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 생활의 최고의 법
<순종한 자와 그가 받은 축복(1)>
2015년 7월 19일 / 대예배 / 사무엘하 6:1-15
1. 이제부터라도 순종의 사람이 되십시다.
성경을 읽고 성령님이 그것을 이해하도록 도우셨다고 하더라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여전히 안일(安逸 - 편안함만을 누리려는 태도)에 남아 있게 됩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 또는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일개의 교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말씀을 이해했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고 안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에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22-25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약 1:22-25 / 또 듣기만 하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23) 만일 누가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그 사람은 거울 앞에서 떠나면 곧 자기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또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인간을 죄에서 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계속 착실하게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율법대로 실천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큰 복을 내리십니다.
순종은 현대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단어로, 마음으로부터 순종이라는 개념을 제거하면 형식적인 종교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복음주의자들의 설교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들에게 ‘진실한 믿음이란 기꺼이 죄된 행동들을 버리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主權)에 굴복시키는 것’임을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외쳤던(마 3:2), 예수님이 외쳤던(마 4:17), 제자들이 외쳤던(막 6:12), 사도들이 외쳤던(행 26:20)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외침은 한국 강단에서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엇을 회개하라고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겨우 담배 피우고, 술 먹고, 간음하고, 도적질한 것 등 윤리적인 것만을 회개하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외침은 이슬람을 제외한 불교나 유교에서 강조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도 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비롯하여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더 앞장 세워 불순종하였던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죄, 사망과 저주를 불러온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않고 불순종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후 10:4-5 / 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무기가 아닌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여 악마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5)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교만한 사상과 사람들의 눈에서 하나님을 가리는 온갖 장벽을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되돌아가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돌려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게 할 것입니다.(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 믿음과 순종 /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떤 날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들 후보에게 프랜시스는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 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들로 나갑니다.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자질이 있는가? 어떤 명령을 주어도 그 명령을 받아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자질이 마음과 삶 속에 있는가?’를 보기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교훈은 순종의 교훈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YES!’ 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 자기 프라이드를 꺾고 하나님의 방법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이 겸손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핵심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라는 말은 금욕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의 욕구를 무조건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란 자기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전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의 만족만을 위하여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함이란 바울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정욕과 그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갈 5:24). 성령을 의지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손해요 자신을 잃는 것 같이 여겨지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진정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콜럼버스입니다. 그런데 본디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크리스토퍼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지고 가지 않고 대신 황금을 지고 다녔습니다. 그의 눈은 황금 찾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끝나갈 즈음, 그는 괴로워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 이름은 그리스도를 지는 자인데 지금까지 저는 헛된 것만 졌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크리스토퍼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 왜 예수를 믿었습니까? 지금 왜 예수님을 따르고 계십니까? 예수 믿으면 병도 낫고, 자녀도 잘 되고, 장사도 잘 되고, 또 출세도 하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누르고 넘치도록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가십니까? 그러다가 만약에 내 뜻대로, 내가 기대한대로 되지 않으면 그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알고 따릅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람 즉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려면 예수님처럼 우리 또한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함도 경험할 것입니다. 억울함도 맛볼 것입니다. 답답함도 느낄 것입니다. 손해도 볼 것입니다. 자존심도 상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그러함에도 따라가는 사람이 진정 크리스천입니다. 크리스천의 길은 이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해도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욕을 당하셨으니 크리스천도 욕을 당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참된 크리스천은 자기의 이익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욕심을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참된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젊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저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18:22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다가 네 재물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청년의 우상은 재물이었습니다. 청년은 근심이 되어서 슬픈 기색을 띠고 영생을 얻는 것조차 포기한 상태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는 길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 아이가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있었습니다. 자기가 먹여야 할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었지만 자기가 먹기를 포기하고 예수님께 드려질 때 5천명이 먹고도 남는 엄청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내 힘으로, 내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자꾸 망설이거나, 주저한다거나,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목도케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순종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러니 열심을 내십시다.
