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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린웰 환경·복지 연합회 원문보기 글쓴이: 每事盡善
만기친람(萬機親覽)
만 대의 베틀을 친히 보다 또는 살핀다는 뜻으로,
임금이 모든 업무, 즉 정사(政事)를 친히 보살핀다는 말이다.
삼베, 무명, 명주 따위의 피륙을 짜는 베틀이 기(機)다. 날줄과 씨줄을 모두 아울러야 베를 짤 수 있는데 그것이 만기(萬機)나 되니 온갖 것이 다 포함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임금이 보는 여러 가지 정무나 정치상의 온갖 기밀을 뜻하게 됐다. 이것을 몸소 살펴보니(親覽)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지도자가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한다면 일사천리로 나아가 백성들이 안심하고 자기 생업에만 열중할 수 있다. 반면 세세한 규제도 많아질 테니 일장일단이 있다.
모든 정사를 자기 손을 거쳐 행하게 한 사람으로 중국 진시황(秦始皇)을 꼽는다. 하루 결재서류를 매일 일정한 무게에 달할 때까지 집무했다고 한다.
청(淸)나라 5대 옹정제(雍正帝)는 지방관들과 비밀 편지를 주고 받느라 밤을 지새웠다.
우리나라의 성군 세종(世宗)이나 정조(正祖) 임금도 널리 국정에 관한 의견을 구하고 현안을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년간 밤낮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한글을 창제하는 등 실제 선정이 따랐지만 이 당시에도 건강을 걱정하거나 사소한 일까지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상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서경(書經) 우서(虞書)에 순(舜)임금에게 신하 고요(皐陶)가 말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만 가지 사단이 생기니 여러 벼슬아치들이 일을 저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一日二日萬幾 無曠庶官)."
幾는 기미, 조짐을 뜻하는 機와 통해 여기에서 만기(萬機)가 유래했다.
규모가 작았던 나라에선 국정을 모두 살피고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잘 하는 정치로 여겼음직하다.
하지만 수미이취(數米而炊)에 나온 대로 쌀알을 세어가며 밥을 짓는 것은 작은 집에서는 통하지만 나라를 경영할 때는 큰 것을 바라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한 조직을 이끌며 모든 일에 능통하면 물론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반면 복잡한 여러 부서의 일을 실무자에게 맡기고 더 큰 구상을 하는 것만 못할 때도 많다. 모든 일에 자기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린다면 부하직원은 손을 놓는다.
지난 박근혜 정권 때 많은 일을 자격도 없는 최순실을 거치게 하여 망하는 길로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도 각 부처의 장관을 넘어 청와대에서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들었다. 서로 얽혀있는 국정을 처리할 때는 손발이 맞아야 한다.
★ 만기친람(萬機親覽)
만기친람이 나랏일을 그르쳤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우선 만기친람의 뜻부터 살펴보자. 만기친람은 만기(萬機)와 친람(親覽)으로 된 말이다.
만기의 기(機)는 베틀을 말한다. 자전(字典)에는 織具也(직구야) 즉 베를 짜는 도구라고 풀이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機持經者 機持緯者 則機謂織具也(기지경자 기지위자 즉기위직구야)라고 해 놓았다. 씨줄과 날줄을 갖는 틀 즉 베틀이라고 풀이했다.
만기(萬機)의 만은 일만 만(萬)이다. 문자 그대로 보면 일만 베틀이다. 만 가지 베틀이라기 보다는 만 대의 베틀로 봐야 할 듯 싶다. 왜냐하면 베틀의 종류가 아무리 많기로서니 만 가지는 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친람(親覽)을 보자. 친(親)은 친히, 몸소라는 뜻이다. 물론 친하다는 뜻도 있다. 여친이라고 하면 친한 여자친구를 말한다. 람(覽)은 본다는 뜻이다. 영화관람(映畵觀覽)이라고 할 때의 람이다.
그러니까 친람은 "몸소 본다"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임금님이 친히 본다 또는 읽는다"는 뜻이다.
친견(親見)과는 약간 다르다. 친견은 친히 만나 본다는 뜻이다. 교황님을 친견했다고 하면 교황님을 직접 뵈었다는 뜻이다. 교황님이 친히 읽었다는 말이 아니다.
친전(親展)이라는 말도 있다. 은밀한 내용의 편지를 부치면서 받아보는 사람이 친히 뜯어 보라는 뜻으로 쓴다. 친람과는 격이 다르다.
