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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6-36절
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민수기 10장 29-30을 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와 처남 호밥에게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 가자고 요청했으나 호밥이 거절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그 후에 거절을 철회하고 수락하여 같이 입성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장인은 결혼에 의해 발생된 모든 친척 관계를 다 포함하는 말이므로 여기에서 처남이라고 이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르우엘)보다는 그의 처남인 호밥에 초점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겐 사람에서 사람의 원어는 아들 혹은 자손을 의미하는 벤이므로 겐 족속을 말한다. 겐 족속(미디안)은 가나안 원주인은 아니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에 이미 가나안 일대에 거주하던 족속이다.
종려나무 성읍은 예루살렘 북동쪽 2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종려나무의 유명한 산지인 여리고를 의미한다. 그들이 여리고에서 올라간다는 것은 여리고가 그들의 일차적인 정착지였음을 말한다. 그리고 여리고가 일차적인 정착지가 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를 점령함으로 가능하였고 그들이 여리고 성에 거주하고 있었음은 여리고 성 함락 작전에 유다와 같이 참여했음을 말해준다.
아랏은 헤브론에서 약 23km 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네게브 지역에 살던 가나안 사람의 성읍이다. 유다 황무지는 유다 광야를 일컫는 말이며, 유대 광야에 살던 그 백성은 유다 지파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는 유다가 시므온과 함께 남방 정복을 할 때 그들이 동참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이 모든 말들은 유다 지파와 함께 여리고 성 전투에 참여하고 남방 정복전투에 참여한 겐 족속의 거주지가 최종적으로 유대 광야였음과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시므온의 분깃인 호르마의 정복에 대한 기록이다. 스밧은 브엘세바에서 동쪽으로 7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민수기 21장2-절3에 보면 일찍이 공격을 가한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진멸하였다. 진멸하다의 원어 하람은 특히 죄악에 대한 심판적 성격을 띤 전쟁에서 완전히 멸망당함을 표현하는 단어다. 헤렘(하람의 명사형)은 바쳐진 것을 의미한다. 영적으로 보면, 자신이 멸해지는 것이다. 가나안의 상태는 육적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나안은 자신이 헤렘이 되어서 들어가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이 그 위에 세워진다. 그래서 헤렘이 호르마가 된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다름 아닌 바로 육적 자아인 것이다. 이는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의 상태와 같은 것이다.
호르마는 스밧에 거한 거민들을 진멸하고 난 후 붙여진 이름으로 완전한 파괴, 멸절 또는 봉헌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성읍을 완전히 점령한 후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이다. 유다와 그 형제 시므온이 함께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와 영적 자신을 가리키는 나와 함께 나의 심령 속에 있는 가나안 족속을 부셔버리는 것이다.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해변 도시들에 대한 정복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 세 성읍은 지중해 연안의 해안 평지에 자리 잡고 있던 블레셋의 주요 성읍이다. 블레셋은 다윗 시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민족이다. 대표적으로 골리앗을 떠올린다. 가사는 지중해와 접하여 있는 항구 도시이며 무역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상업이 활발한 곳으로서 블레셋 성읍 중 가장 발달한 성읍이다. 아스글론과 에그론은 모압 평지를 지나는 왕의 대로와 더불어 고대 무역로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해안 도로 상에 있던 도시로 무역과 상업이 활발한 상업이었다.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표면적으로는 유다 지파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산지에 거하는 거민들은 다 정복했다. 그러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쫓아내지 못했다. 골짜기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커다란 평지나 넓은 구릉을 뜻한다. 이런 평지는 농업이나 목축업에 유용한 토지다. 이들은 철병거를 소유하고 있어서 정복에 실패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철병거는 나무에다 철을 박거나 둘러싸서 그 강도를 높여서 사용하는 전쟁용 무기다. 애굽의 문서들에서는 팔레스틴과 힛타이트 왕국에서 전쟁 때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렇게 유명하고 강력한 무기인 철병거를 보고 유디 지파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앞부분은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셨으므로 산지 주민을 쫒아냈지만, 뒷부분인 골짜기 주민은 여호와가 함께 하지 않으므로 쫒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철병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이 없으므로 철병거가 두렵게 여겨지는 것이다. 골짜기는 평지를 의미한다. 산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성전이지만, 골짜기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인해 정복하지 못한 것이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갈렙은 배당 받은 헤브론 땅에 거하고 있던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그곳에 정착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나안 정탐꾼으로 파송된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비록 아낙 자손이 강해 보일지라도 능히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함에 따라 갈렙에게 모세가 축복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하였다. 아낙의 세 아들은 세새, 아히만, 달매를 말한다.
