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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風情이 서린 古時調(2)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선조들이 보여준 겨울 풍정
봄, 가을에 선조들이 보여준 풍류와 자연의 정보다는 그 작품 수가 많지 않지만 백설(白雪)과 함께 보여준 서정들은 우리의 마음을 감흥(感興)하게 한다. 여기서는 시조사랑 19호에 발표했던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동사를 제외한 옛 분들이 읊었던 작품들을 골라 그 편편(片片)을 살펴보려 한다.
강호江湖에 겨월이 드니 눈 기픠 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맹사성(孟思誠),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강호(江湖)에 겨울이 닥치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입어 덧옷을 삼으니
이 몸이 이렇듯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도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평가되는 강호사시가(겨울)이다. 한 자 넘는 깊이로 눈 내린 한겨울의 고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도롱이에 삿갓 쓰고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강촌 생활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은혜로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며 임금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이며 연군가(戀君歌)이다. 종장에서의‘칩지’는 칩다>춥다로 아직도 경상도 지방 방언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주제는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맹사성(孟思誠)은 조선 세종 때 최고의 재상으로 추앙받았던 조선 초의 문신이며 청백리(淸白吏)이다.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우왕 12년에 문과에 급제해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역임했으며, 관습도감제조였을 때 음률에 밝아 중용되었다. 그가 판충주목사로 임명되어 외직으로 나가게 되자 예조로부터 선왕의 음악을 복구하기 위해 서울에 머물도록 건의를 받기도 했다. 청백(淸白)했으며 관직이 낮은 사람이라도 예(禮)로 잘 접대해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듣디 됴해
백운白雲이 재산在山하니 자연自然이 보디 됴해
이 듕에 피미 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하얘
-이황(李滉),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중 4곡(四曲)
그윽한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었으니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듯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 풍정이 보기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피미일인[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초장에서는 그윽한 난초의 향기를 드러내어 후각적인 효과를, 그리고 중장에서는 흰 눈을 등장시켜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 성쇠(榮辱盛衰)로 점철(點綴)된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脫俗)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어들이다. 이것들은 우리 고시가에 흔히 쓰이는 범상(凡常)한 용어들로 시어 자체는 다른 작품에 비해 별로 특이할 것이 없으나 작자 자신이 속세를 잊고 완전히 자연에 몰입해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에서는 벼슬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연군의 정이 떠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자연에 귀의하려는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그랬듯이 자연에 몰입은 하면서도 완전 귀의(歸依)를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종장의 ‘피미일인(彼美一人)’은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고, 초장의 ‘듣디 됴해’의 ‘듣디’는 한시에서 향기를 맡는다는 뜻으로 ‘문향(聞香)’이란 어휘로도 사용하고 있다. 주제는 연군이다
이황(李滉)은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문신(1501~1570)이다. 자는 경호(景浩) 호는 도옹(陶翁), 퇴계(退溪)이다. 주자 성리학을 심화․발전시켰는데 영남학파의 이론적토대가 됐다. 도산서원을 설립,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다. 작품에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저서에 《퇴계전서(退溪全書)》 등이 있다. 1548년 단양군수, 풍기군수를 지내다가 이듬해 병을 얻어 퇴계의 서쪽에 한서암을 짓고 공부했다. 이후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고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부분 사퇴했다. 선조에게 <무진육조소>를 올리고 <사잠>, <논어집주>, <주역> 등을 진강했으며 <성학십도>를 저술해 바쳤다. 이듬해 낙향했다가 병이 깊어져 70세의 나이로 죽었다.
구곡九曲은 어드매고 문산文山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기석奇巖怪石이 눈 쏙에 뭇쳤세라
유인遊人은 오디 안이하고 볼 업다 하드라
-이이(李珥),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중 구곡(九曲)
구곡은 어디인가? 문산에 한 해가 저무는구나.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괴이한 돌이 눈 속에 묻혀 버렸구나.
놀러 다니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고산구곡가'의 열 번째의 수로 세모를 제재로 하여 문산의 기암괴석에 흰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이 겨울 경치를 보지 않고는 그 아름다움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의 묘미를 깨닫지 못하는 세인을 탓하고 있다. 초장의 문산(文山)은 지명이면서 학문의 세계를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의 말이고, 중장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눈 속에 묻혔어라.'도 문산의 아름다운 자연이 눈 속에 묻혀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는 뜻으로 문산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동시에 학문 세계의 깊고, 오묘한 즐거움을 뜻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여기서 유인은 학문에 힘쓰지 않고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사람으로 학문의 깊고 오묘함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이다. 주제는 아름다운 경치의 묘미를 깨닫지 못하는 세인들을 안타까워함이다.
