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편한 것은 좋은 것
편한 것은 좋은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편해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전화 한 통이나 몇 번의 클릭으로 물건을 고르고 결재까지 끝내면 문 앞으로 원하는 물건이 와 있다.
편한 것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른들도 편한 만큼 경비를 지출해야 하니 늦게까지 일하고 피곤하니 더 편한 것을 찾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아이들이 치르는 대가는 비만 아동이 늘고 소아 성인병을 비롯하여 소아 신경외과는 팔이나 다리를 다친 어린이 환자로 북적인다.
놀이도 편한 쪽으로 간다. 핸드폰 게임이나 동영상 보기, 음악듣기가 이제 놀이의 대세다. 부딪치고 밀고 당기고 소리치는 것도 번거롭게 여겨진다. 사회 전반에 걸친 이런 상황에서 날씨도 추워지니 핑계거리가 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리고 바쁘게 쫓기는 현대인은 삶 자체도 잃어버리고 표류한다는 지적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연일 찬 바람이 부는 요즘 갑자기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겹겹이 껴입은 옷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추위엔 그저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있는 것이 최고다. 그러나 여럿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리다툼이 놀이가 된다. 그러나 이런 놀이는 규칙이 없어 오래가지 못하여 이불 속에 다리를 묻고 앉아 전기놀이를 했다.
전기놀이 방법
1) 술래를 정한 다음 빙 둘러 앉아 서로 손을 잡음으로써 전기줄 공사가 끝난다.
2) 손은 보이지 않게 이불 밑으로 숨겨야 한다. 단 술래 양 옆의 아이는 손으로 술래를 때릴 준비를 한다.(요즘은 이불이 없으니 손을 등 뒤로 해서 술래가 보지 못하게 한다)
3) 누군가 옆 사람의 손을 쥐는 것이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왼쪽 손을 쥐면 전기가 왼쪽으로 통하게 된다.
4) 신호를 받은 사람은 옆 사람에게 그 신호를 전한다. 이때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면 2명이 보낸 것이 된다. 이럴 경우 양쪽에 서 술래를 때리기도 한다.
5) 술래 양 옆의 사람은 전기가 오면 술래의 등이나 어깨를 때린다.
6) 술래가 그만 하면 멈추고 누가 처음에 전기를 보냈는지 찾아낸다.
7) 찾으면 술래가 그 사람이 되고 잘못 찾으면 계속 술래를 한다.
전기가 빨리 오면 술래 근처의 사람이 보낸 것이고 시간이 걸리면 먼 곳에 있는 사람이 보낸 것이다. 처음 신호를 보냈다가 술래가 될 위험이 있기에 눈치만 보다가 정적이 흐르기도 한다. 그 적막감은 지금 생각하면 겨울 밤과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아이엠 그라운드 나라이름대기와 시장에 가면
음식과 같이 놀이도 식는다. 그러면 자연스레 새로운 놀이가 등장한다.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아이엠 그라운드나 시장에 가면이 단골 메뉴다.
전기놀이가 정적이라면 이런 놀이들은 노래와 리듬 그리고 약간의 움직임이 곁들이기에 동적이다. 그런데 전기와 달리 박자를 맞춰야 하기에 아주 어린 아이들은 하지 못한다. 두 놀이는 비슷한데 몇 군데 차이가 난다. 따라서 함께 설명하면서 다른 부분을 보충하겠다.
아이엠 그라운드 나라이름대기(시장에 가면)를 박자에 맞춰서 한다.