■ 헨리 & 리처드 블랙커비의 글입니다. / 내가 처음 집례한 장례식은 어린 꼬마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한 부부의 첫아이였고, 조부모에게는 첫 손주였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심방을 가서 보니 그 아이는 부모의 말을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오라고 하면 갔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섰습니다. 부모는 그런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귀여워했습니다. 하루는 그 집 앞마당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마당을 빠져나가 길 쪽으로 가는 것이 부모 눈에 띄었습니다.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주차해 둔 두 대의 차 사이로 빠져나가 도로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안돼! 돌아와!” 부모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딸에게 외쳤습니다. 아이는 잠깐 서서 부모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돌아서서는 달려오는 차 쪽으로 곧장 뛰어들었습니다. 차는 아이를 세차게 들이받았습니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부모의 통곡은 그야말로 단장(斷腸)의 비애였습니다. 그것은 한 아이가 부모 말에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 반드시 즉각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분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신 10:12-13).
신 10:12-13 /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길만 따라서 걸어가며 마음을 다 바치고 정성을 다 쏟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주님의 명령과 계명에 따라서만 사십시오. 여러분이 그대로만 하면 복을 받아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신 33:29).
신 33:29 / 이스라엘 백성아, 너희는 얼마나 행복한 백성이냐! 여호와께서 해방시켜 주신 백성, 이런 백성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느냐?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방패와 같고, 원수들을 쳐서 이기는 무서운 칼과 같으시니 이스라엘아, 너희는 언제까지나 여호와만 의지하며 살아라! 그러면 네 원수들이 네 앞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원할 것이고 너는 그들의 등을 짓밟게 될 것이다!
행복은 감사 생활에 비례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광야와 같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감사하기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삶을 살기 쉽습니다. 그럴수록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기억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한 걸음 나아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골 1:12). 그리스도인들은 본인들조차 알지 못하는 감사할 이유가 엄청나다 못해 충만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입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포로 생활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그 중의 어떤 이는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두고, 이방 땅에서 제대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을 버리신 적도 없고, 잊으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고통 중에 탄식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울부짖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정리하여 말씀하십니다.
사 49:15 / 그러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연 어머니가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릴 수 있느냐? 자기 태에서 나온 자식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어머니가 세상에 있느냐? 만일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여도 나만은 너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 1997 KAL기 괌 추락사고. 1997년 8월 6일 미국령 괌 아가나 공항인근에서 대한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접근 중 추락한 사고로 총 254명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대형 사건입니다. 괌에서 KAL기 사고가 났을 때 아주 유망한 정치인 한 사람이 죽어서 안타까움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고 신기하 의원 이야기입니다. 청문회서나 의정활동에서나 활동이 아주 두드러진 의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야당에도 그의 친구가 많았고, 그를 따르는 청년당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창 나이에 아깝게 죽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50일 후 또 다시 안타까운 소식이 세인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신기하 의원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이 죽은 후에 그 어머니는 곡기(穀氣)를 끊고 다락방에서 지내다가 아사(餓死)했다는 것입니다. 아들 생각에 50일 동안이나 굶다가 그렇게 아들의 뒤를 따라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시신을 보니 가슴이 온통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가슴을 치고 슬퍼하다가 그렇게 죽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낳아서 기르고 키운 자식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마 11:12), 이 말은 그 만큼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자 할 때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얻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例 /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정당하게 복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였기에 20여년을 불안 속에 살다가 귀향을 하는 데, 형 에서가 야곱을 맞이하기 위하여 종 400명과 함께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합니다(창 32:6). 이에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형 에서로부터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끝까지 결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얻을 때까지 천사를 붙잡고 “내게 축복하실 때까지는 절대로 안 됩니다.”라고 늘어졌습니다. 결국 야곱의 간절한 열정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한 몸부림으로 인해 형 에서로부터 보호하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은 야곱(속여 빼앗는 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하나님의 방백)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후일 이스라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만큼 야곱은 하나님께로 오는 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야곱과 같이 얼마나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보다 세상적인 복을 더 원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예수 믿으면 저절로 하나님의 복이 굴러 들어오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믿으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일이 생기거나, 환란이 오면 돌짝밭에 떨어진 씨처럼 하나님 섬기는 것도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면 불평합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는 다른 사람이 누리는 그런 복을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하나님은 결코 빈둥거리며, 안일하게 예수 믿으려 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 보물찾기를 해 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야외 예배를 나가면 주변 수풀과 나무 그리고 돌 밑에 다양한 보물들을 숨겨 둡니다. 주변에 빙 돌아가면서 많은 보물을 숨겨 놓았습니다. 왜 그 보물을 숨겨 두었을까요? 나중에 사람들이 찾지 못하면 숨긴 사람이 다 가져가려고 숨겨 두었을까요? 아주 어렵게 숨겨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하였을까요? 아닙니다. 비교적 쉽게 찾도록 숨겨 놓았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손쉽게 다 찾을 수 있도록 감춥니다. 왜 그럴까요? 그 보물들을 찾는 자들에게 주려고 계획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보물이 어떤 지역에 숨겨져 있는지도 알려 줍니다. 시작 소리와 함께 보물을 하나 더 갖기 위하여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그리고 돌 밑도 보고, 나뭇가지도 봅니다. 이런 저런 곳을 다니며 보물을 찾습니다. 약 5분만 찾으면 몇 개씩은 찾습니다. 그리고 푸짐한 상품을 가지고 기뻐하며 돌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보물을 갖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찾고 있는데 앉아만 있다면 그 사람은 보물을 하나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것을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찾았으나 하나도 찾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사회자는 불쌍해서 가지고 있던 보물을 몰래 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원하면서도 복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 복은 열정을 다해 찾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3. 순종의 사람 오벧에돔
‘순종한 자와 그가 받은 축복’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대표적인 인물로 오벧에돔을 꼽아봅니다.
