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원 하는 가 그대여
곽선희
한가로운 시간에 꽃마차를 타고 숲속을 누비듯 책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서점에서 자신이 알고 싶은 분야에 해답을 얻고자 책을 뒤적거린다. 하늘 위에 뿔이 나면 지아비 부(夫)자가 된다.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응급실로 가게 된 사연이면 무슨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때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원 하는 가 그대여. 속 시원한 대답을 주소서.
입구에서부터 마스크 착용은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손소독 열 체크하던 오늘날과 달랐다. 대구 G문고에서는 그 당시 거짓말을 좀 보태어 콩나물시루같이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책을 찾느라 열람하였다. 내가 그자리, 그곳을 본 것은 모든 사람들이 제가 갈구하는 목 타는 목마름이 활화산처럼 타 오르는 것 같아 보였다. 무척 목이 말랐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3층을 오르며 벽마다 붙인 남녀노소의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본다. 꿈꾸는 듯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춘하추동 배경 속에서 행복 그 자체였다. 그 대열에 끼인 나는 도무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다른 종족의 타인으로서 존재하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리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황당하였다.
앰뷸런스가 앵앵 울리는 통에 정신은 혼비백산이었다. 나는 평소의 거리에서나 보았던 풍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 앰뷸런스 한 쪽에 기대어 멍 때린것으로 30분이 3시간이나 된 듯 달려 도착한 병원이다. 빨리 수술을 했으면 좋으련만 병원규칙에 따라 이것저것 지루하게 물어 댔다. ''평소 아스피린을 복용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요즈음은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수술을 망설였다. 수술할 경우 피가 멎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러다간 이래저래 자꾸 시간을 끌겠다 싶었다. 확실히 집히는데가 있었기에 ''안 먹었으니 빨리 수술을 해 주십시오.'' 라고 했던것이다.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접수 건이 너무 많아 더 지체하다간 큰 일 나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이 병원을 소개 했던 것이다. 지체하다보니 결국 3시간 골든타임을 놓쳤다. 목이 타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붙잡고 묻고 싶으나 수술실에서 나오는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얼마 후 간호사가 처치물을 들고 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황을 물으니 ''그래도 아저씨는 괜찮은 편입니다. 시골에서 올라 온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밤에 그런 줄도 모르고 날이 밝아서야 발견 늦게 오는 바람에 상태가 영 안좋습니다.'' 그 말이라도 듣고서야 안도를 할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토록 형제고, 친척이고 아는 병원 근무자에게 연락을 했건만 수술이 끝난 밤에 한 사람, 두 사람 늦게 나타나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래서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춥고 으스스한 시간이다. 급한 불은 일단 껐다는 젊은 의사의 말을 위로 삼았다. 머리는 붕대로 둥둥 감았고 얼굴은 퉁퉁 부어서 나왔다. 의사의 물음이다. ''오른손 들어 보세요. 오른 다리 들어 보세요.'' 요행히 오른 손과 오른 다리를 움직이었다. 그러나 왼손, 왼다리는 움직이질 못했다. 죽지 않고 살았다는데 감사하기로 했다. 내 입술이 타들어갔다.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준중환자실에서는 자기병원 자체내의 간병사를 두길 원했다. 규정이 그랬다. 일반병실로 옮기면 가족이 간병 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했다. 하루에 아침, 저녁 20분도 못보는 것보다 종일 직접 간병을 하고 싶었다. 국가가 요구하는 요양보호사자격시험을 위해 학원에 등록하고, 거의 한나절을 수강하고 실습했다. 남편이 있는 병원의 한적한 어느 공간에서는 어김없이 책을 펼쳤다. 달고 달게 공부한 덕에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무턱대고 나는 서점에 들렸다. 의사나 간호사는 남편의 상태에 대해 대략적인 것은 얘기해도 상세히 얘기하지 아니하였다. 피곤한지, 무시하는지 얘기하고 싶지 않은지 더 이상 묻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의학서적을 찾아 얻어 낸 결과다. 면회 온 딸아이와 아들에게도 방법을 찾게 하였다. 그렇게 모음 (아 ㆍ야 ㆍ어 ㆍ여 ㆍ오 ㆍ요 ㆍ우 ㆍ유 ㆍ으 ㆍ이)발음을 가르쳐도 보았다. 또 초등학생용 낱말카드로 글자 알아맞히기도 하고, 발음을 더 잘 하게 하기 위해 껌 씹는 연습도 부지런히 해보았다.
이쪽저쪽 휠체어 몰고 다니면서 모든 재활수업이 끝나면 식후 샤워를 시키고, 다시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 올라 걸음마 연습을 했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한 사람이 상상외로 많이 발전된 것이다.
매트에 눕혀 놓고, 엎어 놓고, 주무르고, 밟고 하였다. 뿐만 아니고 별별 희한한 자극을 다 주고, 제철과일과 음료도 시시때때로 제공해 삶을 환기시켰다. 잠든 것을 일깨웠다. 인간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자고, 배출하는 것이 잘 되길 소망했다. 이것으로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든가? 많이 나아졌다.
그간의 간병으로 이제 지팡이로 중심을 잡고, 썩 잘 걷지는 못 하지만 그런대로 잘 걸었다. 아직은 불량한 자세, 입안에서 편하게 굴리는 발음을 하고 있다. ''자세를 똑바로 하세요.'' ''말을 편하게, 흘리지 말고, 발음을 또박또박 해서 다른 사람이 듣기에 불편하지 않게 노력하세요.'' 노력하면 나아 질 텐데... 목마름이 있어야 해결 될 텐데... 자신이 스스로 목 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해결 될 것이다. 이제는 그에게 매이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에 맡겨 두고, 이제부터는 한 발 물러나 지켜보기로 한다. 나의 목마름도 분명 있었다.
우리 속담에 ''미꾸라지 천 년에 용 된다.'' 했듯, 아무리 부족한 것이라도 오랜 세월을 지내면 훌륭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 갑자기 얻은 것으로 아무것도 몰랐는데 당한만큼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해낸 결과로 오늘이 있다. 흔히 자기 목이 말라 보아야 우물 파듯 그렇게 우리들은 남편을 위하여, 저네들 아버지를 위하여 일심단결로 방법이란 방법 모두 동원한 결과를 얻었다. 목말라 한 만큼 노력 없이는 해결이 안 된다. 이제 자기성취는 오로지 노력뿐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20230207)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청림숲힐.
재활의 의지를 담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매끄럽게 표현하는 능력이 선수입ㄴ다
늘 부족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