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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검무존 제3권(전3권) 지은이: 서효원·이광주 - 차 례 - 第1章 대해(大海)의 고독한 미녀(美女) 第2章 패엽검환의 마지막 안배 第3章 백치(白痴) 미남(美男) 第4章 두 남아(男兒)의 파멸(破滅) 第5章 그가 돌아왔다 第6章 불새가 된 백봉(白鳳) 第7章 무심십오야(無心十五夜) 第8章 검(劍)의 정복자(征服者)들 第9章 대거가 고뇌(苦惱)하는 이유 第10章 깨어진 와우석(臥牛石) 第1章 대해(大海)의 고독한 미녀(美女) ① 대해(大海). 가도가도 끝나지 않을 듯한 망망대해이다. 중토(中土)의 해안을 떠나 동남쪽으로 쉬지 않고 배를 저어 가다 보면 나타나는 곳! 일흔두 개의 섬이 광활한 면적에 걸쳐서 흡사 별자리 마냥 흩어져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일컬어 동해칠십이군도(東海七十二群島). 이 곳은 오랫동안 역풍(逆風)의 땅이었다. 장구하기 이를 데 없는 강호사를 통해 볼 때 대륙무림을 정복한 자는 많았다. 하지만 여태껏 동해무림을 지배한 자는 없었다. 동해무사들의 기질은 그만큼 억세다. 그들은 해풍(海風)을 가르며 노를 저으면서 강인한 기질을 배운다. 노도광란은 그들의 영혼과도 마찬가지이다. 또 그들은 유구(琉球), 부상(扶桑), 해남도(海南島)는 물론이거니와 멀리 고려(高麗)와 오천축국(五天竺國)에까지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수천 년을 살아왔으며, 나름대로의 율법으로 영토를 지탱해 왔다. 동해가 배출한 기인들은 부지기수이다. 하되 당세의 동해무사들이 신앙처럼 숭배하는 사람은 절정의 무공을 지닌 세외기인도 아니고 불세출한 영웅도 아니다. 모든 동해무사의 진실한 충성을 받고 있는 인물은 이제 나이 열아홉 살에 불과한 묘령의 미소녀(美少女)에 불과하다. 동해무사들은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녀가 바로 그의 딸이기에……! 대전(大殿). 지극히 화려한 곳이다. 발목까지 잠겨 드는 양탄자의 빛깔이며 천장과 벽의 색채는 현란의 극치에 달한 보랏빛이다. 본시 보랏빛은 조화를 이루기 힘든 빛깔이다. 하지만 그녀의 살결은 진주빛으로 희었는지라 보라색에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녀는 팔선탁(八仙卓) 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는 그녀를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여인으로 보이게 한다. 그녀는 방년 십구 세의 나이이다. 십구 세라면 칠만사천 명의 건장한 대장부들을 지배하기에는 부족한 나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일 년 넘게 대해를 이끌어 왔다. 팔선탁 위에 놓인 옥배 속. 잔에는 붉은 술이 가득하다. 그녀는 두 달 전부터 술을 가까이 했다. 왜 남아들이 그리도 술에 탐닉하는지, 그녀는 지독스러운 번뇌가 생긴 이후에 꽤 쉽게 알게 된 것이다. "……!" 그녀는 잔에 손가락을 댄 채 눈길을 앞쪽 벽면으로 이동시켰다. 벽에는 궤도가 그려져 있다. 궤도 안에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지극히 희극적으로 생긴 금포노인이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있는 바, 그의 오른쪽 어깨 위에는 깜찍하게 생긴 청의동녀(靑衣童女)가 달랑 앉아 있다. '저 그림은 나의 여섯 번째 생일날 그려졌지. 당시 난 아버님에게 남동생을 선물해 달라고 졸랐고, 아버님은 꼭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지!' 최근 들어 그녀는 웃음을 잊고 지내는 때가 많다. 그러나 그림을 볼 때에는 자연스럽게 화사한 웃음이 퍼져 나간다. '아버님은 불세출한 거상이셨으며 위대한 절대자셨다. 동해의 융성과 번영은 아버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한데 그 독녀(毒女)가 아버님을 독살했다!' 눈빛이 차가워진다.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흑진주의 빛이 이러할까? '냉조령(冷照玲), 그 천한 악녀는 대해의 패권을 노리고 아버님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도 현명하시던 아버님이 어이해 그 따위 천한 악녀에게 당하셨는지…….' 눈빛에 습막이 뒤덮인다. '그 악녀는 막강한 무사세력을 등에 업고 동해를 지배하고자 한다. 게다가 내가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나를 동해 밖으로 내몰려고 한다!' 해연(海燕) 금소아(金少娥)! 누가 이 이름을 모르랴? 강호사대미인가 중의 한 여인으로 불리는 이름을! 그녀의 희고 가는 손가락에 금빛 배첩이 닿았다. 금빛 배첩 안에는 꼼꼼한 필체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소아(少娥). 