이이(李珥)는 신사임당의 아들로 조선 중기 중종 때부터 선조 떼까지의 인물로 이황과 더불어 학자로서 추앙을 받은 이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이다. 어려서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의 가르침을 받았고, 명종 3년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23세 되던 해에 도산으로 가서 당시 58세였던 이황을 방문해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선조 1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1583년 당쟁을 조장한다는 동인의 탄핵으로 사직했다가 다시 판돈녕부사와 이조판서에 임명됐다. 이듬해 4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송림松林의 눈이 오니 가지마다 곳치로다
한가지 것거 내여 님 겨신대 보내고져
님이 보신 후제야 노가디다 엇더리
-정철(鄭澈)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임금님이 계신 데에 보내고자
임금님이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소나무 숲에 눈이 내리니 가지마다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답구나. 그 가운데 한 가지를 꺾어서 임금(선조 인 듯)이 계신 곳에 보내고 싶구나. 그 눈꽃을 임금이 보신 다음에야 녹아서 사라진들 어떠하랴.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송강 정철이 귀양살이할 때 자기 심회를 표현한 작품으로 한가롭게 자연 속의 설경(雪景)을 보면서 신하로서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을 절절히 표현한 연군가(戀君歌)이다. 꽃 같이 핀 눈꽃을 꺾어서 보낸다고 그 설화(雪花)가 제 모습으로 그냥 있겠느냐만 그 마음만은 더없이 애틋하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귀양살이의 달인(達人)이라 할 만큼 귀양을 많이 다닌 사람이다. 귀양살이 중에도 풍류를 즐긴 특출한 풍류객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 때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인으로 우리 문학사상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 가사문학, 시조문학계에 우뚝한 명사(名士)이다. 그러기에 너무도 널리 알려져 있어 여기서는 이만 설명을 접는다.
백설白雪이 분분紛紛한 날에 천지天地가 다 희거다
우의羽衣를 떨쳐 닙고 구당丘堂에 올라가니
어즈버 천상백옥경天上白玉京을 밋쳐 본가 하노라
-임의직(任義直)
흰 눈발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날에 온 세상이 다 하얗다.
도사나 신선이 입는 새 깃으로 만든 옷을 떨쳐입고 높은 언덕에 지은 하늘에 기원을 올리는 집에 올라가 살펴보니
아아, 하늘에 있다는 천제의 궁전을 만나서 본 것만 같구나.
눈이 내리는 풍경을 참으로 오롯이 노래하고 있다. 어지럽게 흩날려 내린 흰 눈으로 온 세상이 다 덮인 때, 새 깃으로 만든 신선들의 옷을 걸쳐 입고 언덕 위에 오르니 신선들이 모여 산다는 하늘의 궁전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아름답다. 눈은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의 경계마저 다 허물어 선경(仙景)을 선사하고 있다. 마음으로 보는 신선의 세계는 많은 선인들이 바라고 느끼는 세계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주제는 선경(仙境)에 들어 신선(神仙)이 된 듯한 감회(感懷)이다.
임의직(任義直)은 연대 미상의 인물로 자(字)는 백형(伯亨), 거문고를 잘 타 이름을 떨친 이로 알려져 있다. 시조 6수가 전하는데 모두 자연 풍광을 즐기는 풍류와 멋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서호西湖 눈딘 밤의 달비치 말갓거날
학창鶴氅을 너믜 혀고 강고江皐로 디나가니
봉해蓬海에 우의선인羽衣仙人을 마조 본듯 하예라
-허정(許艇)
서호에 눈이 내린 밤에 달빛이 밝고 맑게 비치기에
학처럼 가를 검은 천으로 두른 창의를 여미어 입고 강 언덕을 지나가니
봉래산에 살고 있는 새 깃을 입은 신선을 마주 본 듯하구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중국 황주의 서호의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호수에 눈이 내린 밤에 달빛이 밝게 내리 비치니 더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렷다. 지은이는 스스로 학의 깃을 닮은 창의를 입고 언덕에 올라 지나가 보니 스스로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 중 하나인 봉래산에서 신선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술회하고 있다. 주제는 스스로 신선이 된 듯한 감회이다.
허정(許艇)은 자(字)는 중옥(仲玉), 호(號)는 송호(松湖)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효종2년에 별시에 급제하여 승지(承旨), 부윤(府尹)에 이르렀다. 해동가요, 청구영언에 시조 3수가 전한다.
동지冬至ㅅ달 밤 기닷말이 나난 니론 거즛말이
님 오신 날이면 하날조차 무이 너겨
자난 닭 일깨워 울려 님 가시게 하난고
-미상(未詳)
동짓달 밤이 길다는 말이 나에게는 거짓말 같아.
님 오신 날이면 하늘조차 나를 밉게 여겨
잠자는 닭을 일찍 깨워 남께서 떠나가시기 하는가.
님에 대한 연정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차마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이 곡진하게 스미어 있다. 사랑의 여운을 남기며 님이 떠남을 하늘과 닭에 의탁하여 원망(怨望)의 화살을 쏘고 있다. 주제는 절절한 사랑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설(一說)에 이 작품은 동짓달 긴긴 밤, 성종과 기녀 소춘풍이 한 남자와 한 여인,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가 되어 하룻밤 열렬한 사랑을 나누고, 다음날 새벽 떠나는 성종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소춘풍이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라고 하여 기녀 소춘풍(笑春風)이 지은 순애보적(殉愛譜)적 시조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하는 시조와 정서적 느낌이 유사하기에 황진이 작품일 거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정확히 누구의 작품인지는 아직 확연(確然)히 규명(糾明)된 바가 없다.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듸 바람아 부지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을 판연判然히 알건마난
그립고 아쉬운 적이면 행여 긘가 하노라
-미상(未詳)
눈 위에 비친 달이 창문에 가득한데 바람아 부지 마라.
