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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斷住受降伏是我疑,
12[斷佛因是有菩薩疑
13[斷無因卽無佛法疑,
14[斷無因度生嚴土疑,
究境無我分第 十七 [ 十一[斷住受降伏是我疑]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一切衆生
滅度 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何而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所以者何 須菩提
實無有法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燃燈佛所
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 於燃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實無有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若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 燃燈佛 與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釋迦牟尼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 如義
若有人 言
如來得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
佛 得 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如來 所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 一切法
須菩提 譬如人身 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
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是故 佛 說一切法
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 壽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何以故 如來說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 說名眞是菩薩
究竟無我分 第十七 (결국 나라는 것이 없음)
圭峰:
第十一은 斷住脩降伏是我疑라
佛이 敎我住脩降伏하여
兼不住前十重疑執過患하시니
若無我者이면 誰人이
受敎며 誰人이 住脩며 誰人이
如此離過云云하리오 亦云除微細執故니
偈에 云하되 於內心修行으로 存我爲菩薩하면
此卽障於心되어 違於不住道라하다
斷之文이 二니 初는 問이라
규봉:
11.(疑斷)
머물고 닦으며 항복 받는 것도
이 내라는 것의 의심을 끊는 것이다.
부처님이 나로 하여금
住 修 降伏 받음을 가르쳐 주시며
겸하여 앞의 열 가지 무거운,
의심하여 집착하는 허물과
병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니,
만약 내가 없으면
어떤 사람이 가르침을 받으며
어떤 사람이 머물고 닦으며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허물을 여읜다고
운운하리오?
또한
미세한 집착을 없앤 때문이라 하니
偈에 이르되
“마음속으로 수행하여도
마음속으로 내가 보살이 되었다는
생각을 두면
이는 곧 마음을 장애 하는 것이 되어,
머물지 않는 道를 어긴다”고 했다.
그것을 끊는데 두 가지 글이 있어
①처음은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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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머물며,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나이까?”
圭峰:
二는 答이니 文三으로
一은 若名菩薩일지면 必無我니라.
규봉:
(2)는 답이니, 이 글에 세 가지로
①은 만약 보살이라면
반드시 내라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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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一切衆生 滅度一切衆生己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일으킨 이는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을 낼 것이니,
‘내가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모든 중생을 제도해 마쳐도
실은 제도한 중생이
하나도 없노라’고 (생각)해야 하니라.
淸峯:
집착을 떠나야 되니 본래 스스로 갖춘 것을
아상으로 인하여 있다는데 집착하여
미혹(無明)으로 가리웠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미혹을 여의면 그대로 본래 구족 하였음을
깨닫게 될 뿐이므로 다시 제도할 중생도
제도된 중생도 본분사로 볼 때
실은 없다 하는 것이다.
구름이 달을 가렸으나
달이 없다 하지 않음과 같으며,
하여도 함이 없이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의 행인 것이니
이것이 무아 무상행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각을 성취하고
일체중생을 제도한다 해도
제도할 자도, 제도 받을 자도,
본래 일체를 구족하고
공적함으로 있음이
없는데 주객을 세우면
곧 4상이 있는 것이라
보살이 아닌 것이다.
수보리가 我가 공하고
法이 공하고 공한 것까지
공한 것을 증득했으나(理)
이를 어떻게 행(事)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어서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해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여쭤본 것이다.
從物卽過 종물즉과 이요
動念卽乖 동념즉괴 리니
呑下諸佛 탄하제불 인데
何處有生 하처유생 인가
사물에 쫓아 보면 곧 잘못됨이요
한 생각 일으키면 어긋나리니
삼세 제불을 한 입에 삼켰는데
어느 곳에 제도할 중생이 있는가?
說誼:
滅度一切衆生은 不同二乘하여 悲化含生이요
無一衆生滅度는 智冥眞際하여 不生於化니
此當安住降心也니라
설의: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二乘과 같지 않아서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교화함이요.
한 중생도 제도함이 없다는 것은
지혜가 진리에 그윽이 계합했음인 것이라
교화했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마땅히 마음이 조복되어
편안함에 머무는 것이니라.
청봉착어:
2승은 소승심이라 열반의 낙에 머물고
보살은 자비심이 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네
제도해도 함이 없음은 본래 구족된 공한
실상을 깨달았기 때문이요
적멸위락(寂滅爲樂)의 편안함에 머무니
이것이 조복된 마음이니라.
---
六祖:
須菩提가 問佛하되
如來滅後後五百歲에 若有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依何法而住며 如何降伏其心하리오
佛言하시되 當發度脫一切衆生心이리니
度脫一切衆生하여 盡得成佛己하고는
不得見有一衆生是我度者하니라
何以故인가 爲除能所心也며
除有衆生見也며 亦除我見也니라
육조:
수보리가 부처님께 묻기를
“여래가 멸도 한 뒤 후 오백세에
만약
어떤 사람이 무상정등정각을
얻으려는 마음을 내면
어떤 법에 의지하여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리까?”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마땅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고자하는 마음을 낼지니,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켜
모두 성불케 하고는
한 중생도 내가 제도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셨다
.
무슨 까닭인가?
상대적인 생각(能所心)을 없앴음이며,
중생이 있다는 생각을 없앴음이며,
또한 나라는 생각을 없앴음으로인 것이다.
---
冶父:
有時因好月하여 不覺過滄洲로다
說 誼
駕起鐵船入海來하니
釣竿揮處에 月正明이로다
性愛蟾光寒照影하여
滄溟過來渾不覺이로다
更知道하라 途中에 却憶靑山事하니
終日行行不知行이로다
야부:
어느 땐 좋은 달(청정한 성품)로
인하여 큰바다의 섬
(滄浪洲:신선이 사는 곳)을
지남도 깨닫지 못했도다.
설의:
철선을 끌고 바다에 들어가니
낚싯대 드리운 곳에 달이 훤하게 밝도다.
性品이 달빛에 차게 비치는 그림자를
사랑하다가 신선이 사는 곳
(滄溟:끄달릴 만한 경계)을 지나도
혼연히 깨닫지 못함이로다.
다시 말하니 알라.
길 가운데(바깥일:用)서 도리어 집안(靑山:
본체인 定)의 일을 기억하니
하루종일 행하고 행하여도 행함을 알지 못하도다.
---
冶父:
若問云何住이며 非中及有無하리니
頭無纖草盖하고 足不履閻浮로다
細似隣虛析이요 輕如蝶舞初로다
衆生滅盡知無滅하니 此是隨流大丈夫로다
說誼:
要識眞住處이면 非中及有無요
脫然無所托하니 麤重淨無痕이로다
靑山留不得이거늘 紫陌을 豈能容하리오
化生而無化이니 隨流大丈夫로다
야부:
만약 어떻게 머무는가 묻는다면
가운데도 아니고 있음도 없음도 아니라 하리니,
머리엔 가는 풀도 덮지 않고
발은 염부제도 밟지 않았도다.
가늘기는 작은 먼지를 쪼갠 듯하고
가볍기는 춤추는 나비의 처음 날개 짓과 같도다.
중생을 멸하기를 다하되 멸함이 없음을 알면
이것이 흐름을 따르는 대장부로다.
설의:
참으로 머무는 곳을 알고자 하면
가운데도 있음도 없음도 아니요
확연히 벗어나 의탁할 것이 없으니,
거칠고 무거운 것이
모두 청정해 흔적도 없도다.
靑山(집안:定)에도 머물지 않거니와
어찌 도시 길(紫陌:망집)을
용납할 수 있으리오?
중생을 교화하되 교화함이 없으니
이것이 흐름을 따르는 대장부로다.
---
청봉착어:
마음을 항복 받고 바르게 머묾이여!
일체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했다는 생각이 없음은
능소심이 없어 중생이 있다는 생각이 없음이요
나라는 생각이 없음이 바로 그것이니라.
---
圭峰:
二는 若有我相이면 非菩薩이라
규봉:
②는 만약 내라는 것이 있으면
보살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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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淸峯:
法(일체)이 있다 하면
있음에 집착하는 것인데,
있음(有)은 곧 사상(四相)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상(相)에 집착하는 것이
무명 번뇌의 근본이다.
마음에 나라는 相(아상)과
法(모든 것들)이라는
일체가 공적함을 요달하여
아집, 법집 두 가지 집착을 여의고
(二空) 청정하여 남음이 없게
(無餘)해야 하는 것이다.
보리의 마음을 내어도
만법이 공함을 깨달은
이의 마음은 안주하거나
항복 받을 마음까지도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관적인) 발심을 했다 하나
안주할 객관적인 대상이 없음으로
안주할 것이 없게 되며,
따라서 마음도 항복 받을 것이 없는
항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어야 할 보리의 마음과
법도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발심하되 안주함이 본래
없고 항복 받는다는 집착까지도 여의어
자성의 성품이 발심, 수행심을 일으키되,
그 성품이 공적한 자성가운데
공적한 것임을 확철히 깨닫게 됨으로써 이다.
---
六祖:
菩薩이 若見有衆生可度면 卽是我相이요
有能度衆生心이면 卽是人相이요
謂涅槃可求면 卽是衆生相이요
見有涅槃可證이면 卽是壽者相이니
有此四相이면 卽非菩薩也니라
육조:
보살이 만약 제도할 만한 중생이 있다는
소견이 있으면 이는 곧 아상이요,
능히 중생을 제도할 것이 있다는
마음이 생기면 곧 인상이요,
구할만한 열반이 있다고 하면 곧 중생상이요,
증득할 만한 열반이 있다고 생각하면 곧 수자상이니,
이 네 가지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
圭峰:
三은 能所俱寂이 是菩提라
규봉:
③은 능과 소가 모두 고요하면
이것이 菩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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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者何
須菩提야 實無有法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어째서인가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라는 것이 있음이 없는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일으킨 것이니라.
說誼:
因甚道要須不生於化인가
若謂我能度生하며 我是發心者라하면
我人이 競作하여 能所紛然이라 卽非菩薩이니라
我能我是를 因甚道非菩薩인가 實際理地에는
曾無伊麽事이니我人이 頓盡하고
能所俱寂하여야 方與實際로 相應去在니라
설의:
무엇으로 말미암아
모름지기 교화할 것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가?
만약 내가 능히 중생을 제도하며
내가 발심한 이라 하면 我와 人이 다투어
일어나서 能과 所가 어지러운지라
곧 보살이 아니니라.