그들(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아낙자손)과 함께 혼합, 동화되어가는 경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결여로 인한 불순종임을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께서 진멸하라 명하신 가나안 거민들을 자기들의 편리대로 부리는 불순종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남겨둔 가나안 거민들로부터 큰 고통을 당하게 되는 징벌 속에서 살게된다. 영적으로는 육적 자아로 인해서, 영적인 자아가 고통받는 모습이다. 다윗시대 들어서서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그리스도로 인해서 육적인 나를 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부스 족속 진멸에 실패한 내용이다.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상에 있었다. 유다는 예루살렘 지역 중 요새화가 되지 않았던 남서쪽 산지만을 점령하는 부분적인 승리를 올렸듯이, 베냐민 지파도 예루살렘에 거하던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부분 정복만을 이룬 것이다. 여부스 족속은 다윗 시대까지 남동쪽의 요새화된 언덕에 거주하고 있었다(삼하 5:6-9). 고대에는 예루살렘은 여부스라고 불렀다.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기 전에는 사울이 왕이었는데, 베냐민 지파였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여전히 율법에 머무는 것이다. 사울은 율법의 시대를 나타낸다.
22-26.『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요셉 족속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가리킨다.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함께 기업을 배당 받았기 때문을 보인다.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대로 나뉘어 질 때 북은 요셉지파를 중심ㅇ츠로, 남 유대는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구분 되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북쪽을 약 19-20km 떨어져 있고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 사이에 있는 중앙 고지대다. 이곳은 서쪽의 지중해 연안에서 오는 도로와 여리고를 경위하여 요단 계곡으로부터 오는 도로가 만나는 곳으로 남북 무역의 통로 역할을 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루스는 『빗나가다, 패역하다, 거역하다』는 뜻을 지닌 루즈에서 유래한 성읍의 이름이다. 또한 신들에게 제사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창세기 28장 19절에서『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야곱에 의해서 이름이 변경되었다.
벧엘을 정탐하러 간 정탐꾼이 성을 효과적으로 칠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어떻게 알아내는가에 대한 기사 내용이다. 이는 벧엘 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벧엘 성에서 나온 사람에게 물어봤기 때문이다. 본 절의 성읍의 입구는 성읍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성안으로 침입할 수 있는 비밀 통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정면 공격이 아닌 기습이나 측면 공격을 감행하여 벧엘 성을 함락시켰음을 알 수 있다. 선대하리라. 선대의 원어는 자비, 은총을 말하는 히세드이다. 따라서 이는 자비, 은총을 베푸겠다는 의미로 정탐꾼들이 벧엘 성 사람과 맺은 언약이었다.
벧엘 성에서 나온 사람이 정탐꾼의 제의를 받아들여 비밀 통로나 성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법을 알려줌에 따라서 벧엘을 점령할 수 있었다. 요셉 족속은 그 사람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서, 그 사람과 그 가족들을 살려 주었다.
비밀 통로를 말해 준 사람의 추후 향방에 대한 내용이다. 헷 사람의 땅에 대한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으나, 일반적으로 북쪽 수리아 지역을 일컫는 말로 추정한다. 벧엘 성이 함락된 후 살아 남은 거민들은 북쪽 수리아 지역으로 이주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은 그곳 이름을 루스라고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옛 루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성읍임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상화 하기 시작한 것이다.
