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기
정경희
말 잘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욕심일 것이다. 서점에는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 있고 각종 스피치 교육하는 기관들도 보인다. 대부분 사람들은 눈만 뜨면 말 하며 살고 있다. 하물며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아 답답해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할 때는 말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 성격은 내성적이다. 수십 년의 직장생활로 많이 바뀌었지만 겉으로만 호탕한 척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와 다투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씩씩 거렸다.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멋진 말이 왜 뒤늦게 생각나는지.’ 안타까워하였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것처럼 시끌벅적 떠드는 이가 부럽기도 하였다. 재미있으니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 세파에 부대끼며 자신감이 떨어질 때는 “내성적인 사람이 강하다”는 어느 박사의 책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였다.
언젠가 친정 동네에서 고모 친구라는 분을 만났다. “아이고, 경희 아니가?” 모르는 이가 알아주니 반갑고, 더욱이 기억나지 않는 내 유아기를 말해주니 더 반가웠다. 옛날에는 동네 처녀들이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놀았다. 고모는 어린 나를 데리고 다녔고 가는 곳마다 나는 재롱을 부렸다. 얼마나 똑 소리 나게 말하고 노래 잘 불렀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지금과 다르게 나의 유아기는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냥 주변 의식하지 않는 어린 아이니까 그랬다고 여긴다.
어릴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간단하게 친구 엄마가 무언가 물었고 나는 답을 하였다. 아이가 어쩌면 어른처럼 말을 척척 잘한다고 혀를 내 둘렀다. 6학년 때는 담임선생님 권유로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기도 하였다. 상은 못 받았다. 그래도 전교생 앞에서 강단을 치고 번쩍 손들며 소리치던 경험은 잊을 수 없다. 나도 그렇게 말 못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사춘기 되면서 말이 많이 줄었다. 이때 내성적 성격으로 바뀐 것 같다. 할아버지 돌아가고 고모와 삼촌은 타지로 나갔다. 나만 떠받들던 어른들이 모두 떠났다. 불호령만 내리고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 밑에서 위축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바뀔 수 없는 일 탓하니 씁쓸함이 가슴을 쓸고 간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말 잘하기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책 읽는다고 행동이 확 바뀌지는 않지만 깨닫는 것은 있었다. 주로 다수의 사람 앞에서 떨지 않고 발표 잘 하려고 노력하였다. 역시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날 스피치 교육기관을 찾았다.
보통은 단체 교육 하는데 일정이 맞지 않았다. 혼자 하려니 비용이 만만찮다. 준비한 원고 읽으면 강사는 동영상을 찍는다. 다음은 내 발음과 표정 등을 분석해서 다시 반복하였다. 덕분에 자신감 있게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비싼 돈 주고 쓸데없는 짓 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 충실했다고 여긴다.
퇴직하니 평일에도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다. 하릴없는 날에는 남편과 드라이브 겸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곳 가보는 경험도 좋지만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에서 앞만 보며 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낙이다. 그런데 대화는 언제나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서로 자신의 말만 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대화 기법이 부족한 것 같다. 지금도 이런데 더 늙으면 어떨까? 목청껏 자기 소리만 하며 상대방 탓하는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요즈음 식사모임 하면 식당 다음 차례는 어김없이 찻집이다. 친구들과 찻집 가는 날은 수다가 이어진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끝이 없다. 상대방 말 끝나기를 기다리는 예의 차리다가는 한 마디 말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바쁘게 일할 때는 수다 떠는 사람들은 할 일없는 이들로 여겼다. 왜 쓸데없는 일에 진 빼는지 한심하게 여겼다.
그런데 수다가 중요하다. 인류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우리에게만 있는 언어 덕분이라고 한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의사소통은 모두 남의 이야기라고 하니 정말 그럴 듯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며 살고 있다. 울음으로 욕구 표현하던 아기는 옹알이 하면서 말을 배운다. 말을 통해 자신의 감정 표현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등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하여 노력한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손들고 발표하는 것이 좋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유연하게 상대방 설득하고 내 주장하는 기술을 터득하려고 노력하였다. 노년이 된 지금은 무엇이 필요할까? 주변에서는 시끄러운 사람보고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라고 한다.
예천지역 여행하다보면 말 무덤이 있다. 어느 장군에게 충성한 말(馬)의 무덤이겠거니 했는데 말을 조심하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싸움 그칠 날이 없자 마을 어른들이 원인과 처방을 찾은 결과였다. 물론 풍수지리 믿는 옛 어른들의 처방이긴 하지만 싸움의 발단이 된 말을 사발에 뱉어 묻으니 평온한 마을이 되었다. ‘말은 줄이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불교에서 아무 말 하지 않는 참선인 묵언수행도 있다. 말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 짓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목적이라고 한다. 소심하고 착하게 살아온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었을까 싶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뿐일 것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뱉어낸 질책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묵언수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을 줄이면 좀 더 의젓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늦게 얻은 지혜의 획득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에서 말 잘하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남보다 나은 사람 되겠다고 비싼 비용 지불하며 학원 다녔다. 출근길 자동차 안에서는 주변에 보이는 글자 소리 내어 읽으며 정확한 발음 연습도 하였다. 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자신이 처한 위치나 연령대에 따라 말 잘하기의 뜻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내가 노년이라 하긴 싫지만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어야 할 때’가 지금부터 이다.
(20241029)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