내가 능히 하고 내가 옳다고 함을
무엇으로 인해 보살이 아니라고 할까?
실제의 진리(理地)에는 일찍이 이런 일이 없으니
내다, 사람이다는 것이 몰록 다하고
能所가 모두 고요해져야 바야흐로
실제와 더불어 서로 맞는 것이니라.
청봉착어:
내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는 생각이면
상대적인 차별상의 소견을 지어
내다, 사람이다 등의 4상을 집착함이니
4상과 능소심(能所心)이 몰록 다해야
진제(理)에 계합되니라.
---
六祖:
有法者는 我人衆生壽者四法也이니
若不除四法하면 終不得菩提요
若言我不發菩提心者라도
亦是我人等法이니 我人等法은
卽是煩惱根本이니라
육조:
法이 있다는 것은
아, 인, 중생, 수자의 네 가지 법이니,
만약 네 가지 법을 없애지 못하면
마침내 보리를 증득하지 못하고,
만약 말하기를
나는 보리심을 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또한 이것도 아, 인등의 법이니
아, 인등의 법은 곧 번뇌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
傅大士:
空生重請問에 無心爲自身이니
欲發菩提者는 當了現前因이니라
行悲疑似妄이요 用智最言眞이로다
度生權立我요 證理卽無人이니라
부대사:
수보리가 거듭 청해 물으니
無心으로 자신을 삼는 것이라
보리심을 내고자 하면
마땅히 앞에 나타난
요인을 밝게 깨달을지니라.
자비를 행함에 허망한 것으로 보고
(相이 없으므로 보답을 바랄 것 없어
행하여도 함이 없음) 지혜를 씀에
가장 참답게 말하도다.
중생을 제도키 위해 방편으로 我를 세우나
이치를 증오하면 곧 人이 없느니라.
---
冶父:
小他一分인들 又爭得이리오
說誼:
我人頓盡하고 能所俱寂이 功極則不無이나
以實而觀컨데 又爭得也하리오
야부:
저 작은 하나인들 또한 어찌 얻으리오?
설의:
我, 人이 몰록 다하고 능소가 모두 고요해짐은,
功들임(修行)의 지극함이 곧 없지 않으나
실제를 관 하건대 또한 어찌 얻는다 하리오.
---
청봉착어:
내가 있다, 사람이다 등의 4상은
번뇌의 근본이니
4상이 공함을 밝게 깨달으면
무심이 되고
무심이 곧 각이니 이것이 보리(菩提)라
이미 이러할진대
어디에 我가 있고 法이 있으랴.
---
冶父:
獨坐翛然一室空하니
更無南北與西東이라
雖然不借陽和力이면
爭奈桃花一樣紅이리오
說誼:
脫然物外에 更無栖泊處이니
莫把此境云究竟하라
敢道此亦猶未在이니
雖然不用苦鍛鍊이라도
自有本地風光爛이로다
야부:
걸림 없이 빈방에 홀로 앉았으니
다시 남북과 동서도 없어라
비록 그러하나 화창한 봄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어찌 복숭아꽃이 붉게 되리오.
설의:
확연히 벗어나 物밖에 다시 깃들 곳이 없으니,
이 경계를 잡아서 구극(究竟)이라 하지 말라.
감히 말하건대 이것도 또한 오히려 모자라니,
비록 그렇게 괴롭게 닦지 않아도 스스로
本地風光(본래면목)의 찬란함이 있음이로다.
---
청봉착어:
공한 곳에 동도 서도 남도 북도 없어
다시 머무를 곳 없어도
확연 탕탕한 이것이 본지풍광의
갖가지 갖춤이니
밖으로 굳이 찾지 말지니라.
---
圭峰:
第十二는
斷佛因是有菩薩疑라
論에 云하되
若無菩薩이면
云何釋迦如來於然燈佛所에
行菩薩行인가 斷之니라
文四니 一은 擧疑處라
규봉:
12.(疑斷)
부처의 種子(佛因)에 菩薩이 있다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論에 이르되
“만약 보살이 없었으면
어찌 석가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보살행을 행하였다 하겠는가?” 하는
것을 끊어주신 것이다, 했다.
글에 네 가지가 있으니
(1)은 의심난 곳을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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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然燈佛所
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무상정등정각의 법이 있어 얻었다 하겠느냐?
圭峰:
降怨王이 請然燈佛하여
入城에 城中長幼가 盡迎路泥거늘
善慧가 布髮함에 佛與授記하시다
故擧此問이니라
二는 斷疑念이라
규봉:
降怨王(원수를 항복 받는 왕)이
연등 부처님을 청하여
성안에 들어오심에
성중의 모든 사람(長幼-노소)이
영접할 때 길이 질퍽하거늘
선혜동자(석존의 전세)가
머리를 풀어서 폈음에
부처님이 수기를 주셨도다.
그러므로 이 물음을 든 것이다.
(2)는 의심하는 생각을 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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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於然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이 연등불 처소에 계실 때
법이라는 것이 있음이 없는
무상정등정각을 얻으신 것이옵니다.”
淸峯:
정각은 얻음이 아니다.
무아, 무상으로 분별심을 여읨이 정각이므로
法(일체 모든 것의 실상의 진리)이라는 것이
실상의 상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이 있다 하면
곧 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사상(四相)을 여의었으므로
무상의 도리를 깨달아
본래 진공 묘유를 요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없고, 얻을 것이 없다 한 것이다.
謂得已應錯 위득이응착 이요
無得是眞得 무득시진득 이니
鳥飛虛空後 조비허공후 에는
蒼空亦無蹟 창공역무적 이어라
얻었다 하면 이미 응당 어긋난 것이요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니
새가 허공을 날아간 뒤에
창공에는 자취조차 없어라
---
圭峰:
善慧가 彼時에 都無所得하여 離諸分別이니
由無法故로 得記거니와 若有法者라면
是有相心이어서 不順菩提하여 佛不與記니라
규봉:
선혜가 그때에 도무지 얻은 것이 없이
모든 분별을 여의었으니, 法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수기를 얻었거니와,
만약 법이 있는 것이라면
상이 있는 마음이어서
보리를 잇지(順) 못하여
부처님이 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
六祖:
佛이 告須菩提하시되 我於師處에서
不除四相하고 得受記不하니
須菩提는 深解無相之理이니
故로 言不也라하니라
육조: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스승의 처소에서 四相을 없애지 않고도
수기를 얻었다 하느냐?” 라고 하시니
수보리는 無相의 이치를 깊이 알므로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
圭峰:
三은 印決定이라
규봉:
(3)은 결정코 인가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佛言 如是如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淸峯:
“그렇다, 그렇다”하심으로
확철을 인가하신 것이다.
說誼:
上明菩薩의 無我之意하시고
今擧自己無所得하시어
重明無我之意하시니
佛이 欲明無得하시어
假以有得問也이나
空生이 善契佛意하여
答以無得하니 可謂好知音也로다
再歎如是를 須着眼하라 滿口許他見家風이로다
설의:
위에서는 보살이 내가 없음의 뜻을 밝히시고,
지금은 자기가 얻은 것이 없음을 들어서 거듭
내가 없음의 뜻을 밝히시도다.
부처님이 얻음이 없음을 밝히고자 하시어
거짓으로 얻음이 있는 것으로 물으셨으나
수보리가 부처님의 뜻에 잘 계합하여
얻음이 없음으로 답하니
좋은 知音者라 할 만 하도다.
재차 如是’라고 찬탄하신 것을
모름지기 착안해 보라.
그의 家風을 보시고
입 가득히 허락하신 것이로다.
청봉착어:
내가 없고 얻어 가질 것이 없으니
비록 연등불께 수기를 받았다 하시나
방편으로 하신 교시라
수보리가 얻음 없음을 아뢰니
그 뜻을 아는 자임을 인가하사
옳다, 옳다 하시도다.
---
六祖:
善契佛意이니
故言如是如是之言은 是印可之辭니라
육조:
부처님의 뜻에 잘 계합하였으므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곧 인가한 말씀인 것이다.
---
冶父:
若不同床睡이면 爭知紙被穿이리오
說誼:
同聲相應하고 同氣相求로다
야부:
같은 침상에서 잠자지 않았다면
어찌 종이 이불(紙被)이
뚫어진 것을 알았으리오?
설의: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함이로다.
---
청봉착어:
함께 잠을 자도 서로 꿈이 다르나
지음자(知音者)는 그렇지 않아
함께 원하고 함께 구하니
구함도 같고 얻음도 같으니라
---
冶父:
打鼓弄琵琶가 相逢兩會家이나
君行楊柳岸하고 我宿渡頭沙로다
江上에는 晩來䟽雨過하고
(䟽는 一作初라) 數峯의 蒼翠接天霞로다
說誼:
空生이 見世尊은 打鼓人이
逢弄 琴者로다 見來에 歌何事인가
君行楊柳我渡頭로다 要識渡頭光景麽인가
雨過雲收江上晩인데 數峯蒼翠接天霞로다
箇中無限淸意味를 江上一句로 都說破로다
야부:
북 치는 이와 비파 타는 이가
둘이 서로 모여 한 집에서 만났으나
그대는 버드나무 언덕을 거닐고
나는 나루터 언덕 모래에서 잠을 자도다
강 위엔 늦은 소나기 지나가고
몇 산봉우리의 푸른빛이
하늘가 노을에 닿았도다
설의:
수보리가 세존을 보는 것은
북 치는 이가
거문고(琴) 타는 이를 만남이로다.
마주보며 무슨 일을 노래할까?
그대는 버들 언덕을 거닐고
나는 나루터에서 자도다.
나루터의 광경을 알고자 하는가?
비는 지나가고 구름이 걷혀도
강 위는 저무는데
몇 산봉우리의 푸른빛이
하늘가 노을에 닿았도다.
그 가운데 한없는 맑은 의미를
강 위의 한 구절로 모두 설파했도다.
---
청봉착어:
비록 세존과 수보리 둘인 듯 하고
묻고 대답함이 각각인 듯 하나
비파 타고 북 침이 서로 어울려
너 나 없는 화음을 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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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實無有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실로 법이라는 것이 있음이 없는 것이나
여래가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 하느니라.
淸峯
실로 법이라고 할 만한 주고받을
무엇이 있지 않으나
정각을 얻었다 하니 얻었다 하는 이것은
증득 했음을 이르시는 말씀이다.
