지갑을 훔친 죄로 감옥에서 죽음)
5.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
①그녀는 ‘자신이 그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번민하기 시작.
-“나는 이제 윌트립을 사랑할 것인가 아님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지난 6년동안 내 양심과 성령님 사이에서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②그후 어느날 LA 외곽의 아파트를 나와서 나무가 우거진 거리를 계속 걷다가 길이 끝나는 지점에 교통표지판 “Dead End(더이상 길이 없음)”을 보게 됨.
③그 순간 심한 고통과 번민이 그녀를 휩쓸었고 그날 오후 4시 크게 소리 질렀음.
-“오 예수님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나의 육신을 가져가십시오. 나의 마음도 가져가십시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그것을 당신의 놀라우신 손 위에 바칩니다.”
④캐더린 쿨만이 회개하고 돌아섰을 때에도 아직 비탄과 죄의식에 빠져 있었음. 그때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주님의 음성이 울려 퍼졌음.
-예수님: “캐더린,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았더냐?”
-캐더린: “예”
-예수님: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의 책에서 너의 죄를 이미 지워버렸다.”
6.능력있는 복음 전도자
①2년 후 1946년 부렵 펜실베이나 주 서부 광산촌 프랭클린의 복음 장막교회에서 그녀가 성공적으로 집회를 마친 다음부터 복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함.
-프랭클린 집회후 그녀는 펜실베니아의 한 방송국 Gospel Tabernacle에 기거하면서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전역에 복음전도의 열매를 맺기 시작함.
②그녀는 인기가 급상승하여 피츠버그에 그녀 소유의 방송국을 소유하게 되었고 피츠버그로 사역지를 옮긴 후 훗날 그녀의 놀라운 사역의 본부가 됨
③캐더린이 40세가 되던 1947년 4우러 27일 성령의 놀라운 기름부음이 주어졌고, 그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회개와 신유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음.
-1947년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하던 중 어떤 여인이 자신의 몸의 종양이 없어졌다고 한 것을 기점으로 계속되는 치유의 역사로 놀라운 부흥 일어남.
④1950년 캐더린 쿨만의 사역은 미국 전역의 도시들로 그 무대가 확장되었고 개교회 사역이 아닌 재단을 설립하여 많은 교회와 선교단체들을 후원함.
-그녀가 죽기 전 8년동안 그녀의 설교는 TV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방여되는 최장기 연속 프로그램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함.
⑤1968년에 그녀는 이스라엘과 핀란드, 스웨덴 등지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고 60세 후반 심장병의 악화로 LA의 슈라인 오라토리움에서 마지막 집회를 가짐.
7.별세: 1976년 2월 20일, 그녀는 68세에 심장병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임종순간 그녀를 지키던 간호사는 ‘한줄기 빛이 침대를 둘러쳣을 때 방안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강이 가득찼노라’라고 진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