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잘난척은 어떻게 다른가?
-‘다윗의 용기’에 관한 소고-
2023.08.13.
사무엘상 17장 28~30, 55-58
들꽃푸른샤론교회 중고등부 특강
날씨가 덥더니 태풍이 와서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날씨가 더울 때 태풍이 오는 것은 우리 나라의 기후입니다. 겨울에 비전트립을 갔던 캄보디아나 열대 지역은 낮에 무척 덥다가 오후가 되면 소낙비가 내립니다. 그것을 스콜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지구는 평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아마 기상이후라는 것도 지구가 평형을 유지하려는 힘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구의 탄력성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생물이 인간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를 인간에게만 맞도록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겠지요.
인간은 고도로 발달된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거기서 개인마다 어떠한 대상을 보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세계관, 인간관, 물질관, 결혼관, 연애관, 성공관, 인생관, 신앙관 등등의 관점을 정립해 나가는 성장과 성숙을 하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 이러한 관점을 정립하게 되는 때가 오는데 그 때가 약 20세 내외로 보는데 보통 성인이라고 하지요. 성인이 되기 전을 미성년이라고 하는데 바로 여러분이지요. 중고등학생의 특징이 이말을 들으면 이렇게, 저말을 들으면 저렇게,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환경에 따라 관점이 수시로 바뀌게 된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훌륭한 분들, 전문가들과 만나고, 많은 경험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문화를 비교하면서 학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과와 예체능 공부를 통해 기초 지식을 충분히 습득해야 성년이 되면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다윗이라는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용기’라는 것을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제일 큰 형이었던 엘리압은 사무엘이 첫눈에 반할 만큼 키가 크고, 외모가 출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양을 치고 있던 소년 다윗을 보시고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라마로 가버렸습니다. 다윗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몸을 씻고 다시 양을 치러 가야했습니다. 분명 사무엘이 와서 왕이 된다고 기름을 부었는데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양을 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드러났고, 수금을 타면 매우 은혜롭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용기가 있었으며, 싸움과 말을 잘 하고, 준수했습니다. 그 소문 덕분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울의 음악 치료사가 되었고, 사울의 눈에 들어 자신의 무기 비서가 되었습니다.
그 후 블레셋이 침입하자 사울은 군인을 징집하여 대항하기 위하여 출전했고, 거기에는 다윗의 세 형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40일이 지나자 다윗의 아버지는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형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군대 상관들에게 치즈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증표를 가지고 오라고 했지요.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양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전쟁터에 가서 형들에게 문안을 할 때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고, 분노하는 소리를 했구요. 그 이야기를 형 엘리압이 듣고,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양을 누구에게 맡기고 왔냐고 하며 ‘너의 교만과 완악함을 나는 안다. 너는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고 합니다.
다윗은 형 엘리압의 말을 듣고 매우 억울했을 것입니다. 형 엘리압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비난 수준의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 이후의 일은 여러분이 아마 수십번 들었을 다윗과 골리앗의 일대일 대결 이야기입니다. 그 대결을 승리한 결과 다윗은 사울과 함께 살게 되고, 왕자였던 요나단과 절친이 되고, 왕의 군복과 칼, 활과 띠를 입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촌놈 다윗의 신분 상승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군대장이 되었고, 나중에는 왕의 사위가 됩니다.
엘리압은 다윗의 용기를 교만, 완악함으로 표현하며 비난합니다. 저는 2남 3녀의 막내인데 제일 큰 형과는 10살 차이가 납니다. 엘리압이 볼 때 막내 동생 다윗이 자기를 제치고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고, 특별한 은사로 왕의 음악치료사, 무기 비서가 되는 승승장구에 대해 시기심과 열등감, 경쟁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윗이 집에 있고, 자신은 징집되어 병사로 전쟁터에 있고, 저 무시무시한 골리앗과 대치하고 있는데 다윗이 전쟁터에 와서는 싸우지도 못할 거면서 멋있는 말을 하는 겁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알지만 이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골리앗을 두고 큰소리치는 다윗을 잘난척하는 교만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용기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잘난척하거나 무모한 소리를 한 것입니까?
우리는 결론을 알기 때문에 이것이 용기인지 잘난척인지 구분할 수 있지만 그 일이 지금 현재의 일이라면 우리도 다윗의 용기인지, 사무엘의 기름부음 이후 있었던 성공에 따른 잘난척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다윗이 지금 한 말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한 의분에서 생긴 용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기와 잘난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친구 중에 용기있는 친구와 잘난척하는 친구를 어떻게 구분하십니까? (물어보고 대답 듣기)
제가 다윗을 보며 이해했던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겠습니다.
