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부터 시작된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사진출처:충남도청)
시대 현대-현대(1945.8.15~현재) 연대 1950 년대
백제문화제는 백제말 성충, 흥수, 계백 등 3충신에게 올리는 제향과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가 1955년 4월에 부여에서 거행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부여와 공주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1회 백제대제는 민간의 성금으로 진행되었는데, 망국의 한을 달래는 이색적인 제의에 전국 각처의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2010년에는 세계대백제전을 열어 백제 문화와 국제교류의 진면목을 과시하기도 했다.
백제문화제는 백제말 3충신(성충, 흥수, 계백)에게 올리는 제향과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로부터 시작되었다. 1955년 4월에 부여에서 거행된 수륙재는 2회부터 10월에 거행되었다. 백제문화제는 제1회(1955년)부터 제11회(1965년)까지는 부여에서, 제12회(1966년)부터는 부여·공주에서 동시 개최하였다. 그리고 제20회(1974년)부터는 공주, 부여 외에 대전으로까지 개최지가 확대되었다가 1978년 제24회를 마지막으로 대전 개최는 중단되었다. 제25회(1979년)부터는 공주와 부여가 격년으로 개최했고, 2007년부터 공주와 부여가 통합하여 개최하고 있다.
제1회 백제대제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백제대제집행위원회가 주관하고 주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진행되었다. 백제말 3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을 모신 삼충사(三忠祠) 제향과 낙화암 강물에 몸을 던진 백제 여인을 위한 수륙재를 올렸다. 제의 중심의 이 행사는 망국의 한을 달래는 것이었고, 조촐했지만 전국에서 보기 힘든 사례였기 때문에 전국 각처의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백제문화제의 시작은 제의 중심의 백제대제였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들이 개최되면서 제11회 행사(1965년)부터는 그 명칭을 백제문화제로 변경하였다. 처음 민간주도 행사로 시작하였지만 보다 체계적인 운영을 위하여 군 주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65년 군 주관에서 충청남도 주관으로 바뀌면서 백제문화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제의적 성격에서 종합문화축제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제12회(1966년)부터는 부여뿐아니라 공주까지 백제문화제에 참가하면서 부터는 백제 중흥을 이끈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등 5대왕 추모제가 더해졌다. 2007년에는 백제문화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육성할 목적으로 (재)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를 충청남도, 공주시, 부여군이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주, 부여 격년제 행사를 공주·부여 통합으로 개최하고 있다. 격년 개최와 통합 개최는 각각의 특장점이 존재하지만 보다 조직적이고 세계적인 축제 육성을 위해 통합축제로 개최하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백제문화제는 백제의 역사문화를 소재로 특화되고 전문성 높은 콘텐츠를 통해 지역축제가 아닌 세계적인 축제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특히 2010년 세계대백제전은 정부공인 국제행사로 개최되어 찬란한 백제의 문화와 국제교류의 진모를 드러내며 세계적인 축제로의 도약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최근 백제문화제는 그동안의 통합 개최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고 있어 건설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갈림길에 서있다. 이같은 비판은 (재)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고, 재단해산이 공론화 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백제문화제가 성장위주로 진행되고 이로 인해 프로그램의 질적 하향 평준화 문제, 특색없는 콘텐츠, 이벤트 위주의 축제로 변질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나온 것이다. 축제가 지역의 발전보다 피로감의 누적만을 가져온다는 주민의 질타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2019년 2월에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하였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은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