---
圭峰:
論에 云하되
我於彼時에 所修諸行이
無有一法得阿耨菩提라하며
功德施論에
引佛說云若見於佛이
卽見自身이요 見身淸淨이
見一切淸淨이며 見淸淨智도
亦復淸淨이니 是名見佛이라
我如是見然燈如來하고 得無生忍하여
一切智智가 明了現前하여
卽得授記했으니 是授記聲이
不至於耳며 亦非餘智之所能知이며
我於此時에 亦非惛矇無覺이나
然無所得이라하다
四는 反覆釋이라
규봉:
論에 이르되
“내가 그때 닦은 모든 행이 한 법도
있음이 없는 위없는 보리를 얻었다”하며
功德施論에 부처님의 말씀을 이끌어 말하기를
“만약 부처를 본다면 곧 자신을 봄이요,
자신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일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며,
청정한 지혜를 보는 것도
또한 다시 청정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를 보는 것
(見性)이라 한다
내가 이와 같이
연등 여래를 보고 無生忍을 얻어서
일체의 지혜와 種智가 밝고 또렷하게
현전하여 곧 수기를 얻었으니
이 수기하는 소리가 귀에 이르지 않았으며
또한 다른 지혜로써 능히 알 바도 아니며,
내가 이때에 또한
혼몽하여 깨달음이 없는 것이 아니나
그러나 얻은 바 없었다”고 한 것이다.
(4)는 반복해서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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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若有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然燈佛 卽 不與 我 授記
汝於來世 當得作 佛 號 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 然燈佛 與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釋迦牟尼
수보리야!
만약 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래가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면
연등불이 곧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네가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고
호를 석가모니라 한다’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나
실로 법이라는 것이 있음이 없는 것으로써
무상정등정각을 얻은 것이라 하니라.
이런 까닭으로
연등불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네가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호를 석가모니라 한다’ 하셨느니라.
淸峯:
믿을만한 조그마한 실재의 법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성품이 있게 되어 일체법과
공적한 하나의 모습(實相)이 둘 아니라고 하는
(如) 일체평등의 뜻과 상응하지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존경받을 거룩한 분으로
능히 어질고 묵묵적적하여 고요하다는 뜻이다.
說誼:
得失之言이 只緣迷悟하나
而其實則迷介什麽이며
悟介什麽인가 迷悟旣無인대
得何曾得이며 失何曾失이리오
旣然不可言有得이요 亦復不應言無得이니
我佛見然燈도 了應如是知니라
설의:
얻었다, 잃었다 말한 것은
다만 미혹과 깨달음을 인연하나
그 실인즉 미혹한 것은 무엇이며
깨달음은 또 무엇인가?
미혹과 깨달음이 이미 없을진대
얻는다는 것이 어찌 일찍이
(본래) 얻는 것이며, 잃는다는 것이
어찌 일찍이 잃은 것이리오?
이미 그러하여
가히 얻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이요,
또한 다시 응당
얻음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 부처님이 연등불을 봤다는 것도
마땅히 이와 같이 깨달아 알지니라.
청봉착어:
미혹도 깨달음도 본래 없으니
얻음도 얻을 것도 본래 없도다.
그러나 없음에 치우쳐 떨어지지 말지니
미혹도 얻음이 없음도 여의어야 하느니라.
---
圭峰:
無着이 云하되
若正覺法可說이 如彼然燈所說者인대
我於彼時에 便得正覺이어도
然燈이 則不與我授記言來世當得이거니와
以法不可說故로 我於彼時에 不得正覺인
是故로 記言來世當得시니라
규봉:
무착이 이르되
“만약 바르게 깨달은 것 (正覺法)을
가히 설함이 저 연등부처님의
설한 바와 같을진대
내가 저 때에 문득 正覺을 얻었어도
연등(佛)이 곧 나에게 수기를 주시며
‘내세에 마땅히 얻으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거니와
법은 가히 설하지 못하였으므로써
내가 그때에 정각을 얻지 못한 까닭으로
수기하여 말하되
‘내세에 마땅히 얻으리라’ 하셨다”고 하였다.
[이 의해 부분의 애매함이 나(淸峯)로서는
수용하기에 용납하기 어렵다]
---
六祖:
佛言하시되
實無我人衆生壽者하여야
始得授菩提記이니
我若有發菩提心이면 然燈佛이
卽不與我授記이거니와 以實無所得이매
然燈佛이 始與我授菩提記하니라
此一段文은 總成須菩提無我義니라
육조: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실로 내라, 사람이라, 중생이라,
수자라는 것이 없어야 비로소
菩提의 수기를 얻을 것이니,
내가 만약 보리라는 마음을 내었다면
연등불이 곧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았거니와
실로 얻은 바가 없으므로 연등불이 비로소
나에게 보리의 수기를 주셨다”고 하셨다.
이 일단의 글은
수보리가 내라는 것이 없는 뜻을
모두 이룬(드러낸) 것이다.
---
冶父:
貧似范丹이나 氣與項羽로다
說誼:
貧則貧矣이나 自有衝天意氣로다
야부:
가난하기는 범단
(중국 한나라 때 유명한 청빈한 선비)과
같으나 그의 氣는 항우와 같도다.
설의:
가난하기는 극히 가난하나
스스로 하늘을 찌를 의기가 있도다.
---
청봉착어:
안팎이 가난해야
보리를 얻었음을 수기하니
4상이 없어야 참으로 증득할 것이니라
가난하기는 송곳조차 없어도
의기는 일체를 움직이도다.
---
冶父:
上無片瓦하고 下無卓錐로다
日往月來해도 不知是誰인가 噫!
說誼:
淸貪無所有이나 意氣는 不敢籠이니라
야부:
위로는 기와 조각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 꽂을 데도 없어라.
해가 가고 달이 와도
알지 못하니 이 누구인가? 噫!
설의:
청빈하여 가진 것은 없으나
그 意氣는 감히 가두지 못하니라.
---
청봉착어:
밖에도 안에도 아무 것이 없으니
위로는 기와 조각이 없음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 없음조차 없어라.
이 무엇인가? 악!
---
圭峰:
第十三은
斷無因則無佛法疑니라 於中에 文三이니
一은 斷一向無佛疑니라 論에 云하되
若無菩提이면
卽無諸佛如來라는 有如是謗하여 謂一向無佛이니
爲斷此疑故로 云하되 如來者는 卽是眞如라하니라
於中에 文二니 一은 顯眞如是佛故非無니라
규봉:
13.(疑斷)
因이 없으면 즉 佛法도 없을 것이라는
의심을 끊어준 것이다.
그 가운데 글이 세 가지니
(1)은 한결같이 부처님이 없다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論에 이르되
“만약 보리가 없으면
곧 제불 여래가 없는 것이라는,
이와 같은 비방이 있어서
한결같이 부처가 없다고 말하게 되는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한 까닭으로 이르되
여래는 곧 진여라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 가운데 글이 두 가지니
①은 眞如가 부처이므로
없음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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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 如來者 卽諸法如義
왜냐하면, 여래라고 하는 것은
곧 모든 법(것)과 같다 하는 뜻이니라.
淸峯:
如는 같다는 뜻이니
모든 것(法)이 더불어 함께 하고
본성(本性)이 같이 공하여 같다는 뜻으로 여래란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틀림없이 같은 진리인
실상의 모습인 것이다.
사람이 공함이 無生忍이요,
法이 공함이 無生法忍의 지혜인 것이다.
說誼:
旣得如來號라면 必得菩提道거늘
因甚道無所得인가
得名如來無別意니 以了諸法是眞如니라
眞如平等性淸淨하거늘 所得을 何以論其中이리오
설의:
이미 여래라는 호를 얻었다면
반드시 菩提道를 얻었을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얻은 바가 없다고 말하는가?
여래란 이름을 얻었다는 것은
별 뜻이 없음이니,
모든 법이 진여임을 밝게 깨달았을 뿐이니라.
진여는 평등하여 그 성품이 청정하거늘
얻은 바를 어찌 그 가운데서 논할 바이리오?
청봉착어:
여래란 곧 眞如이며 진여가 곧 如如이니
여여란 일체 평등해서 如요
모든 것이 평등한 眞諦와 같으니 또한 如라.
如하고 如하매 평등 청정커늘
주고받을 그 무엇이 있으리오.
---
圭峰:
無着이 云하되
眞如淸淨하니
故名如來이니 猶如眞金이라하다
규봉:
무착이 이르되
“眞如가 청정하므로 여래라 이름하니
마치 眞金과 같다”고 했다.
---
六祖:
言諸法如義者는 諸法은 卽是色聲香味觸法이니
於此六塵中에 善能分別하면 而本體湛然하여
不染不着하여 曾無變異함에 如空不動이
圓通瑩徹하여 劫常存를 是名諸法如義니라
菩薩瓔珞經에 云하되 毁譽不動이 是如來行이라하며
入佛境界經에 云하되 諸欲不染故로 敬禮無所觀하니라
육조:
‘모든 법이 여라는 뜻’이라고 말한 것은
모든 법이란 곧 색, 성, 향, 미, 촉, 법이니
이 육진 가운데 이치를 가려 바르게 알면
그 本體(근본바탕)가 맑고 고요(湛然)하여
물들지도 않고 着하지도 않아서 일찍이
변하고 달라짐이 없는 것이
허공이 움직이지 않음과 같이 원만히 통하고
환히 밝게 사무쳐서 무량겁토록 항상 있음을
모든 법이 如라고 하는 뜻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보살 영락경에 이르되
“헐뜯거나 칭찬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여래의 행이라” 하며,
入佛境界經에 이르되
“모든 하고자함(欲)에 물들지 않으므로
볼 것이 없는 바(佛)에 공경하고 예를 한다” 하였다.
---
冶父:
○住住하라 動着則三十棒치리라
說誼:
只如眞如平等底道理를
作麽生道인가 生佛이 幷沈하고
自他俱泯하니 天地地天天地轉이요
水山山水水山空이로다
雖然如是나 法法이 本來安本位하니
誰喚燈籠作露柱리오
伊麽則不應動着이니
動着則三十棒치리라
야부:
○을 그려 놓고
가만히 머물러라(가만히 있으라).
움직이면 곧 三十방을 치리라.