너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미녀다. 넌 황후가 되어 마땅한 절세재녀! 네가 동해의 섬개구리로 썩어 지내는 것은 실로 보기 애처로운 일이다. 하기에 너를 대륙제일인의 아내로 만들어 줄 작정이니, 기꺼이 응하기 바란다. 그분은 가히 천하의 일대지존. 그분의 아내가 됨은 네 자신의 영광이고, 또한 동해무림의 안녕과 번영을 약속받는 길…….> 금소아의 눈에서 뿜어지는 한망이 점점 강해진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집게처럼 벌려 배첩을 쥐었다. 순간이었다. 츠릇-! 배첩이 새파란 불꽃에 휘말리며 화르르 불살라진다. "천한 것, 감히 나를 대륙의 야만인에게 팔아먹고자 하다니… 철붕비! 그 자는 희세의 대마성이며 지하마도를 장악한 자이다. 흡혈서시(吸血西施) 냉조령은 나를 철붕비에게 팔아 넘김으로 동해의 대권을 독식하려 드는 것이다." 금소아가 이를 빠드득 갈 때였다. 꾸룩……! 문득 새 울음소리가 들리며 회색 비둘기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금소아는 급히 손을 쳐들었다. 순간 능공섭물진기(凌空攝物眞氣)가 시전되며 비둘기가 손아귀 안으로 빨려들었다. 비둘기 다리에는 쪽지가 묶여져 있다. 금소아는 쪽지를 펄쳤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유성이라… 그런 이름은 들어 보지 못했다. 으음, 추국(秋菊)은 나 다음의 고수이며 사람을 보는 눈이 있지. 그런데 왜 이런 인물을……?" 금소아의 하이얀 치아가 딸깃빛 입술을 깨물었다. '직접 만나 시험해 보자. 사유성이란 자가 믿을 만한 자라면 그에게 청부하고, 아니라면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하자!' ② 배는 이틀 후 해란도에 닿을 예정이다. 사유성이 탄 배는 얼핏 보아 어선(漁船)이다. 왜 이렇게 위장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사유성은 만사 태평할 뿐이다. 지금 그는 목탄을 주워 들고 선실 바닥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슥- 스슥-! 그를 안내하는 자는 금소아의 사대시녀 가운데 하나인 추국(秋菊)이었다. 추국은 동해에서 금소아 다음의 고수인 바, 칠 일 내내 동행을 한 동반자가 정녕 강호의 절정고수인가 아닌가 자꾸만 회의를 하는 눈치였다. '내 눈으로 저 자가 절세적 어검술을 시전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자가 절세고수로 보이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내가 보기엔 분명 중원제일검이거늘……!' 추국은 힐끗 사유성의 눈을 봤다. 묘한 사팔뜨기이다. 하기에 그의 눈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분간되지 않는다. 그는 몹시 잘 웃는 편이고, 지금도 웃고 있다. '사유성, 저 자는 지독한 병에 걸린 상태이다. 저 자는 하루에 두 차례씩 시꺼먼 피를 게운다. 그런데도 늘 만사 태평한 표정이니……!' 추국은 사유성으로 인해 상당한 번민을 느껴야 했다. '여하튼 저 자의 용모는 허무한 가운데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내가 만난 모든 남자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다!' 추국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사유성이 그리고 있는 그림 쪽으로! 그것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사유성은 막 두 눈에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다. 추국은 두 눈이 완성되는 것을 보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묘한 힘이 느껴진다. 아아, 그림에 불과하거늘 어찌 저리도 매혹적일 수 있을까?' 추국은 내공이 막강한 편이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순간 내공이 흐트러졌고, 그것을 막기 위해 급히 내가구결을 암송해야 했다. 그녀가 겨우 심기를 진정시킬 때였다. "대체… 이 계집은 누구지?" 사유성은 목탄을 집어던지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순진하고 희극적인 표정이다. 하되 그의 초점을 상실한 두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깊이를 모를 번뇌(煩惱)의 심연(深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이 계집의 얼굴을 그리고 있지? 젠장!" 