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음 제10차 백일릴레이명상 제 24일 (1019 수)
학창 시절 학교 강당에서의 일입니다. 많은 동년배 친구들이 모여서 발표회를 하고 있는데, 관객 석에 앉아 불안감에 휩싸인 제가 보입니다. 맡은 파트의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기다리는 동안 몸이 떨려 위아래 이가 부닥쳐 소리가 날 정도로 무대 공포증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또 하나의 장면. 입사 초년병이었을 때, 상사와 단 둘이 참석한 고객 미팅에서 겪은 악몽입니다. 고객사의 미국 본사 고위 임원진 그룹이 참석한 가운데 인수합병 관련 심각한 주제를 영어로 논의하고 있던 중, 상사가 제게 쪽지를 건넵니다. 밖에서 급한 전화를 처리해야 하니, 30분만 혼자 회의를 커버하라는 내용입니다. 상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고 회의실에 남겨진 저는 순간 머리 속이 텅 빈 듯, 블랙 아웃 상태가 되지요.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무의식 속 지하 깊숙이 꽁꽁 숨겨져 있다가 꺼내어진 과거 기억들입니다. 제가 얼마나 겁이 많고, 소심하고, 극심한 무대 공포증과 불안증에 시달렸는지 복기하게 하는 장면들이었지요. 제 딸이 겪고 있는 화장실 불안증과 무대 공포증을 걱정하던 저에게 이토록 비슷한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겁니다.
어릴 적 누구에게도 제가 겪었던 바로 그 어려움을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 해결해보려고 끙끙 앓고, 혹여 이런 고민이 있다는 것을 들킬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책을 찾아보았고,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걸로 안 죽는다’는 자기 암시로 머리 속은 늘 시끄러웠고, 나 자신에게만 털어놓는 비밀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달랬던 것 같습니다.
딸 아이의 불안증을 걱정하고 있던 저에게 이 같은 오랜 기억이 소환된 건 왜일까 궁금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그랬었다는 걸 알고 인정하게 되면 아이의 상황을 더 잘 공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완벽주의 성향으로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취약한 자존감을 가진 나라는 사람을 성장시켜 온 동력은 바로 그 무대 공포증과 불안을 극복해 낸 경험 덕분이 아닌가? 그런 성향과 기질이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제 이야기를 듣던 지인은 혹시 엄마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으로 옮겨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물어 보라 했습니다. 과거에 저를 사로잡았던 불안이 완전히 떨쳐지지 않은 상태라면, 그 불안의 기억과 충분히 애도 의식을 가지고 이별해 보라고요. 저는 과거의 제 자신에게 ‘불안해도 괜찮다’, ‘그렇게 너 자신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는 자각을 하게 됐습니다. 불안과 공포로 웅크리며 떨고 있던 내 안의 아이가 여전히 저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저는 그것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응시하고 온 마음으로 안아주고 포용해 줘야하겠지요. 저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로 불안해하는 아이의 마음을 투영하고, 그로 인해 전혀 의도치 않게 아이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스스로에게 투명하자 하면서 새로운 질문을 품어 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