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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무림칠절 청색혈마에게 패한 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순천진인은 어떻게 보복을 할까 고심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신독괴살수를 설득시켜 그와 함께 합세함으로써 청색혈마를 쳐 죽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신독괴살수는 순천진인이 신중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냉소를 쳤다. “미련한 도사 같으니라고. 그러고 보니 흑룡강의 삼남사녀에게 간담이 찢어지도록 당했나보군.” “흑룡강의 삼남사녀를 너 같은 노 괴물의 실력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사실 흑룡강의 사람들 뿐 아니라 무림 중에는 무공이 절정에 달한 고수들이 수두룩하지.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일찍이 그녀의 수하에게 패한 적이 있다네.” “노 도사,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거야? 툭 털어놓고 솔직히 말할 수 없을까?” 순천진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대꾸도 않더니 돌연 눈을 크게 뜨면서 다그치듯 물었다. “노 괴물, 네 당금 천하무림에서 어느 누가 빙선일월장(永禪日月掌)을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여기까지 듣고 있던 비류신은 선우철의 귀에 입을 바짝 가져다 대고 나직이 말을 건넸다. “선우형, 무림칠절이 싸우기로 한 날짜가 언제인지 아시겠소?” 청풍검 선우철이 채 대답도 하기 전이었다. 홀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 노제, 이제 보니 그대도 여기 왔구려. 한데 어찌하여 모습을 나타내어 나가지 않소?” 선우철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멀리 사 장 밖에서 월광검 소대풍과 청풍명사 청룡백호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 뒤로 몇 사람의 모습이 또 보였다. 흑도삼괴, 적면귀 사심독, 독살풍장 맹호철, 살독수 강파문, 살음귀쌍수벽, 마곡인 마대부 등이었다. 선우철은 청풍명사 청룡백호와 지령보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것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찡그렸던 눈살을 펴고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핫하하하! 청룡 형, 형은 어느 틈에 소대풍 등과 같이 왔소?”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껄껄 웃고 나서, “이제 막 오는 길이오. 우연히 만나 재미있는 구경이나 좀 볼까 해서 왔소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자기 일행들을 향해 손짓했다. “자, 어서들 오시오. 우리도 싸움판에 들어가 봅시다.” 소대풍 등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선우철이 고개를 돌리고 낮은 음성으로 비류신에게 말했다. “비형, 대세가 우리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가는구려. 그러니 잠시 이 위험에서 몸을 피하는 게 어떻겠소?” 바로 그때였다. “핫하하! 못난 녀석 같으니. 어림도 없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흐흐, 네 아비가 오지 않는 한 오늘 너는 곱게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다.” 순천진인은 말을 마치자 계속 음산한 웃음을 내흘리면서 느릿느릿 선우철과 비류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선우철의 두 눈에 섬광이 번쩍했다. 뭔가 결의가 선 듯한 눈빛이었다. “흥! 순천 노 선배, 당신은 좀 연장자라 해서 연소자를 능멸할 셈이오?” 순천진인은 여전히 음산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히더니 느닷없이 손을 뻗쳐 선우철을 할퀴려 들었다. “앗! 물러서시오!” 비류신이 냅다 호통을 지르며 순천진인을 향해 일장을 뻗쳐 냈다. 순간 사나운 바람이 수레바퀴처럼 돌면서 순천진인의 정면으로 몰려 들어갔다. “윽!” 순천진인은 기겁을 하도록 놀랐다. 선우철을 할퀴려던 왼손을 급히 움츠리고 오른손을 휘둘러 비류신의 장세를 맞받았다. 순간, 펑하는 우레 같은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순전진인은 한 줄기 거대한 장력에 밀려 비실비실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 녀석의 장력이 조금 전보다 더 세구나. 방금 나는 일장에다 육성 공력을 주입시키지 않았던가. 이거 오늘밤 내내 귀신만 보는 것 같군.’ 비류신의 일장이 무림칠절 중 한 인물로 그 이름도 쟁쟁한 순천진인을 격퇴시켰다. 이 광경을 본 장중의 뭇사람들은 내심 크게 놀랐다. 비류신이 절기를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진전이 빠르다고 생각되었다. 역시 무림칠절 중 한 사람인 신독괴살수는 놀랄 만큼 싸늘한 눈초리로 비류신을 노려보고 있더니 갑자기 걸음을 떼어 비류신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선우철이 크게 소리쳤다. “비형은 신독괴살수를 조심하시오!” 