사유성은 툴툴거리다가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이어 그는 길고 복잡한 경문을 암송하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난해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기에 추국은 아예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지금 그녀는 지극히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주의력을 갖고 암송되는 구결을 암기하고자 했다면, 그녀는 강호에서 가장 정통적이고 신묘하다는 소림사 비전 칠십이 종 절기 가운데 열 가지 정도는 훔쳐 배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선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그려진 그림이 당금 대륙무림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신비미녀 살화(殺花)의 완전한 얼굴이라는 것도 전혀 모른다. 다만 그녀는 멍하니 그림만 바라보고 당혹해 할 뿐이다. '아아, 너무나도 아름답다!' 추국은 분명 여인이다. 하되 그녀는 남자가 아닌 여자를 보고 문득 강한 욕정(欲情)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분명 여자인데… 어찌 얼굴의 소유자를 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인가?' ③ 천붕도(天鵬島)! 동해칠십이군도 가운데 제이도(第二島)이다. 천붕도는 해란도에 비해 오히려 광활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천붕도의 도주는 흡혈서시(吸血西施) 냉조령. 그녀는 늘 베옷을 걸치고 있다. 그녀의 베옷은 동해의 거인이었던 금무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표시이다. 흡혈서시 냉조령은 금무외가 첩으로 수집한 백 명의 미녀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는 금무외의 살아 생전 첩실(妾室)의 말석(末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연유인지 금무외의 죽음 이후 가장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여하튼 그녀는 천붕도를 자신의 아성으로 만들었고, 연일 그녀의 휘하무사들이 쾌속선을 타고 천붕도로 접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녀는 대소사에 휘말려 드는 게 고인에 대한 무례라고 규정짓고 베옷을 걸친 채 조용히 규방에 틀어박혔다. 그녀는 거의 모든 시간 향을 사르고 예불을 한다던가? 늘 베옷을 입은 채……. "하아악……!"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진다. 그녀의 두 다리는 사내의 어깨 위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사내는 위에서 여인을 타고 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남녀의 몸은 가장 은밀한 부위가 서로 결합되어 있다. 그녀는 한 시진 내내 쉬지 않고 짐승처럼 파고드는 사내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사시나무처럼 희열에 떨며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를 계속 토했다. 사내는 쉬지 않고 공격해 왔다. 어느 순간, 급기야 그의 얼굴에 묘한 고통의 빛이 떠오른다. 가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을 경험하는 듯한 빛이랄까? "흐으……!" 그는 구름을 타고 둥실 날아오르는 환각에 사로잡히며 입을 히죽 벌렸다. 그 자극적인 느낌은 그가 살아서 느낀 마지막 감각이기도 했다. ④ "도대체가 쓸 만한 놈들이 없단 말야." 냉조령은 비단옷을 대충 걸치며 시체를 내려다봤다. "이 자는 철포삼(鐵袍衫)으로 신체를 단련하기는 하였으되, 내공이 약하다. 하기에 한 시진도 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냉조령이 화를 내는 이유는 아직 성욕(性慾)을 다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 하루도 사내 없이는 지내지 못한다. 그녀는 적어도 하룻밤에 열 명의 사내를 갈아치워야만 어느 정도 성욕을 채울 수 있다. 사내만이 그녀를 진실로 기쁘게 할 수 있다. 물론 그녀를 안은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을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요조숙녀라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도. '강한 남자가 이리도 없는가? 날 완전히 불살라 버릴 남자가……!' 냉조령은 허리띠를 질끈 졸라맨 다음에 옆방으로 접어들었다. 그 곳에는 곱상하게 생긴 미동자 세 명이 상주하고 있다. 그들은 널브러진 시체를 치우고 침상을 정리해야만 한다. 