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임박하던 1944년 7.1일 미국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국제통화금융회의에 참석한 44개국 대표들은 전쟁후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결국 미국 주장대로 주요국 정부는 변동환율제도가 아닌 고정환율제도로 회귀하기로 결정했다.
(고정환율제도는 금본위제처럼 특정 귀금속이나 통화에 대해 교환비율을 통일시킨 제도이다 물론 브레튼우즈에서 맺어진 합의는 완전한 금본위제는 아니었다. 달러는 금1온스에 대해 35달러로의 교환을 보장하는 대신, 다른 나라는 미 달러에 대해 자국 통화의 교환비율을 고정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미국이 약속한건 고정환율제도 복귀분 아니라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국가에게 미국시장을 개방하는 한편, 세계 교역 통행로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 미국이 취한 조치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는 대개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거나 식민지를 늘려 자신이 독점할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실익이 있지 않고서야 교역로의 안전보장에 드는 비용을 건질수도 없었다
* 미국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을, 만주에서 일본관동군을 섬멸한 세계 최강의 소련 기갑부대의 위협이었다. 소련의 위협에 직접 맞서기는 미국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고민끝에 미국은 독일과 일본같은 2차대전 당시 적을 우방으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즉 미국 시장을 내주는 것은 물론 마셜플랜등을 통해 경제회복에 필요한 자금을 지급함으로써 소련의 위협에 대신 맞서줄 방파제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 다른 이유는 자국의 이득이다. 세계 교역망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은 미국의 국가 이익에도 부합했던 것이다. 바햐흐로 시작된 석유시대에 적응해 중동으로부터 미국,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수송로를 보장하는 것은 미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 이와같은 미국의 정책은 미국에 수출할 능력을 가진 국가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뉴스였다. 예전처럼 군사력을 쌓아 식민지를 관리할 필요도 없고, 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매력도 없는 제3세계 식민지에 상품을 팔기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게 이득이었다. 또한 미국의 수송로 보호 덕에 원자재 가격이 1960년대 말까지 안정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이덕에 세계 경제는 극적인 성장의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1960년대가 되면 미국과 패전국(독일, 일본)의 소득수준이 거의 비슷해 진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이와같은 환상적 시스템에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였다. 이는 두가지 요인때문에 발생했는데 무엇보다 미국달러의 가치가 다른나라 통화에 비해 고평가된 탓이 컸다. 물론 미국은 다른 나라의 상품을 값싸게 구입하는 이점을 누렸다
* 2차대전 이전 1파운드가 5달러 전후에서 교환되었지만, 2차대전 후 3.6달러, 1950년에는 2.8달러까지 떨어졌다
( 또다른 요인은 독일과 일본등 패전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이었다. 패전국은 빠른 속도로 미국의 경쟁력을 따라 잡았다 또 패전국들은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쌓아두었기 때문에 미국의 대외수출은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다)
* 이결과 달러가 미국에서 끊임없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게다가 당시는 고정환율제도였기에 환율의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미국의 경상수지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그리고 이에 불만을 느끼는 나라들이 늘기 시작했고 대공황때에도 그랬듯 프랑스가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