그의 말이 떨어졌을 때 이미 신독괴살수가 왼팔 옷소매를 휘둘러 비류신의 오른손 완맥을 쳐가고 있었다. 비류신은 반 개월 이내에 잇달아 강호상의 험로를 거닐며 음험하고 간사한 일을 체험했다. 그래서 오늘 일장으로 순천진인을 격퇴하고 나서도 그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분명히 은밀하게 무슨 수작을 부릴 거라 예측하고 진기를 두 손에 모은 채 조용히 사태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독괴살수가 이쪽으로 다가들자 그는 머지않아 자기 신변에 불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 더욱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신독괴살수의 옷소매가 바로 눈앞으로 닥쳐 들었을 때, 그는 상반신을 바싹 뒤로 젖혀 그의 옷소매를 피해 내고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같이 바싹 구부려 가지고 오히려 신독괴살수의 왼쪽 팔목을 거머쥐려 들었다. 신독괴살수는 미처 생각지 못한 반격이었다. 그는 다섯 손가락에서 뻗치는 예리한 바람에 속이 뜨끔해졌다. 이것저것 가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는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자 비류신은 공격해 가던 기세를 빌어 크게 기합을 내지르면서 휘둘러 신룡출운(神龍出雲)의 초식을 펼쳐냈다. 비류신은 소대호의 정심한 무공을 전수받은 데다 최근에 이르러 적으로부터 일 장 공격을 받고 내부가 진동될 때마다 한 줄기 진기가 각 곳의 경맥으로부터 새어 나옴을 느끼고 가슴 속의 정기가 충만해져 마치 공력이 배가된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는 터였다. 그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바싹 긴장하고 일장에다 십성의 공력을 넣어 공격을 가했다. 장 풍이 일었다. 그 장풍은 마치 폭풍에 휘날리는 성난 파도처럼 신독괴살수를 향해 몰아쳐 갔다. 찰나, 신독괴살수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급한 대로 손을 들어 마주 장풍을 쏟아 보냈다. 펑! 두 줄기 강렬한 장풍이 맞부딪치며 경기가 사방으로 넘쳐 지상의 흙먼지를 말아 올렸다. 비류신은 아무 진동도 받지 않은 듯 제자리에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신독괴살수는 달랐다. 그는 쌍방의 장풍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는 순간 한 줄기 반탄력이 자기를 향해 되돌아오는 것을 의식했다.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고꾸라질 것 같은 위태로운 자세였다. 다행히 공력이 심후한 덕분에 그는 잠시 떨기만 했을 뿐, 물러나지도 고꾸라지지도 않았다. 중인은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분명히 저 젊은이에게는 자기들이 모르는 무서운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들 추측했다. 선우철은 비류신이 무림칠절 중 두 사람의 공격을 거침없이 받아내자 놀라는 한편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비류신의 고강한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 만 아니라 그는 이때 무림에 그 명성이 자자한 순천진인이나 신독괴살수에 대한 두려움을 다소간 없앨 수 있었다. ‘오늘밤 내 비록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는 했지만 비류신이 나와 연합하여 적을 대항하여 맞선다면 비록 무림칠절 중 두 사람을 이길 수는 없더라도 몸을 보호하고 이곳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선우철은 새로운 용기가 치솟는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웬일인지 신독괴살수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오래도록 신독괴살수라는 이름을 익히 들어왔소이다. 뵈올 인연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오늘밤 이렇게 뵙게 되니 평생을 두고 잊지 못… …” 선우철은 움찔했다. 신독괴살수가 싸늘한 눈초리로 자기 몸 위아래를 유심히 훑어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말을 계속 하려다가 말았다. 신독괴살수가 말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선우휘에게 똑똑한 아들이 있어 용(龍)과 같다더니 그 용이 바로 자네란 말인가?” 선우철은 빙그레 웃음 지었다. “황송합니다. 보잘 것 없는 후배에 지나지 않으니 많은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신독괴살수는 왼손을 들어 비류신을 손가락질하며 싸늘하게 물었다. “선우철! 저 사람은 누구지?” “네, 후배의 지기(知己)입니다. 노 선배의 많은 관용을… …” 선우철은 한층 더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제아무리 오만하고 포악스런 성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이쯤 되면 그 성깔을 부릴 수 없지 않은가. 상대방을 그런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바로 선우철의 약삭빠르고도 슬기로운 점이었다. 