27.『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므낫세 지파가 완전히 정복해야 할 북부 가나안의 성읍과 그 향리들을 쫓아내는 일에 대한 실패였다. 벧스안은 집을 의미하는 바이트 와 평안하다의 솨안의 합성어로 평안의 집이라는 뜻이다. 벧스안은 이스르엘 골짜기와 요단 계곡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던 고지대였다. 또한 애굽에서 북상하는 고대 여행자들이 이 계곡을 지나 다메섹과 아랍으로 갔으므로 교통의 요충지였고 고대인들에게 소중히 여겨지던 기름진 농경지와 마르지 않는 수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벧산이라고도 부른다. 다아낙은 므깃도의 동남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평지의 남단이었다. 서쪽의 샤론 평지, 동북쪽에 있는 이스르엘 평지, 남쪽의 이스르엘 산지, 동북쪽의 악고 평지를 잇는 지점에 위치한 다아낙은 남서를 잇는 대상로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돌은 가이샤라의 북쪽 14km, 갈멜산의 남쪽 2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던 항구 도시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었다.
이블르암은 이스라엘 평원의 남쪽에 위치한 가나안의 요새화된 주요 성읍이었다. 벧산에서 므깃도까지 이르는 가나안의 방어선의 일환을 구축하고 있어서 그 방비가 매우 견고하여 점령하기가 어려운 성읍이었다.
므깃도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던 가나안의 주요 성읍 중 하나로 약 5ha에 이르는 팔레스틴의 최대 폐구라고 한다. 또한 팔레스틴의 내륙에서 해안에 위치한 페니키아에 이르는 길과 애굽에서 시리아를 거쳐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길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쫓아내지 못하매』 므낫세 지파가 이 성읍들을 점령할 수도 있었고, 점령했어야만 했다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여 그들이 아직도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음을 말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음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거민들로 인해 앞으로 2장부터 어떠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사사기는 이렇게 점령하지 않고 남겨 놓은 성읍과 거민들로 인해 당하는 고통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적고 있다. 므낫세 지파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의 주요 성읍들을 점령하지 않고 쫓아내기 쉬운, 적의 저항이 없는 곳만 점령하는 불순종을 저질렀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영적으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세워졌음에도, 아낙자손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의미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그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여름철 풀이 계속자라듯이 말이다.
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므낫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강해졌을 때도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같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가나안 족속을 쫓아낼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오히려 종으로 부렸다는 것이다. 이는 쫓아내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하는데 무관심했음을 말함과 동시에 그들의 불순종이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나타낸다.
영적으로 교회에서 복음을 말하고 있지만, 인본주의와 율법주의를 함께 지키게 하므로서 겉으로는 마치 합리적인 종교생활을 하는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29.『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는데 실패하여 그들 가운데 살도록 내버려 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게셀은 예루살렘과 욥바를 잇는 도로의 중간에 있으며 예루살렘 서북부 30km 지점에 위치했던 가나안의 성읍이었다. 또한 아랼론 평지를 통과해 예루살렘이나 벧엘로 가는 동서도로와 해안도로가 연결되는 교차로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30.『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스불론은 북부 가나안 성읍을 정복하는 데 실패했다. 기드론과 나홀롤 두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스르엘 골짜기 북서쪽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31.『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성읍들은 주로 북쪽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이었다. 악고는 팔레스틴의 북부, 갈멜 산 북쪽에 있던 항구이며 도시국가였다. 또한 갈멜 산 북쪽에 있는 폭 6.4km의 작은 해안 평야의 중심부에 위치한 기름진 성읍이었다. 게다가 천연의 만 주위를 산이 둘러싸고 있었으므로 항구로서의 최적지였다.
