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전자도서관에 있는 기초학문자료센터의 『무조건적 존중의 대상인가, 두려워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인가? 레비나스와 지젝의 이웃 개념에 관한 변증법적 고찰』이라는 논문이 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이웃이란 타인의 얼굴을 통하여 신의 절대적인 명령이 우리에게 제기되어 나타나며 우리가 실제적인 책임(무조건적인 사랑과 영접, 친절)을 지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슬라보예 지젝은 ‘이웃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이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기에 아무런 위협의 대상이 아니지만 안정감이 무너지면 끔찍한 범죄와 테러의 장본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과 상호 관계를 주고받으며 배려와 애호의 대상 또는 경계하고 조심할 대상으로 이웃을 대한다. ‘이웃사촌’이라는 친근한 표현을 쓰기도 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도 한다.
좋은 사람과 행복한 일이 더 많기에 우리의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행하고 좋지 않은 일이 더 돋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법정책연구원의 『주민 자율 조정을 통한 이웃 분쟁 해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에는 공동주택의 증가와 이웃 간의 교류 단절 등으로 인해 층간소음, 생활 누수, 반려동물 문제, 간접흡연, 주차 문제,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경계 분쟁, 통로 분쟁, 개인정보 침해 등의 다양한 유형의 이웃 분쟁이 급속하게 증가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이웃 분쟁 해결을 위해 주민 자율 조정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마을 분쟁 해결지원센터, 서울특별시 이웃 분쟁 조정센터, 평택시 이웃 분쟁 조정센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나에게도 이웃과 관련된 두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한가지는 해결되었고 나머지는 진행 중이다. 한가지는 화장실 누수 문제였다. 지난달에 화장실을 사용하다 누수 현상을 발견하고 수리를 부탁하러 위층에 갔었는데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간 뒤였다. 위층의 노부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서울에 사는 자식들의 근황은 알 수 없어서 많이 당황했었다. 관리실을 통해 아들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로 화장실의 누수 현상을 설명하며 수리를 요청했다.
“집을 팔고 선생님께 안부 인사를 하려고 몇 번이나 방문했었는데 부재중이어서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생전에 어머님께서 선생님과 사모님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답니다. 당연히 수리해 드려야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돌아가신 위층 노부부와 얼굴을 붉히며 불편하게 지냈다면 아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화장실 천장을 뜯어내고 배수관과 오수관의 누수 부분을 찾아내어 수리하는 기간이 열흘 정도 걸리고 시끄러웠지만 불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한 가지는 시골집 진입로 문제이다. 땅 주인을 포함한 세 집이 진입로를 같이 쓰고 있었는데 땅 주인이 집을 헐고 밭으로 전환하면서 자동차가 다니던 진입로를 리어카 정도 다닐 수 있는 폭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승용차가 다닐 수 있도록 땅을 임대 또는 매입하려고 해도 땅 주인은 응하지 않고 300평이 넘는 전체의 땅을 사라고 하니 고민이 깊어질 뿐이다.
금전적으로도 문제지만 300평이 넘는 밭을 사서 농사를 지을 자신도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제작된 지적공부(토지대장, 지적도 등)의 많은 오차로 인해 실제 현황과 일치하지 않고, 이로 인해 이웃 간의 토지 경계나 통로에 대한 분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을 줄이기 위하여 2011년에 ‘지적재조사특별법’을 제정하여 이에 근거한 지적 재조사 사업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니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자신도 남의 땅을 밟고 다니면서 자기의 땅만 주장하는 것이 못마땅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땅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은퇴하면 시골집으로 주소를 이전하고 조그마한 밭농사와 텃밭을 가꾸며 맛나게 살아갈 계획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로 인해 이웃들과 이해 충돌이 싫어 주말에만 내려가 쉬기로 변경했다. 지금은 편안한 쉼터를 위해 전기 공사, 천장, 벽, 바닥, 부엌 등의 내부 수리하고 있다. 지적도에 있는 경계나 진입로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사람이 변하지 땅이 어디 가겠는가.
공동주택의 증가와 이웃 간의 교류 단절 등으로 인해 다양한 이유의 이웃 분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와 내가 자주 주고받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 자식은 앞집 아이처럼 생각하고 앞집 아이는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웃 관계 역시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에서 이웃으로 다가온 이웃 사람과 함께 배려와 친절, 상호존중의 관계를 주고받는다면 미래 지향적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4.4.26. 김주희.
첫댓글 좋은 이웃을 만나면 축복이지만 불편한 이웃을 만나면 재앙입니다. 원래 이웃은 서로가 도와가며 살아가는 공동생활체였는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배려와 존중 그리고 친절. 좋은 이웃을 만드는 주요 요소를 잘 집어 주셨습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이웃은 사촌 처럼 가까워 질 수도 있지만 서로 반목 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이웃을 만나면 힘듭니다. 그래도 잘 지나도록 해야 하는데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 다면 이사를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웃 잘 만나는 것도 복중에 복입니다. 글을 잘 풀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정의를 잘해주셨네요 . 좋은이웃은 먼곳에 가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