과연 신독괴살수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주춤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천진인이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냉엄하게 말했다. “선우 꼬마야. 거 주둥이가 매우 날카롭구나. 난 선우휘에게 너같이 똑똑한 자식 놈이 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해야겠구나. 한 가지 그런 섣부른 입놀림으로 오늘밤의 일을 무마하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순천진인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 정원의 맨 오른쪽 가에 있는 방에서 카랑카랑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법석을 떠는 거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이토록 깊은 밤중에 함부로 남의 정원을 침입하여 어리석은 싸움질이나 하여 단잠을 깨뜨리다니 어서 없어지지 못하겠소? 꾸물거리지 말고 즉시 사라지지 않는다면 인정사정 보지 않을 테니, 내가 너무 매정하다고 원망하지 마오. 한 번 화가 났다 하면 죽어서 고이 묻히지도 못하게 박살내고 마는 성미이니 어서 두말없이 물러가시오.” 그 말투는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일 뿐 아니라 오만하기 짝이 없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참지 못하게 하였다. 신독괴살수는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며 응수하였다. “으흐흣… 흑룡강 무리들은 건방지기 이를 데 없다더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노부는 이렇듯 건방진 녀석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한 번 만나 보기 전엔 도저히 이 자리를 물러날 수 없다.” 방 안에서 다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용사쌍수는 어디 있는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살독룡이 공경히 대답하였다. “소인 교살용사쌍수는 여기에서 학도령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철두라는 그 사나이는 여전히 방안에서 얼굴을 내밀지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 “그대들은 지금 즉시 저들 두 사람을 죽여랏!” 교살독룡이 곧 말을 받았다. “용사쌍수는 학도령의 명령대로 복종하겠소이다. 그러나 이 자는… …” “그 자가 어쨌단 말인가?” “무림칠절 중 한 사람인 신독괴살수라고 아뢰오.” 학철두는 노발대발하여 버럭 언성을 높였다. “뭐라구? 신독괴살수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그처럼 위축되어 오금을 못 펴느냐? 이 밥통 같은 녀석들,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명령대로 따르지 못할까?” 사실 교살용사쌍수는 무림칠절의 쟁쟁한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결코 신독괴살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교살독룡은 허리를 굽히고서 다시 말하였다. “학도령, 노부는 두 선녀의 명령을 받들어 학도령의 안전을 돌보고 있습니다. 무림의 고수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올 때에 만약… …” 학철두는 부아가 치밀어 날카롭게 외쳤다. “잔소리는 집어 치워라! 어서 명령대로 따르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리고 말 테다!” 그 말을 들은 신독괴살수는 노발대발하여 우렁찬 음성으로 호통 쳤다. “돼먹지 못한 흑룡강의 얼간아! 그렇게 숨어서 큰 소리만 떵떵거리지 말고 떳떳이 나서라. 재주가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도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다!” 신독괴살수의 이 한마디 호통에 학철두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실로 괴이한 현상이었다. 이때 비류신이 선우철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소.흑룡강에서 온 삼남사녀 중 세 사나이 중 한 사람이 바로 저 친구인 것 같구려.고 선배님께서 곧 이곳에 오신다고 했는데 바로 저 청년을 만나기 위해서인가요?” 선우철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그려.” 이때 교살용사쌍수는 벌써 신독괴살수 곁에 접근하였다. 쌍방 간에 일언반구 말도 오고가지 않았고 교살독사는 다짜고짜 판관필을 뽑아들고 덮쳐들더니 매서운 기세로 신독괴살수의 가슴팍 요혈을 찔러 갔다. 신독괴살수는 상대방이 급습을 가해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척하더니 교살독사의 판관필이 가슴팍에 막 닿으려는 찰나, 돌연 외마디 함성을 지르며 왼손을 가로질러 적의 공세를 막음과 동시에 발로 괴성적두(魁星摘斗) 초식을 펼쳐 교살독룡의 하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교살독사가 판관필로 맹공을 퍼부었으나 상대방이 가볍게 피해 버리자 교살독룡은 즉시 부채 모양의 섭선(攝扇)을 펼쳐 들고 신독괴살수에게 덮쳐 갔다. 