설의:
다만 저 진여평등의 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을 그려놓고)
중생과 부처가 모두 잠겨 사라지고
나와 너가 모두 사라지니
하늘이 땅이요 땅이 하늘이라.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물이 산이고 산이 물이라.
물과 산이 다 공함이로다.
비록 이와 같으나
법과 법이 본래의 위치에 그대로 있는데
누가 燈籠을 露住라 부르리오.
이러한즉
응당 움직이지 말지니
움직이면 곧 三十방을 치리라.
---
청봉착어:
색, 성, 향, 미, 촉, 법의 본질이
일체 평등하여 如이니
청정한 성품이 칭찬이나
헐뜯음에 動할 리 없고
청정한 진성은 볼 것이 없고
이름조차 없되 佛이라 예경하나
개구즉착(開口卽錯)이로다.
(움직이면 곧 30방이라!
그러나 그 방망이는 어떻게 처리할고? 억!)
---
冶父:
上是天兮下是地이라
男是男兮女是女로다
牧童撞着放牛兒하니
大家齊唱囉囉哩하도다
是何曲調인가 萬年歡로다
說誼:
天天地地何曾轉이리오
水水山山各宛然하도다
百億活釋迦가 醉舞春風端하니
韻曲이 自然이라 誰不解和리오
萬年歡曲이 緣何有인가
人人이 自有無生樂이로다
야부: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땅이라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로다.
목동(부처:始覺)이 소를 치는
아이(부처:本覺)를 만나니
大衆이 다 함께 라라리... 하도다.
이 무슨 곡조인가?
만년(究竟)의 즐거움이로다.
설의:
하늘은 하늘이요 땅은 땅이라.
일찍이 어찌 뒤바뀌리오?
물은 물, 산은 산이 각각 완연하도다.
백 억의 살아있는 석가가
봄바람에 취하여 춤추니
음과 곡이 본래 그러한데
누가 화답하지 못하리오?
만년의 즐거운 곡이
무엇을 인연하여 있는가?
사람마다 스스로
남이 없는 즐거움이 있음이로다.
---
청봉착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물과 산이 함께 하나로 돌아가도다
만년의 즐거움이라
항상 하는 즐거움인 無生樂 뿐이로다.
---
圭峰:
二는 明佛卽菩提故로 無得이라
규봉:
②는 부처가 곧 (菩提 [불과]인) 까닭으로
얻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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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有人 言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
여래가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음이 없는 것을
부처가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淸峯:
실상은
일체 모든 것(法)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므로
법이라는 것이 있어 밖으로부터 얻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일체 모두가 본성의 실상이 공적 여여한 것이고,
여래 진여가 청정(깨끗해 걸림이 없어)한 것으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얻어도 얻음이 없는 깨달음
곧 증오한 증득(證得)이라 하는 것이다.
---
圭峰:
先標錯解이니 魏에 云하되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菩提者이면
是人은 不實語라하다 後釋正見이니
偈에 云하되 菩提는 彼行等이라하니
謂等前菩薩行無得也이라하다
無着이 云하되
或謂然燈佛所에서는 於法에 不得正覺하시고
世尊이 後時에 自得正覺이라하니 爲離此取한
故로 云하되 若人言等이라하니라
二는斷一向無法疑이니
論에 云하되 有人이 謗言하여 若無因行이면
則如來가 不得阿耨菩提라하니
爲斷此疑故로 云하되 如來所得等이라하다
於中에 文二니 初는 遣執遮疑니라
규봉:
먼저 잘못 안 것을 드러낸 것이니
魏나라 번역에 이르되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아뇩보리를 얻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실답지 못한 말을 한 것이라” 했다.
뒤는 바른 지견을 해석한 것이니
게송에 이르되
“菩提는 저 行(피안의 바라밀행)과 같다 하니
앞의 보살 행의 얻음이 없음과 같다”고 했다.
무착이 이르되
“혹 이르기를 연등불 처소에서는
법에 정각을 얻지 못하시고,
세존께서 뒤에 스스로 정각을 얻었다”하니
이 집착을 여의기 위한 까닭으로 이르시되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等(같다)이라”라고 한 것이다.
(2)는 한결같이 法이 없다고 하는 의심을 끊은 것이니,
論에 이르되
“어떤 사람이 비방하여 말하기를
만약 因行이 없으면
곧 여래가 아뇩보리를 얻지 못하였다고 하니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한 까닭으로
여래가 얻은 바 等(같다)이라’라”고 했다.
그 가운데 글이 두 가지니
①은 집착을 버리고 의심을 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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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무상정등정각인
그 가운데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는 것이니라.
淸峯:
형상이 없으면서 아주 없는 것이 아니므로
유와 무를 떠나 상을 여읜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얻어도 얻음이 없는 것이 그것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취란 말조차 여읜 것이다.
또 증득 했다는 말은 실다움이 아니요,
그 말의 진의는 헛된 것이 아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여래가 보리를 증득 했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 측면에서 설명되고자 하는 것일 뿐
상대성을 떠난 진여의 실상은 아닌 것이다.
공적한 법성을 증오했을 뿐이다.
일체법과 하나로 여여한 것 외에
따로 얻을 것이란 없고
(無實) 진실을 체득하여 진여를 깨달은
바이므로 헛됨(無虛)도 없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각은 일체 차별적인 모습의
모든 법(萬法)이 아니므로 실상이 공하여 없으니
무실이고, 일체 만법 모두가 보리에
상즉 했으므로 헛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즉 깨달은 바가 상이 없으니 무실(無實)이요,
거짓이 아니니 무허(無虛)인 것이다.
등(等)은
같음을 뜻하는 것이다.
說誼:
前言佛하여 以明無得無實하시고
此言法하시어 以明所得無虛하시니
若論佛義하면 猶如太虛하여
廓然無諸相이며 寂然無去住하여
盡十方世界가 都盧是一身이라 更無二相하니
傳介什麽며 得介什麽리오
所以로 道하되 實無有法인가
如來得阿耨菩提等이라하니라
若論法義이면 如彼太虛의 白日相似하여
萬像森羅이 差別全身이요 見聞覺知를
應用無妨이라 這裏에는 說聽도 亦不無며
傳得도 亦不無니라 所以로 道하되
無實無虛라하시니 雖然無實이나 亦非無實也니라
설의:
앞에서는 부처를 말씀하여서 얻음도 없고
실다움도 없음을 밝히시고
여기서는 법을 말씀하여서 얻은 바가
헛됨이 없음을 밝히시니,
만약 부처의 뜻을 논하면
마치 큰 허공과 같이 확연하여
모든 상이 없으며 고요하여
가고 머묾이 없어서
온 시방세계가 모두 한가지로 한 몸이니라.
다시 두 相이 없으니
전할 것이 무엇이며 얻을 것이 무엇이리오?
그런 까닭으로 말하되
“실로 법이 있음이 없으나 여래가
아뇩보리 등을 얻었다”라고 하시니라.
만약 법의 뜻을 논한다면 저 큰 허공의 밝은
해와 같아 삼라만상이 차별 그대로 온 몸이요,
보고, 듣고 아는 것을 응하여 씀에
방해로움이 없는 것이니라.
이 속에 설하고 들음도
또한 없지 않으며
전하고 얻음도 또한 없지 않느니라.
그런 까닭에 말씀하되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하시니
비록 그렇게 실다움이 없으나
또한 실다움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니라.
---
圭峰:
論에 云하되 無色等相故며 彼卽菩提相故라하고
無着이 云하되 顯眞如無二故이며 謂言說故이니
謂彼正覺이 不無世間言說故라하다
규봉:
論에 이르되
“色等의 相이 없는 연고이며 그것이
곧 보리의 相인 연고라” 했고
무착이 이르되
“眞如가 둘이 아님을 나타낸 연고이며
言說로 이른 연고이므로 저 바른 깨달음(正覺)은
세간의 언설이 없지 않은 연고라” 했다.
---
六祖:
佛言하시되 實無所得心으로 而得菩提이니
以所得心이 不生하는 是故로 得菩提니라
離此心外에 更無菩提可得이니 故言無實也니라
所得心이 寂滅하여 一切智가 本有하고
萬行이 悉圓備하여
恒沙德性이 用無乏少이니 故言無虛也니라
육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실로 얻은 바 없는 마음으로 菩提를 얻음이니,
얻었다는 마음이 나지 않게 되는 이런 까닭으로
보리를 얻었다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을 여의고 밖으로는
다시 얻을 만한 보리가 없으니
그러므로 실다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얻었다는 마음이 고요히 사라지면
모든 지혜가 본래 있으며
萬行이 다 원만히 갖추어 있어
항하사의 덕성을 씀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니
그러므로 헛됨이 없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
冶父:
富嫌千口少요 貧恨一身多로다
說誼:
實而無實이요 虛而無虛로다
야부:
부유하면 千입도 적다고 싫어하고,
가난하면 한 몸도 많다고 한탄하도다.
설의:
실답되 실다움이 없고,
헛되되 헛됨이 없도다.
冶父:
生涯如夢若浮雲하여 活計都無絶六親이로다
留得一雙靑白眼하여 笑看無限往來人이로다
說誼:
莫怪寥寥無一物하라 伊家活計自如然이로다
莫謂一向空無物하라 左之右之應無虧로다
야부:
생애가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아
살아갈 계책이 도무지 없이 육친이 끊어지니
한 쌍의 靑白眼을 얻어
한량없는 가고 오는 사람들을 웃으며 보도다.
설의:
쓸쓸하여 한 물건도 없음을 놀랍고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저 집 사는 계책이 스스로 그러하다.
한결같이 비어 物
(물건이 즉 아무것도 아예 없다 하지 말라)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마음대로 응함에 모자람이 없도다.
---
청봉착어:
내가 공하고 법이 공하며 보리 또한 공하여
얻어도 얻은 바가 없도다.
얻어 가질 것이 본래 없으니 실다움이 없고
없으나 항상 쓰되 부족함이 없어
헛됨이 없음이로다.
말씀은 실다움이 없으나
그 진상의 뜻 헛된 것이 아니니라.
---
圭峰:
二는 釋義斷疑라
규봉:
(2)는 뜻을 해석하여 의심을 끊은 것이다.
-----------------------------------------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이런 까닭으로 여래가 설하기를
‘모든 것(法)이 모두가 불법이라’ 하는 것이니라.
淸峯:
무슨 뜻인가?