또한 녀석은 냉조령이 의자에 앉기 무섭게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황금빛 옷을 걸친 녀석은 그녀를 위해 과일 바구니를 대령한다. 냉조령은 여지라는 과일의 푸른 껍질을 까면서 입술을 뗀다. "상부의 보고가 있었느냐?" "호호호… 한 통 있었사와요." 이건 또 뭔가? 희한하게도 그것은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라 계집의 목소리이다. 세 명의 동자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음양인(陰陽人)들이었다. 하기에 그들은 상대에 따라 남자 역할도 하고 여자 역할도 한다. "무슨 내용이더냐?" 냉조령은 여지를 덥썩 깨물었다. "첫째 사항은 얼마 전 총순찰직을 물러났던 옥쌍화가 태상호법 자리에 올랐다는 보고입니다." "옥쌍화, 남자 같은 계집이 재주도 좋군. 대체 무슨 재주로 대종사를 홀렸다지……?" 냉조령의 눈에는 질투의 빛이 가득하다. 하긴 그녀는 살화와 옥쌍화 다음의 미녀라고 평가받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냉조령은 그러한 사실을 완전히 부정했다. 사실 옥쌍화와 살화는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가 천외군화전을 떠난 이후에야 두각을 나타낸 말학후진들이 아니던가? "계속해라!" 냉조령은 또 하나의 여지를 까먹는다. 그녀의 새빨간 혀가 감미로운 여지의 과즙이 느끼어질 때 요사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둘째 사항은, 반년 안에 금소아를 대종사 곁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반년이라… 호호… 상부에서는 내 실력을 과소 평가하고 있군. 난 금무외를 가볍게 제압한 여걸이지. 금소아 따위는 내 상대가 안 돼. 그 계집이 날 제거하기 위해 모종의 수단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건 그 계집을 파멸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못해. 내가 어찌 그 풋내기에게 뒤지겠느냐? 상부에서는 반년을 예정하되, 나는 보름 안에 해결지을 작정이다!" 냉조령은 싸늘히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욕실을 향해 가며 또다시 누군가의 품을 그리워했다. ⑤ 어선은 밤에 해란도에 닿았다. 사유성은 지하 계단을 따라서 십 리 넘게 걸어야만 했다. 이윽고 그는 거대무비한 지하 동부 속으로 접어들었다. 그 곳에는 한 채의 누각(樓閣)이 세워져 있다. 휘이- 휘이익-! 사유성은 다분히 저속한 곡조의 휘파람 소리를 내며 누각 쪽으로 다가섰기에 추국은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하여간…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다. 무공을 제외한다면 쓸모가 전혀 없다!' 그녀는 탄식을 하면서 사유성의 등을 보며 따라갔다. 만에 하나, 사유성이 그녀를 제압하려 든다면 먼저 추국의 검이 그의 등줄기 속으로 한 자 깊숙이 파고들리라. 그녀는 자주색 궁장 뒤쪽에 황금빛 피풍의(避風衣)를 걸치고 서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오연하게 사유성이 다가서는 것을 쏘아봤다. 그녀의 모습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지만,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것도 사실이다. 가히 화려한 미색의 극치랄까? 그래서 강호미인가에는 그렇게 노래하지 않던가? 해연은 화려무쌍하다고……! "룰룰루……!" 사유성이 콧노래를 부르며 누각 위로 오를 때이다. 차창-! 누각의 계단 좌우에 서 있던 두 명의 깡마른 무사가 문무쌍차(文武雙 )를 십자로 교차시켜 사유성의 진로를 방해했다. "뭐야?" 사유성은 힐끗 그들을 쓸어 봤다. "……!" 그들은 눈빛으로만 더 이상 가지 말라는 암시를 던졌다. "젠장, 퉁명스럽기는……." 사유성이 툴툴거릴 때이다. 홀연 그의 귓속으로 의어전성 소리가 파고들었다.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래야만 대해쌍영(大海雙影)이 길을 비켜 줍니다." 그 소리는 뒤쪽에 선 추국의 목소리였다. "히히… 무릎을 끓으라고?" 사유성은 키들거리며 계속 걸었다. 순간 대해쌍영은 눈을 부라리며 문무쌍차를 빠르게 흔들어 댔다. 파팟-! 문무쌍차는 순간적으로 사유성의 옷자락을 베어 냈다. '피하지 못하다니?' '이런 하수가 어찌……?' 대해쌍영이 어처구니없어 할 때 사유성은 다시 그들을 보며 히죽 웃는다. "멈출 줄 알았지. 킬킬… 소리만 들어도 안단 말이야. 피부가 베어지는지 베어지지 않는지, 내가 왜 그런 것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유성은 바보처럼 말하며 다시 걸었다. '우리가 멈출 줄 알고 피하지 않았다고?' '지독히도 건방진 놈이로군. 좋아, 그럼 이번에는 진짜로 살을 베어 주마!' 