신발 끄는 발소리 아닌 줄을 분명하게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때면 행여 그 바람 소리가 임이 오시는 소리가 아닌가 하노라.
눈 쌓인 깊은 겨울밤에 잠 못 이루고 전전반측(輾轉反側)하며 창백(蒼白)한 달빛이 창문에 가득히 흘러내리는 것을 보다가 가끔 창가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혹시 임이 오시는 소리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달 밝은 겨울밤의 바람소리와 임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의 서정적(抒情的) 그리움이 접목(接木)되어 애절함을 자아낸다. 초장의 ‘눈’과 ‘달’은 이 시조의 시간적인 배경을 말해주고 있으며, ‘바람’은 말없는 작자의 깊은 연모에 대한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매개체(媒介體)이다. 중장의 ‘예리성(曳履聲)은 임이신을 끌며 걷는 소리로 환청(幻聽)의 소산물이다. 임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 줄은 너무나 환하게 아는 일이지만, 그래도 귀를 기울이는 심정은 그리움에 응어리진 마음 때문이리라. 이렇게 중장과 종장은 시인의 내면적(內面的) 환각(幻覺)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임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은 이 시조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서정적(抒情的) 맥(脈)이다. 주제는 임을 기다리는 연모(戀慕)의 정(情)이라 하겠다.
겨월날 다스한 볏츨 님 계신듸 비최고쟈
봄미나리 살진 마슬 님의게 드리고쟈
님이야 무서시 업스리마난 내 못 니져 하노라
-미상(未詳)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금이 계신 곳에 비치게 하고자
봄철 미나리 살진 맛을 임에게 드리고 싶어라.
임금이야 특별히 생각하지 않겠지마는 나는 못 잊어 한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햇볕을 쪼인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따뜻하랴마는 겨울날 따뜻한 볕이 내리쬐면 그 볕을 임금이 계신 구중궁궐에 비치게 하고 싶다. 또한 그 볕을 먹고 자란 봄 미나리를 임금에게 보내 살지게 좋은 입맛을 드리고 싶다. 그 정성을 임금은 모르셔도 상관이 없다. 임은 모든 것이 넉넉할 것이지만 변변치 못한 '햇볕'이나 '미나리'이지만 임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고 하고 있다. 이는 내가 임금을 잊지 못하여 행위일 뿐이라고 하고 있다. 이 시조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좋은 것이면 임께 드리고 싶다고 하여, 임에 대한 진솔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시구‘ᄉᆞᆯ진 마슬’은 시적 표현의 묘가 잘 나타난 말이다. 연군지정(戀君之情)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저 건너 저 뫼흘 보니 눈 와시니 다 희거다
져 눈곳 노그면 프른빗치 되련마난
희온 후後 못검난 거슨 백발白髮인가 하노라
-미상(未詳)
저 건너 저 뫼를 보니 눈이 와서 희구나
저 눈이 녹으면 푸른빛이 되련마는
흰 다음에 못 검는 것은 백발인가 하노라.
온 천지가 눈에 덮여 있다. 이 장관(壯觀)을 인간사에 은근히 빗대보고 있다. 산천(山川)에 내린 눈발은 세상을 하얗게 덮어 백색(白色)의 세계를 연출하고 있구나. 이 눈이 곧 녹으면 자연은 본디 색인 푸른빛이 되살아나는데 어찌하여 인간의 검은 머리털은 하얗게 된 후에는 다시는 못 검고 백발이 되는가 하며 탄식하는 일종의 탄로가(歎老歌)이다. 이 작품은“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 듸 업다/ 져근덧 비러다가 마리 우희 블리고져/ 귀 밋테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가 하노라”하는 불가능성(不可能性)을 가능성(可能性)으로 노래한 우탁(禹倬)의 탄로가(歎老歌)를 연상하리만큼 표현 내용과 형태가 닮았다. 주제는 백발(白髮)을 서러워함이다.
Ⅳ. 나가는 말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서양적 사고와 대립되는 자연을 순응과 생의 근원으로 파악하는 한국적 사고에서의 발로이다. 다만 ‘임’으로 표현되는 대상이 옛날에는 유교적 영향으로 대부분의 사대부 시조에서는 임금님이 되고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아주 개별적인 그리움이나 사모의 대상인 점이 다르다. 물론 옛날에도 기녀들이나 서민이 지은 시조나 그들과 교류할 제 지은 시조들은 현대와 그 대상이 유사하다. 위 시조에서 작자를 모르는 미상(未詳) 작품 중 “동지(冬至)ㅅᄃᆞᆯ 밤 기닷말이∼”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하듸∼”와 같은 시조가 그것이다.
※ 표기 중 뒷날에 업어진 자모로 쓰인 글자는 그 변모된 모습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