하면 모든 하나 하나가 실체가 없는
(본질적으로 실다운 상이 없어 공하여)
가운데 일체를 구족하고 나투며,
그 하나 하나에 일체를 구족
(갖춤)한 진실한 것
(實相)을 깨우치시고
그것을 설하신 것이므로 말은 실다움이 없으나
한가지도 또한 버릴 것이 없는 것(眞理)을 깨치신
대로 설하신 것이므로 말씀 또한 헛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헛된 것이 아닌
일체 법(萬法:모든 실상)을 설하시어
드러내 보이신 것이 또한 진리인 불법이라고
하신 것으로, 아예 없다 하는 변견에 떨어져
단멸공으로 치우칠까 염려하여 하신 말씀인 것이다.
瞬目又揚眉 순목우양미 가
皆是眞佛現 개시진불현 이니
圓物生圓物 원물생원물 이고
方亦生方物 방역생방물 이니라
눈을 감고 뜨고 눈썹 치키고 내리는 것
모두가 참 부처의 출현이니
둥근 것은 둥근 것을 낳고
모난 것은 모난 것을 낳느니라
說誼:
前言無實則法法이 無自性이라
內而根身과 外而器界가
相相이 皆爲虛妄하여 無可指陳이고
此言無虛則法法이
依位住하여 鶴長鳧短하고
松直棘曲하여 相相이 元眞이라
無非實相이니 牛佛馬佛과 男佛女佛이
不相借借하고 各受法樂이로다
설의:
앞에서 말한 실다움이 없다는 것은
곧 법마다 自性이 없어서
안으로 육근의 몸과 밖으로의 세계가
서로의 형상(相과 相)이 모두 허망해서
가히 가리킬 것이 없음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헛됨이 없다는 것인 즉 모든 것(法 法)이
모두 자리에 의지해 머물러 있어
학 다리는 길고 오리다리는 짧으며
소나무는 곧고 가시덩굴은 굽어도
서로 서로가 원래로 진실함이라,
實相 아님이 없으니
소 부처와 말 부처, 남 부처와 여 부처가
서로 빌리지 않고도 각각 法樂을 수용하도다.
청봉착어:
일체 상이 모두가 허망해서
말씀하신 모두가 실다움이 없으나
또한 일체 상이 제각각 이로되
본질을 觀해 보면
모두가 실상 아님이 없도다.
---
冶父:
明明百草頭에 明明祖師意로다
說誼:
祖意明明百草頭이니 百草頭上에 好開眸니라
야부:
분명하고 분명한 百草頭(모든 것들)에
밝고 밝은 祖師의 뜻이로다
.
설의:
조사의 뜻이 百草頭에 분명하고 분명하니
온갖 것 위에 아름답게 눈을 뜰지니라.
---
청봉착어:
百草가 佛母이니
頭頭物物이 부처 아님이 없고
佛(祖師)은 깨달음이니
진리가 곧 불법이니라
---
冶父:
會造逡巡酒하고
能開頃刻花하며
琴彈碧玉調하고
爐煉白硃砂로다
幾般伎倆從何得인가
須信風流出當家니라
說誼:
造酒開花여 伎倆이 多端하니
如是伎倆이 匪從他得이로다
야부
逡巡酒(준순주:술 이름)를 만들 줄 알고
頃刻花(경각화:홀연히 피어 나타난 꽃)를
능히 피우며
거문고로 맑고 푸른(碧玉調) 곡조를 타고
화로에 백주사(白硃砂)를 단련하도다.
이런 여러가지 기량은 어디서 얻었을까?
모름지기 風流가 마땅히 제집(법성)에서
흘러나옴을 믿을지니라.
설의:
술을 빚고 꽃을 피움이여.
기량이 여러 가지 많으나
이와 같은 재주는
다른 곳으로부터 얻음이 아니로다.
---
청봉착어:
맛있는 술을 빚고
환화(幻花)의 꽃을 피우고
맑고 푸르른 거문고 소리 내는
이 모든 재주여
신통을 달리 구하지 말라
스스로 갖추어 쓰고 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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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수보리야! 말한 바 일체법이라 한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닌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일체법이라 이름하느니라.
淸峯:
모든 상은 본질적으로 항상 하지 않고
실상이 없는 것이므로
이름도 형상도 없는 것을 이름하여
일체 법이라 한 것이므로 법이다,
법 아니다를 초월한 것이다.
일체가 무실(無實)이면서 갖가지 법의 본질이
실상 아님이 없다. 따라서 법 아닌 것이라고
하는 것이 또한 법인 것임도 알아야 한다.
說誼:
前言無實無虛則捏取放開요
此言法卽非法則放開捏取로다
伊麽則佛則是法이요 法則是佛이니
佛法이 無二라 道方現前이로다
설의:
앞에서 말한 無實無虛는 즉 잡았다가 놓아줌이요,
여기서 말하는 법이 곧 법 아니라고 한 것은
놓았다가 다시 잡음이로다.
이러한즉 佛이 곧 法이요 法이 곧 佛이니
佛과 法이 둘이 없음이라.
道가 바야흐로 앞에 나타남이로다.
청봉착어:
거두면 無實이니 있음이 없음이요
놓아주면 無虛이니 법의 실상을 드러냄이라
법이 곧 법 아니라고 하는 것은
법이 있음이 없음이요
佛이 곧 법(一切)이요
일체(法)가 곧 不二니라.
---
圭峰:
論에 云하되
一切法이 皆眞如體이니 故皆佛法이라하다
卽非者는 由色等法이 卽眞如故로 卽非色等法이니
眞如는 常無色等諸相故요 是名者는
卽是眞如法自性矣니라
규봉:
論에 이르되
“一切法이 모두 眞如의 體이므로
모두가 佛法이라” 했다.
곧 아니다(卽非)하는 것은
色 等의 法은 곧 진여로부터 온 것이므로
곧 색 등이 법이 아님이니,
진여는 항상 색 등의 모든 相이 없는 까닭이고,
이 이름(是名)은 진여법인 自性인 것이다.
---
六祖:
能於諸法에 心無取捨하며 亦無能所하면
熾然建立一切法하되 而心常空寂이니
故知一切法이
皆是佛法이나 恐迷者貪着一切法以爲佛法하시어
爲遣此病故로 言卽非一切法하시다
心無能所하여 寂而常照하면 定慧齊行하고
體用一致라 是故로 名一切法也니라
육조:
능히 모든 법을 마음으로 취하고 버림이 없고,
또한 能所가 없으면 그렇게 무수(熾然)히
일체 법을 건립하되 마음은 항상 공적한 것이니,
그러므로 알라.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나,
迷한 사람은 일체 법에 탐착하여
불법을 삼을까 염려하시어
이런 병을 고치기 위한 까닭으로
곧 일체 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에 능소가 없어서 고요하되
항상 비추면 定慧가 가지런히 행해지고
體와 用이 일치하게 되므로
이름하여 일체 법이라 하는 것이다.
---
冶父:
上大人丘乙己로다
說誼:
斯道之體가 最尊極無上하고 廣博無邊表하며
混空爲體性하여 無物爲等倫이니 所以로
道上大人丘乙己이니라 上大人之言은
世稱孔聖之談이니 然이나 此乃天下之公名이니
豈一人之獨稱哉이랴 但孔聖이 深體乎此하여
而其德之大成이 未嘗有間然故로 稱之云然이니
如所謂佛者도 妙契天眞佛體故로 稱之爲佛也니라
야부:
대인 가운데 위요 구을기 [존중하여 聖人
(공자를 칭하여 쓴 명사. 이 말씀은 비유임)
이로다]로다.
설의:
이 道의 體는 가장 높고 지극하여 위가 없고
넓게 통하여 갓을 표할 수 없으며 온 허공을
體性으로 삼아서 어떤 물건과도 짝할 수 없으니,
그런 까닭으로 말하되 ‘上大人 丘乙己’라 하나니,
上大人이란 말은
세상에서 성인인 공자를 칭하셨던 말이나
그러나 이것은 天下의 공통의 이름이니,
어찌 한사람만을 홀로 일컫는 것이겠는가?
다만 성현인 공자가 깊이 이것을 체달하여
그 덕을 크게 이룬 것이 일찍이 끊임이
없는 까닭으로 칭하여 그렇게 이르는 것이니,
이른바 부처님(佛)이라 하는 것도
본래 있는 그대로
(근본 바탕인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인
부처라는 몸(本覺)(天眞佛體:붇다)에 묘하게
계합(始覺) [합일하여(見性)
둘 아님을 증오]한 까닭으로
일컫기를
부처님(佛)이라 하는 것이니라.
---
청봉착어:
相이 없고 집착함이 없다면
항상 나투고 작용하되 무념 무상의 마음이요
체, 용(體用) 일체를 불법이라 하나
체, 용이 상이 없으니 일체가 법이요
또 법 아니라 하니라.
천하의 성인을 일러 上大人이라 칭하나니
성현 공자를 상대인이라 함은
다만 그가 이 도리를 깊이 체득하여
널리 알렸음이요
위없는 天眞佛體인
부처를 증오(覺)하였더라면
부처님이라 하였으리라.
---
冶父:
是法非法不是法이니 死水藏龍活鱍鱍이도다
是心非心不是心이니 逼塞虛空古到今이로다
秖者是絶追尋로다 無限野雲風捲盡하니
一輪孤月照天心이로다
說誼:
法則是心不是法이여 死水藏龍活鱍鱍이요
法旣非法心亦非이니 非心心體塞天地로다
塞天地여 今古應無墜하여 分明在目前이로다
在目前인데 何用區區謾追尋이리오 是非雲盡하여
心法雙忘하니 大人面目에 當陽顯赫이로다
야부:
법이다 법 아니다는 것이 법이 아니니
죽은 물에 잠긴 용이 활발하게 살아 헤엄치도다.
마음과 마음 아님은 모두 이 마음이 아님이니
허공을 가득 채우고 옛부터 오늘에 이르렀도다.
다만 이것일 뿐이라 달리 찾을 것이 없도다.
한없는 들 구름을 바람이 모두 거두니,
하나의 둥근 달만이 하늘 가운데서 비추도다.
설의:
법이 곧 마음이요 법이 아니니
죽은 물에 잠긴 용이 활발하게 헤엄침이요,
법은 이미 법이 아니고 마음 또한 아니니
마음이 아닌 마음의 체가 천지에 가득 하도다.