그러나 신독괴살수가 사나운 기세로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그는 섭선을 거두고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신독괴살수는 교살독룡의 공세를 물리친 직후, 쉭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한 줄기 강맹한 경력이 내습함을 느꼈다. 판관필로 맹공을 가했으나 실패를 거듭한 교살독사가 이번에는 번개같이 신속하게 한 손을 내뻗쳐 반격을 가했던 것이다. 신독괴살수는 추호도 당황함 없이 내뻗쳐 반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는 우렁차게 폭소를 터뜨리더니 오른팔을 휘둘러 옷소매를 떨치면서 일진의 강맹한 장력을 내뻗쳐 상대방 장세와 마주쳐 갔다. 교살독사는 신독괴살수의 내공이 무척 심후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터라, 그가 내뻗친 일장의 위력이 무척 강맹하리라는 추측을 하고 감히 맞닥뜨릴 엄두를 내지 못하여 신속하게 몸을 날려 후퇴하였다. 교살독룡은 섭선을 휘두르며 맹공을 시도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격이 너무도 흉맹하여 일단 섭선을 거두고 물러섰으나, 신독괴살수가 교살독사에게 매서운 반격을 가하자 그가 내뻗친 장력이 채 거둬들여지기 전에 우렁찬 함성과 비호처럼 날쌘 동작으로 상대방을 덮치면서 섭선을 휘둘렀다. 교살독룡과 교살독사는 교살용사쌍수로 호칭되는 만큼 개인적인 무공조예도 훌륭하였지만 특히 둘이서 합세하여 연합작전을 펼치는 합격술(合擊術)에 매우 능란하였다. 그들 두 사람이 일단 합세하여 공격을 퍼붓게 되면 어떠한 강적이라도 감히 날뛰지 못한다. 그만큼 그들 각자 공력은 심후하였고 개개인 일거수일투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였다. 신독괴살수는 일장을 내뻗쳐 흉맹하게 쓸어 쳐오는 섭선을 후려쳤다. 그는 무림칠절 중에서도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쟁쟁한 일류 고수였지만, 일단 교살독룡이 후려친 섭선에 얻어맞는 날이면 제대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듯 전광석화와 같은 찰나에 흉맹한 기세로 후려쳐 오는 섭선을 피하기는커녕 맨손으로 반격을 가하자 교살독룡은 내심 크게 놀라 섭선에 끌어 모았던 내력을 끝까지 발산하지 못한 채 무척 주저하고 있었다. 펑! 신독괴살수의 장력이 교살독룡의 섭선에 부딪치는 찰나 요란한 마찰음이 일어났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교살독룡은 팔이 시큰하게 저림을 느끼며 섭선을 밑으로 축 늘어뜨리다가 하마터먼 땅에 떨어뜨릴 뻔하였다. 교살독룡은 경악과 분노와 치욕이 한데 엉겨 거친 숨을 씩씩 몰아쉰 채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수십 년 간에 걸쳐 무림 천하에 쟁쟁한 명성을 떨친 인물로 그만큼 명성을 날리게 된 원인은 오로지 섭선이라는 절묘한 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기라고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상대방의 육장(肉掌)에 의하여 하마터면 섭선을 떨어뜨릴 정도의 위기에 봉착했으니 어찌 체면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여하한 수단으로라도 이 치욕을 만회하지 못하면 떳떳이 낯을 들고 강호에 나서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뒤 가릴 겨를 없이 단전의 진원(眞元)을 모두 끌어올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섭선을 거둬들이지 않은 채 왼손을 급히 내뻗쳐 상대방의 흉부에 있는 장대혈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후려쳐갔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교살독사가 판관필을 휘둘러 신독괴살수를 향해 옆으로부터 협공을 가하니 고막을 찢을 듯이 강맹한 바람이 일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적으로부터 흉맹한 협공을 당한 신독괴살수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언저리에 살기가 등등하였다. 그는 우렁찬 함성을 지르면서 허공으로 약간 치솟아 오르더니 즉시 그 자리에 다시 내려서서 몸을 약간 낮췄다. 그리고 왼손으로 교살독룡의 섭선을 움켜진 채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교살독사의 판관필을 홱 낚아챘다. “으윽… …” 일순 교살독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채 비틀거렸다. 어느새 그의 판관필은 신독괴살수의 수중에 있었다. 신독괴살수는 살기가 등등한 터라 판관필을 거꾸로 잡은 채 교살독룡의 흉부를 향해 신랄하게 찔러갔다. 교살독룡은 오른손의 섭선을 이미 신독괴살수에게 붙들린 터라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서 섭선을 놓아버리고 허둥지둥 후퇴하고 말았다. 두 사람의 합공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병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빼앗아 버린 신독괴살수의 정묘한 수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신독괴살수는 상대방으로부터 빼앗은 섭선과 판관필을 양 손에 각각 든 채 득의만만한 웃음을 머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 쳤다. “너희들은 지금 곧 방안에 있는 저 얼간이 젊은 녀석에게 알려서 너희들을 대신하여 그로 하여금 무기를 빼앗아가라 일러라!” 