대해쌍영은 무언 중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힐끗 그녀를 봤다. 그녀는 말없이 턱만 끄덕였다. 그것은 재차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대해쌍영은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해천만파(海天萬波)의 초식으로 사유성을 공격했다. 문무쌍차의 예기가 일대를 어지럽힐 때이다. "호오, 이번엔 진짜로군?" 사유성은 너스레를 떨며 오른손을 슬쩍 흔들어 댔다. 순간 허공에 검은 손바닥 그림자 일백 개가 또렷이 떠올랐다. 파팟- 팟-! 둔탁한 소리 가운데 대해쌍영의 몸이 타 버리기 시작한다. 직후 일백 개의 손바닥 그림자는 돌연 하나로 뭉치면서 두 자루 신병이기를 엿가락처럼 휘어 버렸다. "으으, 이 자가 사술을……!" "감… 감히 대도주가 하사한 문무쌍차를……!" 대해쌍영은 이를 갈며 재차 공격하고자 했다. 그 때 차갑고도 엄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교두들의 상대가 아니오. 조금 전 저 자가 흑색백공마장(黑色百空魔掌)을 전심전력으로 펼쳤더라면 두 분은 모두 절명하셨을 것이오." 대해쌍영은 흑색백공마장이라는 말에 기겁을 하며 주춤거렸다. 그것은 전설로만 알려진 마도절학이다. 이백이십 년 전 흑색야차교(黑色夜 敎)라는 집단이 있었고, 그들의 종사만이 흑색백공마장을 시전한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사유성의 손을 통해 마도의 절전절학 하나가 재현된 것이다. "흑… 흑색백공마장이라고? 흐음, 그런 이름이 얼핏 기억이 나긴 하는군." 사유성은 자신이 무슨 절학을 시전했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멍한 표정이다. 여하튼 그가 누각 위로 오르는 사이, 추국은 그에 대해 몇 가지 비밀 사항을 신속히 전음으로 보고했다. 금소아는 추국의 보고를 들으며 사유성을 빤히 봤다. 그녀의 눈빛이 유독 강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눈빛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사유성이란 사내의 용모가 너무나도 고혹스럽기 때문이다. 탈속한 듯하면서도 허허로운 표정이랄까? 상처가 몇 군데 있기는 하되, 그것이 절세적인 용모를 훼손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상처들은 그의 남성적인 매력을 보다 선명히 드러낼 뿐이다. '아, 깊고 맑다!' 금소아는 저도 모르게 눈빛을 흩트리고 말았다. 그 누구 앞에서도 오만한 눈빛을 상실하지 않았던 금소아이다. 하되 생면부지의 괴청년 사유성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기가 죽고 마는 것이다. 사유성은 느릿느릿 다가섰다. 그의 몸에서는 여러 가지 악취가 동시에 풍겨 왔다. 특히 지독한 것은 땀과 피의 내음이다. 게다가 사내의 진한 체취까지 가득……! 사유성은 금소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입술을 떼었다. "네가 큰 부자라며?" "……."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더욱이 해연 금소아에게 첫 대면에 대뜸 하대라니? 금소아는 한동안 망연자실해 하다가는 갑자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바른 말이다. 나는 황금이 많다. 호호호… 부자라는 것은 지당한 말이지." 금소아가 너무나도 유쾌히 웃었다. 그 바람에 주위에 은잠해 있던 시위무사들이 오히려 얼떨떨해 할 지경이었다. 금소아는 최근 명랑하고 쾌활한 웃음을 망각하고 지냈는 바, 사유성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그 웃음을 회복한 것이다. "부럽군. 부자라니… 물론 나도 가난하지는 않아. 나도 가진 게 꽤 있지." 사유성은 어깨를 으쓱으쓱거리며 말했다. '이 자의 무공은 초인적이되, 지능은 일곱 살짜리 수준이라는 추국의 말대로군!' 금소아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을 할 때였다. "돈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니다." "그럼 왜 왔지?" 사유성은 말을 더듬거리며 금소아를 빤히 봤다. 그의 눈빛은 흐릿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는 금소아가 당황해 할 정도로 강한 응시를 하다가 입술을 뗐다. "이제 생각났다. 내가 온 이유가!" "그게 뭐지?" "클클… 네가 보고 싶어왔다." "나를……?" 금소아는 얼굴이 새빨개지다 못해 불덩이처럼 활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현현비파(玄玄琵琶)를 움켜쥐었다. 하되 사유성은 태연자약히 웃을 뿐이다. "맞아. 난 바다제비(海 )를 잡으러 왔다. 하하…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