그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엄청난 복을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벧에돔에게 하나님의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로또를 사서 우연히 얻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자기에게 떠맡겨진 법궤를 자기 집에 모셔야 할 현실을 외면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과 순종이 있었습니다.
▶ 어느 날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70여 년 동안 기럇여아림이란 곳에 방치해 놓은 것을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모셔 오는 과정 속에서 다윗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짐승이 끄는 수레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레위 족속 중에서도 언약궤를 메어 올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웃사는 새로운 수레를 만들어 소들로 하여금 궤를 운반하도록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싣고 가던 소들이 갑자기 뛰자 언약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때 웃사는 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자기 손으로 언약궤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웃사를 쳐서 그 자리에서 죽게 하십니다.
이제껏 기분이 좋았던 다윗은 당황했습니다.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을 가슴 아파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려던 계획을 취소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궤를 모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솔직히 다윗은 하나님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궤를 옮겨 가도록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은 가만히 있다가 집이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궤를 본의 아니게 맡게 됩니다. 좋은 일로 그 궤를 자기 집으로 옮겨 오게 된 것도 아닙니다. 다윗왕이 화가 나자 자기에게 일방적으로 맡긴 것입니다. 이때 오벧에돔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도 이 두려운 언약궤를 맡지 않겠습니다. 지금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나요? 많은 사람들도 있는 데 왜 하필이면 나 입니까?”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비록 웃사가 죽음을 당하고 다윗이 두렵고 화가 나서 오벧에돔에게 하나님의 궤를 맡겼지만 오벧에돔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웃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다윗을 비롯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오벧에돔도 그곳에 있었기에 모든 것을 보아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도 당연히 하나님의 법궤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자기마저 외면할 수가 없어 기꺼이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 집으로 옮겨 왔습니다.
▶ 진정한 순종은 하기 싫을 때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다 보니 로마 군인에 의하여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골고다 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의 상황은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고 나설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억지로라도 져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였기에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짊어지기 싫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억지로 지고 가야했던 십자가는 시몬에게 있어 천만다행이요, 크나 큰 은혜요, 복이었습니다. 억지로 지고 갔던 십자가는 그의 일생에 있어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였습니다.
■ 믿을 수 있는 전설에 의하면, 시몬은 그 후 길가에 기념비를 세워놓고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했다고 합니다. ‘나 같은 놈이 감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다니 … ’ 날마다 감사와 감격에 겨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억지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으로 인해 그의 아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헌신적이었던지 바울이 그녀를 ‘내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마감하면서 일일이 문안을 부탁하는 가운데 구레네 시몬의 부인이었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어머니를 특별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자기 어머니처럼 정성스럽게 돌봐 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좋을 때는 순종하고 싫으면 순종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덕입니다.
