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약연비(魚躍鳶飛) : 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는 날아오르고
魚躍鳶飛上下同 這般非色亦非空
어약연비상하동 저반비색역비공
等閒一笑看身世 獨立斜陽萬木中
등한일소간신세 독입사양만목중
물고기 뛰고 솔개 나니 위아래가 한 이치
이러한 경계는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네.
무심히 미소를 머금고 내 자리를 돌아보니
해질 녘 숲속에 홀로 서 있네.
- 이이(李珥, 1536~1584)
「풍악산 작은 암자에서 노승에게 주다[楓嶽贈小菴老僧] 병서(幷序)」
『율곡전서(栗谷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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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가 풍악산에 구경 갔을 때
작은 암자에서 노승을 만나 진리의 요체에 대해 대화하고 나서
그에게 적어 준 시이다.
☞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적은 서(序)를 대화체로 정리해 보면
율곡이 물었다.
“여기서 무얼 하시오?”
노승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율곡이 다시 물었다.
“무엇으로 요기를 하시오?”
노승이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내 양식이오.”
율곡은 그가 어떤 주장을 펼지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공자와 석가 중 누가 성인이오?”
“선비는 늙은 중을 놀리지 마시오.”
“불교는 오랑캐의 가르침으로, 중국에서는 시행할 수 없소.”
“순(舜) 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고,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인데,
그렇다면 이들도 오랑캐란 말이오?”
“불가(佛家)에서 묘처(妙處)라고 하는 것은 유가 안에도 있는 것이오.
그러니 유가를 버리고 불가에서 구할 게 뭐 있겠소?”
“유가에도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소?”
“맹자가 성선(性善)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들어 말한 것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우리 유가에서는 실리(實理)를 볼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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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은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오?”
“이것 또한 눈앞의 경계요.”
노승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율곡이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색이오, 공이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
그것이 진여(眞如)의 본체요. 이런 시와 비교나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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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 웃으며 말했다.
“말이 있게 되면 바로 경계가 생기는 것인데,
어찌 그것을 본체라 할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묘처는 말로써 전할 수 없는 데 있는데,
부처의 도(道)는 문자(文字) 너머에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요.”
노승이 깜짝 놀라서 율곡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속된 선비가 아니오. 나를 위해 시(詩)를 지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글귀의 뜻을 풀이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