天地에 가득함이여!
지금과 옛날에 응당 떨어짐이 없이
분명하게 눈앞에 있음이로다.
눈앞에 있는데
어찌 구차스럽게 부질없이 쫓아 찾을 것인가?
是非의 구름(망상)이 다하여 마음과 법을
쌍으로 둘 다 잊으니
大人의 면목(本來面目)이 밝은 빛에
나타나 밝게 빛나도다.
---
청봉착어:
말과 말은 소리요 실상이 아니요
실상은 여여하여 항상 적적묵묵하니
천지에 가득한 것이 마음도 아니요 법도 아닌
본래면목인 실상이니라.
---
圭峰:
三은 顯眞佛眞法體라
규봉:
(3)은 참 부처와 참 법의 체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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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수보리야! 비유로
사람의 몸이 매우 크다고 한 것과 같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한 사람의 몸이 매우 크다한 것은
곧 큰 몸이 아니고 그 이름이 큰 몸인 것이옵니다.”
淸峯:
크다 작다 하는 것은
형상 있음으로 비교하여 하는 말인 것이다.
형상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마음(佛)은 한계를
사량할 수 없으니,
좁히면 바늘 끝으로 찌를 것도 없으나 넓히면
우주 삼라만상을 포용하는 것이다.
청정하여 일체에 장애가 없으면서
일체 공덕을 갖추었고 무변 무량하여
비할 데 없는 큰 몸(法身)인 것이다.
여래께서 보리를 증득 했다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차별상으로) 설명한 것이나,
상대성을 떠난 진여의 실재는 얻음이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여래께서 증오한 보리는 일체 만물의
근본인 법성인 것이다.
제법과 상즉하여 같은 것(如)을
비록 얻었다고 해서 따로 증가 할 만한 것은
없기 때문에 실재의 상도 없으며(無實),
차별현상의 만법이 실상이 있음도 아니며
아예 없는 것도 아니므로 헛됨이 없으며(無虛),
또한 일체법의 본질이 보리와 같기(如) 때문에
보리는 자체의 모습으로 구별되는
형상 있음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일체법 모두가
또한 각의 세계(법성)인 불법인 것이다.
왜냐하면,
진여 법계는 가이없어 그 자체는 변치 않는 가운데
현상, 생멸의 인연을 항상 따르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진여법과 현상 모두를 일체법이라
하는 것이며 그 진리가 불법인 것이다.
또한 진여 법성은 생멸의 인연을 따르면서도
항상 그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증오(始覺)한
것을 법신불(眞身, 眞佛)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신은 일체 차별적인 모습을 떠났으되
일체 생멸하는 만법에 상즉하므로
만법을 여읜 법신(眞如)의 몸은 따로 없는 것이다.
說誼:
此身이 無限量하고
無邊表하여 無一物可等伊며
無一物能蓋伊니 設道大同須彌라도
早已局限他了也며 量同太虛라도
亦局限他了也니라 因甚道非身고
本是尊貴人은 不居尊貴位이니
須彌頂上에 尋不遇하나
芳草岸頭에서 或相逢이니라
是名爲大身이여 令人特地愁로다
摩竭에서 爲之曾掩關하고
毘耶에서 爲之口掛壁이로다
설의:
이 몸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한 물건도
그것과 같은 것이 없으며 한 물건도 능히
그것을 덮을 수 없는 것이니,
설사 크기가 수미산과 같다고 말하더라도
벌써 다른 것에 국한된
(상대적으로 크기가 한정되어짐)
것이며, 그 양이 큰 허공과 같다
(무에도 한 관문이 격해 있음) 할지라도
또한 상대적(他)으로 국한된 것이니라.
무엇을 인하여 몸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본래 존귀한 사람은 존귀한 위치
(국한된 곳)에 머물지 않으니
수미산 정상에서 찾아봐도 만나지 못하나
꽃다운 풀밭 우거진 언덕에서
혹 서로 만날 것이니라.
이름이 큰 몸이라 하는 것이여!
사람으로 하여금 특별히 근심스럽게 하였도다.
마갈타에서 그를 위해 일찍이 문을 닫았고
비야리 성에서는(유마거사 있던 곳) 그를 위해
입을 벽에 걸었음
(말없이 양구하여 不二법문)이로다.
청봉착어:
둘이 없는 무한대의 큰 이 몸(法身)이여
크다 작다를 여읜 것이니라
크고 작다하는 것은 상대적이나
다만 방편으로 크다고 이름하도다.
---
圭峰:
偈에 云하되 依彼法身佛한 故說大身喩니
身離一切障이며 及徧一切境이로다
功德及大體이니 故卽說大身하시고
非身卽是身이니 是故 說大身하셨도다
論에 云하되
非身者는 無有諸相故요
大身者는 有眞如體故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攝一切衆生한 大身故로
於彼身中에 安立非自非他故라하다
규봉:
게송에 이르되
“저 法身佛을 의한 것이므로
큰 몸에 비유해서 설하신 것이니,
몸(法身)은 일체 장애를 여의었으며
또 일체 경계에 두루하도다.
功德(보신)과 大體(법신)이니
그러므로 곧 큰 몸이라 설하셨고
몸 아님이 곧 이 몸이니 이런 까닭으로
큰 몸이라” 말씀하셨도다.
論에 이르되
“몸이 아님이란
모든 상이 있음이 없는 때문이고
큰 몸이라 하는 것은
眞如의 體가 있는 때문이라” 하였으며,
무착이 이르되
“일체중생을 포섭한 큰 몸이므로
저 몸 가운데에서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님
(일체가 평등하여 상이 없음)이
성립된 까닭이라” 했다.
---
六祖:
如來가 說人身長大가
卽爲非大身者는 以顯一切衆生하시되
法身本無處所이니 故言卽非大身이니라
法身이 不二하여 無有限量이나 是名大身이니라
又以色身이 雖大이라도 內無智慧이면
卽非大身也요 色身이 雖小이나
內有智慧이면 得名大身하면
雖有智慧하나 不能依行하면 卽非大身이니
依敎修行하여야 悟入諸佛無上知見하여
心無能所限量하면 是名大身이니라
육조:
如來가 설하신 사람 몸이 장대한 것이
곧 큰 몸이 아니라는 것은
일체 중생의 法身을 밝히시기를
법신은 둘이(본래)아니어서
한량이 있음이 없으나 이름하여
큰몸이라 하신 것이다.
법신(法身)이 본래 처소가 없는 것
[일체에 상즉한 보이지 않는
(無相) 무한대의 몸] 이니
그러므로
곧 큰 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色身이 비록 커도
안으로 지혜가 없으면 곧 큰 몸이 아닌 것이요,
또한 色身이 작아도 안으로 지혜가 있으면
큰 몸이라 이름하며,
비록 지혜가 있으나 능히 행함을 의하지 않으면
곧 큰 몸이 아닌 것이니
가르침에 의하여 닦아(修行)야
모든 부처의 위없는 지견에 깨달아 들어서
마음에 능소의 한량이 없게 되면
큰 몸이라 이름하게 되는 것이다.
---
冶父:
喚作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라
說誼:
設道卽心卽佛이라도 爭奈非心非佛이며
設道一物이라도 亦非一物이로다
야부: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곧 맞지 않느니라
설의:
설사 곧 마음이 곧 부처라 말하더라도,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님을 어찌 할 것이며,
설사 한 물건이라 말하더라도
또한 한 물건이 아닌 것이로다.
---
청봉착어:
사람의 진신이 큰 몸이 아니라 함은
머무는 곳 없이 머무는 두루함이기 때문이요
또한 법신이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므로
이름하여 큰 몸이라 하는 것이니라.
색신이 작을지라도 큰 몸을 깨달으면
크고 큰 몸이라 이름하나
비록 깨쳐 지혜가 있어도
행함이 같지 못하면 큰 몸이 아니니라.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법도 아니라 하나
큰 몸을 깨쳐 그 지혜로써 행함을
큰 몸(부처님)이라 하니라.
---
冶父:
天産英靈六尺軀하니 能文能武善經書로다
一朝識破孃生面하니 方信閑名滿五湖로다
說誼
能文能武善經書하니 可謂天産之英靈이며
人間之俊傑이로다 然이나 只得雙眼圓明하고
未開得頂門正眼이니
識得大人面目然後에야 許伊開得頂門正眼이니라
伊麽則目前所作이 只是閑事이며 所聞도
亦只是閑名로다
야부:
하늘이 신령하게 뛰어난 육척의 몸을 낳으니
글(文)에도 능하고 병법(武)에도 능하며
성인의 가르침(經書)도 잘하도다.
몰록 본래 면목을 깨뜨려 아니
바야흐로 부질없는 이름들이
세상에 가득함을 믿게 되셨다.
설의:
文도 능하고 武도 능하며 經書에도 바르니
가히 하늘이 낳은 신령하고 뛰어난 이며
인간으로서 재주와 슬기가 뛰어났다 하리라.
그러나 다만 두 눈만 뚜렷이 밝음(體:定)만 얻고
지혜(頂門)의 바른 눈을 열지 못했다면,
大人의 안목(慧:用)을 증득한 연후에야
저 지혜의 바른 문을 열었음을 허락하니라.
이러한 즉
눈앞의 짓는 것이 다만 부질없는 일이며
들리는 것들도 또한 다만 부질없는 이름이로다.
---
청봉착어:
글에도 무예도 밝고 가르침에도 능하고 밝은
출중한 석존을 하늘이 나으매
몰록 진여의 면목을 깨우쳐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이 거짓임을 알게 되도다.
---
圭峰:
第十四는
斷無人度生嚴土疑라
論에 云하되
若無菩薩者면 諸佛도
亦不成菩提이며 衆生도 亦不入涅槃하며
亦無淸淨佛土거늘
何故로 諸菩薩이 發心하여 欲令衆生入涅槃이며
起心修行하여 淸淨佛土인가함을 斷之니라 文三이니
一은 遮度生念으로 文三이니 一은 明失念이라
규봉:
14.(疑斷)
중생을 제도하고 불 국토를 장엄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論에 이르되
“만약 보살이 없다면 모든 부처님도 또한
보리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중생도 또한 열반에 들지 못할 것이며,
또한 청정한 불국토도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모든 보살이 발심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며,
마음을 일으켜 수행하여
불 국토를 청정하게 하고자 하는가 하는 것
(의심)을 끊은 것이다.