■ 어떤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매우 거칠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오늘 이 옷들을 전부 세탁해서 다려 놔”, “매일 내가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둬.” 등 수많은 요구로 그녀를 힘들게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그런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5년 동안 그렇게 비참한 결혼 생활을 참아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으리라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2년 뒤 그녀는 아주 친절한 사람을 만나 재혼을 했습니다. 두 번째 남편은 자신의 요구대로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집안 청소를 하다가 전 남편의 요구 사항들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고 그 내용들을 읽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요구들은 모두 그녀가 지금의 남편을 위해 즐겁게 하고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지금 남편에게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의무감으로 일했기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순종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모범적인 순종은 할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해야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안 나오면 벌 받을까 두려워 나온다면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으로 해야지 죽지 못해 한다면 순종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적당~히 한다면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즐거움으로 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쁨이나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면 교회 나오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집니다. 억지로 한다면 가인이 드린 제사처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벧에돔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궤 맡기를 꺼려했지만 그는 자기 목숨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순종한 오벧에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궤가 그 집에 겨우 3개월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 집에 넘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벧에돔과 그 집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는 시간이 별로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짧은 기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과부가 드린 두 렙돈과 같다고 할까요?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합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하나님께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삶의 중요한 자리를 얼마만큼 내어 드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작은 부분에만 주장하도록 허락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쳐서 낮추고, 하기 싫어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일어나서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 우선 한 가지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결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데 지금까지 하기 싫어서 순종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요? 공예배에 참석하는 일인가요? 성경 공부에 참여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전도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교회 일을 내 일처럼 충성하지 못하는 일인가요? 어떤 것이든 하나님 명령인데,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찾아 순종하십시오. 100% 모두 다 순종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음에 이렇게 순종해야 하겠다는 것이 깨달아질 때에는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러므로 오벧에돔이 받았던 축복을 받읍시다.
▶ 어떻게 이러한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순종이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는 억지라도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혜롭게 선택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롭게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해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든 고향 땅을 떠나라 하시니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믿음의 조상이요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는 근원이 된 것입니다.
또한 재산이 많아지자 조카 롯과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에 의지하며 어떤 땅을 밟든지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롯에게 먼저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쪽에 있는 에덴동산과 같은 요단 들녘을 선택해서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나머지 땅을 선택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선택을 귀하게 보시면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먼저 선택하고 늦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선택하느냐 아니냐에 딸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선택하면 하나님은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수 있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복은 원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십시오.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맡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죽어도 하나님 손에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선택(選擇)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쪽이 옳고 그른지 애매해서 선택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선택할 때 얼마나 나에게 유익이 돌아오느냐를 따지지 마십시오. 미련해 보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선택하십시오.
지금 당장의 유익만 따지며 선택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칩니다. 그러기에 선택할 때는 항상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지혜롭게 선택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또 다른 복도 누리게 해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인도할 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도록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복 중에 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며, 또 지혜롭게 선택하며 살 때 다른 사람도 복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5:9 /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화평케 하는 자)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평화의 기도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우리 모두가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다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 오벧에돔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순종하자 하나님의 복이 놀랍게 임했습니다. 이 복은 사람들의 눈에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오벧에돔을 복해 주시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약궤가 마치 사람을 죽이는 괴물과 같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는 두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윗도 두려워서 예루살렘으로 옮기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집에 엄청나게 복을 해 주시자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일 먼저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다윗 왕입니다.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 와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모셔오고자 계획을 세웁니다.
삼하 6:11 / 법궤가 그곳에서 석 달 동안 있었는데, 그 사이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12) 오벧에돔이 법궤를 모시고 나서 온 집안까지 복을 받게 되자 그 소문이 다윗에게 전해졌다. 이것이 다윗에게는 여호와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시작한 징표로 보였다. 그래서 다윗은 기뻐하며 가드로 내려가서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모시고 다윗성으로 올라왔다. 13) 이때에 다윗은 법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이나 옮기도록 아무런 사고가 없자 법궤를 다시 내려놓고 살찐 황소 한 마리를 잡아 감사제물로 바쳤다. 첫걸음을 탈없이 내디딘 것에 대한 감사로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도 좋다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14) 법궤를 운반하는 행렬이 다시 계속되자, 다윗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면서 여호와의 법궤를 따라갔다. … 15) 다윗은 이렇게 온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환호성을 올리고 나팔을 불면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다.
예수님은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은혜받은 것은 혼자만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복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예수님을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를 보며 나도 예수 믿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은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을 보며 신앙을 키워갑니다. 교회의 직분자들 즉 목사나, 장로 그리고 집사를 보며 배웁니다.
그러기에 사실 두려운 마음으로 늘 조심하며 좋은 신앙인의 모습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모습이 될 때 옆에 있는 분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