아이/엠/그라/운드/나라/이름/대/기(시/장에/가/면)~
①아이(시)-두 손으로 자기 무릎치기
②엠(장에)- 가운데서 박수치기
③그라(가)-한 손을 엄지 척(왼/오른손)
④운드(면)-다른 손으로 엄지 척(오른/왼)
⑤나라 ⑥이름 ⑦대 ⑧기 는 ①~④와 같은 동작으로 한다. 다 같이 아이엠~(시장에~)을 하고 그다음은 미리 정한 한 사람이 나라 이름을 댄다. 이때 4박자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면 하-안-구-욱, 캐나다는 캐-나-아-다, 이-집-트-으 라는 식으로 기본 동작에 따라 나라이름을 대야 한다. 나머지는 소리는 내지 않고 박자 맞춰 동작을 취하고 다음 사람이 새로운 나라 이름을 댄다. 만약 앞 사람이 댄 것과 같은 것을 대거나 박자를 놓치면 벌칙을 받는다.
시장에 가면은 첫 사람이 장소를 선택할 수 있어 폭이 좀 넓다. 즉 학교에 가면, 동물원에 가면, 백화점에 가면, 문방구에 가면 등 자신들이 가 본 곳을 대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사람부터 그곳에 있는 것을 대야 한다.
시장에 가면/가게도 있고/아줌마도 있고/아저씨도 있고/신발도 있고~
이것도 앞 사람이 댄 것을 대거나 박자를 놓치면 벌칙을 받는다. 따라서 뒤로 갈수록 어려워져 틀리게 된다.
음치 몸치 박치
이런 놀이를 할 때 자기 차례가 오면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내가 준비한 것을 앞 사람이 말할 때 그렇다. 또한 6~8명 정도 하면 생각할 시간이 있는데 3~4명이 박자를 빨리해서 하면 더 심하다. 그런 증상은 생각끼리 충돌해서 그런 것이다.
‘앞 사람이 내가 하려는 것을 했나?’, ‘무엇을 말하지?’, ‘다음에 또 무얼하지?’~
기억력과 창의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고 또 적당한 언어를 빨리 구사해야 하는 능력도 요구되는데 거기다 박자까지 맞춰야 하니 동시에 몇 가지를 해 내야 하는 것인가?
놀이하다 보면 틀린 사람이 자꾸 틀린다. 이번에는 틀리지 말아야지 하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무리한 압박으로 작용해서 그런 것이다. 사실 틀린 사람으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은 쉴 수 있고 다시 준비할 시간을 버는 것인데 막상 틀린 사람은 이런 혜택 대신 벌칙을 받고 바로 시작하는 바람에 또 틀리는 것이다. 결국 점점 틀리는 빈도가 많아지게 되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해서 다음에 이런 놀이를 기피하게 만든다.
아이들과 함께 이 놀이를 하는데 놀이가 재미없어 졌다. 왜냐하면 박자를 맞추지 못해 중단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음치나 몸치에 비겨 박치라고 하는데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박치다. 아주 천천히 여러 번 연습해도 막상 놀이에 들어가면 박자를 맞추지 못해 놀이가 끊어진다. 박치를 벗어나려면 동요와 같이 제대로 된 박자를 익힐 수 있는 노래를 듣고 부를 기회가 많아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부족하다. 요즘 동요를 부르는 것은 음악시간 이외에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빠른 템포에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는 노래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동요는 너무 싱겁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야유를 퍼 붓는데 누가 동요를 하겠는가!
박자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걸을 때 오른발, 왼발을 옮겨놓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과 같이 몸이 감지해야 하는 것이다.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어르신들처럼 박자에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는 숫한 반복의 결과인데 놀이를 위해 몇 번 연습했다고 잘하면 그건 기적이다.
결국 놀이를 중단하고 먼저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좋은 동요를 들려주기로 했다. 동요를 듣고 함께 손뼉치고 발을 굴러보는 것을 오랫동안 자주 하다 보면 시나브로 박치에서 벗어나 놀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함께 부를까 생각하면서 엠비씨 창작동요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이원수 선생님의 시에 백창우씨가 곡을 붙인 겨울물오리가 떠올랐다. CD를 찾아 노래를 들었다. 아이들 탓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란 소리로 들렸다. 듣고 또 듣다 보니 오리가 정말 아이들같이 느껴졌다.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