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앞뜰에는 두 줄의 돌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이를 두고 품계석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품계석은 어느 임금 때 어느 궁전에서 제일 먼저 세워졌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년 9월 6일,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정전(仁政殿) 뜰에 품계석(品階石)을 세웠다. 조하(朝賀) 때의 반차(班次)가 매양 문란해졌으므로 품계에 따라 돌을 세워 반열(班列)의 줄을 정하도록 명한 것이다.“
표현은 간단하지만 우리는 이 기록에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품계석은 정조 임금 때 창덕궁 인정전에서 제일 먼저 세워졌네요. 그리고 아침 공식모임 때 동반(東班-문관)과 서반(西班-무관)이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모여 전혀 통제가 되지를 않았음을 알 수 있겠고, 그 모습이 보기 싫은 정조가 신하들을 품계에 따라 줄을 서게 함으로써 신하들의 군기를 잡았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정조만한 개혁 군주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정조 임금이 드디어 신하들을 앞뜰에 계급 순으로 줄을 서게 하였습니다. 누가 한눈팔고 누가 잡답 하는지 멀리서 보아도 바로 알아볼 수 있게끔 줄을 세웠던 것이지요. 품계석이 처음 조정 앞뜰에 자리 잡게 된 사연이 바로 임금이 신하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요즈음도 초등학생들에게 품계석을 해설해 줄 때면 가운데 어도(御道)를 넘어가면 곤장 80대라고 설명해 줍니다. 그때까지 장난치며 무질서한 학생들 군기 잡는 데도 효과 만점이니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매 일반임을 느낍니다.
이참에 조선시대 품계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兩班)은 동반과 서반 양쪽 품계에 속하는 사람 모두를 뜻합니다. 그리고 품계는 품(品)과 계(階)로 나뉘는데 품은 양반 모두 각각 정(正)1품부터 종(從)9품까지 18품이 있으며 계는 상(上)과 하(下)의 두 계가 있습니다.
제일 높은 정1품에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이 있고, 제일 낮은 품계인 종9품에는 참봉(參奉)이 있습니다. 과거시험 합격자 33명의 경우를 보면, 갑과 1등인 장원급제자는 종6품, 갑과(나머지 2명)은 정7품, 을과(7명)은 정8품, 병과(23명)은 정9품이 됩니다.
복잡한 품계를 지금의 관료체제와 보기 쉽게 나타낸 표가 있어 별첨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