자, 이제 흩어진 만기와 친람을 모아보자. 글자 그대로의 뜻은 "만 개의 베틀을 친히 보다 또는 살피다"가 된다. 풀어 놓고 나니 더 어렵다. 임금님이 할 일 없어 베틀 만 개를 보고 있지는 않을터.
아직 베틀 기(機)에 풀리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듯 싶다. 기(機)는 베틀이라는 원래의 뜻에서 여러 의미로 분화했다. 그 중에는 기밀(機密), 천기(天機), 문서(文書)라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그러면 만기친람은 만 개의 문서를 친히 본다는 뜻이다. 있을 수 있다. 한 나라를 다스리려면 어찌 만 개의 문서만 있겠는가? 많은 문서를 읽어본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 싶다.
많은 문서는 신하들이 올리는 여러 문서들을 말한다. 신하의 선에서 읽고 처리하는 상소문이 있는가 하면 임금님에게 올려야 하는 상소문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신하가 처리하는 문서들은 제외시키자. 전결위임 했기 때문이다.
만기친람을 이제 실질적으로 풀이를 해 보자. 신하들이 올리는 주요문서를 "임금님이 친히 읽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찌 국정을 잘 못 다스리는 원흉이겠는가? 오히려 만기친람을 하지 않아 나랏일이 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신하가 올리는 문서는 빠짐 없이 읽어봐야 한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데 하물며 임금님이야 오죽 많이 알아야 하겠는가 말이다.
만기친행(萬機親行)을 만기친람으로 잘 못 이해한 듯 싶다. 만기친람에는 모든 나랏일을 직접 챙긴다는 뜻은 없다. 만기친행이 많은 나랏일을 친히 행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만기친행이 원흉이다. 만기친람은 죄가 없다.
★ 만기친람(萬機親覽)과 정관정요(貞觀政要)
대통령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레드 그린스타인 교수는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저서에서 대통령의 5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빌 클린턴까지 현대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11명의 업적과 스타일을 분석한 결과이다.
그린스타인 교수가 강조한 5가지 덕목은 ▲의사소통 능력, ▲통찰력, ▲감성지능, ▲정치력, ▲인지능력이다.
5가지 덕목으로 평가한 결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역대 가장 뛰어난 리더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나 리처드 닉슨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했다. 평가가 갈린 가장 큰 요인은 소통 능력의 차이였다.
조선의 가장 뛰어난 국왕으로 꼽히는 세종도 소통의 달인이었다. 세종의 소통 '광문(廣問)'이었다. 백성, 신하, 학자 등을 망라해 널리 묻는 소통 방식이다.
광문을 거친 세종은 신중하게 숙고하는 '서사(徐思)'를 거쳐 정밀한 대안을 만드는 '정구(精究)'를 완성시켰다. 명석함과 통찰력이 남달랐던 세종조차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귀를 열어 두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다른 소통 방식을 보여줬다. 철권정치의 상징인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에게 가장 성공적인 소통 사례를 든다면 경제정책을 참모들에게 완전히 맡긴 점이 아닐까 싶다. 고유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등 갓 출범한 5공화국을 뿌리째 흔들었던 경제위기는 출중한 참모의 등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역대 대통령 중 통찰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김대중 대통령은 토론을 통해 소통을 실현했다. 사실 김 대통령의 통일관이나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관은 웬만한 참모들보다 식견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도 DJ는 참모들과의 토론을 피하지 않았다. 평소의 엄청난 독서량을 통해 만들어진 통찰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YS와는 달리 설득하는 방식의 소통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대통령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불통'이라는 올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딱해 보이는 탓도 크다.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과감히 권한을 이양하는 것도 방법이다. 통찰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만기친람(萬機親覽)'식 통치방식은 많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지난 2일 한국갤럽은 여론조사결과 문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84%로 나타나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 83%를 갈아치웠다고 했다.
인수위도 없는 상태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높아 다행이다. 다만 출범초기 나타난 만기친람 현상에 대해 정관정요를 한번쯤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다. 온갖 정사를 임금이 친히 보살핀다는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조선 국왕이 정조였다. 보고서 읽기를 좋아했고, “작은 일에 너무 신경 쓰면 큰일에 소홀해지기 쉽다”는 상소문까지 받았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은 ‘하루 이틀 사이에 만 가지 기틀이 생기니 여러 벼슬아치들이 일을 저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국가의 규모가 작았던 옛날에는 임금이 정사를 직접 보살펴 백성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 때에 오긍이 편찬했다고 전하는 당 태종의 언행록으로 ‘정관’은 태종의 연호요 ‘정요’는 정치의 요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제왕학의 교과서로 여겨져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통치행위 몇 가지만 열거하고자 한다.