글에 세 가지니
(1)은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막는 것으로 글이 세 가지니
①은 생각의 허물을 밝힌 것이다.
---------------------------------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으니
만약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면 곧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느니라.
圭峰:
偈에 云하되
不達眞法界하여 起度衆生意와 及淸淨國土의
生心은 卽是倒라하다 二는 明無人이라
규봉:
게송에 이르되
“眞法界를 요달하지 못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일으킴과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생각을
내는 마음은
곧 이것이 잘못된(顚倒) 것이라” 했다.
②는 사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음이 없는 것을
보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淸峯:
제도했다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곧 아상이 있어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살의 깨달음은 집착을 여의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은 것이라 하신 것이다.
見與所見俱空寂 견여소견구공적 이니
生死涅槃都是塵 생사열반도시진 이네
本無束縛無解脫 본무속박무해탈 이며
全身是手全身眼 전신시수전신안 이니라
보는 것도 보이는 것도 모두 공적하니
생사와 열반이 티끌일 뿐일세
본래 속박이 없으니 해탈도 없으며
온몸이 손이요 온몸이 눈이니라.
---
圭峰:
無法名菩薩이니
豈有我度衆生이리오
三은 引前說이라
규봉:
법이 없는 것을 보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어찌 내가 중생을 제도할 것이 있으리오.
③은 앞에서 설함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이런 까닭으로 부처가 말하기를
‘모든 법이 나도 없고, 사람이라는 것도 없고,
중생이라는 것도 없으며,
수자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이니라.
淸峯:
일체 모든 것의 본질을 요달하면
사상(四相)이 실체의 상이 없이
공함을 깨달아 집착하지 않고
모두를 놓아 안과 밖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說誼:
始因空生問住降하여
敎以度而無滅하시고
以明無住無我之意하시어
令如是降心如是安住也시니라
次言實無有法如來得阿耨等하시고
又言一切法이 以至云大身卽非大身하시고
以明佛法道三皆空而無住하시고
此言菩薩도 亦如是로
至實無有法名爲菩薩하시고
重明無住無我之意하셨다
乃云是故로 佛說一切法은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시니라
伊麽則現前天地日月과 萬像森羅로
以至二乘諦緣과
菩薩六度와 諸佛無上正等菩提까지
一一無住하며
一一無相하며
一一淸淨하며
一一寂滅하며
一一如銀山鐵壁相似 無有一法도
容思議於其間矣니라
설의:
처음 수보리가 머물고 항복 받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인하여
중생을 제도하되 멸도함이 없음을 가르치시고
머묾이 없고 내라는 것이 없는 뜻을 밝히시어
이와 같이 마음을 항복 받으며
이와 같이 安住케 하시니라.
다음에는 실로 법이 있음이 없는 것을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등을
얻었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말씀하시되
“일체 법이 큰 몸이 곧 큰 몸이 아니라”고
한 데까지 일러 주시고
佛, 法, 道 세 가지가
모두 空하여 머묾이 없음을 밝히시고
이것을 말씀하시되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實로 법이 있음이 없는 것을 보살이라 이름한다”는
데까지 이르러 거듭 無住, 無我의 뜻을 밝히셨다.
이에 이르되,
그러므로 부처님이 설하신 일체 법은
“我도 없고 人도 없으며 衆生도 없고
壽者도 없다” 하시니라.
이러한즉 눈앞에 나타난 天地日月과
삼라만상으로부터 二乘과 四諦와
십이 연기법과 보살의 육도 만행과
모든 부처님의 無上正等 菩提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머묾이 없으며
낱낱이 상이 없으며
낱낱이 淸淨하며
낱낱이 寂滅하여
낱낱이 은산 철벽의 모습과 같아서
한 법도 있음이 없어
그 사이에 생각으로 가림을 용납하지 않느니라.
청봉착어:
일체가 본성이 공하여
제도할 중생도 4상도 없으니
이렇게 항복 받고
이렇게 머물도록 가르치시니
佛, 法, 道 모두가 공하여
머묾이 없음을 깨달으면
일체 법이 我가(四相) 없는
청정진여에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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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菩薩이 若言因我說法하여
除得彼人煩惱라하면 卽是法我요
若言我能度得衆生이라하면 卽有我所이니
雖度脫衆生하여도 心有能所하여
我人不除하면 不得名爲菩薩이니라
熾然說種種方便하여 化度衆生하되
心無能所이면 卽是菩薩也니라
육조:
보살이 만약 말하기를
“나의 설법으로 인하여
저 사람의 번뇌를 없앤다”고 하면
곧 이것이 法我이고,
만약 말하기를
“내가 능히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면
곧 내 것이라는 것(我所)이 있음이니,
비록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케 한다 해도
마음에 능소가 있어 我와 人을 없애지 못하면
菩薩이라 이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한(熾然) 가지가지 방편으로
설하여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되
마음에 능소가 없으면 곧 보살인 것이다.
---
冶父:
喚牛卽牛요 呼馬卽馬로다
說誼:
旣一一如銀山鐵壁相似인데 作麽生出氣去리오
喚牛卽牛요 呼馬卽馬이니 法本是無이니
道無라도 亦不乖法體며 法本是有라 道有라도
亦不乖法體이니라
야부:
소라고 부르면 곧 소이고
말이라 부르면 곧 말이로다
설의:
이미 낱낱이 은산 철벽과 같음인데
어떻게 기운을 내어가겠는가?
소라고 부르면 곧 소이고
말이라 부르면 곧 말이니
법이 본래 없으니 없다고 말하여도
또한 법체에 어긋나지 않으며,
법이 본래 있음이니 있다 하여도
또한 法體에 어긋나지 않느니라
(진공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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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설법하여 번뇌를 없앤다 하면
法我가 있음이요
능히 중생을 제도한다 하면
내라는 것(我所)이 있음이니
비록 중생을 제도할지라도
我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요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되
能所가 없으면 곧 보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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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借婆衫子拜婆門하니 禮數周旋己十分이로다
竹影이 掃階塵不動이요 月穿潭底水無痕이노라
說誼:
看取門前禮數儀하라 借來堂上婆子衫이로다
有影掃階塵不動하고 當軒翠竹舞婆娑로다
有華透水水無痕하니 在天明月光炯曜로다
空耶인가 有耶인가 吾不稱斷이로다
야부:
할머니 적삼을 빌려 입고
할머니 문 앞에서 절을 하니
예의가 법도에 맞음이 충분하도다.
대나무 그림자 뜰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달빛이 연못 바닥을 뚫어도
물은 흔적이 없노라.
설의:
문전에서 예의를 갖추는 거동을 보라.
堂上의 할머니 옷을 빌려 입음이로다.
그림자가 뜰을 쓸어도 티끌이 움직이지 않고
난간에 푸른 대나무만 너울너울 춤을 추도다.
빛으로 물을 뚫어도 물은 흔적이 없고
하늘의 밝은 달만 빛이 밝도다.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나는 결단해 말하지 못하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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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라
불법도 아니요 불법 아님도 아니니
불법이라 해도 옳고 불법 아니라 해도 옳으니
실상이 여여하여 작용에 흔적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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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二는 遮嚴土念이라
於中에 文二니 一은 明失念이라
규봉:
(2)는 국토를 장엄 한다는 생각을 막는 것이다.
이 가운데 글이 두 가지이니
①은 생각의 허물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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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리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리라’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니라.
淸峯:
장엄이라는 것도 방편일 뿐
본질적으로는 공적(空寂)하므로
장엄이라는 것도 상이 없는 명사이므로
형상에 집착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여는
갓이 없고 본질적으로 상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는 변치 않는 상태에서
현상, 생멸의 인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체 법 모두가
각의 세계인 불국토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여(진제:理:무위)법과
현상(속제:事:유위)법을
총칭해 일체 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여는
생멸 인연을 따르면서도 항상 자체는
진공이라 변치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체현상을 만법이라 하는 것은
생멸하는 일체 모든 것마다
그 진여의 본성은 변치 않고
그 인연을 따르는
법계의 성품(묘유인 空)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진여 법계의 근원체를
법신이라 부르는 것이며
법신(眞佛)은 일체의 차별적인 모습(相)을
여의되 생멸하는 모든 법에 상즉하므로
만법과 구분되는 법신체는 따로 있지 않으므로
일체가 부처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연 그대로를 지키는 것이
참 불국토 장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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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二는 釋所以라
규봉:
(2)는 까닭을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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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를
장엄한다 하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인 것이니라.
淸峯:
보살이 세계를 건립한다 하면
보살이 아닌 것이니
(보살은 법신불의 행함 그것이다)
짓고, 짓는 이와, 지을 것이 있음은
상에 집착함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착이 없음이 선정이요,
청정함(공적하여 깨끗함)인 것이다.
그 선정, 청정한 것을
실상 장엄이라 하는 것인 바
장엄은
깨끗한 그대로 더럽히지 않음인
것이므로
장엄이란 이름에 집착하면
그것이 허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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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菩薩이 若言我能建立世界者하면 卽非菩薩이요
雖能建立世界이나 心有能所이면 卽非菩薩이니
熾然建立世界하되 能所心이 不生하여야
是名菩薩이니라
最勝妙定經에 云하되 假使有人이
造得白銀精舍를 滿三千大千世界라도
不如一念禪定心이라하심은
心有能所이면 卽非禪定이요
能所不生하여야 是名禪定이니
禪定은 卽是淸淨心也니라.
육조:
보살이 만약
내가 능히 세계를 건립한다고 하면
곧 보살이 아니오,
비록 능히 세계를 건립하나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닌 것이니,
그렇게 무수(熾然)히 세계를 건립하되
능소의 마음이 나지 않아야
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最勝妙定經에 이르되
“가령 어떤 사람이 白銀으로써
精舍(절)를 조성하기를
삼천 세계에 가득히 할지라도
한 순간의 禪定의 마음만
같지 못하다”고 하셨음은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곧 禪定이 아닌 것이요,
能所가 나지 않아야 이것을
이름하여 禪定이라하니
禪定은 곧 淸淨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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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三은 釋成菩薩이라
규봉:
(3)은 보살을 이룸을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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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 說名眞是菩薩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내가 없는 법을 통달하면
여래가 말하는 참다운 보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淸峯:
사상(四相)을 여의고
집착함이 없는 행함이 보살이요,
이것이 무아의 진리인 것으로,
무아라는 것은 자아인 거짓된
소아가 없음(즉 내가 없음)을
깨달아 대아인 참 나(眞我)에
계합해 견성 증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과 소를 떠난 것이 진실한 보살심인 것이다.