교살용사쌍수는 수십 년 이래 강호를 다녔지만 이처럼 치욕을 당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당장 피를 토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치욕을 그냥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시에 대갈일성하면서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신속하게 신독괴살수를 향해 덮쳐들었다. 신독괴살수는 가소롭다는 듯 냉소를 머금은 채 호통 쳤다. “좋다!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소원을 풀어 주마!” 그는 곧 양 손의 무기를 휘둘러 바위라도 부숴버릴 기세로 날카로운 경풍을 발출하더니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덤비는 교살용사쌍수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교살용사쌍수는 막대한 치욕을 만회하려고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덤볐으나 무모한 격투를 하여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는 터라, 상대방의 흉맹한 공세에 감히 상대하지 못하고 훌쩍 몸을 날려 각자 좌우로 일 장 거리쯤 날아갔다. 이때 방 안에 있던 학철두는 큰 소리로 외쳤다. “용사쌍수! 어서 물러나라. 그 자는 너희들의 적수가 아니다!” 말소리가 채 멎기도 전 둥그런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경장차림의 사나이 네 명이 줄지어 나왔고, 그 뒤를 이어 화려한 복장의 학철두가 거만한 걸음걸이로 나타났다. 학철두는 장중(場中)의 여러 고수들은 아예 안중에 두지 않은 듯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으로 거만하게 어깨를 떠억 벌리고 걸어 나왔다. 그토록 오만불손한 그의 태도는 중인들로 하여금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이때 검을 찬 네 명의 경장 사나이들은 학철두를 중심으로 두 사람씩 좌우로 나뉘어섰고 학철두는 그들의 호위아래 건장한 체구를 자랑이라도 하듯 꿋꿋이 버티고 서 있었다. 비류신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학철두의 위아래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학철두의 외모는 한마디로 말해서 신분이 매우 높은 귀공자 같았다.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피부가 고울 뿐 아니라,두 눈에서 정광(精光)이 번뜩여 보는 이로 하여금 위엄을 느끼게 하였으며 유난히 화려한 옷차림 역시 영웅다움을 한결 돋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흠이라면 미간 사이에 자기(紫氣)가 서려 있고 눈초리가 유난히 매서워 인정이 없고 매우 각박해 보였다. 이때, 비장하고 처량한 일진의 기다란 부르짖음 소리와 함께 장중에 매우 수척한 사나이 한 명이 나타났으니 그는 바로 풍운류랑인 고화룡이었다. 비류신은 고화룡이 나타나자 즉시 입을 열었다. “고 선배님, 후배는 고 선배님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답니다.” 비류신을 발견한 고화룡은 담담한 미소를 머금었으나 그 웃음은 너무도 처량해 보였다. 영웅호걸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원망과 비애가 뒤범벅된 처절한 쓴웃음이었다. 고화룡의 출현으로 인하여 장중에 긴장과 초조가 뒤엉킨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비류신은 고화룡의 표정을 대하자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는 고화룡에 대하여 유난히 깊은 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격렬하게 치밀어 오르는 비애를 감추지 못하여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고 선배님은 후배에게 무엇인가 시킬 일이 있으십니까?” 이렇게 물으면서 그는 뚜벅뚜벅 고화룡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때 학철두가 거만한 목소리로 비류신의 말을 가로챘다. “너는 누구냐? 어서 걸음을 멈추지 못할까?” 비류신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싸늘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왜 그러는 것이오? 무엇 때문에 내가 이 어른과 이야기 좀 하려는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냐 말이오!” “뭐라고? 내 말이 그렇게도 아니꼬우냐?” “그렇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학철두는 본래 자신의 당당한 외모에 대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임을 항상 자부해 오던 터라 누구 앞에서든지 결코 자신감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비류신과 선우철을 대한 지금은 약간 사정이 달랐다. ‘음… 중원 무림에 나를 제외하고도 저렇듯 영특한 청년이 있을 줄 미처 상상도 못했군. 