다윗의 용기에는 믿음과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음날 그는 다시 양을 돌보러 갔습니다. 왕의 음악치료사, 무기 비서가 된 뒤에도 그는 다시 양을 치러 갔습니다.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에서 용기는 나옵니다.
다윗의 용기에는 용기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의분이 있었습니다. 실제 분냄은 용기의 원천입니다. 실제로 분내는 사람은 많으나 이것이 용기가 안 되는 것은 아무 때나 화를 내거나 화만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의 말에 화가 났고, 이 화를 통해 골리앗에게 도전장을 냅니다.
다윗의 용기에는 자기 희생이 있었습니다. 골리앗에게 도전한 것은 생명을 건 희생을 각오한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칭송받는 사람들은 성과를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과를 못 만들더라도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용기는 인정 받습니다.
다윗의 용기에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사실 성과는 용기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죽었다면 다윗의 용기는 폄하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4가지의 모습이 없으면 잘난척이나 교만으로 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엘리압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 열등감, 경쟁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용기를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 다윗의 용기에서 우리 중고등부 여러분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가요?
먼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도 일상을 지키며 기다리는 그 용기를 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눈에 보이기 전에 여러분의 일상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일수록 이유를 모르고, 중요한 것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 우주에는 끝도 알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자들이, 아무리 나누어도 0이 되지 않는 물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0과 1사이에는 무한대의 수가 있지만 결국은 0과 1사이에 있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이유를 알지 못할 때는 그것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의분이 없는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부족합니다. 불공정한 일을 보고도, 나와 가족을 모욕해도, 거짓을 행하는 것을 보아도 마음의 의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용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도 요즘 매우 의분이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한번 용기를 내려고 해도 돈이 좀 많이 들고, 시간 상의 문제가 많아서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데 계속 뉴스를 듣다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모니터를 하고 있고,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월 첫 토요일에는 동참을 하고자 합니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용기를 좀 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친구들, 적절하지 않은 친구들의 말과 행동, 일부 선생님들의 태도 등에 대해 의분이 일어나십니까? 하나님이 화가 나실 말과 행동에 대해 여러분의 화가 나십니까? 화가 나야 합니다. 그리고 화가 나면 화를 내는데서 그치지 말고 그것을 동기로 화가 나는 그 일에 대한 변혁에 도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은 어떤 것에 희생하십니까? 원만한 친구 관계, 더나은 성적, 더좋은 몸, 더 많은 예금 잔액.... 여러분의 희생이 있는 곳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희생하는 부분이 없으면 여러분은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의미있는 타자(타인)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장 많은 시간과 관심의 희생은 친구에게 향할 것입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선택이어야 하고, 나를 지키는 선택이어야 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도전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하나님께 선택된 자신을 지키는 선택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용기를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용기가 있다고 성과가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고, 성과가 있다고 용기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매우 가치있게 되려면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용기를 낼 것이고, 성과를 얻을 것입니까? 목적과 계획이 있으십니까?
다윗은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을 지키는 성과, 왕의 번뇌를 치료하는 성과, 골리앗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과를 얻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 이후에는 더 많은 성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과를 내기 위해 용기를 가지시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성과지상주의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은 관계가 성과가 될 수 있고, 성품을 중시하는 사람은 좋은 성품이 성과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교육은 인문, 사회, 과학, 예술, 체육, 성품(태도, 관계)의 영역을 나누어 질문 중심으로 학습을 이끌어 내려고 합니다.
충분한 토론의 시간이 없어서 저는 이렇게 쏟아내고 있지만 여러분은 2023년 하반기 동안 어떤 성과를 위해 용기를 내겠습니까? 중고등부에 내 친한 친구를 한명 전도해서 내년에 몽골 비전트립을 같이 가겠다는 목표를 가진 친구 없을까요? 만약 1명이라도 전도하는 학생이 있다면 저도 내년에 다시 중고등부에 와서 그 학생의 용기에 성과가 생기도록 돕겠습니다.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엘리압이 다윗에게 한 말은 다윗의 인생에 아무런 중요하지 않은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오해나 비방이 용기를 가진 자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아무 의미없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용기를 가질 수 없도록 하는 혹은 용기를 잃게 만드는 소리들이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엘리압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시고, 다윗처럼 용기를 가지십시오.
용기를 구성하는 일상을 지키며 기다리는 믿음, 의분과 자기희생, 성과 중 한 개라도 저와 여러분이 갖출 수 있다면 우리들의 미래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