먼저, 일자리창출로 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 공공부문 일자리 등 기조에 대해 왜 비판적인 의견을 낼 수 없는가이다. 경총의 의견에 대한 부정의견,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계획’에 따라 신설되는 공무원 17만 명 증원의 소요 재원이 가능한지’ 등이다. 한번 채용된 공무원은 무덤에 갈 때까지 연금 등을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업무지시‘라는 국정운영 방식이다. ‘일자리위원회 구성’,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가동중단’, ‘세월호 참사 기간제 교사 2명 순직 인정 절차 진행’ 등인데 지시와 명령은 이행을 전제로 이를 불이행하면 지시불이행과 명령불복종죄로 다스린다.
문대통령은 5월25일 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지시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고 말했다. 업무지시는 적폐청산과 개혁의 강한의지를 담고 있겠지만 절대군주 같은 생각이 든다.
또 사드배치논란이다. 사드의 보고누락 여부는 내부적으로 조사해 보면 될 것이며 외부로 표출시킬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대통령이 언급한 사드의 ‘국내적 절차’를 분명히 하고 한·중·미의 갈등 소지를 최소화 하면서 국익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드배치필요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여 항구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사청문회’관련 대통령의 입장이다. 문대통령은 후보시절 “병역비리, 위장전입, 탈세,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등 5대 비리자는 고위공직에서 배제”한다고 공약했다.
지금 청문회 중인 일부장관후보자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후보자는 후보자일 뿐이고, 대통령 당선이후는 대통령으로서의 입장이라면 국민들로부터 신뢰상실로 이어질까 걱정된다.
만기친람식 내용을 종합해 보면 취임 초 문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 정책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치행위는 역대 정부에서 보듯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게 되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취임 초 추상같은 개혁의지로 밀어붙이지만, 권불3년만 되면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한다. 대통령은 국정방향의 큰 그림만 제시하면 어떨까.
정관정요는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가히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와 왕조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당태종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구비한 덕분에 허물을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통치행위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법, 제도, 정책으로 조직이 일할 수 있게 정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 만기친람(萬機親覽)
'홍재전서'에 한자 '기(機·幾)'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기는 일의 기미이다.” “기는 마음의 기미도 있고 일의 기미도 있다. 마음의 기미는 생각이 막 발하는 곳을 가리킨 것이니, 주자가 말한 바 '기선악(幾善惡)'이라 할 때의 '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일의 기미는 조짐이 처음 싹트는 곳을 가리킨 것인데 '일일만기(一日萬幾)'라 할 때의 '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를 보면 '기'란 '어떤 일의 낌새'를 이르는 말이 된다.
그러면 '일일만기(一日萬機)' 또는 '일일만기(一日萬幾)'는 어느 경우에 쓸까?
서경(書經)에 “예로부터 천자는 하루 동안 만 가지 일을 처리한다 하여 일일만기라 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하루에 많은 일을 한 경우 이를 '일일만기'라 이른다면 좀 곤란하다 할 것이고, 요즘으로선 대통령쯤 돼야 '일일만기'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순종은 '만기일력(萬機日曆)'이란 책의 서문을 이렇게 쓴다. “해, 달, 날, 시의 온갖 일들이 서로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통틀어 말한다면 한 날의 일들이다. 그래서 일일만기라 한다. 온갖 중요한 일들이 성실하고 부지런하여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우(大禹)가 촌음을 아껴 썼으며, 주문왕(周文王)이 밥 먹을 겨를이 없었으니, 곧 성실이며 근면이다. 이제 ‘성근(誠勤)’ 두 글자를 책머리에 쓴 것은 대저 스스로를 경계하려는 뜻이다.”
정도전의 '삼봉집'에도 이성계의 위업을 기리는 문덕곡(文德曲)이라는 악장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궐이 우람하여 구중으로 깊으니, 하루에도 만기(一日萬機)라 무더기로 쌓이는구나”라는 말이 있다.
지방선거를 전후해 예상되는 개각과 관련하여 내각이 교체되면 대통령은 온갖 일을 직접 처리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을 버리고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으로선 담배 권장, 살인사건 직접 판결, 심지어 유행 음악의 곡조가 너무 빠르다며 빨리 바꾸라는 등 만 가지 일을 직접 처리하다가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다는 비평을 들은 조선 임금 정조의 전례를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