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19일(수) 전도서 10:12-20 찬송 371장
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15.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8.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개역 개정)
18-19절)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먼저 18절을 보면 ‘내려앉고’는 썩어서 붕괴되는 상황을 말하며
‘새느니라’는 표현 또한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비가 올 때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솔로몬 당시 집들은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벽이 갈라지거나 지붕에서 물이 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집주인이 조금이라도 게으르거나 나태하여
집을 돌보지 않으면 금방 집의 기둥과 지붕이 내려앉고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어 집안에서 살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솔로몬은 이러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게으른 지도자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국가의 쇠퇴와 패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에 이어지는 19절에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라는 말은
방탕하고 우매한 신하들이 자신의 직무는 감당치 않고
육신의 안일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을
잔치와 주연을 베푸는 것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한다’는 말은
자신의 생명을 다른 것이 아닌 포도주로 기쁘게 한다는 것으로
오로지 환락과 주흥을 위해 사는 삶의 면모를 지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돈은 범사에 이용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돈은 모든 것에 대답한다’는 뜻으로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황금만능주의,
곧 사람들의 그릇된 가치관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19절은 18절에서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
지도자들의 행위를 좀더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적들을 솔로몬이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이처럼 우리 삶에 만연한 불성실과 나태함, 타락과 방종,
허탄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 등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해야만
거기에 빠져들지 않고 형통한 삶,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성경이 지닌 중요한 가치의 일면을 생각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하나님의 백성들의 다양한 삶의 국면들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각각의 내용 가운데는 겉으로 볼 때 참으로 어둡고 뒤틀린 것들,
답답하고 혼탁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첫권인 창세기만 봐도 그렇다.
범죄를 저질러놓고 자신의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하는 이야기(창3:12)
형이 동생을 쳐 죽이는 이야기(창4:8),
아내를 누이라 속이기도 하고(창12:13), 동성연애(창19:4-5),
근친상간(창19:31-35), 동생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까지 속이는 이야기(창27:14-24)
형들이 동생을 시기하여 노예로 팔아 넘기는 이야기(창37:25-28)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어두운 단면들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어두운 이야기들, 부정적이고 그릇된 사람들의 삶의 면모는
단지 악인들, 죄인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소위 믿음의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이라 불리는 이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가장 존경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
다윗 같은 성군이 자기 신하의 아내를 취하여 간음을 범하고
그 범죄를 숨기기 위해 충성스런 신하를 암살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어두운 단면들은
성경이 지닌 가치를 희석시키고 저하시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소개된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만큼 성경이 정직하게 사람들의 면모를 가감없이 고발하고
사람의 본성과 사람이 지닌 약점을 정확히 보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그 문제를 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경계하고 또 고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8-19절에서 솔로몬이 이처럼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의
삶의 면모나 악하고 불성실하며 퇴폐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삶을
지적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우리가 보는 성경 말씀 가운데에는 덕스럽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내용만 아니라
부정적이고 불의하고 추한 면모도 기록되어 있다.
또 우리의 삶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정확히 분별하고 이를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러므로 복된 삶, 거룩한 삶을 살길 원한다면
말씀을 가까이하여 성경이 경계하는 바들을 정확히 분별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죄를 멀리하고
악한 것을 경계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
의로운 것을 좇으며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롬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