사람과 법(일체)이 모두 공(眞空)하면서 진실 됨
(具足, 妙有)이니 일체의 相이 환이요,
相은 항상 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체(생멸만법)가 또한 불법이므로
진리 아님이 없음도 알아야 하므로 변견에
치우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본성이 공적한 가운데
일체를 구족해 있음을 증득해야 하는 것으로서
유무를 초월한 것으로 마음밖에 제도할만한
실제적인 중생이 없고 장엄할 실제의
불 국토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 객관의 상대적인 현상과 상즉한 것이
자성으로 차별상의 덧없음 가운데 조금도
얻을 만한 아상, 법상이라는 것이 없는 것(二空)이다.
이처럼 통달하면 참다운 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밖에 제도할 실재한 중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청정한 마음밖에 장엄할 실재의 항상하는
불국토도 없는 것이다.
또한 주관, 객관의 상대적인 성품이 공한 것이
본래 마음이라는 자성(법성)이며 그 마음인 자성은
공적해서 조금도 얻을 만한 실재적인
아상, 법상(法相)이 없으므로
이공(二空)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二공을 요달하고
집착 없는 행함을 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惟願諸君莫尋佛 유원제군막심불 하라
行住坐臥與君俱 행주좌와여군구 하도다
唯在目前不見面 유재목전불견면 이나
知不見者是佛也 지불견자시불야 니라
오직 바라노니 그대들이여
달리 부처를 찾지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대와 함께 하도다
오직 눈앞에 두고도 그 얼굴 못 보나
못 볼 줄 아는 그가 다만 이 부처니라
說誼:
前依度生하시어
以明無我하시고 此依嚴土하여
復明無我하시니 乃云하시되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이면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라하니라
只如無我底道理를 作麽生道인가
內不見有五蘊身이면
天地萬物이 爲一己로다
更有一道理하니 亦名無我法이니라
寒山拾得이 兩相隨하니
在山在途影從形이로다
若使二人으로
如有我면 一在靑山一在途리라
作麽生通達할가 智窮文殊之智源하여
權掛垢衣伊麽來하고
行窮普賢之行海하여 却粧珍御伊麽去니라
설의:
앞에서는 중생 제도를 의거해서
내가 없음을 밝히시고
여기서는 불 국토 장엄을 의거해서
다시 내가 없음을(無我) 밝히시니,
이에 이르시되
“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을 통달하면
여래가 참으로 보살이라 이름한다”
말씀하시니라.
다만 저 무아의 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안으로 오온의 몸이 있음으로 보지 않으면
천지 만물이 한 몸일 따름이로다.
다시 한 도리가 있으니
또한 이름이 무아의 법이니라.
寒山과 拾得이 서로 따르니
산(體)에 있으나 길(用)에 있으나
그림자가 형상을 쫓음이로다.
만약 두 사람으로 하여금
내라는 것이 있을 것 같으면
하나는 靑山에 있고
하나는 길에(각각) 있으리라.
어떻게 통달하는가?
지혜는 문수 지혜의 근원(智源)을 깊이 의심해
연구(궁구)하여 방편으로 때묻은 옷을 걸치고
이렇게 오며,
행은 보현의 넓은 행(行海)을 궁구하여
도리어 진귀하게 꾸며 이렇게 가느니라.
청봉착어:
오온으로 뭉쳐진 몸이 공함을 깨치면
삼천 대천 세계가 같은 몸임을 알리니
그러므로 한산(體:本家)과 습득(用:길)은
동체이며
문수(寒山)와 보현(拾得)이 반야 작용으로
오고 가느니라.
---
圭峰:
論에 云하되
若起度生嚴土心이면 卽是顚倒라
非菩薩者이면 起何等心하여 名爲菩薩인가
故로 經에 言通達等이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謂人無我法無我라하니라.
규봉:
論에 이르되
“만약 중생을 제도했으며 불 국토를 장엄했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거꾸로 뒤집어진 것이(顚倒)된 것이다.
보살이 아니라면 어떤 마음을 일으켜야
보살이라 하는가?
그런 까닭으로 경에서 말하기를
막힘 없이 환하게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등을 말씀했다” 하며,
무착이 이르되
“사람이 내가 없고 법이 내가 없는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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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於諸法相에 無所滯礙를 是名通達이요
不作解法心을 是名無我法이니 無我法者는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며 隨分行持를
亦得名爲菩薩이라
然이나 未爲眞菩薩이니 解行이
圓滿하여 一切能所心이
盡하여야 方得名爲眞是菩薩也니라.
육조:
모든 法相에
막히고 걸리는 바가 없음을 통달이라 하고
法을 안다는 마음을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무아법이니,
무아법은
여래가 설하신 참다운 보살이라 하는 것이며
分을 따라 행함을 가지는 것을 또한 보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참다운 보살이 못 되는 것이니
아는 것과 행함이 원만하여
일체의 능소심이 다하여야 바야흐로
참다운 보살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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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人與法相待하나
相本來如라 法空人是妄이요
人空法亦袪하고 人法兩俱實이면
授記可非虛거니와
一切皆如幻이니 誰言得有無리오
부대사:
사람과 법이 서로 대하나
두 相이 본래 같으니
法이 空하면 사람도 허망한 것이요
사람이 空하면 법도 또한 없고
사람과 법이 둘 다 실다움을 갖췄다면
授記가 가히 헛되지 않거니와
일체가 다 幻과 같으니
누가 얻음이 있고 없음을 말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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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寒卽普天寒이요 熱卽普天熱이로다
說誼:
妙造文殊之智境하니
朔風洌洌하여 霜雪漫天이요
高蹈普賢之行門하니
熏風習習하여 靑黃이 滿地로다.
야부:
추우면 곧 온 하늘이 춥고
더우면 곧 온 하늘이 덥도다.
설의:
묘한 문수의 지혜 경계에 나아가니
삭풍이 매우 차 서리와 눈이 하늘에 가득함이요,
높은 보현의 行門을 밟으니 훈풍이 솔솔 불어와
푸르고 누른빛이 땅에 가득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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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사람과 법이 서로 상대하나
본질이 서로 공해 같으니
사람도 법도 실다움도 헛됨도 아니므로
얻음이 있지도 없지도 않는 것이니라.
---
冶父:
有我元無我인가 寒時燒軟火요
無心似有心이니 半夜拾金針이로다
無心無我分明道이건만
不知道者是何人인가 呵呵
說誼:
本是無我人이로되
度生權立我이니 寒時軟火가 不是可厭이요
內同枯木하되 假現威儀하니
夜半拾針이 不是無知로다
分明道出無我理하건만
不知道者是何人가 呵呵
是有我인가
無我인가
有心인가
無心인가
야부:
내가 있다 하나 원래 내가 없으니
추울 때는 가벼운 불(軟火)을 태움이요
無心은 有心과 같음이니
한밤중에 金針을 주움이로다.
無心과 無我를 분명하게 말했건만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하.
설의:
본래 내다, 사람이다 하는 것은 없으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나라는 것을 세웠으니 추울 때는
가벼운 불이 가히 싫지 않고,
안으로는 마른나무(枯木)와 같으나
거짓으로 위의를 나타내니
한밤중에 바늘을 줍는 것이
어리석음(無知)이 아니로다.
분명히 無我의 이치를 말해줬건만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하.
有我인가?
無我인가?
有心인가?
無心인가?
---
宗鏡:
妄盡還眞하니 衆生何曾滅度리오
法空無我이니 菩提는 本自圓成이로다
直饒遇然燈하여 印證而不疑라도
己隔來世거늘 況釋迦가
重審而方悟하여 轉涉途程인가
且道하라 不涉途底人은
脚跟에 還點地麽인가
丈夫自有衝天智하니
不向如來行處行이로다
直指單傳密意深하니 本來非佛亦非心이니라
分明不受然燈記하며 自有靈光耀古今이로다
說誼:
密意圓成更無求하고
自有靈光耀古今이로다
종경:
妄이 다하면 眞으로 돌아가니
중생을 어찌 일찍이 멸도하리오.
法이 空하고 내가 없으니
菩提는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진 것이다.
바로 설사 연등불을 만나 증득함을
인가했음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세와 간격(隔)이 있거늘
하물며 석가가 거듭 살펴 바야흐로
깨달아서 경로(途程)를 굴러 겪은 것인가?
자, 말해보라!
경로를 겪지 않은 사람도 발뒤꿈치에
또한 땅의 흙이 묻었(相이 있음)는가?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지혜가 있으니
여래가 행한 곳을 향해서 행하지 않는
(남으로부터 빌리지 않는) 것이다.
곧바로 가리켜 전한
(直指 單傳) 비밀한 뜻 깊으니
본래 부처도 아니고 또한 마음도 아니라
분명 연등의 수기를 받지 않았으며
스스로 신령스러운 빛이 있어 古今에 빛나도다.
설의:
비밀한 뜻이 원만히 이루어졌으니
다시 구할 것이 없고,
스스로 신령스런 빛이 있어서
옛과 오늘에 빛나도다.
---
청봉착어:
망이 진이니 중생도 부처도 본래 없어
아공(我空) 법공(法空)한데
보리는 본래 원만히 구족되어
옛부터 영원히 신령스레 빛나나니
다시 달리 구할 것이 없도다.
★
11) 단주수항복시아의[斷住受降伏是我疑,
집착하고 집착을 항복시키는 것도 결국은
"나"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끊음] :
(究竟無我分第十七,
爾是 須菩提.....實無有法 發阿 多羅三 三菩提)
12)
단불인시유보살의[斷佛因是有菩薩疑,
부처님이 인행시(因行是)에도
보살로서 닦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끊음] :
(究竟無我分第十七, 須菩提.....號釋迦牟尼)
13)
단무인즉무불법의[斷無因卽無佛法疑,
원인이 없다면 부처나 법도 없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끊음] :
(究竟無我分第十七, 何以故.....是名大身)
14)
단무인도생엄토의[斷無因度生嚴土疑,
보살수행이라는 원인이 없다면 중생을 제도하거나
국토를 장엄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끊음] :
(究竟無我分第十七, 須菩提..說名眞是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