시돈은 두로와 베이루트의 대략 중간이며 두로의 북쪽 36km 지점에 있는 베니게의 성읍으로 지중해로 돌출한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 도시였다. 어업, 농업, 무역 모두가 성행하던 유수한 성읍이다. 시돈에서 이세벨이 나타난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에게 엄청한 고통을 준 사람이었다.
알랍은 두로의 북북동 약 8km 지점으로 보고 있으며, B. C. 734년에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정복되었다가 후에 산헤립에 의해 정복되었다.
악십은 갈릴리 지방의 레바논 국경선, 즉 고대 페니키아 국경선에 위치한 해변의 성읍으로 악고의 북쪽으로 1,40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헬바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힘들지만 두로의 북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추정한다. 그 이름이 비옥함, 기름짐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경제적으로 윤택한 성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빅은 아벡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샤론 평지에 있던 도시국가였다. 샤론 지역을 통과하는 간선도로와 지중해 연안에서 에브라임 산간 지방가지 갈 수 있는 진입로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악고에서 남동으로 약 9.6km 떨어져 있으며 하이파 만으로부터는 5km 정도 떨어진 내륙지방에 있는 현재의 델 케르다나라고 한다. 이곳에는 마르지 않는 새물이 있어 물의 풍부하였다. 르홉은 베니게에 접해있던 아셀의 북쪽 경계에 있던 가나안 성이었다. 악십의 북동쪽 3km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32.『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이는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거나 힘이 있음에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복역케 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앞에서는 가나안 거민이 이스라엘의 주도권 아래 거하였지만 아셀 지파는 오히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영내에서 가나안 사람들의 주도권 아래 거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33.『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납달리 지파도 정복을 실패했다. 벧세메스는 집을 의미하는 바이트와 태양을 뜻하는 쉐메쉬의 합성어로 태양의 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태양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생각된다.
벧아낫은 집을 의미하는 바이트와 바알의 아내로서 풍요의 여신인 아낫의 합성어로 아낫의 집을 의미한다. 다라서 벧아낫은 아낫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납달리 지파는 종교적 중심지인 성읍을 점령하는데 실패함으로 가나안의 타락한 종교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타락하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불충실했으며 불순종했다.
34.『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모리 족속에 의해 평지에 내려오지 못하고 산지에만 거하도록 제한 당한 단 지파에 대한 사실이다. 단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거나,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쫓아내지 않고 자신의 종으로 복역케 하거나,『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거하여』주도권을 빼앗긴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나안 족속을 점령하기는 커녕 그 가운데 거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산악 지대로 밀려난 상태에 처해 있는 단 지파의 딱한 사정이었다. 결국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들이 산지로 쫓아내자 그곳에 정착지 못하고 갈리리 북쪽 라이스로 이주했다. 여기서 산지는 산악 지대를 말하며 골짜기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커다랗고 넓은 구릉 지대를 말한다.
35.『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헤레스는 태양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이름을 붙인 것은 벧세메스와 같이 태양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얄론은 블레셋과의 경계선에 위치했고 에브라임과 경계가 되는 곳에 위치해 있는 커다란 구릉 지대였으며, 유다 산지로 갈 수 있는 주요 교통로였다. 사알빔은 게셀의 동쪽 8km 지점에 위치했다. 요셉 족속은 강건해진 후에 라이스로 이주한 단 지파의 땅까지 점령하여 아모리 족속으로 하여금 종으로 복역케 했다. 여기서 에브라임이 강해서 사역을 시켜다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불순종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6.『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가나안 북쪽 지방의 아모리 족속의 잔류를 말하고 있다. 아모리 족속의 남쪽 경계인데 가나안 남쪽 지방에도 아모리 족속이 잔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가나안의 남과 북, 즉 온 땅에 아모리 족속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그랍빔 비탈은 전갈의 비탈이라는 뜻이다. 이 언덕은 아라바에서 연장된 주요 통로로 보인다. 이곳은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다. 더 나아가서 저자는 가나안에 거한 아모리 족속의 경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이 이스라엘 영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