지 금 내 사매(師妹)는 춘정(春情)이 한창 발동할 때이거늘 만약… …’ 그는 이처럼 엉뚱한 데까지 생각을 비약시키더니 돌연 말투를 공손히 하여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는 성은 학, 이름은 철두라고 부르오. 그런데 이름은 왜 묻소?” 비류신도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점잖게 대꾸하였다. “사실 나는 학형의 그 당당한 외모와 기품이 썩 맘에 들어서 주제넘게도 서로 벗으로 사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소.” “그렇다면 정말 미안하게 됐구려. 나는 본래 성격이 괴팍하여 아무리 영웅다운 호인을 만나더라도 벗으로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소.” 이때 선우철이 냉소를 지은 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비형, 저 친구 거만하기 짝이 없구려.” 비류신은 선우절의 말을 묵살해 버리고 나서 학철두에게 물었다. “학형께 긴히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 풍운류랑인 고화룡 선배님과 귀 파 간에 어떤 은원 관계가 있습니까?” “묻고 싶은 게 그것뿐이오?” 학철두가 이렇게 반문하자 비류신은 불쾌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칼날 같은 두 눈을 곤두세운 채 낭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고 선배님과 귀 파 간에 아무런 은원 관계도 없다면 나는 곧 고 선배님을 모시고 이곳을 떠나겠소. 만약 저지한다면 나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학철두는 여태까지 남을 부리며 명령만 내리는 생활을 해 왔을 뿐 아직껏 누구에게 굽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비류신의 언행은 그처럼 안하무인격으로 자기를 뺨칠 정도인지라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음험하게 폭소를 터뜨렸다. “으흐흐흣… 네놈은 정말 간담이 크고 겁이 없구나. 좋아! 뜻이 그렇다면 네 재주껏 마음대로 해 보아라.당장 뼈도 못 추리게 박살을 내버리고 말 테니… …” 이때 풍운류랑인 고화룡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비 노제, 공연히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어서 이곳을 떠나게. 나는 여기 있어도 아무런 탈이 없으니 안심하게.” 비류신은 호기가 넘쳐흐르고 남달리 의협심이 강하여 강호 무림에서 쟁쟁한 명성을 떨친 바 있는 고화룡이 왜 이다지 나약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고 선배님,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저와 함께 이곳을 떠납시다. 누구든지 우리의 거동을 저지하는 자가 있으면 후배는 당장에 독수를 뻗쳐 살해하고 말겠습니다.” 학철두는 냉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감히 누구 앞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느냐?” 버럭 호통을 치더니 번개같이 빠른 신법을 펼쳐 비류신의 곁으로 다가와서 그의 팔목을 낚아채려 하였다. 비류신은 학철두의 신속한 신법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경의의 탄성을 지르더니 왼손을 살짝 뒤집어 부감신주(俯瞰神州)라는 초식을 펼쳐 상대방의 왼팔에 있는 견유혈(肩儒穴)을 짚어갔다. 학철두는 급히 허공으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비류신의 몸 뒤로 넘어가서 그의 등을 향해 매서운 기세로 일장을 후려쳤다. 비류신은 등 뒤에 일진의 강맹한 장풍이 덮쳐 옴을 느끼고 고개를 돌릴 겨를도 없어 오른쪽 다리를 쭉 뻗어 뒷발질로 걷어찼다. 상대방의 하음혈(下陰穴)을 노린 것이다. 학철두가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물러서자 비류신은 그 틈을 이용하여 전광석화와 같이 몸을 돌려 날카롭기 짝이 없는 절초(絶招)를 연속 펼치며 속공을 가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 연속 육 장이나 속공을 퍼부었고, 발길질을 세 차례나 곁들였지만 학철두는 번번이 여유롭게 피하여 비류신을 크게 격노시켰다. 일순 학철두의 흉험한 냉소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듯하더니 그는 허공으로 훌쩍 뛰어오른 채 비류신을 향하여 강맹한 일장을 내뻗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철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황망히 외쳤다. “비형, 어서 피하시오. 소양신공(少陽神功)입니다.” 비류신은 미처 적절한 방법을 시전하기도 전, 한 가닥 보이지 않는 잠력(潛力)과 뜨거운 경기(勁氣)에 부딪쳐 순식간에 십여 보나 후퇴하고 말았다. 이때 학철두의 득의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이미 나의 소양신공에 의하여 격중당하고 말았다. 머지않아 독이 퍼질 것이다. 발작하기 전에 묻힐 곳이나 찾아 두어라. 으하하핫… …” 이때 비류신의 얼굴은 온통 핏빛으로 변해 버렸다.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깨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며 하늘과 땅이 온통 샛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